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43화
귀환(3)
“…….”
“…….”
“아, 아무래도 역소환된 게 아닌가 싶은데….”
“역소환? 갑자기 마법진이 나타나서 멋대로 작동한 걸 역소환이라고 할 수 있나?”
“본래다 그, 그렇잖아. 초월자가 어딘가에 강림한다는 건… 많은 대가를 필요로 하는 일이야. 별다른 소환의식도 거치지 않았고, 사전 준비도 없이 강림한 거니까. 악마 대군주들이 타 차원에서 강림했을 때 페널티를 받는 것과 같아. 물, 물론 이기영 후배가 악마라는 소리가 아니라….”
“…….”
“아무튼 강림한 것 자체는 괜찮았을 거야. 더 중요한 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력을 끼쳤느냐가 문제니까…. 음음… 이기영 후배는 이레귤러라면 이레귤러라고 부를 수 있으니까. 우리 대륙에서는 그나마 시스템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제한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지만… 엄연히 알타누스라는 대륙의 주신이 존재하는 1회 차에서는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네.”
“아마 다음에도 비슷한 시도를 하려고 하면 분명 뱉어내려고 할걸. 이, 이기영 후배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라는 거야. 이해할 수 있어?”
“…….”
“만약 내가 타 차원에서 강림한다고 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또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지.”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와는 다르네.”
“두더지 성녀의 안식처는 대륙의 던전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진 거니까. 이상 현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번 건과는 차이점이 있지. 이기영 후배가 그쪽으로 가서 벌인 일들을 생각해 봐. 시스템이 원하는 것은 이기영 후배가 1회 차의 개연성을 부여하는 거야.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라구.”
“…….”
“물론 이기영 후배가 강림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색, 색욕과 영면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만한 여지가 있으니까. 1회 차의 서사가 비상식적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거야. 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돼. 내가 예전에도 말했잖아. 필멸자들의 일은 필멸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괜히 우리가 용사니, 선택받은 무기니 해서 대리인을 내세우는 게 아니야. 나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 시스템은 대륙의 주인을 그곳에 살아가는 필멸자들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거든. 우리는 방관자가 되어야 해.”
“…….”
“직접 나서면 서사가 완성되지 않아. 필멸자들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돼. 이기영 후배. 문, 문제를 그렇게 해결하려고 하면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어느 날 갑자기 신이 내려와서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같은 이야기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이야기잖아. 물론 예외의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
“너무 필멸자들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같아. 내가 말했었지. 인간들을 너무 사랑하는 초월자의 최후는 언제나 좋지 않다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는 언제나 그만한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어. 우리는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관리자가 되어야 해. 최소한 우리 대륙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에서는 말이야.”
“알타누스가 회귀한 것 역시 비슷한 건가?”
“글… 글쎄… 시스템은 이런 종류의 기적에도 개연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녀의 소멸이 그 대가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개연성이 충족되지 않을까. 이기영 후배도 소, 소멸되고 싶지는 않잖아!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
“개연성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초월자로서의 이기영 후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이기영 후배야.”
잔뜩 흥분한 베니고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은 얼굴, 하지만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는 모습도 여전히 그녀다웠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네.’
차원을 구성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전부 깨달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구동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
‘솔직히 조금 에바하기는 했었지.’
물론 아무것도 건진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에 저항할 수 있어.’
차원을 관리하는 법칙에 어느 정도는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크게 들어온다.
당시에 애색기영은 분명히 차원의 법칙에 저항했었다. 물론 페널티와 경고를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저항했다는 그 자체로도 이미 의미가 있다.
격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차원의 법칙에 저항할 수 있다는 가설을 증명한 것이다.
“그, 그렇다고는 해도 이기영 후배가 딱히 그곳에서의 일에 너무 몰입하지 않았으면 해. 이기영 후배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이곳은 괜찮아.”
“…….”
“지금으로서는 그곳에서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결국에는 2회 차로 향하게 되는 미래는 변함이 없다는 거야. 집중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구!”
“…….”
“그, 그런 의미에서 우, 우리 컵케이크 던지기 놀이나 해보는 게 어때?”
“…….”
“진 군사 이 녀석 요즘에 콧대가 올라가 있는 것 같았는데 혼쭐을 내주자구.”
“그럴 시간 없어 베니고어. 일단 문어 촉수 놈들 에 대해서나 더 알아봐 줘. 혹시 소통이 되는지도 알아봐 주고 말이야.”
“쉴 때는 쉬는 것도 중요해. 이기영 후… 후배….”
‘얘는 진짜.’
이런 상황에서도 컵케이크를 그렇게 던지고 싶었던 것일까.
이상하게 눈치를 보고 있는 베니고어를 보고 있자니 이쪽의 모습이 다소 비정상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스스로 감정조절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은 한참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말이다.
‘조금 급발진하기는 했지.’
언제나 스스로의 상태를 냉정하게 체크하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특히나 막 귀환한 이후에는 더욱더 말이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던 상태이기도 했고, 세라핌에 대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상태이기도 했다.
‘근데 어쩌겠어. 그 새끼는 진짜 마음에 안 드는데.’
정하얀이나 한소라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녀석을 그 자리에서 폐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2회 차의 세라핌은 내가 만났던 1회 차의 녀석과 너무 유사했던 터라 잠깐 동안 이성을 잃었다고 자가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물론 이기영은 유인원이 아니다. 뭐가 옳은 행동이고, 무엇이 그른 행동인지, 내가 지금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지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김현성과 함께 정신병원에서 낚시하고 바비큐 파티나 벌이고 있었겠지.
‘시바 얘 이러는 거 보니까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퍼진 것 같자너.’
다소 딱딱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어떻게든 컵케이크 던지기 이벤트를 권유하는 것 같은 모습, 그녀가 누구에게 이런 지령을 받았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물론 베니고어가 스스로 눈치를 보고 있을 확률도 높았지만 당연히 지혜 누나가 영향력을 끼친 게 아닐까. 저 멀리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생각이 더욱더 맞을 거라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걸어오던 그녀가 입을 연 것은 베니고어의 침묵이 길어졌을 때였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베니고어 님. 요즘 진 군사 콧대가 많이 올라갔더라고요.”
“그, 그렇지? 네 생각도 그렇지?”
“네. 너무 짜증 나서 저도 집무실에 컵케이크를 한 상자나 던지고 왔다니까요?”
“한… 한 상자나? 그건 조금 상처받지 않을까?”
‘한 개나 한 상자나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
“아무튼 오빠는 컵케이크 이벤트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제가 데려갈게요. 그래도 괜찮죠?”
“응? 으… 으응. 물론. 물론 그래도 돼.”
이지혜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베니고어의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은 당연지사.
평소 가지 말라고 떼를 쓰던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인지라 조금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영 불편한 상황이자너.’
“…….”
“…….”
‘이럴 때는 특히 불편하고 말이야.’
괜히 이지혜와의 만남을 피해왔던 것이 아니다.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이 멍청한 동생이 지금 도움이 필요하다든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것 같다든가, 휴식이 필요하다든가 하는 이야기였다.
이지혜라는 인간은 지독히도 이기적이지만 자기 바운더리에 있는 이들에게는 은근히 정을 잘 주는 터라 아마 여러 방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는 보고서의 내용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내게는 더욱더 말이다.
여러 가지로 투자한 게 많은 대상이었다면 더욱더 그런 모습이 두드러진다. 단순한 이해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누나와 나 사이에 있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원하지 않은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보다 더 불편한 상황은 없다.
‘한가롭게 놀고 있을 때도 아니고….’
이런 눈에 보이는 이벤트에 내가 걸려들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자너.
“…….”
“…….”
대화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 그녀의 눈이 면밀히 이쪽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기습적으로 말을 걸어온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걸어오는 모습에 그녀가 마음을 먹어도 단단히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세라핌은 어떻게 할 거예요?”
‘시작부터 직구를 던지네.’
“뭘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하긴요? 폐기한다 뭐 한다 난리를 부렸다면서요.”
“과장된 거야. 누나가 어떤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소문은 과장되게 마련이니까. 세라핌을 폐기한다는 건 본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고….”
“최근에는 안 그랬었잖아.”
“나 원래 변덕 심한 거 몰라? 누나?”
“알죠. 변덕이 심한 것도 알고 있고, 남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안 보여 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
“…….”
“오빠 지금 조절 안 되잖아요. 저번에 오빠도 인정하지 않았어요?”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베니고어가 숨어서 지혜 누나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슬쩍 눈치를 주자.
“그, 그럼 나는 컵… 컵케이크나 던지러 가 볼까.”
라고 혼잣말을 하며 사라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
“…….”
“솔직히 조금 짜증 나는 게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전부 해결됐어.”
“아. 그새 해결이 됐어요? 그 많은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이 됐네요. 참 대단하기도 하셔라.”
“나 바보 아니야 누나. 어려진 거랑은 별개로 자가진단 정도는 할 줄 알아. 그때 지나치게 흥분한 것도 맞고, 잠깐 이성을 잃은 것도 맞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니까. 누나가 지금 뭘 준비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 그래요?”
“여기 온 지 얼마나 지났는데… 내가 김현성도 아니고.”
“아. 그래요?”
‘이 누나 들을 생각도 없자너.’
이미 자기 생각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는 상태였고, 다른 목소리는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빠 상태야 제 알 바 아니니까. 일단 오늘 하루는 어울려 줘요.”
“뭐?”
“우리 둘이서 밖에 나간 지도 오래됐잖아. 그냥 어울려 달라고요. 오빠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함께 있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까. 요즘 조금 힘들거든.”
“…….”
“어차피 지금 당장 해결책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빠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정보 모으고, 마법진 찾는 게 전부고….”
“…….”
“제가 떠나기 전에도 말했잖아요? 1회 차가 어디 도망가는 게 아니라고, 필요할 때는 갈 때는 가더라도 구태여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그냥 쉬는 게 아니면 같이 해결책을 생각해 봐도 괜찮고요. 뭐가 됐든 간에 오늘 하루는 같이 지내요. 마침 주제도 많고요. 할 이야기… 많잖아요.”
“…….”
“아니면 김현성이나 보러 갈래요? 그게 아니면 디아루리아랑 같이 있어도 되고요.”
“…….”
“정하얀이든 차희라든 괜찮으니까. 좀 같이 쉬자고요.”
‘어떻게 봐도… 함정이자너.’
이걸 함정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가 궁금했지만 말이다.
물론 거절할 명분이 없다. 차라리 진 군사의 집무실에 컵케이크를 던지는 게 더 낫다고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혜 누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결코 방해가 되지 않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볍게 말을 던지는 모습이 눈에 보여 왔다.
“…….”
“…….”
“오빠는 어째서 시간 역설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
“이상하잖아요. 1회 차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여기는 제법 멀쩡하고… 김현성 그 바보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
“저는 오빠가 다녀온 1회 차가 진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일지도 모른다고 봐요.”
“…….”
“시스템이 준비한 더미월드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 보자고요.”
“차라리 우리가 통속의 뇌라고 말하지 그래.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