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12화
마법사의 탑(25)
“주인님.”
“히…히히…흐…하하하하하하하하핫!”
“주인님?”
“히…하하하하하! 히히히히하하하하하하하!”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리는 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본인 나름대로는 광소를 터뜨리는 것마냥 느끼고 있는 것 같아 더 애잔하게 느껴지는 웃음소리. 비루하고 힘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은 소리였다.
‘진짜 없어 보이자너.’
일단 성량이 너무나도 부족하거니와 어떻게 들어도 목소리가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호탕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야비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이 어울릴까.
물론 여러 가지 의미로 소름이 끼치기야 한다. 온 바닥이 피로 물들어 있는 장소이기도 했고 썩어가고 있는 시신들 사이에 있는 녀석의 비주얼이 말이다.
하지만 놈의 얇고 옹졸한 웃음소리는 어린 죽음을 찾던 정진호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진심이라 더 없어 보이자너.’
“흐…히히히헤…하하핫하하하하하하!”
‘뭔 찐따가 혼자 신난 것 같자너. 그래도 자기 가신들이 옆에 있는데… 저런 모습은 안 보여주는 게 낫지 않나?’
정진호는 중2병 측에도 낄 수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도대체 허리는 왜 뒤로 젖히고 있는 건데? 왜 웃을 때 손으로 머리를 잡고 웃는 건데? 그 동작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그냥 웃으면 안 되는 거냐고.’
“흐헤히히히히히히히힛하하하하핫!”
‘이제 그만 좀 웃으라고….’
“하하하핫! 하아… 하아… 하아….”
‘계속 웃어서 숨찬 거 봐. 우리 진호는 숨넘어가는 순간에도 안 헉헉거리더라.’
“아아… 죄송합니다. 이거 제가 조금 흥분한 것 같군요.”
“…….”
“…….”
조금 흥분한 것 같군요란다.
대사마저도 없어 보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녀석의 가신이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손절하고 싶은 듯한 기분이 들 것만 같았던 혼자만의 광소 타임. 아마 자신의 모습을 직접 거울로 바라본다면 녀석도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까.
내 입장에서는 웃음벨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최소한 녀석을 따르는 마법사와 기사들은 놈의 기행을 두려워하는 느낌이 강했다.
아니, 두려워한다기보다는 질려 하는 듯한 느낌. 물론 객관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질릴 수밖에 없는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회 차의 송수경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저 비루한 육체와 외모와 목소리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이 숭배하는 메시아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녀석이 얼마나 독해져야 했을지, 얼마나 미친놈이 되어야 했을지, 얼마나 잔인해져야 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저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그 모든 것들을 목도해왔었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심지어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어떤 기사의 얼굴은 홍조로 물들어 있었다.
‘와. 이런 사이코도 수요가 있자너.’
“이제 슬슬 이동하셔야 합니다. 송수경 님.”
“네네. 알고 있어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히…하하… 너무 좋아서… 얼굴이 잘 펴지질 않는군요. 죄송합니다. 헤일라 님.”
“…….”
“어떻게 보이십니까. 헤일라 님의 눈에는… 제 눈에는 마치 자의를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데….”
“네. 확실히 제 눈에도 그렇게 보입니다만 완전히 인형처럼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아마 고위귀족이 기르던 가축이었을 겁니다.”
순간적으로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발언.
‘와. 얘는 진짜네. 기사 계습이면 노예한테 가축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냐구.’
“아아아….”
“머리를 건드리는 각인이나 마법은 본래 성공하기 힘든 법입니다. 만약 성공한다고 해도 완벽하지 않게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최면 각인이 걸려 있는 노예들은 비싸게 거래되는 편이며… 사실 생존율도 높지 않습니다.”
“네. 네. 그건 알고 있어요.”
“게다가 이렇게 전투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노예의 경우에는… 아니, 대략적으로 저 노예의 가치를 골드로 환산한다면 아마… 웬만한 성 한 채의 가격을 웃돌 겁니다.”
“아아아.”
“게다가… 인형처럼 느껴지지도 않는군요.”
“인형 말입니까?”
“예. 지금은… 표정이 살아 있습니다.”
‘그래?’
“보통의 노예들은 표정이 죽어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거나 최면을 건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반응 없이, 마치 인형처럼 반응하는 것이 대다수입니까. 하지만 이 노예는 다른 것처럼 보이더군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마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시바.’
“간단한 명령을 내려보시겠습니까? 감정에 관련된 명령이라면 더욱더 좋습니다.”
“네.”
송수경이 살짝 웃으며 입을 열어온다.
“당신은 행복합니다.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돼서 말입니다.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노예의 낙인에 뜨거운 열이 느껴진 것은 당연지사. 이제는 검은색이 아니라 붉은색을 띠고 있는 인장에서 붉은색의 빛이 새어 나온다.
실제로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말에는 곧바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역시나 오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감정을 가득 담아 기쁘다는 표정을 보인다.
“기… 기뻐요! 주인님! 너무…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새롭게 주인님을 맞이하게 돼서 너무나도 기뻐요! 기… 기뻐요!”
헤일라라는 이름의 기사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머리채를 붙잡은 것은 바로 그때. 약간의 고통이 느껴지고 목 부분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이기영이었다.
‘이게 메소드 연기자너.’
“아아아… 너무 기뻐! 너무 기쁘다구요! 행복해요.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 이대로 죽어도 좋을 정도로 좋아! 헤헤헤헤!”
‘진짜 죽여주자너. 그냥 노예 아니자너. 고오급노예자너.’
“하하하핫!”
당연히 송수경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나보다 더 기뻐 보이는 모습.
헤일라는 조금 더 시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지 머리채를 부여잡은 손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진다.
‘시바. 시바. 시바. 아니 시바.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아악!”
“…….”
“…….”
순간적으로나마 자연스럽게 나온 비명, 기사의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기 때문에 다시금 그 스탠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악♪ 아아악♩ 아아아아~♪ 기뻐요! 너무 좋다고요~”
‘순발력 좋았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송수경도 퍽이나 흡족한 표정, 뭐가 그렇게 의심스러운지 기사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지만….
“그만.”
“…….”
“이제 괜찮습니다.”
“하지만….”
“소중한 노예를 다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헤일라.”
“그렇다면 일이 끝난 이후에 이 가축을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능이나 한계 같은 것을 시험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시바 송빌런이 양반이네.’
후다닥 주인님께 달려가 아양을 떨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님! 주인님! 주인니임!”
하지만 놈은 나의 기대를 배신한다.
“하하하하핫! 네. 네. 당연히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이 새끼는 진짜….’
“싫… 싫어요!”
하고 의사를 표현해 보자. 놀랍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기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놀랍군요.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니….”
‘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싫어요! 무서워요!”
그 모습을 본 송수경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어온다.
“제 명령이라도 말입니까?”
“명령이라면 기뻐요! 아아아… 기뻐요! 그렇게까지!”
“당신은 저를 동경하고,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렇죠? 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네! 지켜드릴게요! 뭐든지 다 해드릴 수 있어요! 목숨도 바칠 수 있다구요! 이런 기쁨을 선물해 주신 주인님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고요!”
‘입 찢어지네.’
“하하핫. 목숨까지 바치면 곤란하답니다. 당신은 소중한 노예니까요.”
“그래도 바칠 수 있어요! 심장도 내어드릴 수 있다니까요!”
“히히하하. 곤란하네요. 이거 참. 심장 같은 것보다 당신의 그 마음이면 충분해요.”
“마음으로는 전부 다 표현하기 부족한걸요!”
‘줘도 안 받네 이 찐따 새끼 이거. 2회 차 때는 가지고 싶어서 지랄발광을 떨더니.’
이제는 의심을 완전히 지운 것일까. 가장 가까이에 나를 두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사는 그 사실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호의적이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주인님께 가장 큰 총애를 받는 것은 바로 난데.
물론 그 기사를 제외한 다른 마법사와 기사들 같은 경우에는 이제야 한숨 돌렸다는 모양새다.
키메라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어 오고 있는 현시점에서 든든한 아군을 하나 얻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그럴 만도 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기사 하나가 말을 걸어온다.
“송수경 님. 이제 슬슬….”
“아. 제가 너무 시간을 끌었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대부분의 키메라들이 성안으로 들어왔을 때가 빠져나가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니까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보아하니 이제 슬슬 나갈 때가 된 모양인 것 같습니다만….”
녀석의 말대로다.
‘팔자 편하네.’
밖에서는 아직까지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여러 가지 폭음소리와 함께 묻혀 있는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구태여 망원경으로 바깥을 확인하지 않아도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지 예상이 된다.
개 떼처럼 몰려들고 있는 키메라들과 지휘관을 잃어 와해되는 아군 병사들, 몇몇이 저항하려고 창과 활을 들어 올리겠지만 크게 의미도 없는 저항이 될 것이다.
특수 개체 한 놈만 나타나도 뭐 다들 꽁지 빠지게 도망치거나 목이 날아가겠지.
‘성벽도 무너졌겠고.’
이미 방위마법이 무너진 상황이다. 안 그래도 허약한 헤르엔의 성문과 성벽이 특수개체들의 공격에 버틸 수 있을 리 만무, 전투는 이미 끝났다.
남은 건 무작정 성을 빠져나가 도망치거나, 아니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든가, 둘 중에 하나였다.
콰아아아아아앙!
한 번 소리가 들릴 때마다 후드득 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밑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히히히하하.”
하는 송수경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여기야?”
“그래. 이쪽이야. 확실해.”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이 미친 새끼들… 이 개새끼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아주 들어온다고 광고를 하면서 들어와라. 이 멍청한 놈들아.’
“칼턴… 저거 배불뚝이 영주 아니야? 제길….”
“도망친 게 아니라 여기서 죽은 거였군… 자살이 아니야. 분명 누군가가 찌른 게 맞아.”
“도대체 누가?”
“누구긴 누구겠어. 그 미치광이 새끼겠지. 범인은 아마 송수경일 거다. 뭐야… 저거 마법진이잖아?”
“방금 사용됐어. 무슨 마법진인지 알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알아 이 멍청한 새끼야. 피로 그려졌는데?”
“인신공양이야….”
빅보이 칼턴, 그리고 부상당했던 유진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송수경과 그의 가신들도 목소리를 들었는지 아무 말 없이 서로만 바라보고 있는 중, 손가락으로 서로 수신호를 주고받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빅보이 일행이 추격하는 것을 인지하고 기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멍청한 새끼들.’
“쉿. 조용히. 여길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그걸 왜 입으로 쳐 말하고 자빠졌냐고.’
이미 늦어도 한참은 늦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큰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요! 주인님! 누군가 와요! 누군가 오고 있다고요!”
“제길.”
‘들리니 빅보이? 내 목소리가?’
“누군가가 오고 있어요웃! 콜록! 콜록! 에… 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