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63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3)
-누나. 혹시 쌍둥이들 최근에 라이오스로 파견 간 적 있어?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안 그래도 지금 걔네 찾겠다고 온 대륙이 난리 나서 얌전히 격리돼서 지내고 있는데.
-확실해? 밖에 나간 것도 확인 못 했고?
-어제오늘, 그저께도 저랑 같이 식사했어요. 얘들이 밖에 못 나가니까 놀아달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쌍둥이 말고 다른 애들은?
-걔네들도 뭐 똑같죠. 분위기 좀 잠잠해질 때까지 제가 확실하게 관리하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래?
-그렇다니까요. 그나저나 오빠. 이번 진 군사 실적평가 때문에 말인데요.
-아. 어떻게 하지? 그거 못 갈 것 같은데.
-아아아아… 최근에 조금 실적이 나오고 있거든요. 안 그래도 진 군사가 그것 때문에 이를 갈고 있던데… 안됐네요. 아무튼 거기는 어때요. 괜찮은 거 맞아요?
-응. 별문제는 없어.
-별문제가 없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오스칼, 라파엘과 잠깐 헤어진 이후에도 괜스레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게 된다.
지혜 누나가 얘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내린 결론을 부정하고 싶었던 탓이었다.
‘너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아닌가?’
이렇게 갑자기… 1회 차와 조우하는 것이 가능한가?
잠정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이 기현상을 납득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대륙이기는 하지만 이것보다 더 설명하기 힘든 일은 찾아볼 수 없다.
내 가설이 맞다고 도장을 찍기에는 이른 타이밍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연히 베니고어와 벨리알은 1회 차 던전 같은 것들을 만든 적도 없다. 아니,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와는 다르게 1회 차는 지나간 서사가 아니라 사라진 서사였다. 내가 알기로 우리 측에서 이걸 가지고 이벤트를 벌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물론 내가 모르는 방법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에바야.’
모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육망성은 소환 마법진이 아니었나 보네.’
2회 차와 1회 차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아닐까. 그걸 발동시키는 건 문어촉수 놈들이고?
육망성 놈들은 본인이 무얼 숭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트라오레 교수와 그 똘마니들, 그러니까 육망성 열차의 꼬리 칸에 타고 있는 녀석들은 본인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이게 무얼 뜻하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걸 숭배하는 것뿐이다.
재미있는 상황이다. 녀석들이 숭배하는 게 악마나 균열에서 튀어나온 존재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1회 차와 2회 차를 연결하는 터널이었다니. 1회 차의 존재도 알지 못하는 놈들이 그냥 숭배하고 있을 뿐이었다니.
어떻게 생각해도 초월적인 의지가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놈들의 하수인들이 문어촉수괴물 놈들일 테고… 대륙 어딘가에 그 의지가 뿌리 박혀 있다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대륙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보안 시스템에는 분명히 문제가 없었는데… 구멍이 뚫린 것도 확인이 되지 않았고.’
그게 아니라면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거겠네.’
그것도 아니라면….
‘로헨으로 가는 문을 타고 들어 온 건가?’
우연에 우연이 겹친 사고라기보다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대륙을 공격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적이 많으니 후보는 너무 많아 특정 지을 수도 없다. 원래 알고 있는 놈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새로운 놈들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퍼즐들이 많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지사.
본래 이럴 때는 차근차근히 눈앞에 있는 단서부터 파고 들어가는 게 정석이었다.
이를테면….
라파엘이 준 샘플부터 말이다.
이상한 돋보기로 문어 대가리를 살펴보고 있던 막스가 입을 연 것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정리되었을 때였다.
“균열에서 나온 건 아닌 것 같아요. 아버… 아빠.”
“그래?”
“네.”
“최소한… 균열박물관에서 나온 건 아니에요. 알고 계시겠지만 균열에서는 워낙 여러 가지 물건이나 생명체들이 나와서… 확실히 특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균열이 열리고 닫힌 적은 없어요. 박물관이 아니라 대륙 전체를 봐도 마찬가지예요. 이곳에 가장 큰 균열이 봉인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균열 수호자 메텔 님께서는 대륙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균열을 파악할 수 있게 시스템을 짜 놓으셨거든요.”
“인간이 만든 물건이니까… 실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거의 99.1%로 시스템은 완벽해요. 오차는 있지만 그 오차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라고요. 무엇보다 균열에서 나온!”
‘지 엄마 깎아내렸다고 바로 얼굴 벌게지는 것 봐. 나도 너희 엄마랑 친했어. 이거 만드는 데 나도 손 보탰고. 시바.’
“균열에서 나온 것들은 보통 특이한 균열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이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만약 균열에서 나온 것이 맞다면 적어도 나온 지 몇 년은 지난 후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
“네. 확실히 말할 수 있으니 안심하셔도 돼요. 물론 다른 샘플을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정말로 확신할 수 있어?”
“…….”
“…….”
“물… 물론 오차가 있어서… 백…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니. 됐다. 됐어. 일단 확률이 낮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되겠네?”
“네… 네. 낮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희박해요. 없, 없다시피 할 정도로….”
아무래도 더 이상 물어도 의미 있는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았다. 막아들 이 새끼는 균열박물관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았으니 말이다.
아마 오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니라고 바득바득 우기겠지.
쓸데없는 거로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게 좋을 듯싶었다.
“혹시 저 샘플로 특정 마법진을 발동시킬 수는 있을까?”
“글…쎄요. 한번 실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연금공정으로 촉매로 만들 수 있겠지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 샘플이 하나밖에 없어서 선택지가 많지 않네요.”
‘그래. 내 생각도 그래.’
“일단 몇 가지 실험을 더 해봐야 가닥을 잡을 수 있는데… 아버지는 지금 바쁘신가요?”
뭔가 살짝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막아들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오랜만에 부자간의 느긋한 실험 라이프를 꿈꾸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막스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한번 실험에 들어가면 하루 이틀로 끝나는 일이 아니기도 했으니까. 늦어도 이틀 안에는 출발해야 하는 만큼 이런 약속을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럴 만한 시간은 없을 것 같은데….”
“역, 역시… 그러신가요….”
‘얘 마음 약해지게 왜 이래.’
“실험은 나중에 하고… 샘플을 분리시켜서 촉매로 만드는 작업만 같이 해볼까?”
“네… 네!”
‘던전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세팅해.”
“네!”
‘싱글벙글이자너. 아주.’
사실상 무척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기는 한 모양이다. 곧바로 마공학절단기에 샘플을 집어넣고 문어 대가리를 1/3로 가르는 막스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혹시나 샘플이 망가질까 곧바로 마력으로 절단면을 감싼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시공간 정지 보관소에 집어넣는다.
물론 중간중간에 간단한 스몰톡을 나누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마 막스의 목적은 여기에 있을 테니 말이다.
“누나가 요즘에 조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
“네. 디아루기아 님께서 엄하게 교육을 시키고 계신 것 같아서… 저는 잘 모르겠는데, 드래곤 종족들도 배울 게 많은 것 같았어요. 요즘 여기저기 다른 고룡 분들도 둥지에 많이 방문하시고… 뭘 준비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나가 많이 힘들어하세요. 인간의 생활방식과 드래곤의 생활방식에서 오는 괴리감을 느끼시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래도 언제나 당당하시지만… 가끔 조금 우울해하고 계신 것 같아요.”
“…….”
“부쩍 아버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아버지가 그립나 봐요.”
이건 은근히 디아루리아를 언급하며 자신의 원하는 바를 흘리는 화법이었다. 누나 챙겨주는 김에 지도 조금 챙겨달라는 거겠지.
보통 디아루리아와 막스는 세트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그래? 그럼 이번 일이 끝나면 같이 키즈 월드라도 갈까?”
“키즈월드… 제, 제가 무슨 어린애인가요? 하… 하지만 누나는 좋아할지도 모르겠네요.”
‘얘 입 찢어진다.’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력 있는 외과의사가 집도를 하는 것 마냥 어마무시한 집중력이 느껴진다.
‘이거 순도 99퍼센트짜리도 나올 수 있겠는데.’
공정하기 전이나 후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확신도 없는 만큼 준비물이 질이 좋아 나쁠 건 없다. 아니, 오히려 백번 환영해도 모자라다.
“그리고 놀이공원도 가야지.”
“놀… 놀이공원이요? 그… 그건 세라나 좋아할 것 같은데.”
약간의 불순물도 들어가게 하지 않게 하려는 움직임. 중간중간 주문을 외워 공정기로 들어가려고 하는 불순물을 태우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빠도 어려졌으니까. 같이 타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열차에서 사진도 찍고….”
“아, 아버지도… 참… 농담도….”
심지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있다. 꽤 어렵다고 할 수 있는 작업을 너무나도 물 흐르듯이 이어나간다.
물론 어떤 것을 공정 촉매로 만드는 과정이야 언제나 해왔던 것이지만 문어 괴물 대가리는 새로운 샘플이 아니었던가.
그만큼 많은 집중력을 소모해야 가능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모습이 당황스럽다.
“아버지. 하나는 물약으로, 하나는 고체로 만드는 게 좋을까요?”
“응.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잠깐 이것 좀 맡아주시겠어요?”
“…….”
심지어 꽤 적극적이다. 억지로 질질 시간을 끌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쭉쭉 진도를 빼고 있는 모습.
아무래도 즐거운 실험시간보다는 즐거운 놀이공원이 더 취향이겠지.
어른인 척하고 있었지만 녀석은 꼬맹이에 불과했다.
“거의 다 된 것 같네요. 순도도 꽤 높아요!”
‘진짜 높네.’
“원본이랑 큰 차이가 없겠는데요? 평소보다 양도 많이 나왔고… 서너 번은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마법진의 종류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차이도 있고…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생했어. 막스.”
“고생은 아버지가 더 하셨죠.”
‘아니야. 나 별로 고생 안 했어. 고생은 정말로 네가 많이 했지.’
앙증맞은 손으로 실험복과 고글을 벗자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린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실험복 안에서 더운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진짜 놀아주기는 해야겠다.’
물론 확률은 낮지만 말이다. 이번 한 번은 안아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살짝 손가락을 까딱거린 이후에 포옹을 해주니 당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다. 막아들의 공을 치하한 이후에는 원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쁜지 본인의 의욕을 표출하고 있었다.
“샘플 연구는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그,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서 결과를 알려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래. 그래. 그런 자세야.’
“아마 추가 샘플을 구할 수도 있을 거야. 같은 거 말고 다른 종류로… 정연 씨 도움도 받고….”
“네!”
“나머지는 마탑에 의뢰하는 게 좋겠다.”
“마탑이요? 그쪽은 굳이….”
“아니야. 그쪽 노인네들도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연구만 하는 사람들이니까 뭐라도 나올지 모르지.”
“아아! 그렇겠네요. 방구석 노인네라도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군요… 역시… 아버지… 그럼 출발은 언제 하시나요?”
“인선이 아직 정해지지를 않아서. 그것만 정하고 가야지 아마 오늘 안에 출발할 것 같은데….”
물론 이미 대부분은 정해져 있었지만 말이다.
라파엘과 당초 함께하기로 했었던 우정 길드… 그리고 파란 길드원들을 몇 명 차출해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길드원 모두를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모두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혹시나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대륙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라파엘과 내가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아직 모든 게 불확실해.’
아직 모든 게 불확실하다.
2회 차와 1회 차가 지금 같은 시간선을 공유하는지, 만약 내가 지금 1회 차와 조우한다면 미래를 일그러뜨리는 것은 아닌지.
1회 차… 그러니까 가면 쓰레기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지… 만약 이해하고 있다면 목적은 무엇인지….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처럼, 1회 차에서의 일이 2회 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물론 너무 많은 신중을 기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내가 거기 가서 무슨 짓을 벌이든 1회 차는 멸망할 운명이고 멸망하는 게 맞으니까.
1기영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려 녀석의 계획만 어그러뜨리지 않는다면 2회 차에서는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전무하다.
‘물론 그냥 환상일 가능성도 있지만….’
어쩌면 내가 2회 차까지 영향을 미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움직여야 했다.
물론 그전에 필수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라이오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쪽으로 간 여단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를 알아야 했다.
“…….”
“…….”
‘현성이가 기억하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