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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21화 (1,31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21화

1하얀(4)

주문을 외우자 바닥에 마법진이 생겨난다. 할머니의 눈에 작은 놀라움이 떠오른 것도 잠시, 그 위에서 작은 새싹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새싹은 계속해서 자라고 또 자라 어느새 커다란 나무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고, 그 나무의 주변에서도 다른 새싹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기 시작한다.

마치 작은 숲을 그대로 만들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까.

어느새 나무에서는 꽃이 피어나고 한차례 바람이 불어온 직후에는 꽃가루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마법사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사라지고 있다. 시연을 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나, 긴 면접에 지쳐 있는 마법사들의 얼굴에 미소가 서린다.

모르긴 몰라도 심신이 안정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지 않을까.

‘안정제가 들어 있자너.’

식물형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촉매에 안정제를 융합한 것 뿐이었지만 보여지는 비쥬얼이 훌륭하다.

한 손으로 다시 한번 마법진을 그리자 이번에는 나무 사이의 빈 공간에 물 웅덩이가 고이기 시작했다.

‘저건 포션으로도 쓸 수 있고… 일단 비주얼이 중요하니까. 비주얼이 중요해.’

보여지는 비주얼도 중요하고, 술자인 내가 보여주는 모습도 중요하다.

마치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얼굴에는 잔뜩 웃음기를 유지한 채로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마법진을 그린다.

명랑한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적절하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마치 친 손주를 보는 것만 같은 즐거움이 서린 것은 당연지사.

땀으로 흠뻑 젖은 꼬맹이 마법사는 어느새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마법 그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이 대륙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것처럼 시바. 가야 되는 거자너.’

결국에는 시험장에 작은 숲을 만들고 나서야 끝났다는 듯이 땀을 닦는다.

실용성이 있느니 없느니는 중요하지 않다. 마력의 효율이나 주문으로서의 가치, 보급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은 고유마법이었지만 알맹이와 비주얼, 특히 비주얼이 훌륭하면 있어 보이는 법이다.

마법 시연이랍시고 단순히 화염구나 얼음창이나 던지고 있었던 다른 수습마법사들과 비교해 보면 당연히 박수를 보낼 만하지 않은가.

짝짝짝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당연지사. 작은 꼬맹이가 만든 기적에 할머니는 입을 벌리고 있었고….

‘하얀이도 보고 있자너.’

정하얀 님이 보고 계시자너.

정하얀 역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작은 침묵이 사그라든 것은 작은 숲이 다시 모습을 숨긴 이후.

“훌, 훌륭하군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당연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천재.’

그래, 나 천재야.

애초에 연금소환마법이라는 게 다른 마법의 시연 방식과 궤를 달리한다.

구태여 예를 들자면 저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통로를 보여준 셈이다.

평범한 주문으로도 놀라울 만한 방식으로 이런 마법을 선보였으니 이게 천재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굴 보고 천재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중학생 정도의 꼬맹이가 보여준 것 치고는 어마어마한 결과물. 여기저기에서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고유마법인 것 같군요. 실용성이야…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왜 저런 마법을 시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구동 방식이 흥미롭군요.”

“천재예요. 천재. 쯧… 훌륭한 전력이 될 수도 있는 인재가… 원래 다 천재들은 괴팍한 구석이 있는 건지… 기껏 시연한다는 게 저런 애들 장난이라니.”

“애들 장난으로는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치유마법 계열로 보입니다.”

“전쟁터에서 쓸 수 있겠습니까? 고작해야 후방에 설치해 놓는 게 전부인 것 같은데….”

“그거야 차차 알아가면 되지요. 여튼 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재능이라는 게 참 야속하군요.”

‘이 새끼들은 전부 싸우는 거랑 연관 지으려고 하자너.’

정하얀이 염증을 느낄 만하다. 본인이 생각하는 마탑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조금은 소란스러운 장내가 진정됐다고 생각했는지, 할머니가 다시금 아까의 말을 이어왔다.

“혹시 마법의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

“…….”

“쉼터예요.”

“쉼터라… 정말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요. 잘 봤습니다.”

“그… 그러면.”

“네. 당연히 합격입니다.”

“아…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렇게 제게 감사하실 필요 없어요. 아마 모두가 같은 결정을 내렸을 테니까요. 우리 꼬마 마법사님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제자로 들이고 싶은데….”

“…….”

“…….”

“정… 정말인가요?”

“네. 정말이고 말고요.”

할머니 너무 손주 보는 것처럼 보시고 있자너. 이거 사심 있는 거 아니냐구.

이 자리에 있는 다른 분파에게 우리가 침 발라놨으니 건드리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저 할머니도 이름을 날리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양반인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꽤나 특별 취급받고 있는 듯한 느낌, 이다음에 마법 시연을 하는 이들에게는 이미 관심도 주지 않는다.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혹여나 나를 빼앗길 거라고 생각했는지 낯선 인형 하나가 다가와 나를 시연장에서 내빼기도 했다.

본인을 기에나 할머니의 6번째 제자라고 소개한 여성이 연구실과 숙소를 소개해 주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마법이 인상적이기는 했는지, 아니면 막내가 들어오는 게 기뻤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호의적인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는 모습, 마법에 대해서도 묻고 싶은 게 많았고, 나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많았겠지.

나 역시 새로운 인물과의 대화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오겠네.’

이건 올 것 같네.

저 멀리서부터 시선이 느껴진 것이다.

누가 봐도 정하얀의 것처럼 느껴진다. 2회 차와는 다르기는 했지만 정하얀의 시선 전문가로서 지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게 정하얀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가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을까 한참이나 고민하는 것 같은 모양새.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했는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갑작스러운 정하얀의 등장에 기에나의 여섯 번째 제자 박주화가 황급하게 고개를 숙인다.

정하얀 역시 꾸벅 인사를 한 이후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뭐야 왔으면 말을 해야지.’

“…….”

결국에는 박주화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나 보다.

“…….”

“…….”

“정, 정하얀 님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마, 마탑의 안내는 제가 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

“…….”

‘둘이 어색한 거 뭐냐구.’

상황 자체가 무척 어색하다. 정하얀은 사람을 어색해하고 있었고, 이 여자는 정하얀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보니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어색한 상황이 이어진다.

정하얀 역시 이런 침묵이 부담스러웠는지 작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이… 이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네… 네! 물론입니다. 정하얀 님.”

하지만 진짜 문제는 기에나의 제자 박주화가 자리를 비우고 난 이후,

“…….”

‘시바 숨을 못 쉬겠자너.’

“…….”

‘왔으면 말을 걸어줘. 제발.’

분명히 즐겁게 마탑 안을 거닐고 있었는데 가운데에 고립된 것만 같은 느낌, 아무래도 정하얀이 먼저 말을 걸 생각은 없어 보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안… 안녕하세요.”

“네… 아… 안녕하세요.”

“…….”

“…….”

‘시바.’

자기소개 이후에는 다시 침묵, 대화의 물꼬를 틀 수야 있기야 있었지만 자꾸만 머뭇거리는 정하얀의 태도가 문제였다.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바람에 말을 이어나갈 타이밍을 찾기 힘들다. 아니, 애초에 이 경우에는 정하얀이 먼저 입을 열어야 하는 것이 국룰 아닌 국룰이 아니었던가.

이기영이었다면 과감없이 인싸력을 발휘했겠지만 지금은 평화를 사랑하는 꼬맹이 마법사인 만큼 정하얀에게 일정 부분의 대화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가 입을 연 것은 약 3분의 시간이 지난 이후….

“날… 날씨가 좀 춥죠?”

‘아니, 시바… 마탑 안에 난방 되잖아. 춥겠냐고.’

장담하건대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친구가 마법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 어떻게 단상 위에서 멋진 연설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럴 때는 그냥 좋아하는 분야로 운만 띄워주면 되자너.’

흥분한 오타쿠를 상대하는 방법으로는 충분하다. 지구에 있는 친구도 살짝 이런 과였으니까.

것도 집에 돈 많은.

“영광이에요. 정하얀 님. 왕, 왕국연합의 마도사 게일 님과 정하얀 님이 함께 쓰신 논문을….”

라고 한마디만 해줘도.

아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그, 그 논문을 읽으셨군요! 어쩐지 마도사 게일 님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법은? 마법은 그분에게 전수 받으신 건가요?”

라고 흥분한 목소리가 튀어나오자너.

심지어 이런 경우에는 본인이 흥분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로 지치지 않는다. 중간에 대화가 끊이지도 않는다. 성격이 뒤바뀐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변화가 극단적이다. 지금의 정하얀이 그런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마법의 구동 방식이! 적은 마력으로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효율을!”

‘넘 흥분해서 무슨 소리 하는지도 솔직히 잘 안 들리자너.’

하지만 정하얀이 흥분했다는 것 하나만을 알겠다. 마치 한소라가 만든 굿즈를 받을 때의 2하얀 같은 모습이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 정하얀은 정하얀이었다.

“마법진 같은 경우에는 어디에서 배우신 건가요?! 혹시 이름으로 쓰신 논문을 알 수 있을까요? 아… 수, 수습이셨지. 그럼 논문은 언제부터 쓰시나요?”

‘무슨 논문이야. 이 사람아. 나 수습마법사야.’

“무척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았어요. 마법진이 아니라 소환진 같아 보이는 진이었고요. 다소 둔탁하기는 했지만 틀림없이 현재의 마법진보다 더 개량되어 있다고 있는 게 보였거든요. 마도사 게일 님께서도 마법진을 주로 연구하셨죠.”

‘지나치게 흥분해 있자너.’

“일부 마법사들은 마력회로를 장악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죠. 저도 나름대로 개량한 마법진이 있는데 한번 확인해 보시면… 아! 술식에 대해서는….”

“…….”

“단순한 촉매로 그 정도로 효율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

‘너무 열정적이기는 해.’

도무지 지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도 있었지만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대부분.

그래도 2하얀처럼 멍청한 사람들이라서 이해하지 못한다느니 무식하다느니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대화가 통하고 있다는 게 즐거운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워프게이트라고 했었죠.”

“네.”

“저는 그 기술이 실현 가능한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마도공학을 비롯한 다른 분야의 장인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수 년 내로 활성화할 수 있을 거에요. 사실 워프게이트 같은 경우에는 저 역시 연구 중이라… 하지만 그 정도의 마력을 상시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최상급 마력석도 그 마력을 견디지 못하니까요. 결국에는 자원의 문제로….”

“…….”

“물론 워프게이트에 들어가는 마력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는 마법진이 연구가 된다면… 중급 마력석으로도… 잠깐… 잠시만요. 제가 잠깐 그려본 마법진인데 혹시 어떻게 보이시나요?”

‘얘 진짜 그냥 마법 덕후다.’

“아! 그러고 보니 왕국연합에서 오셨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혹시 마도왕국의 탑에서….”

하루 종일이라도 떠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아… 저, 저는 탑 출신이 아니라….”

“네… 네? 탑 출신이 아니라니요?”

‘넌 귀하게 컸으니까 몰랐겠지.’

“그러니까….”

노예였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하얀이 아까 전의 인터뷰를 들어봤었다면 이 꼬마 마법사 소년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대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말 못 할 사연이 있자너.’

“…….”

“…….”

소환되기 전 정하얀 역시 비슷한 삶을 살았다. 가족들에게 모두 버림받고 혼자 남겨진 그녀가 내게 공감하지 못할 리 만무.

오랜 침묵이 지난 직후에 정하얀은 결심했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문 채로 살포시 나를 안아주기 시작했다.

‘용기 냈네.’

심지어 주머니를 뒤적뒤적거리더니 초콜릿을 나누어 주기까지 하는 모습.

“괜, 괜찮아요. 말하지 않아도 돼요.”

“…….”

“괘… 괜찮아요.”

정하얀은 이쪽을 위로해 주고 싶다는 듯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예쁘네.’

나는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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