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96화
마법사의 탑(9)
“와아!”
“어이 빅보이! 저것 봐. 꼬맹이 녀석 신난 거 보라고….”
“어떠냐? 꼬맹아. 헤르엔의 모습이?”
‘어떻기는 뭘 어때? 칼턴 이 새끼야. 당연히 거지 같지. 그냥 빈민촌이잖아.’
말 그대로.
2회 차, 문화의 도시 헤르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었다. 온갖 극장과 카페들, 대륙 내에서도 유명했던 축제 거리 같은 장소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이 꼬라지를 소도시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규모가 큰 화전민 마을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심지어 오랜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아직까지도 복구되지 않은 터라 몇몇 장소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제국의 수도 사이와 린델 사이에 위치해 있었으니 그 영향을 완전히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기적인 상황.
사실… 굳이 다른 도시들과 상황을 비교한다면 이곳은 나은 편이었다.
작은바위 길드에서 이곳으로 물건을 보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마켓이 활성화된 지역이었던 건가.’
나름 쓰러질 것 같은 목책에 경비병들이 서 있었지만 경비병이고 목책이고 나발이고 전부 다 소용이 없어 보인다. 목책 너머로 이미 헤르엔의 전경이 다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복구 작업에 한창인 린델과는 다르게 이쪽도 나름 활기가 넘치기는 한다.
어느 장소이든 간에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꼬맹이의 입장에서는 그 모습에 놀랐다는 듯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불쌍한 녀석은 계속 상자 안에 구겨 넣어진 채로 이동된 터라 세상을 많이 바라보지 못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 설정은 맨날 통하자너.’
새장 속의 새 설정이나 상자 속에 꼬맹이 설정이나 결은 같다.
당연히 기쁘다는 듯이 저 쓰레기 같은 마을을 눈에 담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헤… 헤르엔!”
“그래. 이 녀석아. 여기가 헤르엔이다. 린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때, 상상한 것보다 크지?”
“와아! 헤르엔이다! 진짜 헤르엔!”
“이렇게 좋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꼬맹이 입이 귀에 걸렸네. 안 그래? 빅보이?”
‘시바 당연히 그렇지. 몇 박 며칠 동안 땀내 나는 놈들이랑 좁아터진 곳에서 햄비어만 시바 주구장창 처먹었는데 안 기쁘겠냐고.’
“제길! 이 멍청한 꼬맹아! 창문 밖으로 너무 머리 내밀지 말라고 했잖아!”
“조금 정도는 괜찮잖아. 빅보이. 꼬맹이도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조금 정도는 즐기게 내버려 둬. 얼마나 답답했겠어?”
‘잘한다. 칼턴.’
그리폰도 없고, 워프게이트가 활성화되지 않은 1회 차였던 터라 고난 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정. 도로가 잘 닦여 있다는 것도 이 새끼들 기준이었던 모양인지, 마차가 우당탕탕거리며 돌진하기 일쑤였다.
보지 않아도 엉덩이에 멍이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조금 숨을 돌려도 좋으련만 빅보이 이 냉정한 새끼는 어린아이의 동심을 무참히 짓밟는 것에 그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성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길. 헤르엔이 뭐가 그리 좋다고 유난이야? 얘한테 헛된 망상 같은 거 하게 하지 마. 칼턴 헤르엔이 어떤 곳인지는 네가 더 잘 알잖아? 괜한 희망 불어넣지 말라고 이 새끼야.”
‘이 새끼. 너무 냉정해.’
“우리 지금 장난하러 가는 거 아니야. 칼턴. 어디 여행하러 온 것도 아니고, 꼬맹이도 꼬맹이지만 너까지 들뜨면 어떻게 해?”
“…….”
“하여간 이 새끼들은… 말을 말아야지… 제기랄… 유진!”
“어?”
“방은 잡아놨어?”
“응. 예전에 묵었던 곳에 미리 연락 넣어놨어. 조금 좁기는 해도 모두 같이 쓰기에는 충분할 거야.”
‘아… 시바. 각방 좀 쓰자고. 진짜.’
“경비한테는 확실히 말해놓은 거지?”
슬쩍 눈치를 보던 유진이 경비병에게 신호를 보내자 녀석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서는 고개가 끄덕인다.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야 안심하는 듯한 빅보이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들어가자고.”
“…….”
“혹시 모르니까 안에 숨어 있어라.”
“아… 네.”
“…….”
“…….”
‘걱정한 것치고는 너무 무난하게 들어가자너.’
“큰 문제는 일으키지 말아주십시오.”
“어련히 잘 처신하겠습니까. 하하핫.”
“들어가십시오.”
“고생 많으셨습니다.”
“…….”
“…….”
“생각보다 더 쉽게 통과했는데?”
“내가 말했잖아. 빅보이. 이건 확실한 일이라고. 아니었으면 내가 일을 받아 놨겠어? 헤르엔의 상황을 생각하면 당황한 거라니까. 전쟁 통에 믿고 있던 남작은 죽었고, 그 욕심만 많은 배불뚝이가 관리하고 있는데… 제대로 돌아가기나 하겠어? 여긴 거의 관리자나 귀족이 없는 곳이나 마찬가지야.”
“아무튼 무사히 헤르엔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 다행이기는 한데… 쯧.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평소였다면 쌍욕이라도 먹여주겠지만 우리도 우리 사정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썩을 대로 썩기는 했다만… 덕분에 이런 좋은 일도 있는 거 아니겠어? 아무튼 빨리 장소부터 옮기자. 물건도 처리해야 하고 꼬맹이도 좀 쉬어야 하니까.”
‘진짜 썩기는 했자너….’
뭔 놈의 경비병들이 전쟁 통에 마차를 살펴보지도 않고 통과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1회 차의 시대 흐름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나 이곳의 헤르엔 남작이 죽고 그의 욕심 많은 후계자가 이곳을 망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이해가 된다.
아까부터 눈에 비치는 도를 넘은 자유로움이 이제는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빅보이가 어째서 그렇게 예민했는지도 당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법의 체계가 무너진 무법도시나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헤르엔이고 어디까지가 어딘지 구분할 수도 없다.
김현성의 오두막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집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가 하면 대낮부터 허가되지 않은 물건들을 거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대놓고 노예거래를 하는 현장들이 보인다. 물론 노예는 위법이 아니었지만 빅보이의 심기를 거스르게 하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인상을 찡그리던 녀석이 화들짝 나를 여관 안으로 데리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허름한 여관 안의 시선이 단번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 긴장, 혹은 경계의 시선이 빅보이 일행에게 쏟아진다.
단순히 린델에서 헤르엔으로 옮겨왔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때의 시대상은 긴장감이 팽배했던 것 같았다.
“형… 형….”
“괜찮을 거다. 긴장하지 마라. 꼬마야.”
“…….”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 평소처럼… 처음에만 저럴 뿐이야. 여긴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이니까.”
“…….”
“과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헤르엔은 사연 많은 놈들이 들어오는 장소가 되어버렸거든.”
‘그렇게 갑작스럽게 설정 푸는 거 참 좋더라. 빅보이.’
“네?”
“말 그대로야. 욕심 많은 허수아비 남작이 들어선 이후에는… 어쩐지 그렇게 되어버렸다. 아마 별별 놈들이 다 있을 거야. 탈영병들도 당연히 있을 거고… 범죄자 놈들도 당연히 있겠지. 그냥 은거하고 싶은 놈들이나… 아마 다른 국가에서 온 녀석들도 있을걸. 아마… 노… 노예도 있겠지. 헤르엔의 법칙은 딱 하나야.”
“뭔데요?”
“남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 것.”
“아아아아….”
“여긴 그런 곳이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놈들이라면 찾을 곳이 아니야. 제국에서도 내다 버린 자식 같은 느낌이니까. 린델은 이곳을 흡수할 여력이 없고 말이다. 제길… 이해도 못 하는 꼬맹이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말마따나 패배자들이 모인 도시가 되어버렸다는 거다.
“…….”
‘그래서 현성이가 이쪽으로 흘러들어온 거냐고….’
물론 김현성의 오두막은 이곳과도 한참이나 멀어 떨어져 있기야 했지만….
어째서 김현성이 굳이 헤르엔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뭐 뻔하기는 하지만….’
빅보이의 말 모두가 정답은 아니다. 물론 정말로 오갈 데 없는 놈들이 모인 장소라고 부를 만큼 형편없는 장소이기는 했지만 분명히 이곳의 몇몇 놈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어떻게든 돌아가고 싶어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린델과 제국의 수도 사이에 있는 헤르엔에 자리를 잡을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당연히 김현성 역시 마찬가지.
‘은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귀엽지 않나?’
아예 없어져 버리는 것도 아니고 고작 튀어온 장소가 헤르엔이라니, 마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1회 차 김현성은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 속에 있는 녀석은 처음 튜토리얼에 도착한 22살의 김현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리숙하고, 순진하고, 영웅인 척하는 풋내기 같은 느낌, 얘도 그냥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어린놈의 새끼일 뿐이었다.
‘동료들은 다 죽고. 혼자 살아남아서….’
시바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가면의 영웅의 김현성 담금질 계획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지금도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복수를 위해서 김현성을 살린 것인지, 아니면 녀석에게 시련을 내리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결론은 같았으니 말이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누가 방문 열어달라고 해도 절대 열어주지 말고.”
“아… 네! 형!”
빅보이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이후 슬쩍 김현성이 예전에 살았던 오두막 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청승을 떨고 있는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녀석의 애검과 망토를 비롯한 장비들은 전부 오두막 아래에 있는 어딘가에 처박아놓은 모양인지 보이지 않는다.
망토로 온몸을 뒤덮고 있었고, 헤르엔의 멍청이들이나 입을 만한 옷을 입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싸움에서 도망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참 얘도 애긴 애야.’
저걸 파란 길드마스터로 바라본다면 솔직히 비난받아 마땅한 장면이다.
병력은 대패, 계획에 책임은 지지 않고 도망치는 꼴이라니.
녀석이 가장 괴롭고,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위에 있는 사람은 위치에 걸맞은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명백히 놈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냥 비난할 수도 없지.’
하지만 파란 길드마스터가 아니라 영문도 모르고 지옥으로 끌려온 22살의 김현성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몬스터들에게 검을 휘두르고 사람을 죽여 온 어린놈이라고 본다면 솔직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아니, 이해해야 된다.
‘이 새끼는 소년 만화 주인공 재질이니까.’
고구마 쳐 먹이고, 답답하고, 짜증 나고, 가끔은 울화통이 터질 때도 있어도….
김현성은 언제나 다시 일어선 이후에 조금 더 단단해진다.
더 강해지고, 더 성숙해진다는 거다.
아마….
녀석의 이 몇 달간의 방황은, 이후 분명히 외신들을 막을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건 나도 느끼고 있을 거고… 아마….
가면의 영웅 역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하늘을 바라보다 결국은 고개를 떨 군 채로 흐느끼는 녀석….
뭐가 됐든 간에 일단은 천천히 발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을 만나는 것이 옳다.
그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