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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05화 (1,30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05화

마법사의 탑(18)

조혜진의 창을 파란 길드에 가져다 놓는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김현성의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애초에 헤르엔에 처박히기로 결정한 녀석이 나를 데려다 준 이후에 린델행을 택했다는 것부터가 비정상적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조혜진의 죽음을 마주한 것으로 김현성이 완전히 각성했다고 보기에는 힘들기는 했지만… 적어도 새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조금만 더,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벽을 넘고, 알을 깰 준비를 마친 타이밍에 터진 사고에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상황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물론 김현성이 파란 길드의 남은 인원들을 데리고 헤르엔으로 올 것이라는 건 이미 예정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혹시 알겠는가.

‘이번에도 도망칠지.’

사람은 의외로 잘 변하지 않는다. 지금의 2회 차 김현성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녀석은 2회 차에서도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것을 선택한 전적이 있었다.

1회 차라고 다를까. 오히려 더욱 심했을 것이다. 이때의 김현성은 2회 차의 김현성보다 겁도 많고, 더 유약했으며, 내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북부대공의 가면 속에는 아직도 얼빵하고 여린 김현성이 자리해 있었다는 거다.

김현성은 만들어진 영웅이지 처음부터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 새끼는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전부 만들어 놓은 거자너. 혹시 시바 헤르엔에서 사고 터질 거 알고 미리 내뺀 거 아니냐고.’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 그 와중에 헤르엔의 내부 사정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후우….”

“제기랄… 하나뿐인 통신 아티팩트가 없단다. 배불뚝이 영주 새끼가… 가지고 튄 모양이야.”

‘진짜 미개하기는 해.’

“전서구는? 다른 쪽에 상황 보냈어?”

‘전서구란다. 시바. 비둘기라도 보내게?’

“봉화를 왜 안 올리고 있는 거야? 다른 도시에서는 헤르엔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게 맞아?”

‘이젠 시바 봉화를 올리라고 하고 있네. 삼국시대냐고.’

“마법사들이 신호 마법을 쏘아 보내면 되지 않아?”

‘그나마 이건 좀 신박하기는 하지만….’

“성안에 방위 마법이 있기 때문에 신호 마법도 사용하지 못할 거다. 내부의 마법도 튕겨내 버리니까.”

마법의 수준도 미개하기 짝이 없었다. 내부의 신호탄 마법까지 튕겨내 버리는 방위마법이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방위마법이란 말인가.

“그럼 빅보이… 도망친 영주 새끼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거야?”

“근데 그 새끼가 다른 곳에 지원 요청을 하겠어? 지 영지 버리고 도망쳤다는 소리가 들리면 폭군 샤를롯트가 그놈을 살려 두겠냐고. 그 자리에서 직접 목을 쳐버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솔직히 이곳을 빠져나가기도 힘들뿐더러… 만약 빠져나갔다고 해도 분명히 지 살길 찾으러 도피할 확률이 높겠지.”

“레인저들도 바깥으로 전혀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던데… 그럼 이거….”

“그래 완전히 고립된 거야. 함정에 걸린 햄비어 신세가 된 거지 뭐… 제기랄.”

“식량은 얼마나 남았다는데?”

“글쎄… 그나마 영주 성 안에 물자가 풍족한 편이라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되는 건지… 두 달은 더 버틸 수 있을 정도란다.”

“배불뚝이 새끼… 도대체 얼마나 해 처먹은 거냐고. 제기랄.”

“아이러니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여기서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거니까. 물론 놈들이 작정하고 성 안으로 쳐들어온다고 하면… 전부 죽은 목숨이겠지만….”

“…….”

“…….”

그 이후에도 빅보이와 칼턴 녀석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째서 키메라들이 성을 둘러싼 채로 방해하고 있는 것인지, 외부에서 먼저 상황을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야 하는데 그럴 수는 있는 것인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당연히 결론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쉽게 되겠냐고.’

유일한 통로는 물건을 싣고 헤르엔으로 오가는 마차들뿐이었다. 물론 이마저도 가면 쓰레기들의 통제하에 있지 않았을까.

헤르엔 물류업을 가면 쓰레기들이 먹은 건 이미 한참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일이었던 것 같았고….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오가는 여행자들은 알아서 통제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말 그대로 헤르엔을 완전히 고립시킨 것이다. 애초에 사람들도 잘 찾지 않는 곳이고, 블랙마켓이 아니면 구태여 방문할 필요도 없는 곳이다 보니 이런 게 가능한가 싶기도 했지만, 그만큼 가면 쓰레기들이 치밀하지 않았더라면 계획은 진행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눈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

김현성이 린델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놓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

나처럼 망원경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니 대상을 계속해서 추적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추적자들이 필요할 테고 그게 아니라면 벨리알의 힘을 빌려야 할 테니… 필요할 때마다 대가를 지불하기가 쉽지는 않겠지.

키메라를 만드는 실력 자체는 감탄을 불러 나올 정도였지만 말이다.

‘2회 차에서도 저 정도의 퀄리티들은 보기 힘든데….’

아무튼 간에 슬슬 일어나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 슬그머니 손가락을 움직이자….

“어?! 일어났다!”

“방금 꼬맹이 손가락 움직인 거 봤어?!”

하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물부터 들이미는 꼴은 가관, 칼턴 녀석이 물컵을 억지로 입에 쑤셔 넣었기 때문에 일단은 그것들을 억지로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시바 목에 걸린다. 이 새끼야.’

“몸은… 몸은 좀 어때?”

“너 이 새끼. 괜찮은 거냐.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어?!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지! 응?”

“칼턴 좀 꺼져봐 이 새끼야! 꼬맹이 놀라니까.”

“어이. 여기 사제 한 명만 데리고 와줘!”

“꼬맹이! 어이! 내 말 들려?!”

본래는 조금 더 뜸을 들이고 일어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이 새끼들 하는 꼬라지를 보니 참을 수가 없을 지경, 결국에는 벌떡 일어나 빅보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그, 그냥 잠들었을 뿐이에요. 그렇게 둘러싸고 보고 있으니까 부, 부담스럽다고요!”

“어?”

“완전, 완전 괜찮아요. 몸도 이상 없고… 마력탈진 때문에 피곤해서 잠들었을 뿐이라고요. 사제를 불러올 필요도 없고…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실 필요도 없어요. 진짜 유난이라고요. 유난.”

‘시바 너무 부담스럽자너.’

시커멓고 우락부락한 놈들 두 명이 일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녀석들도 본인들이 과보호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조금은 민망한 헛기침을 흘린다. 심지어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만나 교통정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긴박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녀석들도 대충 예상하고 있었고, 정체불명에 마법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맨정신에 서로를 마주하는 것은 약간은 민망한 일이었다.

조용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고 몇 초가 지난 직후, 먼저 입을 열어온 것은 칼턴이었다.

“유진은 무사하다. 모두 네 덕분이야.”

“애초에 제가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요… 제가… 죄송하죠.”

“그래서… 도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냐? 너 이 새끼….”

“잘…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까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어서… 전, 전부터 가끔 이럴 때가 있었거든요.”

“뭐? 길거리 어디….”

“광… 광장 근처의 뒷골목이에요. 정신을 차리니까. 거기에 있었어요.”

“뭐… 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아무 일도 없었어요. 한 두세 시간 정도 후에 정신을 차렸었는데… 헤르엔은 원래 남들한테는 별 관심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 이 새끼야!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너 같은 꼬맹이가 밤늦게 함부로 돌아다니면 무슨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났을 거라고! 이번에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 알아들어?! 강도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 노예 상인들 돌아다니는 거 봤어, 못 봤어?”

“봤… 봤어…요.”

“그런데 씨발! 정신 놓고 뭐 하고 있는 거야. 제기랄!”

“죄… 죄송해요. 요즘에는 그런 적이 없어서… 쭉…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제길! 도대체 정신을 얻다 두고 다니고 있는 거야! 어?”

‘이 새끼는 도대체 왜 나한테 이래? 시바 이게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한 거야? 왜 나한테 난리야?’

그만큼 흥분한 것 같은 빅보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물론 본인이 불필요한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인지했는지 갑작스레 조용해졌지만 말이다. 심지어는 칼턴과 함께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기랄… 부작용이 맞잖아. 이 새끼야.”

“그럼 아닌 줄 알았어?”

“그럼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일단 평소대로… 대해야 하는 거지.”

“여러 가지로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냐고. 신성력은 또 뭐고… 그 이상한 촉수는 또 뭔지… 우리도 조금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물어보겠다고?”

“…….”

“…….”

“솔직히 물어볼 필요도 없지 않냐. 우리도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뻔하잖아. 그냥 이런저런 실험이랑… 괜히 그런 걸 떠올리게 해서 꼬맹이 스트레스받게 만들 필요가 있냐는 거지. 그렇지 않아?”

‘그건 그렇지.’

“기억할까도 의문이고… 일단 덮어두자고.”

속닥속닥 귓속말을 끝낸 녀석들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머리를 우악스럽게 쓰다듬기 시작한다.

“뭐 일단은 용서해 주마.”

“헤… 헤헤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너무 놀라지는 마라. 상황이 조금 꼬였거든. 무슨 상황이 있더라도… 놀라면 안 된다. 알겠지?”

‘뭔 소리야.’

“일단 우리만 믿어.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아… 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주변을 둘러보자 어째서 일이 꼬였다고 표현한 것인지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방이 너무 고급스러워.’

일단 빅보이 일행과 내가 머무르고 있는 방이 너무 고급스럽다. 어디 창고나 성에서 하인들이 쓰던 방에서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한데 지금 나와 녀석들이 머무르고 있는 방은 마치 귀족들이 사용하던 방 같지 않은가.

‘하 시바… 이래서 눈에 띄면 안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빅보이가 나를 데리고 나가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무슨 희망처럼 되어버렸자너.’

뻔한 이야기였다.

‘이 새끼들 나를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자너.’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꼬마 녀석이 일반 개체들을 쓸어버리고 특수 개체에게 상처까지 남겼으니 이 쓰레기 새끼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

성이 포위되어 있는 개 같은 상황에서 그나마 비빌 구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빅보이도 내가 이런 시선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는지 내 어깨를 꽉 잡아온다.

‘시바….’

“불안하면 그냥 나만 믿고 있으면 돼.”

“네… 네. 형.”

‘이 새끼 듬직하자너.’

“이미 대충 얼버무려놨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주목받고 있는데요.’

단언하건대 1회 차에서 유명해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기영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빅보이와 함께 여행하는 소년의 소소한 이야기가 될 예정이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사이에 영주성에 실권을 장악한 집단이 빅보이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중이었다.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인물들 사이에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여기에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이쪽이….”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잠깐이지만 헤르엔 수성전을 책임지게 된 송수경이라고 합니다.”

뜻밖의 송빌런이었다.

“…….”

“…….”

‘네가 왜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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