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94화
마법사의 탑(7)
정확히 출발을 앞둔 삼 일 뒤,
조혜진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린델이 떠들썩해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조혜진이 죽었다고?”
“뭐. 그렇다더라. 이번에야말로 그 개자식들을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발 또 함정이었던 거야?”
“정황상 그렇게 보는 게 맞지 않겠어? 협력길드는 대부분 죽었고… 파란 길드에서만 사상자가 수백이 넘는다는데… 같이 귀환했던 김현성은 갑자기 자취를 감췄고… 씨X… 전쟁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그래서, 검은백조랑 붉은용병에서는 뭐라는데?”
“이 상황에 뭐라고 해?”
“아니, 조혜진이 죽은 건 확실해? 공식적으로 발표가 난 게 맞는 거냐고.”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이지만 소문이 돌아. 해당 전투가 일어났던 지역은 이미 역병 오염지역으로 분류가 돼서 출입 불가고… 사제들이 조금씩 조금씩 정화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속도는 당연히 느릴 테지…. 다른 곳도 아니라 검은백조에서 조사한 게 맞다면 반쯤은 확실하다고 봐야지. 오염지역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게 있었을 테니까. 파란 길드원 사이에서 이야기가 돌고 있기도 하고….”
“갑자기?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내 말이. 시바.’
“그럼 우리는? 우리 일도 취소된 거지?”
“아니. 일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 같다. 아무래도 소집령을 내리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겠지. 전쟁이 끝났다고 발표한 지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다시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대륙에서도 군사기 차원에서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던데….”
“안 좋은데…. 제길… 안 좋다고. 뭔가… 일이 꼬일 것 같은데.”
“거짓말이든 진짜이든 간에 너무 신경 쓰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다. 씨X… 윗일이야 윗놈들이 알아서 하는 거고… 살라딘의 세력이 줄어든 건 확실한 것 같으니까. 일단 놈들도 경거망동하지는 않을 거야.”
“파란이 타격을 입었다며! 제기랄. 그 새끼들이 다시 여기 안 쳐들어올 거라는 보장이 어딨어?!”
“진정해. 빅보이! 파란만 타격을 입었겠어? 이번 전쟁에서 뒈진 흑마법사 놈들이 떼거지야. 그놈들이라고 다시 여기로 올 수 있겠어?! 놈들이 얼마나 힘을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생각보다 더 세력이 크다고 해도 당장은 무리야. 너도 알 거 아니야! 상식적으로 생각하라고! 상식적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빅보이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어째서 녀석이 저렇게 걱정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걱정되나 보네.’
도시에 홀로 나를 남겨 두고 가는 게 걱정되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본래는 메이플이라는 여자에게 나를 맡기려고 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진정할 수 있을 리 만무, 살라딘 역시 타격을 입었다고 하기는 하지만 린델의 방위 시스템도 많이 망가진 상황인지라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은 것이다.
본인은 아닌 척하고 있지만 은근슬쩍 이쪽을 쳐다보며 욕을 내뱉는 것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이 헤르엔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살라딘이 다시 린델을 습격한다면….
‘같은 생각할 게 뻔하자너.’
꽤 큼지막한 마차를 두고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결국에는 조용히 중얼거리는 빅보이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이거… 원정취소는 안 되겠지?”
“미쳤어? 빅보이? 작은 바위한테 찍히고 싶은 거 아니지? 이미 선금도 받아 처먹었고, 평범한 물건도 아니라 장물이야. 이미 이야기가 다 되어 있는 이걸 어떻게 물러?”
“하지만….”
“이럴 게 아니라 그냥 꼬맹이를 데려가는 게 어때?”
“개소리하지 마. 유진. 일에 꼬맹이를 연관시킨다고?”
“일단 진정하고 내 말 들어봐. 빅보이. 어차피 엄청 먼 거리도 아니고, 헤르엔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길이 잘 닦였잖아. 산적새끼들도 안 보인 지 오래고… 그렇게 걱정이 되는 거면….”
“걱정은 개뿔… 내가 걱정돼서 이러는 것 같아?”
“아무튼 이 새끼야! 차라리 데려가는 게 낫다는 소리야. 진짜 최악의 상황이 와서 살라딘이 다시 린델 쪽으로 오는 거면 차라리 우리랑 같이 있는 게 나을 테니까. 안 그래?”
“제길….”
결국에는 뒷머리를 벅벅 긁는 빅보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졸지에 메이플과 함께 녀석을 배웅할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녀석의 손에 이끌려 마차 위에 오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같이 가겠다고 한번 졸라서 퇴짜 맞았던 게 엊그제였는데 괜스레 머쓱해 하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어? 빅보이 형….”
“딱 이번뿐이다.”
“네… 네?”
‘이미 다 들었자너. 뭘 이번뿐이야?’
“딱 이번뿐이니까. 마차 안에서 조용히 있겠다고 약속해라.”
“정말요?!”
“그래. 이건 노는 게 아니고 엄연히 원정이니까. 긴장 좀 하고…. 제길… 일단 출발하자고…. 이러다 늦을 것 같으니까.”
“꼬맹이 물건은?”
“내가 챙겼어.”
“메이플? 네가?”
“응. 안 그래도 오빠가 꼬맹이 데리고 갈 것 같아서. 그냥 별건 아니고 식량이랑 이것저것.”
“일… 일단 고맙다. 메이플.”
“뭘. 다녀오면 한턱 꼭 쏘라고.”
“응. 거하게 쏘마. 어이 칼턴! 출발해!”
“알겠다.”
‘안 그래도 헤르엔은 꼭 가보고 싶었자너.’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 있자면 당연히 한번 확인 작업을 거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분위기가 너무 안 좋으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떠들썩했던 린델의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이 눈에 보인다. 물론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뜨거운 감자가 너무 뜨거운 상황인지라 마차 안에서도 바깥에서 조혜진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당장 귀만 기울여도 이런저런 소리들이 들려온다.
“김현성 그 개자식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안 그래도 무리하게 병력을 꾸리는 것 같더라니 그대로 뒤통수 맞고 나자빠진 것 보라고… 제기랄.”
“조혜진이 아니라 그 새끼가 죽었어야 했는데.”
“멍청한 백작놈 하나가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인 건지. 젠장….”
“애초에 그렇게 빠르게 추격대를 편성할 이유가 있었던 거야? 다른 놈들도 아니고 그 살라딘 놈들이야. 뻔한 거 아니냐고….”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지…. 영웅,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니까 지가 진짜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참….”
그녀의 죽음을 김현성의 탓으로 돌리는 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정진호와의 싸움 이후에 김현성이 이미지를 회복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까지는 미운털이 박혀 있는 모양,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김현성이 추격대를 꾸린 것도 사실이었고, 가면쓰레기에게 뒤통수를 맞아 대차게 일을 말아먹은 것 역시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녀석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놓고 앞에서 소리칠 수야 없겠지만 이런 뒷말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시바. 너무 욕하자너. 현성이 혼자 말아먹은 것도 아닌데…. 참… 너무들 하네. 그래도 걔 때문에 시바 전쟁 이긴 건 생각도 안 하고….’
슬쩍 밖을 바라보자 조혜진을 추모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시야에 비친다.
“흐윽… 흐으으윽… 조혜진 님.”
“신창이… 이렇게 가다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창은 끝까지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김현성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소문이 사실이야? 일이 터졌으면 뭐라고 입장 발표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심지어 여기저기서 욕설도 들려온다. 마차에 함께 타고 있는 빅보이가 귀를 막으라는 듯 제스처를 취해 양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아쉽게도 신의 성체는 청력이 좋은 편인지라 흘려 들어오는 욕설을 전부 필터링할 수는 없었다.
‘지도 욕 엄청 하면서….’
“아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래… 시바 나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자너.’
일단 조혜진이 정말로 죽었는지에 대한 여부도 확실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조혜진이 이번 전투로 죽은 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아마 김현성은 헤르엔으로 간 게 아닐까.’
녀석은 그곳에서 몇 달간 은거한 적이 있다고 했었으니 말이다. 파란 길드의 동료들을 잃고, 조혜진까지 잃은 게 사실이라면 은거를 선택할 만도 하겠지. 시기상으로도 딱 들어맞으니까.
이번 전쟁과 전투의 패배한 것 그 자체가 김현성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었고, 결국 녀석을 낚아 궁지로 몰았다고 생각한다면 상황이 들어맞는다.
이후 김현성이 헤르엔에서 몇 달간 은거한 이후에 다시 나오는 것도 말이다. 내가 카스가노 유노를 통해 본 장면도 그런 장면이었으니까.
조혜진은 화살에 맞아 죽었고, 결국에는 검을 불꽃에 재가 되어 창만 남기고 사라졌다. 전투가 일어난 현장도 온갖 역병과 질병에 오염되어 있었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이들이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누가 생각하더라고 역병군주, 혹은 살라딘의 흑마법사 집단과 전투를 벌였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기는 맞아. 타이밍도 적절하고.’
가면쓰레기의 살라딘이 완전하게 퇴장한 이후에는 외신들이 나타난다.
그 시기가 얼마나 걸렸을지는 모르겠지만 1기영과 1지혜는 외신이 나타난 이후에 그쪽에 편승한다. 심지어 인류 측 몇몇을 포섭한 이후에 말이다.
외신전부터는 전 대륙에서 정신없이 전투가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전면전이 펼쳐지는 만큼 김현성의 헤르엔에 숨어 있다는 시기를 생각해 보면 조혜진의 죽음이 일어난 현재의 타이밍이 가장 적절하게 느껴진다.
김현성에게도 조혜진은 꽤 의미 있는 사람이었을 테니까.
“쯧… 미안하다.”
“네?”
“갑자기 데리고 가게 돼서….”
“아니요? 저는 좋은데요? 형?”
“아니 표정이 안 좋길래….”
“그냥 여기저기서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랬나 봐요. 형도 알고 계세요?”
“당연히 알고 있지. 파란의 신창 하면 전 대륙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이 썩어빠진 곳에서도 얼마 남지 않게 정의로운 사람 중에 하나야. 위인이라면 위인이지…. 지난 전쟁에서도… 그녀한테 목숨을 구원받은 병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니까.”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그래… 뭐. 대단한 사람이었지. 솔직히 충격적이다. 나는 그녀와 일면식도 없기는 하지만 신창이 그렇게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솔직히 난 별로 안 충격적이자너.’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자너.
“…….”
“…….”
솔직히 조혜진의 죽음은 충격적이지 않았다. 이미 내 눈으로 한 차례 그녀의 죽음을 목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1회 차와 2회 차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가장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다 죽어. 여기 있는 새끼들 전부 다 뒈지는 게 1회 차 엔딩이라고. 나는 그걸 위해서 여기 있는 거고.’
머릿속에서도 계속해서 인지를 해야 한다는 거다. 누군가의 죽음은 이곳에서는 너무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니 구태여 놀랄 필요도 없다.
조혜진에게 이미 예정된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고, 본래 일어나야 하는 일이 일어났을 뿐이니까.
정리해 보자면….
누군가의 죽음 하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뭐.
누가 죽더라도 굳이 동요할 필요 없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자너.’
어차피 죽자너.
심지어 정하얀이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여기에 오지 않았던가. 이번 마법사의 탑으로 이동된 것은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거나 개입하기 위해서 일 가능성이 크다. 그녀의 죽음은 대륙적으로도 큰 사건일 테니까. 그래… 정진호 때처럼 말이다.
약간의 위화감이 불쑥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어….”
“왜, 왜 그래? 어이! 칼턴 마차 좀 세워봐!”
“어….”
“꼬마야. 꼬마야!”
“…….”
“칼턴! 이 새끼야! 마차 세우라고!”
허겁지겁 내 상의를 들춰 문양을 확인하는 빅보이의 모습이 보였지만, 녀석의 장단에 맞춰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형….”
불현듯 톱니바퀴가 틀어졌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