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33화
1하얀(16)
‘시발 진짜 어린 죽음이었잖아.’
정진호의 유언은 개소리가 아니라….
저주이자 예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
“…….”
‘만약 정말로 내 추측들이 맞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정말로 정진호 때처럼 이 모든 여정이 정하얀을 예정된 죽음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라면 무슨 선택을 해야 좋을까….
여전히 확실한 것은 없었지만 머리 아픈 생각들을 하게 된다. 사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고민하게 된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인도해야 하는 게 맞아.’
중요한 것은 1회 차가 아니라 2회 차다. 그걸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인지하고 있다. 1회 차에서 누가 다치건 뒈지건 간에 2회 차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정하얀이 죽어야 퍼즐이 맞춰지는 것이라면 그녀는 예정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시피 하다.
만약 정하얀을 끝까지 살려서 노을빛이 물들어 있는 대륙으로 데려간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어차피 무너진 1회 차와 함께 익사하게 될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말이다.
기껏해야 김현성과 함께, 혹은 따로 다른 생존자를 찾거나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겠지.
아니, 정하얀은 분명 무너진 마탑에서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다른 무엇보다 정하얀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녀를 살리려고 발악하는 행동 자체가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것 역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음 육망성이 어떻게 열릴지도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이 개 거지 같은 시스템.’
통제당하는 게 싫어서 윗놈들의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놨지만 지금도 자유롭지 않다.
차원의 균형을 유지하는 법칙에 짜증을 내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나온다.
“일단 움직여야 돼.”
흔하지 않게 혼잣말을 하고서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 정확한 계획은 없다.
뭔가 일을 벌리고 싶었지만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정하얀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다시 한번 마법진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마법진.’
마법진.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본래 내가 타고 왔던 마법진은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고 흐릿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손을 내밀자, 어떠한 전조증상도 없이 곧바로 시야가 뒤바뀐다.
아니,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았다. 곧바로 2회 차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긴 1회 차야.’
눈에 보이는 더러운 마탑을 보면 당연히 알 수 있었다. 곧바로 몸을 움직인다. 망원경으로 어딜 확인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정하얀의 방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두들긴다.
어느 시점으로 돌아왔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그녀의 방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마법사들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그녀가 죽기 전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하얀 님!”
“…….”
“정하얀 님!”
쿵쿵쿵! 하고 문들 두들김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정하얀님! 정… 정하얀 님!”
더 크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마침내 평소와 마찬가지로 빼꼼 하고 얼굴을 내미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비쳐왔다.
“…….”
“…….”
‘살아 있어.’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눈물을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부어 있는 눈, 붉어진 얼굴, 흐릿하지만 목에 자국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정하얀은 최대한 얼굴을 잘 보이지 않게 반만 내민 이후에 조용히 말을 이어왔다. 아직까지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무… 무슨 일이신가요? 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네? 아… 아니….”
“급한 일이에요! 정하얀 님! 정말로 급한 일이요!”
“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방… 방 정리 좀 하고….”
‘직전이었어?’
“네.”
방 안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이후에는 곧바로 문이 열린다. 어딜 봐도 허겁지겁 뭔가를 치운 것 같은 모양새다.
마음의 눈으로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아니나 다를까 서랍장을 연 흔적들이 눈에 보인다.
편지를 읽은 건지, 로프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하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무, 무슨 일이신가요?”
“늦은 밤에 죄송해요. 갑… 갑자기 머릿속에 공식들이 떠올라서요….”
“…….”
“…….”
‘그래. 실없지?’
그래도 어쩌겠어.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데. 그래도 넌 이해할 거 아니야. 우리 같은 천재들은 원래 갑자기 자려고 하다가도 막 이런저런 것들이 생각 나자너.
대충 생각난 공식을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노트에 적자. 조용히 내 말에 집중해 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아… 그, 그러니까 이건 말이죠.”
라고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아직도 열정이 가득하다. 나 역시 열정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무척 흥분했다는 듯이 아무 소리나 지껄인다.
“부여마법에 큰 진전이 될 거예요. 어쩌면 워프 게이트가 정말로 현실화될 수도 있을 거예요!”
“글… 글쎄요. 제 의견은 조금 다른데… 물, 물론 공식의 완성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이건 그냥 지금의 마도공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기술 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던전에서 발견한 자료에서 말인데요. 고대도시에는 정말로 이런 아티팩트들이 실존했었대요. 이, 이것 좀 보시겠어요? 균열 수호자라는 분들이… 특히나 메텔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저서들을 보면….”
“아아….”
“잠깐….”
그녀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녀가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고대에는 마력의 농도가 더 풍부했던 걸까요? 워프 게이트를 유지할 만한 마력석이 있었던 걸까요? 물론 마법사들이 그 정도의 마력을 상시 공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워프 게이트를 한 번 운용하는 데 100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탈진 현상을 겪게 될 거예요. 상용화는… 거의 불가능한 거죠. 옮길 수 있는 질량은 이 정도가… 한계일 테고요. 게다가 혹시나 사고가 일어날 걸 생각해 보면….”
“아….”
“차원의 미아가 될 수도 있어요. 최악의 경우에는 균열 속으로 빨려들게 될 거고….”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이것저것 미래의 지식을 꺼내 그녀를 흥분시켜 보자. 곧바로 마법진을 그리는 그녀의 모습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그래도 이런 시도들은 좋네요. 저도 비슷한 걸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헤헤헤….”
‘그렇겠지. 네가 만든 거니까.’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요. 이만 들어가는 게 좋겠네요.”
“혹시… 내일 같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세요?”
“…….”
“…….”
“그, 그, 그럼요… 당연하죠.”
그리고 일주일 후,
그녀가 다시 목을 매달았다.
‘시발.’
“정하얀 님! 정하얀 님!”
“네… 네?”
“…….”
“…….”
“갑자기 죄송해요. 궁금한 점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
“오늘은 또 어떤 일이신가요?”
“저번에 말씀해 주신 균열이라는 곳을 개인적으로 조사해 봤거든요!”
“아….”
“혹시 균열 박물관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네! 분명히 출입금지 구역이었던….”
“그곳에 던전 수기를 읽어보면 균열 박물관의 메텔이라는 분의 이름이 등장해요! 저번에 정하얀 님께서 말씀하셨던 분이요! 균열을 보호하기 위해서, 균열 수호자분들과 함께 균열을 봉인하고, 균열의 위험이나 경각심을 위해서… 박물관을 설립했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균열 박물관 관리자 막스가 박물관을 관리하고 있고….”
“아!”
“힌트는 그곳에 있을 거예요. 고대 아티팩트 기술을 가지고 올 수 있다면 워프 게이트를 만드는 것도 더 이상 꿈이 아닐 거라고요.”
“그, 그렇네요. 하지만 그곳은 위험 던전으로 지정되어서… 공략 불가 판정을 받은 곳이에요. 대형길드에서 줄줄이 도전했지만 생존율이 1%도 되지 않아서….”
“아으… 그럼 지금 당장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겠네요.”
“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래도… 균열 박물관에서 나온 아티팩트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일단 생존자들을 한번 수소문 해보도록 해요. 무언가 힌트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운이 좋으면 아티팩트를 얻어서 생환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경매장도 한번 찾아볼까요?”
“그럼. 내일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네. 물론이에요. 꼬마 마법사님.”
“…….”
“…….”
그리고 다시 이 주일 후, 정하얀이 다시 목을 매달았다.
“정하얀 님! 정하얀 님!”
“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네.”
“요, 요즘 자주 찾아오시네요.”
“혹시… 제가 방해가 됐나요?”
“아니요. 그… 그럴 리가요. 언제나 즐거운 걸요.”
“하지만 연구에 큰 진전이 없고… 제가 괜히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진전이 없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포기하면 안 돼요. 지, 지식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쌓이고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히 답을 알려줄 거예요.”
‘그래. 나도 답을 알고 싶다.’
“…….”
“…….”
그리고 다시 삼 일 뒤에, 정하얀이 다시 목을 매달았다.
“정하얀 님! 정하얀 님!”
“…….”
“정하얀 님!”
“네… 네?”
고개를 빼꼼 내미는 그녀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오늘은….”
“네.”
“오늘은 같이 식사가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
“…….”
“헤… 헤헤…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들어오세요. 와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다시 이틀 튀에, 정하얀이 다시 목을 매달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은근슬쩍 그녀를 설득하려고 시도하기도 했고, 그녀에게 힘을 주기위해서 노력하려고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변함이 없다. 시기와 주기만 다를뿐더러, 종국에 그녀는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정하얀 님.”
“…….”
“…….”
끼익… 끼익….
“정하얀님?”
끼익… 끼익… 끼익….
기에나 할머니와의 유대감을 키우기 위해, 억지로 자리를 만들기도 했고,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박주화와 그녀를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1기영을 찾아보려고 하기도 했고, 중간에 주고받는 편지를 훔치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 모든 걸 할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연구보조라는 이름으로 24시간 정하얀과 붙어 있을 수 없다. 혹시 몰라 김아영과 밖에 자주 나갈 것을 종용했지만….
여전히 정하얀은 목을 매단 채로 나를 맞이했다.
‘시바.’
시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마법진을 타고, 정하얀의 방문을 두드리고, 마법진을 타고, 울고 있는 정하얀을 달래고, 마법진을 타고, 혼자 있는 정하얀에게 다가간다.
“정하얀 님.”
“네?”
“힘내세요.”
“네….”
정하얀은 언제나 처럼 웃어주며 나를 반겨주기는 했지만 매일같이 얼굴이 피폐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북부에서 천사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무성해지고, 갑작스러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정하얀은 목을 매다는 것을 멈췄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그녀는 떠밀리듯 전쟁터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 그대로 말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또 예상했던 그대로.
그녀를 지금 이 순간까지 살린 것은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