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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90화 (1,28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90화

마법사의 탑(3)

“정하얀은 교국을 통째로 옮기기도 했었고… 육지를 바다로 만들기도 했었다.”

“…….”

“…….”

마치 신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전투에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정하얀의 주문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지금 보여지는 이 광경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양감을 느끼게 했다.

천천히 밀려오는 파도가 린델을 완전히 덮친 이후, 별안간 육지전이 해상전으로 뒤바뀐다.

파도가 치는 바다에 오롯이 마탑만이 우뚝 솟아올라 등대의 역할을 해주고 있었고,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함대들이 나타나 바다에 들이닥치고 있었다.

계속해서 둥둥거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여기저기서 닻을 올리라는 둥, 돛을 펴라는 둥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폭풍을 뚫고 함선들이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

“조금 더 힘차게 저으라고 이 새끼들아! 힘차게!”

“하나! 둘!”

“하나!! 둘!!”

“더 힘차게! 이 멍청한 놈들아! 하나! 둘! 하나! 둘!”

“마력함포 발사 준비! 발사 준비!!”

“배 돌려! 배 돌리라고! 훈련한 대로만 한다!”

“발사! 발사!!!”

쾅! 쾅!! 쾅!!

퍼어어어어어어어엉!!!

하는 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함대들이 마력함포를 발사하고 파도에 떠밀려 그대로 공격에 노출된 거대한 악마들이 비명을 내지른다.

미개한 기술력 때문인지 함포를 발사한 반발력도 크다. 순간적으로 배가 휘청거릴 정도였지만 저항하지 못하는 적들에게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미 작은 놈들은 파도에 떠밀리고 있었지만 덩치가 커다란 녀석들 역시 휘청거리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지막에 와서야 발동된 주문이 전황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한 사람의 능력 있는 모험가가 전장의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였고, 어째서 마법사가 이런 종류의 전투에서 각광받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였다.

나를 안고 있었던 빅보이 녀석 역시 할 말을 잃은 채로 중얼거린다.

“대… 대마법사… 미, 미친… 이런 게 정말로 가능할 줄이야. 하… 하하핫! 하하하하하하!”

“…….”

“정말로 이런 게 가능한 거였냐고! 제길! 하…하하하!”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천재.’

이외에 무슨 수식어가 더 필요하겠는가.

왜 그토록 김현성이 정하얀을 찾고자 했는지, 어째서 그녀가 2회 차의 대륙을 구원할 수 있는 패라고 느낀 것인지 깨닫는 것도 당연했다.

그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법의 신보다 더 마법의 신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지금의 정하얀은 2회 차의 정하얀보다 마력량도 적었으며, 마력회복량도 적었고,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고유능력의 개수도 적었다.

성장 능력치로 따지자면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태로는 외울 수 없는 주문을 기어코 완성시켰다.

살상력 같은 부분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족했지만 1회 차의 정하얀은 지금의 정하얀과는 다른 의미로 마도의 정점에 서 있었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그녀의 기질이 이번에는 이기영이 아닌 마법 그 자체에 발현된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이곳에서 그녀의 유일한 친구는 한소라도, 이기영도 아닌 마법이었을 테니 말이다.

2회 차에서의 마법은 정하얀의 수단이었지만 1회 차에서의 마법은 그녀에게 목적이었다.

1회 차의 정하얀이 2회 차보다 유능한가에 대해서 묻는다면 당연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저건 괴물이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심지어 이걸 바라보고 있는 1기영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발사!”

퍼어어어어엉!!

“발사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장전해! 장전하라고! 전부 다 쓸어버려! 이 더러운 악마 새끼들!”

“키에에에에에에엑!”

“배 위로 올라오는 새끼들 전부 처리해!”

“아아아아아아아악!”

“등대를 지켜! 계속 마법이 유지되게 하라고!!”

“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 미친… 미친! 대마법사! 하하하하! 대마법사!!”

“계속 퍼부어! 제기랄! 계속! 계속 퍼부으라고!!!”

“마법사들 뭣 하고 있어! 계속 주문 외워!”

“앞으로 조금이라고! 이 자식들아! 손을 멈추지 마! 계속해서 부어! 쏟아부어!”

계속해서 수세에 몰리고 있었던 인류 진영은 이때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거칠게 악마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니, 이미 살라딘의 흑마법사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을 리 만무.

몇몇 악마들은 이미 역소환된 지 오래다.

전선에 서 있는 흑마법사들 외에 멀리서 소환을 유지하고 있는 놈들도 있는 모양인지, 약 반 정도가 되는 악마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기껏해야 중급 악마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놈들이 반격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상위 악마도 보이는 놈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걸 처리할 수 있는 패는 인류 측에도 존재한다.

돛에 파란의 인장이 그려져 있는 함선이 전장에 도착한다. 가장 앞부분, 선수 상위에 선 김현성이 조용히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꼭 저렇게 맨 앞에서 폼 잡고 있어야 되냐고.’

물론 간지야 난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해답이 비주얼에 있었던 지라 마치 대항해시대를 지배하던 제독처럼 느껴질 정도.

문제는 김현성이 제독이 아니라 검사라는 것에 있었다. 순식간에 바다고 뛰어든 김현성이 아직도 파도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거대한 악마를 향해 날아간다.

날개도 없는 녀석이 말 그대로 총알처럼 쏘아진다. 수많은 화살과 마법의 한가운데로 말이다.

“키에에에에에엑!”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이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두르지만 그것마저 피해낸 김현성이 놈의 목을 한 번에 베어내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저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의 기예였다.

“와아….”

빅보이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괴… 괴물 새끼….”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별안간 파도가 치자 김현성이 그 파도를 밟고 반대 방향으로 몸을 꺾어 다음 악마를 베어낸다.

마법을 유지하기도 벅찬 정하얀이 녀석이 밟을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준이 높은 모험가들은 김현성과 비슷한 방식으로 바다에서도 몸을 일으켰고, 저항할 수 없는 상대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차희라, 박연주, 그리고 당시 1회 차에 네임드 플레이어들이라고 불린 모험가들, 알고 있는 얼굴들도 있고, 처음 보는 녀석들도 있다.

심지어 유노의 회색빛 세계에서 바라본 얼굴도 시야에 비친다.

저거….

‘김아영이라고 했던가?’

당시 정하얀의 죽음에 분노하던 여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조혜진.’

아직 살아 있었구나.

창 하나에 의지한 채로 여기저기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사뭇 인상적이다.

질렸다는 얼굴과 환희에 찬 얼굴들도 눈에 들어온다. 방금 이곳에 떨어진 내가 느끼기에는 전투가 순식간에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지만 저들의 얼굴을 그렇지 않다.

당장 바로 옆에 있는 빅보이 녀석의 눈만 보더라도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싸워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린델에서만 이틀 이상 전투가 지속되지 않았을까.

린델의 성벽을 뚫는 것부터 시작해서 악마 놈들이 마탑에 다다르기까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놈들은 안쪽으로 들어올 때까지 참고 참고 또 참으며 몸을 웅크렸겠지.

‘배를 만들 시간도 필요했을 테니까.’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이 오롯이 이 순간을 위해서 진행됐을 것이다.

‘멋은 있는데… 그다지 효율적이지는 않네.’

전장을 구태여 린델로 설정해야 하는 것도, 도대체 어떤 지경까지 왔길래 병력이 린델로 밀렸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저들 나름대로 사정이야 있었겠고… 결국 전투에서도 승리하겠지만 아마 인류 진영에게도 전쟁의 피해가 엄청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린델을 복구하는 것도 수년이 걸릴 것이고, 전쟁으로 생긴 상처는 단기간 내에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이지 않을까. 사실 뭐가 어찌 됐든 간에….

‘전투는 끝났네.’

물론 아직까지도 함선들은 헤엄치며 오는 악마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고, 날아다니는 마물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바보가 아니라면 이미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빅보이 녀석 역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끝났어… 끝났다고! 제기랄!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제길! 드디어 끝났다고!”

“…….”

“제길… 길었다. 진짜 거지같이 길었다고!”

이 멍청해 보이는 놈 역시 그걸 깨달을 정도였으니까.

나 역시 곧바로 눈물을 왈칵 쏟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흑… 흐으으윽….”

드디어 이 길고 긴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눈물이었다.

빅보이 녀석은 그런 수습 마법생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내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었다.

“울지 마라.”

“끄윽… 히끅… 흐으윽….”

“하핫… 울지 말라니까! 꼬마야. 이렇게 좋은 날 웃어야지! 왜 울고 자빠져 있어?”

“흐윽… 그렇지만….”

‘일단 여기 있는 동안 이 새끼나 좀 고기방패로 써야겠네.’

엄청난 강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칼침 몇 방은 대신 맞아주게 생겼으니 말이다. 은근히 정도 많아 보이고….

“전쟁은 끝났어.”

“…….”

“이제 거지 같은 역병도… 시체들이랑 뒤엉켜서 싸울 일도, 악마 새끼들도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글쎄… 과연 그럴지 모르겠네. 그건 그냥 네 생각이고….’

1기영과 1지혜가 이끄는 흑마법사 집단 살라딘, 그리고 인류 진영 역시 궤멸적인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아마 이 전투 역시 계산 내에 들어있을 것이다.

전투가 끝난 것이지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외신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제 살을 깎아 먹는 드잡이질을 할 확률이 높겠지.

“그 지긋지긋했던 놈들이 도망치고 있다고… 그러니까 울지 마라.”

“흐윽….”

“너도 용감했어. 응? 내가 네 나이였으면 바로 도망쳤을 거다. 오줌도 지리고 꼴사나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는 했지만… 꽤 멋있었다고… 조금 더 자부심을 가져라.”

“…….”

고개를 푹 숙이자 녀석이 건방진 빅보이 녀석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자… 저것 봐라.”

억지고 고개를 들게 한 이후에 보이는 것은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풍경이다.

모험가들이 환호성들이 내지른다.

곳곳에는 인간과 마물들, 흑마법사의 시체들이 가득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승리의 함성은 저런 참혹한 현장들을 보이지 않게 하는 법이었다.

녀석의 눈에는 아마 저런 것들이 보이지 않겠지. 당장은 위기를 벗어났다는 생각과 이제는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지 않을까.

물론 풍경 자체가 멋지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계속해서 내리던 비가 그치고 먹구름 속에 가려져 있던 해가 떠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남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바닷물들이 하늘을 비추기 시작한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어두웠던 풍경들이 밝아진다. 당장에라도 천사들이 내려올 것만 같은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사이에서 모험가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으니 어떻게 감성적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때? 멋지지 않냐? 멋진 하늘이지?”

녀석은 본인이 명대사라고 생각한 대사를 중얼거리며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선 하늘 제시 뭔데?’

나 역시 임시 고기방패 빅보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 너무… 멋지네요.”

아마 정하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 덕분에 린델을 지킬 수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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