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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13화 (1,31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13화

마법사의 탑(26)

송수경을 포함한 빌런 무리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당연했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빅보이 일행이 눈치채지 못한 순간을 노렸을 테니 말이다.

꼬맹이의 큰 소리에 준비한 기습이 무위로 돌아간 것은 당연지사.

변명이 불가능한 트롤짓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본인이 먼저 기뻐하고 행복해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노예기영의 입장에서는 텐션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것뿐인가. 하나뿐인 주인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노예기영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지금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주인님의 안위가 최우선이었다는 거다.

‘누군가 주인님을 위협하려고 하고 있자너! 이건 참을 수 없자너!’

“칫.”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자너!’

“조용.”

“누군가 오고 있어요! 저는 주인님을 지킬게요! 주인님을 지킬 거예요!”

“쉿.”

“주인님! 주인님!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옷!”

‘듣고 있는 거지? 빅보이? 듣고 있지?’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님! 빨리요! 빨리요! 빨리 오세요!”

“제길! 송수경 님.”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너무 당황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헤일라.”

당연히 갑작스레 주변이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떠들썩할 정도로 크게 들려왔던 빅보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혹시나 흥분해서 곧바로 쳐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망원경으로 확인한 빅보이, 칼턴, 유진은 피가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고 있는 중.

혹시나 해서 크게 질러봤지만 녀석들이 내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송수경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송수경을 지키겠다고 앵무새마냥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도 모두 듣고 있을 것이다.

아까 봤던, 인신공양으로 만들어진 마법진이 어떤 마법진인지는 대략적으로 눈치채지 않았을까.

‘꼬맹이의 노예 낙인을 활성화하기 위한 마법진이자너.’

라는 결론으로 당도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위치를 들킬까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지는 않았지만 녀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부여잡고 있었다.

은근히 겁이 많은 칼턴이나,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진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력의 차이가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꼬맹이를 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녀석들이 시야에 비쳐왔다.

‘시바 감동적이자너.’

녀석들은 도망칠 생각이 없다. 죽든 말든 일단은 부딪쳐 볼 작정이다.

“송수경 님. 아마도….”

“네. 그들인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제가 모실 거에요! 제가! 주인님을 지킬 거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 당신의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 진정하셔도 돼요. 히히하하하. 어쩔 수 없군요. 이거….”

“그, 그렇지만 진정할 수 없는걸요! 무서워요. 누군가 주인님을 다치게 할까 봐 두렵다고요. 저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주인님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잖아요!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님! 빨리요오!”

“히히하하. 말씀드렸다시피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닙니다. 일이 조금 어렵게 되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있고, 저쪽은 고작 3명인 것처럼 보이니까요. 베테랑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제 기사들이 그들에게 당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으니… 헤일라.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

“…….”

“물론입니다. 맡겨 주십시오. 모두 대열을 유지한 채로 천천히 이동한다.”

“네.”

“네.”

조용한 목소리에 무기를 고쳐 잡는 악의 무리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안 그래도 불빛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에 몇몇 녀석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따지고 보면 빅보이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린델 이선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마도길드, 마법사의 탑의 하청으로 일을 하고 있었으니 누가 보더라도 베테랑처럼 비칠 것이다.

다른 것보다 수많은 사선을 넘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 녀석들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기사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용한 침묵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기사들이 침을 삼켜 넘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노예기영이었다.

“주인님! 위험해요! 아악! 주인님이 위험해!”

그 말에 헤일라가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송수경 님을 보호해!”

‘걸려들었자너.’

어둠 속에서 날아온 두 발의 화살.

‘이거자너!’

피융 하고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송수경을 향해 뛰어간 기사들을 지나쳐 마법사들에게 틀어박힌다.

“아아아아악!”

어깨에 한 발, 그리고 머리에 한 발이 박힌 마법사가 주문도 외우지 못하고 절명한다. 노예기영의 한마디에 대열이 무너진 것이다.

“제길!”

당황으로 물든 헤일라의 얼굴, 이런 어두운 장소, 게다가 난전 속에서 대열이 무너졌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정도로 무식하지 않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날아 들어온 칼턴의 화살들이 평소보다 더욱 날카롭게 느껴진다.

“침착하게 방패 들어 올려! 적은 고작 3명이다!”

‘하지만 침착할 수 없자너.’

“주인님이 위험해요! 주인님을 지켜야 돼!”

흥분해서 허겁지겁 튀어나간 꼬마가 모든 것을 망치기 시작했기 때문, 우다다 달려들어 일단 주문을 외우고 있던 마법사를 밀쳐보자.

‘어, 안 넘어지네?’

하지만 주문을 외우는 것을 방해하기에는 충분하다. 보호마법을 외울 수 없게 된 마법사의 얼굴로 다시 칼턴의 화살이 날아 들어온다.

‘마법사 컷!’

“크아악!”

“칫.”

그리고 타이밍 좋게 흐트러진 대열 사이로 난입한 빅보이와 유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꼬맹아!”

라고 큰소리를 외치며 등장한 녀석들이 방패를 들어 올리고 도끼를 휘두른다.

“너 이 새끼….”

“꼬마야!”

비극적이라면 비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만남이었다.

빅보이의 얼굴이 절망과 당황스러움으로 물든다. 이미 예상하기야 했겠지만 그래도 그걸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법이다.

찢어진 셔츠, 그리고… 그 속에 비치는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붉은 인장. 이미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것을 증명하듯 빛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상할 정도로 맛탱이가 간 듯한 표정, 송수경을 바라보고 있는 눈에는 누가 보더라도 애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그간에 침착함을 유지했던 빅보이의 정신을 뒤흔들 만한 광경이라 장담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너… 너 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

크게 소리친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개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이 개새끼야!”

“빅보이 일단 진정해.”

“이 개새끼! 우리 꼬맹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묻잖아! 이 더러운 쥐새끼들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마구잡이로 도끼를 휘두르는 녀석의 모습은 마치 발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새끼. 완전 흥분했자너.’

처음부터 자신이 꼬맹이를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추악한 질투심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조심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무엇보다 붉은 인장을 계속해서 확인한 녀석의 표정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 보인다.

“꼬맹아. 기다려라. 기다려!”

기사들이 빅보이와 유진의 앞을 막아선다.

그리고 전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사들도 기사들이었지만 미친 황소처럼 날뛰는 빅보이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제대로 된 전투 교육을 받지 못한 용병이라고 해도 그간의 경험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닌지, 녀석과 유진은 서로를 보완하며 기사들을 밀어내고 있다.

칼턴의 화살은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날아 들어왔기 때문에 이미 대열이 망가진 상황에서는 가장 까다로웠을 것이다.

빅보이와 유진을 상대해야 할 기사들은 송수경과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급급하다.

세 명이서 합을 맞춘 지 무척 오래된 만큼 합격술 하나만큼은 수준급, 정신이 없는 난전 속에서도 어떻게든 약속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제기랄! 꺼져!”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빅보이! 이 새끼야! 날뛰지 마! 침착하라고! 이런 상황일수록 더 침착해야 돼.”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제기랄! 그런데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냐. 어떻게! 응?! 어떻게! 나는 그렇게 못 해. 다 죽일 거다. 이 개자식들! 다 죽일 거라고!”

“씨발.”

“기다려라. 기다려! 지금 구해주러 갈 테니까. 꼬맹아… 내 목소리 들리냐?! 응?! 들리냐고!”

“…….”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봐라! 응?! 아프지는 않지? 응? 괜찮은 거지!?”

당연하지만 노예기영은 묵묵부답으로 빅보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설정상 그들을 기억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던 탓이다. 주인님을 위한 사랑 외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이 개자식들! 너희들이… 네놈들이! 사람 새끼들이야!?”

“…….”

“저… 저 꼬맹이는 너희들을 진심으로 믿었어! 이 개새끼들아. 너희들을 지키려고 했었다고! 너희들을 위해서! 두려움을 참고 키메라들과 맞서 싸웠단 말이다! 제기랄!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어떻게 그 기대를 배신할 수 있는 거냐! 이 더러운 새끼들아! 어떻게 저 꼬맹이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냐!”

“…….”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개자식들아!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

“네놈들이! 그러고도! 인간이야! 기다려라. 꼬맹아. 기다려….”

“…….”

“다시 돌아가자. 응? 조금만 기다리면 구해줄 테니까. 내가 다시 구해줄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 집으로… 며칠은 일도 푹 쉴 테니까. 응? 네가 가자는 데. 해달라는 거. 전부 다 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햄비어 고기도 실컷 먹게 해줄 테니까. 기다려라. 제발….”

빅보이도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 말에 지가 울컥하고 있는지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꼬맹아. 듣고 있지? 형이다! 조금만… 참으라고!”

“제길….”

본인의 위치가 들키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칼턴.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응? 너 그것밖에 안 되는 놈 아니잖아! 꼬맹아! 으으응? 아직 구해줬다고 인사도 못 했는데… 제기랄!”

눈물을 삼키며 말을 이어나가고 있는 유진.

하지만 그들의 눈물의 외침에도 송빌런은 흔들리지 않는다.

‘와아! 독하다 독해. 이래도 양심이 안 찔려? 이래도?’

“으아아아아아아악!”

‘와아. 저걸 보고도 표정 하나 안 변해? 응?’

“…….”

오히려 악취미가 발동되었는지 비릿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재미있군요.”

“…….”

“참 재미있어요. 당신들이 말하는 꼬맹이는 아무래도 저와 함께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에요. 오히려 당신과 함께 있을 때보다 저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까?”

“…….”

“그렇지 않나요?”

“네… 네!”

“…….”

상황상 빅보이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가요? 지금 기분이.”

“행복해요! 죽을 만큼 기뻐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요!”

“그런 가요?”

“네! 주인님께서는 진정한 행복을 주셨어요! 진정한 저로 사는 기쁨을 알려 주셨어요!”

“…….”

“저들이 주지 못했던 기쁨이에요!”

“꼬… 꼬맹아… 너….”

마치 심장이 뜯겨져 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빅보이가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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