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46화
귀환(6)
“…….”
“…….”
햄비어 꼬치를 받아 들기도 전에 저 멀리서 칼턴과 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빅보이! 자꾸 그렇게 공짜로 퍼주면 남는 게 없다고!”
“어휴 저 답답한 새끼. 사업은 원래 이기적인 놈들이 성공하는 거라며?”
“일… 일단 좀 가만히 있어! 칼턴! 유진! 어차피 남는 거잖아… 이 꼬맹이 몇 시간 동안 여기 있었다니까?”
“뭐? 네 맛대가리 없는 햄비어 꼬치 냄새 때문에? 차라리 저 꼬맹이가 잡도둑이라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겠다.”
쓸데없는 것으로 갑론을박을 펼치는 놈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래도 갑작스러운 꼬맹이의 등장에 호기심이 동하기는 했는지 빅보이에 이어 유진과 칼턴까지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
이제는 꼬맹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더 자란 상태이기는 했지만 놈들에게는 내가 아직까지 꼬마로 보이는 모양이다.
“너 때문에 놀랐잖아. 빅보이.”
“어?”
“덩치는 산만 한 놈이 성큼성큼 다가오면 당연히 놀라지 않겠냐고. 저리 좀 비켜봐.”
“아까는 공짜로 퍼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칼턴이 빅보이를 밀친 이후에 햄비어 꼬치를 집어 든다.
녀석의 생김새 역시 아이들에게 친화적이지는 않았지만 제 딴에는 빅보이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너도 똑같잖아! 뭐.”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점점 시끄러워질 것 같았기 때문에 은근슬쩍 꼬치를 받아 들자 다시 한번 말싸움을 하는 놈들이 시야에 비쳐왔다.
“이것 봐라. 빅보이 이 새끼야.”
“아니… 그게….”
“거울 좀 보고 오라고. 이 꼬맹이가 겁을 안 집어먹게 생겼나. 빨리 먹어봐라, 꼬맹아. 아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맛 평가라도 부탁해 보자고. 빅보이가 거금을 들이고 배워온 레시피가 얼마나 맛있는지 응?”
“그… 그만 좀 해 칼턴!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게 미안하다고 해서 될 일이냐고. 응? 자그마치….”
“레, 레시피에는 문제가 없다니까! 재료가 문제야. 원가절감 하겠다고 질 나쁜 고기를 들여오니까 맛이 없는 거라고.”
“여기서 원가절감 안 하면 우리 다 굶어 죽어. 그리고… 고작 햄비어가 질 좋은 고기, 질 나쁜 고기 따로 있냐?”
“…….”
“그러니까 일단 이 꼬맹이한테 한 번 시험해 보겠다는 거 아니야. 맛있으면 맛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겠지. 아니면 가능성이라도… 응? 꼬맹아. 이걸 공짜로 주는 대신에 말이다. 고기가 얼마나 맛없는지 이야기 해주는 걸로 하자. 괜찮지? 어?”
“…….”
“…….”
계속 녀석들을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아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거래라고 빅보이 이 새끼야. 공짜로 퍼주는 거랑은 다르지.”
‘시바. 먹기 싫은데.’
꼬질꼬질한 녀석들의 손을 보고 있자니 더욱더 이 꼬치에 손을 대는 것이 꺼려진다.
하지만 이걸 어디에선가 보고 있을 지혜 누나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놈들과 나를 만나게 하기 위해 이런 같잖은 함정을 파놓은 걸 보면 분명히 이 광경을 보고 있지 않을까.
이쪽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고 싶어 할 게 뻔했다. 내 입장에서는 누나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는 거다.
슬쩍 햄비어 고기를 한 입 깨문 것은 당연지사. 고기가 너무 질겨 턱에 힘을 주자 겨우 한 입 우물거릴 수 있는 크기로 떨어져 나온다.
온갖 싸구려 향신료가 범벅이 되어 있는 양념은 역겹기가 그지없었고, 햄비어 특유의 냄새도 내 심기를 거스르게 만든다.
곧바로 뱉어내고 싶은 욕구가 머리끝까지 차오르기는 했지만 세뇌된 것마냥 계속해서 저 고기를 씹게 된다. 이미 미각과 후각이 단련된 것이다.
‘이 새끼들 이거 장사 접어야겠는데.’
어디서 어떤 레시피를 어떻게 배워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동안 처먹었던 햄비어 중 단연 최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오죽하면 템플러 젠이 가지고 온 햄비어가 낫다는 생각이 들까.
“어떠냐?”
“어때 꼬맹아?”
“맛… 맛있냐?”
‘시바. 니들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이딴 걸 팔려고 내놓는 게 범죄야.’
그러니까. 기대하지 마.
“…….”
“…….”
“솔직히 먹을 만하지? 응? 맛있잖냐. 응?”
“어? 어? 한 입 더 먹는다. 칼턴 봤어?”
“정말… 정말?”
기대하지 말라고 이 새끼들아.
기대감에 차오른 놈들의 얼굴이 눈에 비친다. 놈들의 기대감을 산산조각 내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럴 수가 없다. 당장 햄비어 꼬치를 집어 던지고 장사를 접는 게 낫겠다고 진지한 조언을 해주고 싶은 시점.
정말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지혜 누나를 생각하니 그러기가 힘들다.
‘중요한 장면이자너.’
1회 차에서 나를 위해 대신 희생해준 떨거지들과의 재회. 심지어 이 떨거지들과 함께한 추억의 음식을 먹고 있지 않은가. 싸구려 요리 드라마 같은 장면이기는 했지만 눈물을 쥐어 짜낼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었다는 거다.
이 정도는 되어야 지혜 누나가 만족하고 이 장난 같은 짓거리를 그만두겠지.
감정을 잡자 아니나 다를까 금방 눈물이 찔끔하고 튀어나온다.
“뭐… 뭐야. 왜… 왜 울어?”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살짝 떤다.
“이… 이 꼬맹이 왜 우는 거야? 칼턴 응? 뭐… 뭐야. 뭐냐고!”
“네… 네 햄비어가 너무 맛없어서 우는 거 아니야?”
“울, 울지 마라. 꼬맹아. 응? 울지 말라고.”
“…….”
“어, 어떻게 할 거야! 빅보이! 제기랄!”
“아니, 왜 나한테 뭐라고 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네가 울린 거잖아! 젠장!”
“아, 아니,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그 면상을 들이밀면서 개지랄을 떠는데 그럼? 응? 그럼 저 꼬맹이가 겁을 안 집어먹겠어? 저리 좀 꺼지라고!”
‘너도 만만치 않아. 유진 이 새끼야.’
“맛없는 걸 맛있다고 말하라고 은근슬쩍 협박한 거 아니냐고! 제발 저리 꺼져 빅보이!”
“나, 나는 억울하다고!”
이즈음에서 한마디 더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맛… 맛있네요.”
라고 말이다.
“뭐… 뭐?”
“…….”
“푸…흐…흐흐흐.”
“진… 진심인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핫! 들었냐. 칼턴?! 맛있다잖냐! 응? 꼬맹이가 맛있다고 한 거 들었냐고.”
“내 귀, 귀가 먹은 줄 알아? 나도 들었어 이 새끼야. 뭐… 도대체… 꼬, 꼬맹아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 저 덩치 큰 아저씨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꼭 솔직한 평가를 해줘야 돼. 응? 그래야 우리가 살아.”
“정말… 맛있네요.”
“말, 말도 안 돼. 너… 너 혹시 며칠 굶은 거 아니지?”
고개를 도리도리.
“이, 이건 말도 안 돼….”
“뭐, 뭐가 말도 안 된다는 거야? 도대체. 맛있다잖아! 그게 응? 맛있는 걸 맛있다고 말한 게 잘못된 일이야?”
칼턴이 심각한 얼굴로 유진에게 중얼거린다.
“유… 유진.”
“그래. 칼턴….”
“아마도… 이 꼬맹이 몇 주는 굶은 것 같다. 이건 말도 안 돼.”
“뭐?”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미각이 망가지거나 며칠 굶지 않은 이상 어떻게 이걸 맛있게 먹을 수 있겠냐고… 어이 꼬마야. 너 집은 있냐? 돌아갈 곳은 있고?”
“요, 요즘 린델에서 굶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다고… 뭐… 보육원들도 많잖아. 길바닥 거지 못 본 지도 한참 된 것 같은데… 헤르엔이나 다른 곳들은 몰라도, 최소한 린델에서는 본적이 없….”
“그걸 네가 어떻게 장담해 빅보이?”
“어…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장담하냐고… 아무리 린델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이런 꼬맹이는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라고… 다른 도시나 나라에서 흘러들어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지. 일단 이리로 들어와 봐라, 꼬맹아.”
“뭐… 뭐야. 가게도 들이게?”
“일단 린델 아동보호센터에 연락을 하고 기다려야지.”
“거기 지금 문 닫았어.”
“그럼 이 새끼야. 이대로 내버려 둘 거야? 최소한 내일 아침까지는 데리고 있어야 되지 않겠어?”
“그게… 그렇게 돼?”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좀 하라고 빅보이. 이대로 이 꼬맹이가 다른 곳으로 갔다가 어디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거나 노예시장에 팔려간다고 생각해 봐라. 꿈자리 뒤숭숭해서 잘 수나 있겠어? 아니, 꿈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도 책임을 질지도 몰라. 요즘 린델이 얼마나 이런 꼬맹이들을 신경 쓰고 있는데. 저번에 파란 유소년 교육센터에서 난리 난 이후에는 더 그런 분위기가 됐다고… 공화국 군사 아들내미 죽은 거 몰라? 여기 낙오자 거리에 있는 새끼들도 분명히 우리한테 손가락질할걸?”
“어? 어…?”
“어디 그것뿐이야? 혹시나 베니고어넷에 올라간다고 생각해 봐라. 아주 천하에 죽일 놈들 되는 거야. 낙오자의 거리에 있는 3인의 은퇴 모험가들이 굶주린 꼬맹이를 죽게 내버려 두다. 같은 타이틀로 기사 올라간다고 상상해 보라고. 우리 인생 아주 종 치는 거야. 적어도 수천 명은 우리 가게로 날계란 던지러 올 거다. 안 그래도 망할 사업은 완전히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거고….”
“그, 그럼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일단 네가 데리고 있어야지.”
“내가? 왜 내가 데리고 있어? 어?”
“네가 먼저 이 꼬맹이한테 햄비어로 오지랖 부렸잖아!”
“젠장! 왜 나한테 그래? 배고파 보여서 꼬치 하나 쥐여준 게 죄야?!”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 제기랄! 밖에 추우니까!”
“춥긴 뭐가 추워!”
“원래 꼬맹이들은 추위 많이 탄다고!”
‘이 새끼들은 진짜.’
여기서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자너….
지들 마음대로에, 은근히 따뜻한 것까지 똑같다. 칼턴은 어쭙잖은 브레인 흉내를 내고 있었고, 빅보이는 그런 칼턴에게 흔들린다.
방관자가 되어 한 발자국 뒤에서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유진의 포지션도 여전했다.
“대,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는 연락받으려나.”
“낙오자의 거리? 여기로? 그건 안 돼.”
“왜?”
“우리 가게 분명히 식품위생법에 분명히 걸릴걸. 그것 말고도 공사 가라로 친 것도 분명히 걸릴 거야. 위원회 놈들이 얼마나 독한데.”
“알렉스한테 부탁해 보는 게 어때? 그 새끼 감찰단 소속이잖아.”
“연락 한번 해볼까?”
‘받을 리가 없자너.’
당연하지만 알렉스는 연락을 받지 않는다.
여전히 머리를 부여잡는 놈들이 눈에 띈다. 보육원에 던져놓고 오자 느니, 그냥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연락하는 게 낫지 않냐느니 같은 소리를 해대고 있었지만 무엇 하나 놈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인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빅보이 녀석은 내가 햄비어 꼬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은지 몇 개를 더 가지고 오는 중, 유진은 후드를 툭툭 쓰다듬어 주기 여념이 없다.
“일단 우리 집으로 들어가서 하룻밤 재우자. 나머지는 내일 생각하지 뭐.”
‘그래. 그런 식으로 될 것 같기는 하더라.’
이 새끼들은 이런 놈들이었으니까.
놈들은 하루만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놈들의 집에 눌러살 수도 있을 것이다.
적당히 불쌍한 꼬맹이 연기 좀 해주다 보면 정도 쌓이고, 결국은 놈들이 내게 매달리게 되겠지.
팔자에도 없는 꼬맹이를 맡게 된 이후에 낙오자의 거리에 있는 동료들에게 놀림도 받고, 이것저것 해주고 싶어서 지랄발광을 떨게 될 것이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 가게에서 열심히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졸지에 안주인 포지션을 맡게 되고… 결국 놈들은 나를 이렇게 키울 수 없다며 큰 결심을 할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빚까지 낼 것이다. 가게까지 팔아가면서 좋은 교육을 해주겠다고 파란 유소년 교육센터로 보내겠다고 염병을 하지 않을까.
언제나 우리 꼬맹이, 우리 꼬맹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것이다.
밤마다 햄비어 고기로 가득 찬 진수성찬을 대령하고 매일매일 머리를 쓰다듬고 껴안고 난리를 치겠지.
미소가 지어지기야 한다. 1회 차에서 놈들이랑 그렇게 어울렸던 게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유희적인 측면에서야 그립기는 했지만….
“…….”
“…….”
‘그게 의미가 있을까.’
“…….”
“…….”
‘아니… 의미가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