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20화
1하얀(3)
‘쟤… 쟤 왜 저렇게… 정상처럼 보이지?’
분위기가 너무 달라 적응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살짝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라든지, 사람들이 많은 곳을 불편해한다는 것 같은 느낌은 있다.
마법사의 탑의 예비 수습마법사들에게 얼굴을 비치기 위해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런 자리를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 듯했다.
2하얀이 회차 초반에 보였던 모습과 꽤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이야 마법의 신이니 뭐니, 권력을 잡아야 되니 뭐니, 하는 바람에 마탑의 대외적인 일에 자의적으로 참가하고 있었지만 초반의 그녀는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2하얀보다 더 로브를 푹 눌러쓰고 있는 모습, 전체적으로 조금 더 옛날 마법사다운 복장이었다.
온몸을 가리고 있었고, 다른 늙은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얼굴만 보이는 복식을 하고 있었다.
꽤 자신감 없게 단상 위로 올라가는 모습, 미리 전해 받은 축사가 있었는지 종이 한 장을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다.
마법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녀를 보필하는 것처럼 둘러싸고 이것저것을 알려주기 시작하자 정하얀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주변에서도 동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진… 진짜 정하얀 님이야.”
“어떻게. 진짜 정하얀 님이….”
“와… 와….”
‘대외적으로 활동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네.’
갤러리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을 하면서 대외활동도 하려고 마음을 먹은 모양, 정하얀은 조금 긴장되고 떨리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 안녕하십니까.”
‘말을 더듬는 건 똑같고.’
“마, 마법사의 탑에 오신 여러분들, 진, 진심을 다해 환영합니다. 현재 린델의 안팎으로… 여러분들의 꿈과 비전을 펼치기 위해… 우리는 미래의….”
‘바들바들 떨고 있자너.’
종이에 적힌 축사를 든 손이 떨린다. 역시 타인의 앞에 서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조금 성숙해 보이네.’
그만큼 성숙해 보인다. 2하얀의 경우에는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이라면 저런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마법의 신에게 필요한 신성을 모으기 위해 멍청한 마법사들을 상대로 이것저것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지만, 2회 차의 정하얀은 한소라와 내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자의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1회차의 정하얀은 2회차의 정하얀보다 더욱더 성숙하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고, 본인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흔들리고 떨리는 눈빛으로도 끝까지 축사를 외우고 있다. 본인이 가진 책임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표정이나 행동 같은 것들도 이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 보인다. 그리고….
“여, 여러분들 역시 함께 마도를 탐구하고 탐식하는 동료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마법사의 탑에서 함께 배우고 공부할 것들은 단순히 몇 가지 주문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나 폭력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항, 항상 상기해야 합니다.”
‘이건 돌발 발언인가 보네.’
그녀의 뒤에 있는 마법사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축사에 적혀 있지 않은 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인류의 발전과 마법사 본인의 발전을 위해서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 탑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합니다. 마도와 마법의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야말로 이 마탑의 존재 의의이자 우리 마법사들의 존재 의의입니다.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진리를 탐구하는 것에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여러분들이 판단하고 직접 깨달아야 합니다.”
‘똑 부러지네.’
그리고 절박해 보이기도 한다.
“여러분들은 군인이나 기사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싸우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마법사입니다. 여러분들은 학문을 공부하는 마도는 탐구하는, 진리를 좇는 마법사입니다.”
당연히 그녀의 절박함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여러분들은 마법사입니다.”
“…….”
“…….”
“여러분들은… 마법사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네.’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는 얼굴이 눈에 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작금의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 것 같았다.
마법을 그저 공격주문과, 방어주문, 전쟁에 필요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의 뒤에 있는 이들의 뜻과 굳이 반대되는 발언을 하는 것도 정하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의견을 피력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대충 파가 갈린 거구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춰서 효율적인 살상마법을 지지하는 집단과 마법 그 본연의 의미에 조금 더 무게를 둔 집단, 이렇게 두 분파로 나누어졌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당연히 현재 정세의 상황상, 정하얀보다는 그녀의 대척점에 있는 이들이 발언권이 조금 더 강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겠지만 마법을 본인의 친구고,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저 자리에서 저런 발언을 입에 담은 것이리라.
당연히 예비 마법사들은 그저 정하얀의 축사에 박수를 치기에 여념이 없는 편, 짝짝짝짝 울리는 소리가 탑을 가득 메우고 정하얀은 크게 한숨을 쉬고 있었다.
본인의 기준 내에서는 만족스럽게 말을 끝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가 문제였지만 말이다.
‘마도의 발전은…개뿔….’
그냥 사람 죽이러 온 방법을 배우러 온 놈들이 대부분이다. 이 마탑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이들 역시 그런 이들뿐이고 말이다.
각 길드에서 꽂아준 예비 마법사들이었고, 이들은 마법을 학문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도구로 접근하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현재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그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당장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으니까.
배고픈 이들에게는 눈앞의 빵이 가장 중요한 법이 아니었던가. 이들에게는 살아남느냐 살아남지 못하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정하얀의 이상은 말 그대로 이상이었고,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는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아니었다.
마탑에서도 이런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저런 목소리들이 들려오지 않는가.
“후우… 정하얀 님께서 또 쓸데없는 말을….”
“이런 자리에서까지 저런 말씀을 하실 필요는 없으신데 말입니다.”
“혹여나 수습마법사들이 정하얀 님의 말씀에 헛바람이 불어 흔들릴까 봐 걱정입니다.”
“뭐… 틀린 말씀을 하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문제에요. 저희라고 마도니 진리니, 마법에 대한 탐구이니 신경 쓰고 싶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그런 꿈을 안고 마탑에 들어왔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들을 생각해 보세요.”
“…….”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새로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답니다. 대륙 곳곳에서는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키메라들과 살라딘의 잔당들이 아직도 날뛰고 있는 마당에….”
“쯧쯧… 쓸데없는 주문보다는 조금 더 전쟁에 도움이 되는 주문을 만들어주셨으면 좋으셨을 텐데… 아쉽습니다. 아쉬워요.”
“…….”
“…….”
“그, 그래도 정하얀 님께서도 전쟁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내키지 않으신 듯하지만….”
“물론 그건 그렇습니다만….”
‘양쪽 다 이해가 되기는 하네.’
실리적으로 접근하자면 정하얀의 편을 들어주기는 힘들다.
‘그래도 난 우리 하얀이 편 해야 하자너.’
마탑의 또 하나의 괴짜가 되는 수밖에 없다.
“어디 보자… 파란에서도 마법사들을 몇몇 보내왔군요. 붉은 용병은 평소대로 많고… 검은백조도 많아요.”
“후원금은….”
“평소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거겠지요. 전 대륙이 마법사 품귀현상을 겪고 있으니… 당장 전력으로 쓸 수 있는 마법사들을 만들어 달라고 난리입니다.”
“아아아….”
“그럼 일단 시작할까요?”
“네. 네. 그러는 게 좋겠군요.”
‘뭐 테스트인가 뭔가 하나 부네.’
마법사의 탑은 아카데미가 아니다.
오히려 교수와 대학원생에 더욱더 가깝다. 여기 모인 마법사들은 이미 각 길드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완료한 수습들이었으니, 아마 간단한 테스트와 면접을 받고 해당 교수의 말단 조교로 들어가 업무와 주문들, 마법을 배우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처럼 자리를 잡는 노마법사들과 정하얀의 모습이 보인다. 수습마법사들의 눈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그 모습을 본 늙은이들이 다시금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이번에는 정하얀 님께서 꼭 제자를 들여 주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들이겠습니까? 아끼던 제자가 죽은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의견충돌 때문에 싸우고 나간 제자가 처참한 시신으로 돌아온 것 직접 보셨는데….”
“쯧… 그러게 왜….”
“뭐… 욕심이 많은 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마탑과 정하얀 님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도 싫어했었고… 모험가로서, 마법사로서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자 했으니… 심지어 흑마법에도 손을 데려고 했으니… 운이 좋지 않았죠. 뭐… 이야기는 이만합시다. 치부라면 치부이니 말입니다.”
‘제자도 있었네.’
그리고 죽었고.
게다가 흑마법에도 관심이 있었단다. 무슨 사연인지는 알 바 아니지만 저 정하얀이 자신의 조수들을 들이지 않을 이유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난 들어가야 되자너.’
이윽고 마탑에 모인 수습마법사들을 선별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이미 각 길드와 연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형식적인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녀석들의 경우에는 다르다.
‘나도 정해져 있으려나.’
아마 조혜진이 친 정하얀 파에게 나를 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이쪽을 호의적인 얼굴로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이 눈에 띈다.
앞으로 자신의 수발을 들어줄 훌륭한 노예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 그녀의 제자들로 보이는 마법사들의 눈에도 혹시나 막내가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정하얀 님이 오셨으니 형식적으로나마 테스트를….”
“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예비 수습마법사 여러분들께서는 간단한 면접과 마법 시연을 비롯한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해 각 학파로 배정받게 됩니다. 지망은 1지망, 2지망, 3지망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관심이 있는 학파에서 테스트를 거치시면 됩니다.”
‘그래. 그래.’
전체적으로 인기가 많은 곳은 역시나 원소마법 같은 대량 살상마법 쪽이었지만 똑 부러진 작은 꼬맹이 마법사는 자애로운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마 연금소환마법이 다른 마법들과 그 궤를 달리하는 만큼 어떤 학파로 가도 충분히 환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조금 더 임팩트를 주기 위한 마법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간단한 쪽지시험의 난이도는 형편없는 편, 나름대로 어렵다고 느낄 문제들이 기술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없다.
‘인간미로 하나 정도는 틀려 줘야지.’
아직까지 머리를 싸매고 있는 녀석들을 뒤로하고 면접을 보는 내내 시연할 마법에 대해 고민 아닌 고민을 한다. 물론 인터뷰 내용이야 뻔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같은 명랑한 소리를 중얼거리면 되자너.
저 멀리 있는 정하얀에게 최대한 들리게끔 말이다.
‘내 목소리가 들리냐구.’
할머니 역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네. 마법의 발전은 곧 기술의 발전이에요. 물론 전쟁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도 많지만… 제가 살던 지역에서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들이 없어서 죽는 사람들을 더욱더 많이 봐왔어요.”
“아. 왕국연합 출신이시라고….”
“네! 그곳에서는 식량이나 식수가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요. 만약 워프게이트 같은 아티팩트가 있었다면….”
‘이런 말도 좀 해줘야지.’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텐데요.”
“워프게이트 같은 아티팩트라… 재미있군요. 그럼 아티팩트라는 건….”
“마도공학이에요!”
“네?”
“지금의 주문이나 마법의 수준으로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마도공학 기술이 발전한다면 틀림없이 실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마법사들뿐 만이 아니라 연금술사나 부여기술자들이….”
같은 아무 말을 해주는 것도 국룰이다. 당연히 뜬구름처럼 들릴 확률이 높다. 실제로 이 당시에 기술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2회 차에서도 마법공학, 마도공학의 발전은 균열박물관의 우리 아들내미가 등장한 이후에야 시작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꿈 많은 꼬마 마법사의 당찬 발언에 자애로운 할머니는 미소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이런 큰 꿈을 가진 마법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모두가 공격주문을 하나 더 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때, 이 작은 마법사는 조금은 다른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자 그럼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고… 간단한 마법 시연을 해볼까요?”
‘할머니 친절하자너.’
그렇게 내가 살상마법도, 보호마법도 아닌 주문을 외웠을 때,
“…….”
“…….”
할머니가 커다랗게 입을 열린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정하얀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르지? 확실히 다르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