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45화
귀환(5)
‘살아 있다. 이거지?’
너무 뻔한 수작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1회 차보다 2회 차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한 이후에, 슬그머니 빅보이를 이쪽에 선보인다는 것이 말이다.
아까의 대화에서 결론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빅보이를 만나게 해줄지, 만나게 하지 않을지 결정하려고 했던 모양, 지혜 누나가 낸 쪽지 시험을 합격한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녀석들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을까.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거나, 빅보이와 칼턴, 유진의 존재가 내게 방해가 된다고 느꼈다면….
‘걔네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수도 있자너.’
누나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간에 이 장소로 나를 안내한 걸 보니 내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충분히 녀석들을 봐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알렉스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돈을 줘도 가지 않을 허름한 거리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조용히 미소 짓는 이지혜의 얼굴이 눈에 띈다.
“왜 그래요? 표정 좀 풀어요. 오빠.”
“누나 진짜….”
“왜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시치미 떼는 거 진짜 얄밉자너.’
“나는 이런 거 부탁한 거 없어. 누나.”
“제가 뭘요? 그냥 조금 색다른 곳에서 시간 좀 보내자고 끌고 나온 건데….”
‘끝까지 시치미 떼는 것 봐.’
그 와중에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감찰단 알렉스 녀석은 주변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다. 졸지에 명예추기경을 데리고 암행을 하게 됐으니 안전문제 같은 것들이 신경 쓰이기야 하겠지.
혹시 모를 암살자 같은 것이라도 찾고 있는 것일까. 본인에게 주어진 단독임무에 지나치게 심취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녀석의 역할은 그것뿐만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
“…….”
“그러니까 이곳은….”
“네. 알렉스 님.”
“일반 모험가들이 낙오자의 거리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낙오자의 거리요?”
“네. 물론 조금 부정적으로 들리시겠지만… 그냥 이 거리를 좋아하고 즐기고 아끼는 이들이 서로를 놀리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아아….”
“실제로는 낙오자들이 아니라 유명한 모험가들도 자주 찾는 장소이니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네요. 사실… 저는 이런 곳이 린델에 있는지도 몰랐어서….”
“아마 그러실 겁니다. 아무래도 중심가에서 활동하시다 보면 이런 거리를 이용할 기회가 없으셨을 테니….”
“부끄럽지만 그렇네요.”
“전혀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 있는 녀석들 모두 이 거리가 유명해지기를 바라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지들끼리만 즐기고 싶다 이거야?’
“어째서인가요?”
“이유는 많지만 아마…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숨 쉴 공간이요?”
알렉스 녀석이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슬쩍 지혜 누나를 바라보자 자기도 몰랐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것이 보인다.
“그,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린델은 조금 저희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라….”
“…….”
“…….”
“그…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모두가 린델 확장이나 사업계획에는 만족하고 또 동의하고 있지만 본래 린델을 구성하고 있던 놈들은 모두가 거칠고…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무식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라….”
“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땀을 뻘뻘 흘리는 알렉스가 보인다. 횡설수설하고 있었지만 결론은….
‘니들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거지?’
지금의 린델과 예전의 린델은 꽤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부임한 이후의 린델과 이전의 린델은 다르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심가는 비교적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예전의 린델은 조금 더 가진 것 없는 놈들에게 친화적인 도시였다.
빈민가도 많았고, 빈민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장이나 노점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는 거다.
길을 가면서 연초를 피우는 죽일 놈들이나, 대낮부터 술병을 들고 돌아다니는 놈들을 꽤나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지금의 린델은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계속되는 확장과 사업으로 인해, 완벽한 계획도시로 재탄생되고 있었고,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미안할 지경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길을 가면서 침을 뱉는 죽일 놈들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당연히 거친 용병과 모험가들에게 익숙한 환경은 아니다.
린델이 가지고 있는 인프라를 환영하면서도, 피와 냄새, 몬스터의 체액에 절어버린 갑옷을 입고,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는 거다.
‘그게 바로 여기야?’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낙오자의 거리란다.
‘길빵하는 놈들 진짜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자너.’
아니나 다를까 한 손에는 연초를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다니는 놈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당황한 얼굴로 녀석들을 바라보자 손으로 연기를 휘날리는 알렉스가 시야에 비쳐온다.
“모, 모두가 저러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추기경님.”
“아니요. 괜찮습니다. 알렉스 님.”
‘괜찮기는 시바. 여기도 조만간 싹 다 밀어버려야지.’
알렉스 이 새끼도 낙오자의 거리를 종종 즐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곳을 두둔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기는 도박장도 있네. 시바. 불법 도박장 아니야? 저거?’
저도 모르게 진 군사의 얼굴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아마 그 도박의 미친놈도 이곳을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 멀리서 알렉스를 알아본 녀석 하나가 다가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야? 알렉스! 여기는 오랜만이네? 이제 안 온다고 하지 않았어?”
“캐… 캐넌?”
“하하핫! 이 새끼야! 방금 조지가 말이야! 얼마를 땄는지 알아?”
“잠… 잠깐 입 좀 다물어 캐넌! 죄, 죄송합니다. 명예추기경님. 잠깐만….”
“…….”
그리고 황급히 캐넌이라는 지인을 데리고 말다툼을 벌이는 녀석,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만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진짜 더럽자너.’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하기도 했다.
빅보이 녀석과 함께 다니던 곳들이 바로 이런 장소였으니 말이다.
“어때요? 분위기 괜찮죠?”
“분위기 같은 소리 하지 마 누나. 분위기는 개뿔….”
“왜요. 오빠는 꽤 익숙해 보이는구만.”
‘그래. 익숙하기는 하지. 이 누나야. 시바.’
위생 관념이 없는 새끼들만 모아 놓았는지 노점에서는 먼지 쌓인 음식들을 그대로 팔고 있었고, 또 다른 새끼들을 그걸 맛있다고 처먹고 있었다.
술 취한 놈들의 목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나는 악취와 연초 냄새 때문에 짜증이 곤두선다.
심지어 노점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새끼 하나는 손을 씻지도 않고 요리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고성이 들려오고 있었고 길거리에는 그냥 쓰레기를 버리는 놈들이 천지였다.
그래도….
‘진짜 쓰레기 같은 놈들은 없자너.’
치안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드를 뒤집어쓴 여자와 꼬마에게 시비를 거는 놈들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막 대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적당히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질서한 것 같았지만 의외로 질서가 잡혀 있다.
암묵적인 룰이라도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는 낙오자들은 선을 지킬 수 있는 놈들이었다.
저 멀리서 익숙한 냄새가 느껴진 것은 이 거리에 대한 평가를 약간 수정했을 때였다.
“왜 그래요?”
“…….”
“…….”
‘시바.’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 처먹던 고기 냄새였으니까.
“어디 가 보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요?”
“…….”
“…….”
슬쩍 아무 말도 없이 걸음을 옮기자, 미소 지으며 나를 따라오는 이지혜가 보인다.
“앗.”
깜짝 놀란 알렉스 녀석이 나를 따라붙는 소리도 들려온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내딛자 익숙한 냄새가 다시 한번 코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진해지는 역겨운 냄새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웬 허름한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세 놈의 모습도 말이다.
‘그냥 니들이 좋아하는 거였잖아. 이 새끼들아.’
“…….”
“…….”
‘시바… 니들이 좋아하던 거 맞잖아.’
“어이 빅보이 이 새끼야! 여기 좀 더 가져와!”
“제기랄! 기다리라고!”
“유진 계산 받아!”
“좀 알아서 넣고 가! 무슨 계산을 받으라고 지랄이야! 지랄이!”
“니들 망할까 봐 여기까지 찾아온 손님들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 옛정 때문에 맛대가리도 없는 고기 처먹어 주겠다고 여기까지 온 손님한테….”
“니들이 손님이냐. 이 새끼들아? 원수들이지. 안주도 안 시키고 새끼들이! 자리 차지하지 말고 당장 꺼져!”
“어? 어? 이 새끼가 사람 팬다!”
“꺼지라고 이 새끼들아!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진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놈들을 바라보자 알렉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좀 부끄럽지만 제 친구 놈들입니다.”
녀석의 말에 답하는 이지혜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궁금하네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물론입니다. 이지혜 님. 그러니까… 저 녀석들은 본래 린델에서 나름대로 인지도 있었던 모험가 출신이었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은퇴를 한다고….”
“…….”
“그것도 햄비어 꼬치 사업을 한다고 말입니다. 옛날에 조금 유명했던 햄비어 가게에 들어가서 거금을 주고 비법을 배워왔다느니, 새로운 레시피를 배우겠다느니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더니 이런 가게를 열었습니다. 낙오자의 거리에서는 나름 명물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워낙 인맥이 좋기도 하고, 성격도 좋은 놈들이라… 멍청하게 사업을 벌이다가 거금을 날렸다고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착한 놈들이라 찾아오는 지인들도 많아서….”
“아아아….”
“…….”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저는 됐어요. 명예추기경님은….”
다시 한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지혜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알렉스의 목소리도 말이다.
아마 지혜 누나가 분위기를 파악하고 녀석을 물린 것처럼 보였지만 딱히 확인해 보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냥 이 새끼들이 햄비어를 파는 꼴을 구경하고 싶었으니까.
“제기랄! 그냥 오지 마! 이 새끼들아! 오지 말라고!”
“우리라도 안 오면 너희들 망한다니까! 칼턴 이 새끼야? 푸하핫! 거금을 주고 배워왔다던 그 특선 레시피 좀 대령해 보라고!”
“그건 나랑은 관계없다고! 제기랄! 빅보이 새끼가 제멋대로 벌인 일이지. 이 새끼들이랑 같이 사업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제길 내 팔자야….”
“푸하하하하하핫! 지금이라도 빠져나오는 게 어때? 칼턴.”
“손님이 오면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뭣 하는 거야? 빅보이!”
“제기랄! 다른 술집에서 사 온 럼주는 들고 오지 마!”
“니들 술은 맛없어서 못 먹겠는데 어떻게 해?”
“그럼 안주라도 좀 시키든가!”
“제일 맛 없는 게 그 햄비어 고긴데 이 새끼야! 하하하하하핫!”
“당장 꺼져!”
여전히 소란스럽다. 시끄럽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조용해지는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
“…….”
조용히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하는 놈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제기랄… 오늘도 얼마 못 벌었네.”
“오는 새끼들은 많은데 영 매출에 도움이 안 되는 새끼들이 자리만 차지하고 제기랄!”
“그러니까 내가 사업 같은 거 하지 말자고 했잖아! 빅보이! 제기랄! 그냥 조용히 은퇴하고 부동산에나 투자하자니까 제기랄! 무슨 요식사업을 한다고! 음식 장사가 장난이냐고. 젠장!”
“그만해 칼턴. 빅보이 저 새끼 또 혼자 꿍해질라.”
여전히 세 놈이서 투닥투닥거리고 있다.
“…….”
“…….”
그리고 멍하니 다시 놈들을 보고 있었을 때.
빅보이 녀석이 눈치를 보다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것은 당연지사.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놈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시바.’
뒤를 돌아봤지만 알렉스도, 누나도 보이지 않는다. 왜 숨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괜스레 모습을 숨기고 싶어진다.
서둘러 후드를 푹 눌러쓰자 녀석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
“…….”
“제기랄… 해… 해치려는 게 아닌데….”
“…….”
“혹, 혹시 배고프냐? 꼬맹아?”
녀석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햄비어 꼬치를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