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99화
마법사의 탑(12)
본래 이름 따위는 없는 게 국룰이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병든 소년의 이름은 이 새끼가 지어주는 것이 맞다. 최소한 별명이라도 지어줘야 했다.
‘지어줄 거지? 그렇게 해줄 거지?’
조금은 충격받은 듯한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병든 소년에서 2가지 속성이 추가되었기 때문일까. 벙어리이기도 하면서 이름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소년의 모습에 숙연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본인도 본인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도 많다.
지금껏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은 이 꼬맹이조차 치열한 삶 속에서 밝은 웃음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저울질할 수 없고, 어떤 위치에 있든 간에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객관적으로 이 병든 소년의 삶은 자신보다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매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많은 이들의 혐오 속에서 싸워야 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삶과 투쟁하는 인생을 살아야 했다는 거다. 당연하지만….
“가족은….”
[몰라요.]
가족도 없자너.
이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했었다는 거지.
이런 꼬맹이가 어떻게 글을 알고 있는지는 미스테리였지만 당연히 그런 사소한 설정에는 눈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김현성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였으니까.
‘적어도 너는 이 새끼야 내 나이 때 등 따시고 배부르고, 부모님 사랑받으면서 커왔을 거 아니냐구. 너 이 새끼 잘나가는 중견기업 아들내미였잖아.’
“어디에서 살고 있니.”
[헤르엔.]
“…….”
[광장.]
이라고 말한 이후에는 다시금 밝고 멍청한 웃음을 선보인다. 헤… 하는 웃음소리를 달고서 말이다.
당연히 김현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저 조금 부끄러워졌다는 듯이 자조적인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이 꼬마보다는 자신의 처지가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이런 이들을 버려둔 채로 도망친 자신에게 보내는 비웃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김현성은 묘하게 꼬맹이의 밝은 미소를 피하고 있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널 구해주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야.”
[그래도… 고마워요.]
“딱히 잘해주고 싶었던 것도 아니야.”
“…….”
“이제 돌아가라.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
‘이 새끼 갑자기 급발진 하자너. 우리 아까까지만 해도 베프될 각이었는데….’
왜 병든 소년의 밝은 미소를 보니까 못 견디겠어? 참을 수가 없겠냐고.
‘자기가 혐오스러워져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거지? 응 그렇지?’
회귀자 사용설명서로 녀석의 머리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하고 있는 생각이야 뻔했다. 자기 자신 내면의 추악함에 기함을 토하고 있겠지.
“이제 그만 돌아가라. 네가 찾아올 곳이 아니니까.”
본인이 어리숙하고 추악하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힘든 것이다.
작게 보면 녀석이 외면한 것은 파란 길드와 린델뿐이었지만, 크게 보면 녀석은 나 같은 꼬맹이들을 외면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미친 장소 안에서 싸움, 책임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빵동생 같은 이들도 외면한다는 뜻이다. 갑작스레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불쌍한지도 모르는 주제에 계속해서 웃고 있는 미소도 신경 쓰이고 있을 것이고, 자꾸만 빵을 주는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도대체 왜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는 거야.”
‘말을 못 하니까. 이 새끼야.’
“꺼지라고!”
화들짝 놀라는 액션을 취한 것은 당연지사. 후다다닥 도망치듯이 달려가기는 했지만….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김현성은 멍청하게 웃으며 빵을 내밀고 있는 병든 소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잖아.”
“…….”
“꺼지라고. 내 말 못 들었어?”
“…….”
그리고 또 다음 날도.
“후우… 제기랄….”
심지어 그다음 날은 이 새끼가 오두막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
“…….”
문밖에 빵을 놔둔 이후에 후다닥 사라지자 끼익 문이 열리고서는 사라지는 김현성의 모습이 망원경 속에서 비친다.
다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놈은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지만… 녀석이 깨닫고 있을까.
‘웃고 있자너.’
조금씩 조금씩 멘탈 회복되고 있자너.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인간관계를 이어나간다는 건 이래서 중요하다.
아직 김현성이 삶의 의지를 다시금 불태우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저 단조로운 삶에 약간의 자극제가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매일 자신을 보러오는 꼬맹이가 있다는 사실에 웃음도 나올 것이고, 자꾸만 생각할 것이 많아져 기분도 나쁘겠지만 어찌 됐건 간에 놈은 지금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제대로 된 것인가 아닌가와는 별개로, 아무것도 없었던 공허한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너무 가까워지면 안 되기는 해.’
이 새끼 또 2회 차 때 빵동생 찾겠다고 지랄 날 수도 있으니까.
김현성의 삶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캐릭터지만, 구태여 찾을 필요가 없는 포지션에 위치를 잡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테면 녀석이 튜토리얼 때 만났었던 정체불명의 빵 형처럼 말이다.
잠깐, 아주 찰나 동안 스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로 병든 소년과 김현성의 만남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다. 딱 녀석의 각성촉진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인물 말이다.
‘노전사도 노전사인데… 병든 꼬맹이도 잘 먹히는 소재니까.’
양심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대상이 나 자신이 된다면 문제가 될 여지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또 그다음 날.
김현성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찾아오는 이유가 뭐야.”
그냥 말없이 헤… 하며 바보처럼 실실 쪼개기.
“왜 그렇게 자꾸만 웃을 수 있는 거야. 어째서 매일 매일 찾아오는 거냐고.”
[형이 잘해줬으니까.]
‘그래 이 새끼야. 이 병든 소년은 어딘가에서 사랑받은 적이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작은 관심에도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에요.’
“그건 실수였다고 말했잖아!”
‘너도 나랑 이야기하니까 좋잖아. 막 의욕이 생기잖아. 내가 너 시바 사회화 시켜주고 있는 거라구.’
“더 이상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나는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형은 착하자나요.]
“난 착하지 않아.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내 손에… 내 손에 죽은 사람만 해도 수천 명이 넘을 거다.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 이제 이해가 돼?”
‘아이고 그러셨어요? 이거 무서워서 어쩌죠?’
흠칫.
“헤르엔에서 왔다면 헤르엔의 룰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
“타인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지 마라….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이렇게 쳐내는 거니?’
“난 연관돼서 좋을 게 없는 사람이다. 네가 어쩌다가 여기에서 이곳을 발견했는지는 몰라도, 난 너를 돌봐줄 사람 같은 게 아니야. 알아들어?”
‘빅보이도 똑같은 소리 하더라 야. 근데 걔랑 너랑은 틀리지 지금은 시바 내가 너를 돌봐주고 있자너.’
“난 네 가족 같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위험한 사람이란 말이다.”
김현성이 천천히 살기를 내뿜는다.
녀석으로서는 완강한 조치였다. 아무런 전투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꼬맹이에게 그대로 살기를 노출시킨다는 것은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혀온 것은 당연지사, 아까까지만 해도 병신처럼 보였던 김현성의 얼굴이 무섭게 비친다.
‘시… 바….’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자신도 모르게 배에 뚫고 들어 왔었던 차가운 무언가가 떠올랐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배를 감춘다. 마치 악귀처럼 보이는 모습, 눈동자가 짐승의 눈동자처럼 보여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다.
저도 모르게 천천히 뒷걸음질을 칠 정도로 지금의 김현성은 내가 아는 평소의 김현성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2회 차 때보다 약한 주제에 살기가 더 짙어졌다고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
싸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 새끼와 비교해 봐도 그다지 차이가 없다. 수많은 전쟁을 거치며 인간성이 마모되어가고 있는 김현성의 살기라는 건 확실히 다른 쭉정이들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시바 살인마 새끼.’
아마 자기세뇌를 계속해서 돌리지 않았더라면 정말 오줌이라도 지리지 않았을까.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는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방금과 같은 행동을 멈출 수 있을 리 만무, 웬 병든 소년이 김현성의 살기를 버텨내는 것조차 말이 되지 않았으니 결국에는 철퍼덕 뒤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으… 으….”
하는 목소리를 흘린 이후에 계속해서 뒤로 기어가기.
“당장 꺼져. 죽고 싶지 않으면.”
“…….”
“당장!!”
뒤도 안 보고 도망치는 것이 바른 행동이다.
허겁지겁 무작정 뒤로 뛰어간다. 공포에 질린 듯한 모습을 취해줘야 했기 때문에 다리가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듯이 철퍼덕 넘어진다.
이 냉정한 새끼는 꼬맹이가 넘어지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도 살기를 풀지 않는다. 엉금엉금 기어가 최대한 김현성에게서 벗어나는 연기를 취한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말이다.
‘가슴 아플 거야. 시바 가슴 아파야 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나뭇가지에 걸려서 비틀거리고, 빵을 주는 것조차 잊어버려서 빵도 떨어뜨리고, 무작정 김현성에게서 멀어지는 것밖에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망원경 온.’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는 김현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후회하는 것만 같은 얼굴, 당연하지만… 다음 날부터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말이다.
물론 김현성의 반응을 망원경으로 계속해서 살펴보기야 했다.
‘씁쓸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자너.’
슬퍼하고 있자너.
-…….
-…….
엄청나게 티를 내고 있지는 않다.
물론 대놓고 슬퍼하고 있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병든 소년을 만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김현성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식사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동공 어딘 가에서는 후회와 그리움이 보인다.
정말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그 소년을 그렇게 겁을 줘 쫓아내는 것이 정말로 맞는 선택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김현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13일이 지난 시점,
‘진짜 안 찾아올 줄 알았냐구.’
조심스럽게 수풀을 헤치고 등장한 병든 소년….
녀석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딱 보기에도 성치 않아 보이는 병든 소년의 모양새, 그날 겁을 집어먹어 찾아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사정이 생겨서 찾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처였다.
광장의 험한 무리들에게 몰매라도 맞았던 걸까. 아니면 빵을 훔치다가 걸려 얻어맞기라도 했던 것일까.
병든 소년은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고, 팔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지만 육안으로 보기에도 얼굴이 부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사정이 있어서 못 찾아온 거였다고… 그런 거였다구….’
머뭇거리며, 조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최대한 바보 같은 웃음을 보이며….
천천히 빵 한 조각을 내민 것은 당연지사.
“헤….”
김현성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그것은 빵을 준 병든 소년에게 감동해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쌓여 있던 감정이 폭발한 거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흐윽…. 흐으으윽….”
“빠… 빠안….”
“흐윽… 흐으으으으으윽….”
‘감동실화라고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