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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06화 (1,30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06화

마법사의 탑(19)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잠깐이지만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니라 송빌런이었으니 더욱더 멍하니 놈을 살피게 된다.

‘진짜 송수경 맞아?’

다시 한번 눈을 비비고 쳐다봐도 그 송수경이 맞다. 특유의 구불구불한 머리에 사이코 같은 얼굴, 누가 봐도 사기꾼처럼 보이는 눈과 표정, 무능력한 신체 스탯까지 내가 알던 송수경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생김새는 2회 차와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손이 조금 거칠어진 것 빼고는 말이지.’

물론 그것마저도 전사의 손과 비교하면 고생했다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였지만 아마 녀석 나름대로는 여러모로 모진 일을 많이 해오지 않았을까.

1회 차는 2회 차와는 다르게 지휘관 계통의 직업이 각광받지 않았던 때였으니 말이다.

행정업무 같은 사무직에 종사할 수 있는 이들은 선택받은 소수의 귀족들이나 사람들뿐이었고, 그마저도 소환자들은 무력을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사회 분위기 역시 생산직에도 그다지 관대하지 않았고, 오롯이 전투직 우대에 몰빵이 되어 있었으니 녀석이 주목을 받았을 리 만무.

심지어 2회 차 송수경은 린델에서 소환된 이후에 곧바로 왕국연합으로 떠나 기회를 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각 나라가 으르렁거리던 1회 차에서 녀석이 왕국연합을 행선지로 선택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송빌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녀석 같은 약골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뒈졌을 거라는 것은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자너.’

지금 이렇게 녀석을 보자 내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헤르엔에 있었구나.’

멍청한 배불뚝이 영주 밑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모든 걸 포기하고 있었던, 블랙마켓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든 간에 상관없다. 녀석이 헤르엔에 체류한 이유는 3가지 중 하나일 게 뻔했으니까.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녀석이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이었다.

‘이 새끼는 그냥 야망으로 똘똘 뭉친 새끼자너.’

김현성이 녀석의 일에 끼어들지 않았어도, 녀석은 기본적으로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빅보이라고 부르쇼.”

“칼턴. 그리고….”

“자기소개는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꼬맹이가 낯을 좀 많이 가려서.”

“그렇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당연히 이번 상황을 이용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어.’

만약에 성공적으로 수성전을 치렀을 경우 녀석에게 떨어지는 꿀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다.

운이 좋으면 도망친 배불뚝이 대신 헤르엔의 영주로 임명되어 작위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헤르엔 주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뭐가 어찌 됐건 간에 이름을 날리기에는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볼 수 있다는 거다.

김현성이 송수경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결국 녀석의 계획이 실패해 키메라들에게 온몸이 찢겨 뒈졌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수성전에 희망을 느끼지 않았다면 구태여 나설 필요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정체불명의 꼬맹이 마법사의 등장으로 인해 송수경이 자신의 날개를 펼치기로 결심했다고 가정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전자일 확률이 더 높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적어도 내가 녀석의 동아줄이 되어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눈에서 꿀 떨어지자너.’

누가 봐도 시선이 내게 고정되어 있다. 녀석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살짝 빅보이의 뒤로 숨었지만 녀석의 눈빛은 떨어질지 모르고 있다.

“일단 모시겠습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으셨을 테니….”

“그… 밥은 우리들끼리 먹어도 되는데….”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거절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마법사님께서 좋아하신다는 햄비어 고기도 준비해 놓았으니….”

“그, 그렇다면 어쩔 수 없나.”

결국에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빅보이가 나를 이끌고 있지 않은가. 배불뚝이 남작이 수탈한 온갖 산해진미를 내버려 둔 채로 햄비어 고기나 처먹어야 되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빅보이와 칼턴 녀석도 아닌 척하기는 했지만 배가 고프기는 한 모양, 배에서 계속해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지라 굳이 햄비어가 아니더라도 따라가 식사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약간은 딱딱한 분위기가 될 수도 있는 자리였지만 송수경의 사기꾼 페이스가 워낙 무장을 해제시키는 터라 빅보이 녀석도 조금은 긴장을 푸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거절할 명분도 없었을 것이다.

‘상다리 부러지겠자너.’

빅보이 녀석이야 나를 전쟁터에 내세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역시나 사전 준비에 철저한 타입답게 햄비어 고기가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머리를 쓰다듬는 빅보이의 기대를 거절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목구멍으로 허겁지겁 햄비어를 집어넣는 것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기 섞인 송수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아직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사라니…. 보급이 충분한 건가? 물론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이건….”

“네. 전 영주가 남겨놓은 게 워낙 많은 터라… 보급 자체는 충분한 편입니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아낄 이유도 없고 말입니다.”

“아….”

“어차피 시간이 충분한 편이 아니니까요. 어째서 키메라들이 영주성 공략을 시작하지 않는지는 아직 확인 중이지만… 적들이 본격적으로 공격에 들어서면 방위 마법이 깨지기 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

“운이 좋으면 한 달, 최악의 경우에는 일주일, 그것보다 더 최악의 경우에는 하루면 방위마법이 해체될 테니… 사실상 저희가 가지고 있는 보급품들의 양이야 크게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여러분들께 잘 보이고 싶다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

“빅보이 님, 칼턴 님. 여러분들은 현재의 헤르엔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뭘 어떻게 봐. 이 새끼야. 다 같이 사이좋게 엿 된 거지.’

“뭐… 우리 같이 칼밥 먹고 사는 인간들이 그런 걸 잘 알고 있겠어? 그냥… 다른 건 다 모르겠고 하나는 알고 있지. 우리가 뒈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거. 살아 있는 건 어디까지나 저 키메라들의 변덕 때문이라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군요.”

“여기 갇혀서 죽을 날 만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뭐 막을 수 있겠냐에 대한 여부를 묻는다면… 그다지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난 탈출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

“…….”

“네. 외부에서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고, 당장 린델에서 지원 병력들이 온다고 해도 일주일은 더 걸릴 테니 말입니다. 게다가 헤르엔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수단조차 없으니… 사실상 궁지에 몰린 상황이지만… 저는… 저는 희망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헤르엔 수성전의 성패는 지금 이곳에서 있는 이들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꿈 깨 이 새끼야. 희망 같은 거 없으니까. 그냥 김현성 오기 전까지 존버하는 게 니들이 살길이야.’

“헤르엔은… 사실상 잊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헤르엔의 모인 모든 사람들이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 모인 이들은 끈을 놓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

“그 누구보다도 살아남고 싶어 하는 이들입니다. 빅보이 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이들은 아주 작은 계기만 주어진다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큰 힘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슬쩍 이쪽 쳐다보자너.’

빅보이도 표정이 좋지 않다.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이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제가 가장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소년병을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현재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빅보이 님께서 가장 잘 이해하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스럽지만… 마법사님이 전투에 참가하시는 것이 오히려 마법사님의 안전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정론이기는 하지 뭐. 꼭꼭 숨겨놔야 뭐가 좋겠어.’

당연히 숨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헤르엔 영주성이 공략된다면 소년병이고 나발이고 모두가 뒈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송수경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냥 다 같이 망하기 전에 수성전 좀 같이하자고 말하고 있는 거자너. 조금 더 제대로 써먹고 싶다고….’

빅보이 역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 없다. 그저 인정할 수 없을 뿐이다. 소년병이야 이곳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 대상이 내 새끼가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약속드리건대 그 무엇보다 마법사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하… 하지만….”

“…….”

“…….”

“후우….”

이쯤에서 내가 나서주는 것이 맞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었으니 말이다.

“저는 괜찮아요. 형.”

‘이 새끼 생각도 궁금하고.’

“괜, 괜찮겠냐?”

“네.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는걸요. 영주성이 무너지면 다들 죽는 것 같고… 저도 형들을 지키고 싶으니까요.”

“너… 너 이 새끼. 누가 누굴 지키겠다고 떠들어? 떠들긴! 꼬맹이 자식이 건방지게 말이야. 너는 지금 한창 공부할 나이라고. 응? 어른들 일은 어른들한테 맡기고….”

“형은 제 나이 때 뭐 하셨는데요.”

“나? 나는… 아… 아무튼.”

“아무튼 제가 형들을 지킬 거예요. 그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이 새끼 왜 쑥스러워하고 그래.’

괜히 말 돌리는 거 보라구.

“그럼 우리 꼬맹이는 어디로 배치되는 거지? 적어도 나나 칼턴과 함께가 아니라면….”

빅보이의 질문에 송수경이 웃으며 말을 이어왔다.

“물론 여러분들과 함께 행동하도록 배치할 생각입니다. 보호자분들이 동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당연하지만 싱긋 웃는 모습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어떻게 봐도 이용할 생각 만만이자너.’

이유도 없이 분노가 차오르는 상황, 문득 이유도 없이 녀석을 나쁘게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

얼굴만 봐도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아니야. 아니야. 꼭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

“…….”

‘너무 색안경 끼고 보지 말자구.’

1회 차와 2회 차를 분리해야 하는 걸 잘 인지하고 있는데 어째서 녀석에게만은 이렇게 박해지는 걸까.

본래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 새끼 1회 차는 은근히 정상일 수도 있자너.’

2회 차의 녀석은 그냥 김현성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미친놈일 뿐이었다.

송수경은 그전까지는 야망은 있었지만 제법 평범한 모험가였다는 거다. 김현성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그 순간, 빌런으로서의 송수경이 태어났다고 해도 마찬가지, 놈이 린델을 떠나 왕국연합으로 떠난 것도 모두 김현성의 옆에 서기 위해서였다.

이번 회차에서 송수경이 김현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그냥 일반적인 모험가 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일단 놈이 1회 차에서도 김현성 광신도가 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

이 새끼를 처단하는 것은 그 이후에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쳐내야 돼.’

녀석이 불순물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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