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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1303화

마법사의 탑(16)

그냥 도망치는 게 낫다고 이성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지만….

‘우리가 저 괴물들을 이길 수는 있겠냐고… 제길.’

그것 이상으로 길 잃은 꼬마 하나가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물론 자신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투가 일어나면 은연중에 몸을 사리던 유진도 이를 악물고 걱정하는 티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고, 빅보이 녀석은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 판단이고 나발이고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 상황에서 꼬마를 찾는다는 것부터가 제대로 된 판단이라고 볼 수 없지. 미친 거야… 완전히 미친 거라고….’

이 미친 대륙에서 꽤 오랫동안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게 빅보이 파티가 강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더 눈치를 잘 살폈을 뿐이다.

당장 신창이라고 불렸던 조혜진도 파란 길드마스터의 멍청한 짓거리로 죽지 않았던가.

그녀뿐만이 아니다. 절대로 죽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수많은 강자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실력을 과신했거나, 혹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라거나, 내빼는 것이 불가능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였다.

헤르엔에서 터진 이번 사건은 어처구니없게도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진다.

‘죽을 거야.’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이건 불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신들은 영웅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모험가 1, 2, 3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해 이미 꼬맹이 역시 죽었을 확률이 높다. 어떻게든 경비병들과 모험가들이 힘을 합쳐 몰려드는 키메라들을 막아내려고 하고 있었지만 민간인들은 그대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상식적으로… 그 조그만 녀석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뭐해! 움직여! 칼턴!”

“제길… 알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꼬마가 살아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달리는 와중에 유진이 걱정이 되는지 한마디 더 보태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빅보이… 그 녀석 살아 있을까?”

“제길!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유진!”

“하지만….”

“은근히 눈치가 빠른 꼬맹이였으니까 분명히 살아 있을 거다. 분명히….”

“그래. 살아 있겠지. 아니, 살아 있어야 돼.”

‘제길….’

화제를 돌리기 위해 애써 말을 돌린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갈 거야? 빅보이?”

“일단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쪽으로. 광장을 중심으로 먼저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어?”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네.”

“빨리 움직이자고! 제기랄!”

“아아아아아아악!”

“막아! 밀려들어 오는 거 막으라고! 이 거지 같은 키메라 새끼들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끄르르르륵! 끄르르르르륵!”

“흐…. 막아! 지원은! 지원은 없나!”

“배불뚝이 영주 새끼는… 진짜로 튄 거냐고! 제기랄! 성문 열어! 성문!”

“빨리 와! 빨리! 여기 지원 요청! 지원 요청!”

‘뭘 찾고 자시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제기랄.’

이미 방패의 벽이 무너지려고 하고 있다. 키메라들이 곳곳에서 미쳐 날 뛰고 있었고, 헤르엔의 병력은 이걸 막을 여력이 없다.

빅보이 녀석도 이걸 깨닫고 있음이 분명 할 텐데도 불구하고 방패와 도끼를 들고 앞으로 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따라와 유진! 씨발! 칼턴 엄호사격 부탁한다!”

‘엄호사격? 저딴 거에 활이 박히겠어?’

하지만 일단 녀석의 말대로 화살을 장전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밀어내! 밀어내! 제기랄! 길을 뚫으라고!”

“빅보이 이 미친 새끼야! 무작정 돌진하지 마! 진정하라고! 이 새끼야!”

“칼턴! 엄호사격이나 하라니까! 제기랄!”

“아무리 급해도 이 새끼야! 똥오줌은 가려야 할 거 아니야!”

“할 만해! 할 만하다고! 이 개자식들 숫자만 많지! 별거 아니야!”

일반 개체와 특수 개체가 섞여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현재 자신들이 자리를 잡은 전선은 일반 개체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높다. 아니, 최소한 이곳에 특수 개체는 보이지도 않는다.

“어디서 갑자기 이런 키메라 새끼들이 튀어나온 거냐고! 제기랄! 어떤 개자식이 이런 걸 만든 거야! 제길! 키메라 조합하는 새끼들은 전부 다 뒈진 거 아니었냐고!”

누군가의 외침이 귀에 틀어박힌다. 당연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살라딘에 네임드 흑마법사들은 이미 전부 뒈져 버렸다. 단기간 내에 이런 키메라를 만들 수 있는 흑마법사들은 모조리 말이다.

악마를 소환한 것도 아니고, 악마의 신체를 키메라로 만들어버리다니 이 정도의 역량을 가진 놈이 아직 있다고 가정한다면 조혜진이 죽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특수 개체뿐만이 아니라 일반 개체들도 하나하나 묵직하다. 빅보이 녀석은 별것 아니라고 큰소리를 외치고 있었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칼턴! 주변 확인하고 있어?!”

“그래. 계속 보고 있다. 그 꼬맹이 어디 있는지.”

“민간인들은 따로 대피시키고 있는 거 맞아?”

“헤르엔에서? 영주도 지 살겠다고 튄 마당에? 제기랄 바랄 걸 바라야지.”

“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도망쳐! 제기랄… 도망치라고!”

‘제기랄.’

“일단 소리부터 질러! 혹시나 목소리 듣고 꼬맹이가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빅보이!”

“아… 알겠다. 꼬맹이! 내 목소리 들리냐! 꼬마야!”

“꼬맹이! 꼬맹이 어디 있어! 이쪽으로 와!”

“꼬마야! 어디 있냐고! 어디 있어! 제기랄!”

“너 이 새끼 어디에 있어! 용서해 줄 테니까 빨리 나오란 말이야! 제기랄!”

“조심해 빅보이!”

“너 이 새끼! 당장 안 튀어나와!?”

“빅보이!”

“지금 나오면 용서해 준다. 지금 나오면! 어디에 있냐고! 제기랄! 소리라도 질러!”

“유진! 빅보이 좀 말려!”

“어디에 있냐고! 대체! 숨어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빨리 나오라고!”

“빅보이 이 새끼야! 진짜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어!”

“지금이다!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야 빅보이!”

뭔가 다른 녀석들과 달라 보이는 녀석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빅보….”

무척이나 커다란 키에 얇은 몸, 제대로 된 악마와 섞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머리 위로는 길다란 뿔이 자리해 있다.

‘네임드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이 녀석은 지금까지의 키메라들과는 질이 다르다는 걸 말이다. 좌중을 압도하는 분위기. 보기만 해도 저절로 턱이 덜덜 떨려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 고성 소리가 들려오던 전장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일반 개체 키메라들 역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만 있을 뿐이다.

‘죽는다.’

일반 개체들을 상대로도 이미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 하물며 아예 레벨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저 녀석이야 오죽할까.

“도… 도망쳐. 빅보이.”

얼굴에 피칠갑을 한 빅보이가 도끼를 질질 끌고 녀석에게 다가가는 게 보인다.

“넌 또 뭐야. 이 새끼야.”

라고 말하며 녀석에게 다가서지만 객기로 보일 뿐이다. 현 시점에서 빅보이가 녀석에게 부딪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보다 더욱더 가망이 없다.

녀석은 빅보이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 그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귀찮은 물건을 치우려고 할 뿐이다.

길고 앙상한 한쪽 팔을 들어 올리는 키메라. 그리고 그 손이 빅보이를 향해 내려쳐졌을 때.

유진이 본능적으로 몸을 날리며 빅보이를 밀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피한 것도 우연, 어디까지나 저 네임드 키메라가 빅보이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기적, 하지만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잘린 한쪽 다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내지르는 유진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 것이다.

“어… 어?”

상황을 인지한 빅보이 역시 잘린 다리를 부여잡은 유진을 바라본다.

“뭐해! 움직여! 빅보이 제기랄!”

“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도망쳐….”

“…….”

“도망치라고! 도망쳐!! 으아아아아아아아!!”

장내에 또 다른 혼돈이 찾아왔다. 아까와는 종류가 다르다. 방금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키메라들을 막아서려고 했던 이들이 모두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내 빼고 있는 중, 싸우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리라.

이건 뱀과 개구리의 싸움이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곧바로 내빼는 이들 사이로 몸을 비집고 전진한 것은 당연지사.

아무리 후위라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넋을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특수 개체는 벌레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모양인지, 빅보이와 유진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마 자신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빅보이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다리 들어!”

“어… 어?”

“잘린 다리 들라고! 이 새끼야!”

유진을 어깨로 받친 이후에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내빼기 시작했다.

“제길! 제길!”

“…….”

“사제… 사제!”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키메라들은 더 이상 우리들을 공격하지 않고 있다. 마치 인간들을 몰이라도 하듯이 영주성으로 내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슨 생각이야. 이 개새끼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제기랄….’

“아아… 아아아아… 아파… 씨발… 너무 아프다고 칼턴….”

“입 닫아. 유진. 제길. 체력 아끼라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제길.’

“나 죽는 거 아니지? 응? 그렇지?”

“입 닫으라고 했잖아! 유진! 죽기는 씨발 누가 뒈져?! 너 이 새끼야. 너는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니까. 그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다리 붙일 생각이나 해. 늦으면 평생 외발로 살아야 될지도 모르니까. 응? 그때는 안 끼워준다.”

“꼬맹이… 꼬마한테는 뭐라고 하지?”

“무슨 개소리냐고!”

“나 죽었다는 거 알면… 그 꼬맹이 새끼… 많이 슬퍼할 텐데….”

“지금 꼬맹이가 문제야! 이 새끼야! 네가 죽게 생겼는데.”

“있잖아… 칼턴. 빅보이. 웃기지… 않냐.”

“…….”

“내 인생이… 지금까지 내 인생은 구린 일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입 닫아.”

“앞으로도 계속… 구린 일들만 생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야….”

“…….”

“그놈 때문인지… 최근에는… 최근에는 꽤… 행복했었단 말이지….”

“…….”

“…….”

“그래서… 그래서 뭐.”

“…….”

“그래서 뭐 이 새끼야!”

“…….”

“행복했어서… 그다음은 뭐 이 새끼야!”

“…….”

“뭐… 뭐 어쩌라고! 행복했었는데! 그다음은 뭐냐고 이 새끼야!!”

“…….”

“이 개새끼야! 죽으면 죽여 버린다! 죽지 마! 죽지 마! 이 새끼야!”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업혀 있는 놈은 뒈졌는지 숨을 쉬고 있지 않다.

빅보이 녀석은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렸는지 병신처럼 자신만 따라오는 중이다.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작정 달리다 보니 영주성이 눈앞에 보이고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문 닫지 마! 문 닫지 말라고 이 새끼들아!”

“…….”

“문 닫지 마!”

점입가경으로 방금 본 네임드 개체가 이쪽으로 팔을 휘두르는 것이 보인다.

“씨… 씨이발… 꼬맹아….”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별안간 어디에선가 정체불명의 촉수가 나타나 녀석을 휘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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