회귀자 사용설명서 1352화
면회(2)
시바.
‘도대체 뭐지?’
당황스럽다.
하지만 크게 당황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현상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최근에는 1회 차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었으니까.’
차원과 차원을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설명하기 힘든 장소로 여행을 다녀온 것이 아니었던가. 과거라고 부를 수도 없고, 이미 시간 선에서 지워진 세계에서 오랜 시간 체류한 것이다.
상황에 맞는 예는 아니었지만 본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 아니었던가. 1회 차에 머무른 시간만큼 회귀자 사용설명서에 영향이 간다고 생각한다면 눈동자 색이 흐릿해지는 것 정도야 이해가 간다.
‘분명히 그런 상태일 거야.’
문제는 이 모든 게 단순한 가정이라는 것.
1회 차에 체류하는 것이 회귀자 사용설명서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가설은 꽤 설득력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만약 눈동자가 흐릿해지고 있는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 1회 차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를테면 제3자의 개입이 있다거나, 김현성의 유대감이 약해지고 있는 거라면? 김현성이 멋대로 이쪽과의 유대감을 밀어내고 있는 거라면?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혹시 아는가.
정신병 고치라고 보냈더니 이 새끼가 진짜로 미쳐 버려서 독립을 꿈꾸고 있을지 말이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무엇하나 제대로 확답을 내릴 수가 없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분명 회귀자 사용설명서가 어떤 것이나 어떤 행동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김현성이 원인이든, 1회 차가 원인이든, 내가 원인이든 간에 혹시나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김현성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다는 것과 같았으니 말이다.
꼭 그렇게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이 반가울 수는 없다.
녀석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가 만든 회귀자였고, 언제나 이쪽의 통제 속에 있어야 했다.
“…….”
“…….”
‘짜증 나는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이 현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계속해서 흐릿해진 눈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형님.”
“…….”
“형님?”
“…….”
“거, 형님 내 목소리 들리기는 하는 거요?”
“들려.”
“도대체 왜 그리 표정이 안 좋은 거요?”
“내가?”
“뭐 매번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은 많이 보기는 했는데, 오늘따라 조금 심각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요. 뭐 고민이라도 있는 거요? 것도 현성이 형씨 만나러 가는 마당에….”
“아니.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아니, 형님이 그러고 있는데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있겠냐니까. 오랜만에 길드원들이 전부 모인 자리 아니요. 이렇게 전부 다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거 무슨 걱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에 관련된 거라면 오늘 하루 정도는 묻어두쇼. 혜진이 누님도 좀 챙겨주고 말이요.”
“혜진이?”
“저번에 둘이 싸웠다는 거 다 들었다는 거 아니요.”
‘아, 그러기는 했었지.’
사실 싸운 게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몰아붙인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다. 간만에 길드원들이 전부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어색한 것이 느껴지는 장내.
당연히 알프스와 벨리에 같은 병아리들은 몸이 굳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편하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김예리의 경우에는 김현성을 보러 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드는 것 같기는 했지만, 안 좋은 분위기를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지 티를 내고 있지는 않다.
선희영이나 엘레나도 눈치를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 선희영이야 애초에 말수가 적다 보니 티가 잘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분위기 자체가 무거운 걸 인지하고는 있는지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 같았다.
특히나 엘레나의 경우에는 그런 행동이 더욱더 두드러진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선희영에게 뭐라고 말을 걸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선희영은 조용히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 어색한 공기가 죽을 것 같다는 듯이 길드원들 사이에 껴 있는 안쓰러운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저… 희… 희영 씨… 날씨 참 좋죠?”
“…….”
“…….”
“…….”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언제나 수다스럽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던 황정연에게 가장 고역인 것이 바로 이런 분위기일 것이다. 평소였다면 지금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어야 하는 그녀 역시….
“네. 그러네요… 날씨 좋… 좋네요.”
라고 말하는 것이 한계였나 보다.
그중에서도 조혜진의 표정이 가장 좋지 않았던 것은 당연지사. 누가 보더라도 무슨 일이 터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저게 당연한 것이다. 이쪽이 평행세계를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최근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알고 있었으니, 이런 이벤트에도 쉬이 기뻐할 수는 없겠지.
아마 여기 있는 들 중 가장 마음이 복잡한 사람이 아닐까. 다른 길드원들은 그저 부길드마스터와 조혜진이 마찰이 있었기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알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길드의 분위기가 안 좋아진 이유는 그녀와 나 때문이었으니까.
“혜진 씨. 잠깐 이야기 좀 해요.”
“…….”
“혜진 씨.”
“…….”
‘뭐야. 얘 삐졌나.’
“부길드마스터.”
박덕구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줄 수밖에 없는 시점.
“표정 좀 푸세요. 길드원들이 뭔 일 난 줄 알겠어요.”
“부길드마스터야말로 방금 전까지.”
“거기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저번에 화난 거 미안하다고 내가 말했었나요?”
“네. 사실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습니다. 당시 부길드마스터가 느꼈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건은 대충 마무리가 됐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당시에는 조금 흥분하기도 했었고… 제가 어려져서 그런지 몰라도 감정적으로… 아. 아무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혜진 씨.”
“…….”
“…….”
“그것보다 주변 좀 둘러보라고요.”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그녀 눈에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여기저기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길드원들, 누가 봐도 불편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는 녀석들을 말이다.
그제야 오늘이 어떤 날이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것 같았다.
“아….”
“어떤 상황인지 대충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길드원들의 눈을 의식한 것일까. 오히려 뻣뻣해지는 조혜진이 시야에 비쳐왔다.
‘시바 괜히 알려줬나.’
“부길드마스터. 오늘, 날씨… 참 좋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날씨 이야기만 하는 건데.’
그녀 나름대로는 분위기를 풀기 위한 묘수였지만 오히려 어색함이 묻어나온다.
마치 억지로 친한 척을 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됐기 때문에 더욱더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더 낫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알프스의 흰둥이마저 불편해하는 것이 보였을 정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눈치를 보고 있던 인원들이 더욱더 나와 조혜진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한다.
물론 분위기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행동하는 놈도 있다.
안기모 이 새끼는 여전히 한 발자국 뒤에서 눈웃음을 치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중, 여느 때와 같이 넉살 좋은 모습으로 실실 웃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기모 저 새끼는… 왠지 모르게 진짜 마음에 안 들자너.’
하지만 녀석의 저런 모습이 가끔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저도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조혜진 님. 키이야… 날씨 한번 좋지 않습니까? 마치 하늘이 우리와 길드마스터의 해후를 축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날씨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위화감이 없는 모습.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의 외출인지 모르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하하핫. 매번 휴일다운 휴일을 즐기고 싶었는데… 이거 오늘에야말로 푸우욱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렇게 길드원들끼리 어딜 나가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고 말입니다. 역시 가끔은 이런 시간이 필요하지 말입니다.”
‘그래 넉살 좋은 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
“그렇죠?”
“하하. 이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동안 바쁘기는 정말 바빴으니까요. 솔직히 제가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지, 그동안 스케줄이 꽤 살인적이었습니다. 좋은 길드 들어가서 부귀영화를 누릴 줄 알았는데 과로사로 먼저 가게… 아… 아! 물론 부길드마스터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빴다고 이야기만 드리는 겁니다. 하하하하.”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정작 중요한 원정은 많이 빠졌잖아. 기모 아저씨는….”
“하… 하하하하….”
“뭐 기모 형씨가 그동안 농땡이를 많이 치기는 했지. 거, 형님도 실적표 확인해 보면 알 거요.”
“가장 최근까지도 쉬고 있었으면서….”
“여기에는… 그러니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렇지 않습니까? 아영 씨?”
함께 평행세계 행을 떠났던 유아영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유아영이 돌아온 이후에도 쉴 틈 없이 공방에 틀어박혀 있었다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화살표가 날아온 것을 깨달을 유아영은 황급히 고개를 젓기 시작한다.
“아영이 언니야 공방에 있어야 하니까. 원정을 떠날 시간이 없지. 아저씨는 정말로 놀기만 했잖아. 김미영 팀장님한테도… 스케줄 빼달라고 그랬었다는데… 그렇게 청탁하는 거 보기 안 좋아.”
“하… 하하하하… 무, 무슨 섭섭한 소리를… 이거 오해라는 거 알아두셔야 합니다. 부길드마스터. 저는 결코 그런 적이….”
“이번에 면회 일정 소화하고 나면, 붉은용병에서 요청한 지원 임무에 나가시면 되겠네요.”
“네? 부, 부길드마스터. 다른 건 괜찮으니… 거긴… 제가 그쪽이랑 잘 안 맞는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대놓고 꼬시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김예리의 표정이 눈에 보인다.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긴장감이 많이 풀어진 것 같은 얼굴들. 알프스의 흰둥이가 꼬리를 흔들 정도라면 이미 분위기가 전부 풀어진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정… 정말 힘들었는데….”
“…….”
“…….”
세라핌 사태로 인해 기운이 없었던 정하얀에게도 살짝 손을 내밀자 후다닥 달려와 손을 꽉 맞잡아 온다. 다른 한쪽 손에는 한소라의 손을 붙잡으며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외출 자체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야 좀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자너.’
목소리를 키우며 여기저기에 참견하고 있는 돼지 새끼, 언제 눈치를 보고 있었냐는 듯이 수다스러워진 황정연, 긴장감으로 인해 참고 있었던 숨을 내뱉는 엘레나와 살짝 웃음 짓고 있는 조혜진, 알프스와 벨리에도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김창렬과 박리안은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스미스 대령은 직장 상사의 등산에 얼떨결에 따라온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평소와 같다.
‘김현성만 있으면 완벽한데 말이야.’
이 자리에 딱 한 녀석만 없다는 걸 괜스레 떠올리게 된다.
여러 가지 걱정이 머릿속에 맴돌기는 했지만 일단은 녀석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놓인 것은 당연지사. 괜스레 한쪽 눈을 매만지며 정하얀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얀아. 슬슬 출발하자.”
“네… 네! 오빠.”
그렇게 정하얀이 주문을 외운 순간,
“…….”
“…….”
시야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익숙하다면 익숙한 풍경이 눈에 비쳐왔다.
“기영 씨?”
푸른 초원 위에 녀석이 서 있었다.
*다음 페이지에 꽃기연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꽃기연 일러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