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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39화 (1,33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39화

1하얀(22)

수많은 황금색 검들이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광경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려온다.

라파엘 없는 라파엘 파티는 이미 저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놀라는 기색이 없었지만 정하얀이나 김아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하늘에 떠 있는 검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말… 도 안 돼… 위, 위대한 존재시여… 저희는 어떻게….”

‘아니, 그놈의 위대한 존재는 시바 그만 좀 찾아.’

“이건… 대체….”

‘어차피 쟤는 저거 원툴이야.’

저것밖에 없다고.

물론 저것 하나가 가장 까다롭기는 했지만 조건만 갖춰진다면 파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필멸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충격적일지도 몰라도 현시점에서는 비주얼만큼의 임팩트는 없다.

‘할 수 있어.’

부족하지만 조건은 갖춰져 있다.

세라핌을 강하게 키우려고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도미니온스가 당장 개입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지금의 세라핌은 2회 차의 세라핌에 비해 어설픈 부분이 많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2회 차의 녀석도 병신 같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저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이미 한번 해본 짓거리다. 물론 그때 내가 가지고 있는 패와 지금 가지고 있는 패가 다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정하얀이 있다.

지금은 버텨야 할 때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정하얀 역시 급하게 주문을 외운다.

수없이 떠올라 있는 검은 분명히 정하얀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일 터, 라파엘 파티나, 김아영의 것들도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누구의 것인지는 의미가 없다.

결과적으로 저건 전부 다 우리 파티를 향해 쏟아질 테니까.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황금색 검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린 검을 첫 번째로 막아낸 것은 우산처럼 펼쳐진 정하얀의 마법진.

우박마냥 쾅! 쾅! 쾅! 쾅! 하고 계속해서 검들이 마법진을 두들기고, 그때마다 정하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수많은 검들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당연히 저 마법진이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번째는 마리엔. 할배 마법사.’

정하얀이 펼친 우산이 그 효력을 다한 이후에는 마리엔과 라파엘 파티의 마법사가 외운 주문이 우리를 감싸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버텨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형편없이 깨져 버리는 일회용 우산.

‘저 할배… 제기랄 에이징 커브 왔나.’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다시 한번 정하얀의 우산이 펼쳐진다.

문제는 이걸 계속해서 반복해야 한다는 점, 세라핌이 가지고 있는 자원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 적다. 주문을 교차하며 최대한 막아낼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독 안에 든 쥐마냥 계속해서 두들겨 맞다 게임이 끝날 확률이 높다.

5번째 우산이 깨진 이후에는 계속해서 이쪽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걸 처리하는 것은 사냥개를 포함한 라파엘 파티의 전위들, 검이나 방패를 들고 있는 녀석들이 속력을 잃은 검들을 쳐내거나 밀어낸다.

마법사들이 최대한 안정적인 환경에서 주문을 외울 수 있도록 말이다.

검이 어디로 떨어지는지,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는지 내 눈에 전부 보이고 있었지만 사냥개는 그걸 실행할 여력이 없다.

물론 놈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새끼는 날개도 없잖아.’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형편없이 깨지는 놈들을 향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할 수 없는 걸 하라고 주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냥개 역시 자신들이 템포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지 한 걸음 더 발을 내디뎠다.

‘선택지가 없나?’

세라핌에게 가는 길을 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쪽도 피해를 감수해야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완벽하게 방어하겠다는 생각을 반쯤은 포기한 채로, 결국에는 사냥개에게 조금 더 투자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시바. 시바.’

물론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고작 수십 개의 검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놈의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이 나올 지경.

몸 곳곳에 검이 꽂힌 채로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길.”

“…….”

“안으로 들어와요! 조금만 더 버티면 되니까!”

“오, 오빠 저는!”

“방어마법 계속 유지해!”

“네… 네!”

“위대한 존재시여! 저는 어떻게!”

“그놈의 위대한 존재는 작작 찾아! 일단은 막아요! 막아!”

‘시바… 시바.’

“심판… 천… 벌!”

“…….”

“천벌! 죽… 죽어요! 죽어!”

“…….”

“천벌!”

‘그놈의 심판 천벌은 개뿔 진짜. 쟤는 진짜 정이 안가. 시바.’

“정이 안 간다고! 세라핌 이 개새끼!”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이 공격을 버텨왔던 주문이 깨져 버린다.

순식간에 무방비에 노출된 파티원들이 보인다. 검들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잡아주기는 했지만 개인의 재량으로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파티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점점 더 좁아지기 시작했고, 황금색 검들은 일부 파티원들의 몸에 꽂히거나 땅에 처박힌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버텨! 무조건!”

‘조금만 더 버티면 그다음은 우리 턴이야.’

“아아아아악!”

“오, 오빠!”

“명예추기경님을 지켜!”

“주혁아! 주혁아!”

“떨어지지 마! 최대한 뭉쳐! 움직이지 마요! 마리엔! 마리엔! 제기랄! 움직이지 말고 대열 유지하라고! 나는 신경 쓰지 마! 나는 괜찮으니까!”

그 와중에 사냥개 이주혁이 결국 리타이어, 자리를 잡고 중심을 잡아줘야 할 마리엔이 사냥개에게 다가가려다 팔다리에 검이 꽂힌다.

“꺄아아아악!”

“…….”

‘제길.’

정하얀은 이를 악물고 나를 꽉 껴안고 있는 중, 혹시라도 검이 내게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지 쉴 새 없이 주문을 외우며 손을 뻗어대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압도적인 물량에 파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평정심을 잃은 정하얀이 펼치는 우산의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의 마법을 캐스팅할 수 있는 그녀도, 저 황금색의 비를 두들기면서 주문을 외울 여유가 없다.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마법을 외우는 것은 더욱이 불가능하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그녀를 더 소극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시바!’

워프 주문이라도 외워야 하나?

그럼 린델은?

김현성이야 그렇다고 쳐도.

함께 이곳으로 온 혜진이는?

망설이는 사이에도 으직으직 소리와 함께 보호마법이 깨져 나가고 있는 중.

예상하지 못했던 얼굴이 시야에 비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야….’

“꼬… 꼬맹아!”

‘뭐야… 저 새끼들….’

“…….”

“제기랄! 칼턴! 유진!”

‘니네가 왜 여기에 있어? 혜지니는? 얘네 안 붙잡고 뭐 하고 있었어?’

“꼬맹아! 내 목소리 들리냐! 어엉?! 응?!”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빅보이, 칼턴, 유진이었다.

녀석들이 이곳으로 올라올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당황스럽다. 상황이 터졌을 때, 파란 길드에 얌전히 있어야 할 놈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닿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몸, 빅보이 개자식은 한쪽 팔이 부러진 것 같았고, 유진은 다리를 절고 있다. 칼턴은 그나마 정상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복부에 칼날이 꽂혀 있다.

크고 작은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본인들이 지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었다.

겁을 먹고 뒤로 도망쳐 주기를 바랐지만 놈들은 황금색의 검들이 상관없다는 듯이 걸음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오지 마!”

“…….”

“오지 마 이 띨빵한 새끼들아!”

안 그래도 폭음이 들려오고 있는 린델이었기 때문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 멍청하게도 놈들은 조잡한 방패를 위로 들고 이쪽으로 뛰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대륙에 떨어진 이래로 가장 멍청한 짓거리였으며 가장 형편없는 짓거리였다. 불나방들이 모닥불을 향해 돌진하는 것보다 더 병신 같은 짓거리다.

화살 하나도 제대로 막지 못할 것 같은 방패를 우산으로 쓰고 이곳으로 뛰어오려고 하는 꼴이라니.

“꼬맹아! 제기랄! 거기에 가만히 있어라! 거기에 가만히 있어!”

“빅보이! 진짜 갈 거야?”

‘이미 달려오고 있잖아. 저 멍청한 새끼는 저걸 질문이라고.’

당연하지만 빅보이가 들고 있는 허접한 방패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쉽게 부서진다. 놈들은 황금색 칼의 비를 몸으로 받으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멍청한 새끼들이라는 이야기가 저절로 나왔을 때, 결국 마법진이 완전히 박살이 나며 이쪽을 향해 칼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하얀이 가장 먼저 몸으로 내 몸을 가린다.

“아, 안 돼! 오빠아!”

하는 소리와 함께 이를 악문 정하얀의 얼굴이 눈에 보인다.

“어?”

시야가 가려져 정하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 본능적으로 켠 망원경에는 정하얀과 내 몸을 덮어버리는 빅보이와 칼턴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온몸에 검이 박힌 주제에 어떻게 이곳으로 당도할 수 있었는지가 의문스러웠지만, 몸에 칼날이 박힌 유진도 아득바득 기어올라 결국에는 정하얀과 내 몸을 덮는다.

“윽! 윽!”

하는 정하얀의 목소리 신음 뒤로, 빅보이 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이렇게 죽나 보다.”

“…….”

“씨발… 주워오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푸슉 푸슉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놈들의 몸에 검이 박히는 소리일 거라는 생각에 발버둥 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정하얀이 내 몸을 꽉 조인다.

“그래도….”

“어엉. 그렇지?”

“즐겁기는 했지….”

“응… 즐거웠다. 재미있었…지….”

“…….”

“…….”

“꼬맹…아.”

“…….”

“약속… 못 지켜서 미안….”

“약속? 약속? 이 멍청한 새끼 이거 놔! 제기랄! 이 멍청한 새끼! 누가 도와달라고 했어! 누가 여기로 오라고 했어! 이 쓸모없는 원숭이 새끼들이! 내가 말했잖아! 이 새끼야! 내가 아무 짓거리도 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있으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잖아!”

“…….”

“안 그래도 곧 뒈지는 목숨 제대로 간수하고 싶으면 그냥 닥치고 조용히 지내라고 분명히 경고했잖아! 이 무식한 새끼야!”

“원… 원래 칼밥….”

“…….”

“칼밥 먹고 사… 사는… 놈들….”

“…….”

유진과 칼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법… 그렇지. 유진… 칼….”

“…….”

“이 새끼들… 죽었나….”

“…….”

녀석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병신. 이 병신 새끼!”

마지막 목소리.

“꼬맹이….”

“…….”

“우리… 꼬… 맹… 이….”

“…….”

“우리… 귀여…운 꼬맹이….”

“…….”

“아픔도… 많고… 불쌍한… 우리 꼬맹이… 꺼윽….”

“…….”

“꼭 행복… 해… 져야… 한… 다….”

“…….”

“사… 랑… 한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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