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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73화 (1,27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73화

여단 조우(1)

‘오랜만에 보네.’

물론 율리에나가 쇄도하는 것을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시바 왜케 빨라.’

내가 율리에나를 사용했을 때보다 배는 더 빠른 것 같은 느낌.

검에 여러 가지 마법이 걸려 있었으니 더 빠르고, 더 강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율리에나와 많은 교감을 하지는 않았는지 실체화 같은 특수기능이 열리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녀석은 녀석만의 방식으로 율리에나를 다루고 있었다.

수준이 낮은 모험가였다면 한순간에 목을 꿰뚫렸을지도 모르는 기습이었지만 아쉽게도 유아영은 평범한 모험가가 아니었다.

파란 길드의 서브 탱커 자리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돼지보다 튼튼하지는 않았지만 섬세한 기술이라면 오히려 이쪽이 한 수 위였다.

곧바로 한 손으로 나를 품에 안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녀가 보인 것은 당연지사.

유아영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이곳저곳을 누비는 율리에나가 보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계속해서 율리에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턱.

정확한 타이밍에 율리에나를 손으로 잡아내는 유아영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와! 이거 뭐냐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율리에나를 손으로 잡아내는 모습은 놀라운 걸 넘어 경이롭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는지 날을 손으로 잡아 피가 흘러내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잡았어?’

율리에나를 잡은 팔에 근육이 팽창한 것이 눈에 띈다. 하기사 매일 매일 대장장이로서 망치를 두드리니 근력 수치가 낮을 리 만무했지만 그래도 저 변화는 신기하다.

분명히 겉보기에는 얇은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힘을 주니 딱딱함을 넘어 강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영 씨?”

“소, 소란스럽지 않게 처리해 달라고 하셔서….”

저 주문을 정말로 받아들여 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걸로 승부는 났자너.’

율리에나만으로는 유아영을 뚫어낼 수 없다. 그 누구보다 정진호가 그 사실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거리가 멀어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든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파괴력보다는 은밀 신속을 염두에 뒀다든가 하는 것은 그냥 변명에 불과하다.

자신들을 노리고 오는 파티의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걸 녀석에게 실감하게 한 것이다.

“아…앗!”

계속해서 부르르 떨리던 율리에나가 유아영의 손을 빠져나간 것은 바로 그때.

다시 쇄도해 오기보다는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는지 다른 방향으로 율리에나가 사라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당연하지만 저건….

“저 검 따라갈 필요 없어요.”

“네?”

“함정이에요. 너무 고전적인 수법이라서 한숨이 나올 정도지만… 효과가 없지는 않겠네요.”

율리에나가 사라진 수풀 너머로도 녀석들이 움직였던 흔적들이 보인다.

마법으로 만든 것인지, 여단의 암살자가 따로 유인책을 펼치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의 눈과 망원경을 속이기에는 너무 저급한 수였다.

암살에 실패한 것뿐만이 아니라, 추격도 벗겨내지 못하고 있다면 녀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는 한 가지밖에 없다.

‘아냐. 한 가지는 아니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걸 당연히 깨닫고 있을 테니까.

우리 파티는 꽤 이상하게 비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계속해서 올바른 길로 따라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군을 부르거나 지원 요청을 하지도 않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시끄럽지 않도록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당연히 다른 목적이 있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진호와 여단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였지만… 한자리에서 멈춰 있는 것을 보니 정체불명의 집단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재단해 볼 요량인 것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큰 나무에서 잠깐 정지하고 전투태세 돌입하겠습니다.”

“네. 부길드마스터.”

“단 제가 따로 말을 하기 전까지는 태세만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요.”

“네.”

“네. 형.”

간단하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내 말을 알아먹지 못하는 인원은 없다.

그래도 2회 차 대륙의 준 정예라면 정예라고 말할 수 있는 놈들이었으니 적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얕보이면 안 되지.’

파티원들에게도 조금씩 조금씩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한다.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꼴이었으니 본인들 나름대로 대열과 진영을 정비하는 것이다.

급조된 파티이기는 했지만 호흡이 꽤 잘 맞아 보인다. 생각보다 더 단단한 파티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두드리기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당연히 정진호도 이를 인지하고 있을 터.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할 염려는 없다.

이 장소가 포위망에 발각되는 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

“…….”

그렇게 비정상적인 침묵이 장내를 감싸고 있던 시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여단 놈들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

“…….”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인원은 총 다섯 명,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인원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10명 안팎인 것 같았다.

어차피 얼굴이 다 까발려졌으니 가면은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모두가 맨 얼굴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적들의 모습을 확인한 파티원들은 괜스레 무기를 고쳐 잡았고, 정진호와 한번 부딪친 적이 있었던 라파엘은 대놓고 녀석들을 적대시하고 있었다.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

튜토리얼에서 한 번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지만 그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 눈에 띈다.

상처가 조금 많아진 것 같기는 했지만 큰 차이는 없다. 허리춤에는 율리에나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검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전설 등급을 받은 아이템들처럼 보였다.

“너….”

라파엘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에는….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정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분은 구면이신 듯한데….”

“…….”

“저희와 부딪쳤던 동료를 찾으시는 거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습니다. 당신이 사라진 직후에 전부 도망쳤으니 말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믿지 못하셔도 할 말은 없겠지만 피차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저희들 역시 당신의 파티원들을 추격할 여유가 없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저희가 처한 상황을 모르고 있지는 않으신 듯한데… 생각해 보십시오. 저희가 왜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당신 동료들을 쫓겠습니까?”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고 있나?”

“글쎄요. 서쪽 방향으로 사라진 것은 분명 확인했습니다만… 이 이상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

“그런데….”

“…….”

“왜 자꾸 반말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금발 애새끼가.”

이빨을 보이며 살기를 드러내는 녀석. 2회 차 튜토리얼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살기가 사방에 퍼져 나간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꺼림칙한 느낌에 라파엘이 검으로 손을 가져갈 정도였다.

전투 직전의 경고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까. 그 모습을 본 여단원들의 목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죽여도 돼?”

“죽이는 거야? 단장?”

“최대한 빠르게 죽이는 수밖에 없지 않나요? 여기까지 쫓아온 것만 봐도 한 수는 있는 것 같은데… 이런 놈들을 살려 놓는 건… 앞으로의 일에 방해가 될 거예요.”

‘위압감은 있자너.’

펠리스 하네스트와 김명원이 가짜 여단을 목도했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죽여도 돼? 죽이는 거야, 단장?’ 같은 대사는 더 문브레이커 녀석들이나 할 법한 대사였지만 사람을 몇백, 몇천 명이나 죽여온 놈들에게서 나오는 말이다 보니 쉽사리 무시하기 어렵다.

“저 꼬맹이 맛있어 보이는데… 단장….”

‘무슨 몬스터야? 시바?’

인상적이었던 것은 쌍둥이들과 선희영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 비주얼 멤버들은 미리 빼돌린 것일까.

‘그래. 비주얼은 인정해야지.’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놈도 눈에 띄지 않는다.

키가 멀대같이 큰 놈 하나, 박덕구에서 근육을 60% 덜어내고 지방을 90% 채운 것처럼 보이는 녀석 하나, 가만히 보면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는 녀석이 하나, 키가 작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여자 한 명.

좀 괜찮은 놈들도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그중에서도 비주얼이 빼어난 쌍둥이와 선희영은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능력은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놈들은 2회 차 대륙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 파티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녀석들을 제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곧 터질 것 같은 분위기이기도 했고, 나나 녀석들이나 이 자리에서 부딪치는 것을 그다지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제가 할게요.”

“형?”

“피차 이렇게 힘 싸움 하고 있을 시간은 없죠. 당신들도 당신들 입장이 있을 테니 말이에요.”

“말이 통하는 놈이 하나 있군.”

‘초면인가 보네.’

“한 자리에서 계속해서 있는 건 당신들한테 그다지 이롭지는 않겠죠. 최대한 빠르게 대화를 하고 싶은데… 사람들을 물려주실 수 있나요?”

“글쎄… 우리들이 너희들을 믿을 수 있나?”

“믿지 못할 거라면 이렇게 저희를 기다리지도 않았겠죠. 최소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은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 정체나, 여기 있는 인원들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당신들을 찾아왔는지는 알고 가셔야 하지 않겠어요?”

“…….”

“거절하고 싶으시면 거절하셔도 돼요. 거절할 입장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

“당신들… 배신당했죠?”

순간적으로 적의가 쏟아진다.

“협상을 하고 싶은 거라면 조금 더 얌전해지는 게 좋을 텐데….”

‘아니야. 넌 나를 못 죽여.’

정진호는 충동적이다.

하지만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다.

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다.

만약 이 새끼가 그저 그런 멍청한 살인마에 불과했다면, 집단을 만들 생각도, 집단의 뇌를 영입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길거리에 널려 있는 다른 멍청이들처럼 꼬리를 잡혀 뒈졌겠지, 뭐.

소수 인원인 여단이 대륙에 유명세를 떨친 것은 1지혜와 1기영의 영향도 있겠지만 중심을 잡아준 녀석의 역할도 꽤나 중요했을 거라는 거다.

본인들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었지만, 이 상황을 이끌고 나가는 힘은 내게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녀석이 잘 이해하고 있다.

“형. 저 녀석은 위험해요.”

‘아니, 좀 꺼져. 진짜.’

박리안도 있으니까. 여차하면 나 대신 칼 맞아줄 사람 있으니까 괜찮다고요. 그리고 쟤가 그렇게 멍청하지도 않고요.

“어린아이니까… 사람 한 명은 대동할게요. 당신이 혹시 저를 납치할지도 모르니까요. 기모 씨?”

“네.”

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현으로 두 손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가자 마찬가지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가 아니라 둘인 것 같지만… 뭐 상관없겠지.”

‘리안이도 눈치챘나 보네.’

테이블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만무.

붕대로 얼굴을 칭칭 감은 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했는데 그다지 개의치는 않는 모양새였다. 그야 상황 자체가 수상할 테니 사소한 것에 의문을 느낄 시간이 없을 만도 했다.

처음 보는 얼굴들에 처음 보는 무력을 가진 집단, 금발 꼬맹이는 붕대를 감은 꼬맹이를 형이라고 부르고 모두가 자신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화를 하자고 말하고 있는데 사소한 의문이 중요할까.

“궁금한 게 많으신 표정이네요.”

“그다지.”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면….”

“…….”

“조금 곤란한 상황에 처하신 듯한데….”

“…….”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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