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56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25)
감동적인 비지엠을 깔아주고 싶다. 그 정도로 절절한 분위기였다.
“내 말 들리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다. 이 모자란 놈.”
“…….”
“그 같잖은 짓거리 집어치우고 어서 빨리 일어나란 말이다!”
진청은 계속해서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진영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녀석이 모를 리 없다.
이미 심장이 뛰지 않는다. 모든 게 하얗게 변해버렸고, 혼은 이미 육체를 떠난 지 오래다.
최소한 의학적으로 진영은 이미 죽어 있는 상태였다. 다른 이들 모두에게도 그렇게 비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는지 자꾸만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녀석 역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리라.
‘시바 눈물 날 것 같자너.’
“이 개자식!”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진영이 다시 한번 일어나 자신에게 아버지라고, 파파라고 불러줄 리 없다는 것을….
이미 진영에게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현재 진청은 계속해서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중, 대륙에서 가장 이성적인 인간의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많은 꼬맹이들 또한 할 말을 잃은 채로 진청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펠리스 하네스트도 조용히 할 수밖에 없다. 녀석이 아무리 슬프다고 한들, 진청보다 더 슬플 수 있겠는가.
결국에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했는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통신 채널로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지만 그런 메시지에 대답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미 진영은 숨을 거둔 이후였으니까.
-이… 미친 자식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나도 몰라.’
심지어 나를 번쩍 들어 올리지만 실이 끊어진 인형마냥 덜렁거리는 진영의 모습이었다.
“웃기지 마라. 웃기지 마!”
“…….”
“흐윽… 흐어어어어어엉….”
“흐으윽… 진영 님… 진영 니임….”
“웃기지 마! 이 녀석은 죽지 않았다. 이 개자식이 죽을 리가 없어.”
“군사님. 진영 님께서는… 이미….”
“군사님… 흐윽… 흐으윽… 진영 님을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부탁드려요.”
심지어 꼬맹이들도 울고 불며 달려들고 있다.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을 것 같은 녀석의 얼굴이 다시 한번 당황으로 물든다.
몰려들고 있는 꼬맹이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몇 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여기에 몰려든 꼬맹이들만 수십 명, 결국에는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심장을 두드리는 녀석.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려고 하는지 양 손바닥으로 명치 부근을 누르고 있었지만 놈의 목적은 진영의 심장을 뛰게 하려는 게 아니었다.
‘이미 마취 물약 먹었잖어.’
갈비뼈를 부러뜨리면 진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 것 같았지만 어차피 아무 소용 없는 행동이었다.
“제길! 같잖은 짓거리 하지 말고 일어나라는 말 안 들리는 거냐? 이 개자식!”
이유야 어찌 됐건 간에 진 군사는 무척이나 필사적으로 보였다.
-제기랄! 이기영 이 개자식! 듣고 있는 거 전부 알고….
-…….
-…….
-아니, 여기는 왜 오셨어요?
-그걸 말이라고! 네놈은 도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이런 개 같은 짓거리를 꾸미는 거냐.
-아니, 모처럼 지지율 밀어주는데 왜 이렇게 싫어해요?
-지지율 같은 개소리를… 당장 일어나지 못해?
-아니, 잘 생각해 봐요. 진짜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거 맞아요?
-뭐?
-…….
-…….
-일어나면 애 딸린 채로 살아가야 되는데 그냥 적당한 시기에 퇴장하는 게 딱 좋잖아요. 솔직히 진 군사님도 귀찮잖아. 진영 계속 살아 있으면 어떻게 관리할 건데… 지금까지는 그냥 숨긴 채로 살아왔다고 생각해도… 이렇게 유명해졌으면 그거 안 되잖아요.
-…….
-나야 진 군사님 손잡고 공화국 사교계 여기저기 다니면 좋지. 근데 생각해 봐요. 진 군사님이 원하는 게 정말 그건지.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게 다 진 군사 지지율 생각해서 그래.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장담하는데 이거 잘 팔려요. 살아 있는 쪽보다 아닌 게 더 잘 팔린다고.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게 진 군사 잘못인가. 테러리스트한테 빈틈을 보인 파란 길드 잘못이지. 물론 아들을 내팽개쳤던 도의적인 책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욕을 먹으면 파란이 먹지 진 군사가 먹겠어요? 원래 피해자는 욕 안 해요.
-더 이상 네놈한테 끌려다닐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라니까 그러네…. 알고 있잖아요. 이거 지지율 오를 거라는 거. 군사님 향후 공화국에서 진행하는 사업에도 힘 실어주려고 이러는 거라니까. 육망성 새끼들 잡는 것도 일이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모두가 좋은 해피엔딩이잖아.
-결국에는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거지 같은 심보겠지. 공화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해서 육망성 개자식들을 공화국의 적으로 만들겠다는 거 아닌가?
‘들켰네.’
-아무래도 교국 쪽보다는 공화국 쪽에서 더 활동을 많이 하고 있을 것 같아서요.
-웃기지 마라.
-아니, 들킨 김에 조금 더 솔직해질게. 맞아요. 군사님 말이 맞다고. 근데 그게 뭐 나빠요?
-이 염치도 없는….
-아니, 솔직히 그게 나쁘냐고요… 지금 어? 대륙을 위협하고 있는 새로운 집단이 그 모습을 드러낸 마당에 공화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한다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파란 길드는 지금 어? 군사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명예까지 팔면서 이러고 있는데? 저번에 한 말 또 하게 할래요? 진짜.
-…….
-우리는 이제 교국이나 공화국이니 하는 그런 관점을 벗어날 때가 됐다니까요. 하나 된 대륙, 하나 된 대륙만 생각해야 된다고요.
-웃기는 소리. 하나만 확실히 하지. 더 이상 네놈에게 휘둘릴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교국이니 공화국이니 큰 의미가 없다는 네놈의 말은 일부 공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중요한 건 네놈이 나를 팔아서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지금 공화국에서 무슨 소문이 나는지 알고 있는 거냐? 아니 모를 리가 없겠지. 전부 네놈이 꾸민 개짓거리일 테니까.
-군사님 결혼할 생각 있어요?
-…….
-아니잖아요. 솔직히 군사님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안 그래도 귀찮게 하는 사람들 많자너. 부관들이 그런 말 안 해요? 결혼하라는 둥, 뭐 후대 어쩌고저쩌고… 우리는 그런 분위기 아닌데 그쪽은 그런 분위기일 것 같거든. 그거 귀찮은 것도 단번에 해결되고 얼마나 좋아요?
-닥치고 일어나기나 해. 그리고 설명해라. 네놈이 그 어떤 감언이설로 나를 속이려고 해도 이번에는 절대로 네놈에게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과연 그게 될지 모르겠다.
-흥.
“…….”
“군사님… 진영 님께서는 저희들을 지키기 위해서… 흐윽….”
“…….”
“저희들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셨습니다. 흐어어어엉… 죄송합니다. 모두 저희가 부족한 탓입니다… 흐윽….”
‘이 분위기에서?’
마음을 먹었다는 듯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진 군사가 보였다.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꼬맹이들과 말을 섞는 것마저 이 사건에 말려드는 거라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슬그머니 몸을 내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습에 공화국 꼬맹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 애초에 진 군사를 바라보고 있었던 녀석들은 진 군사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눈물을 터뜨리고 있었다.
“죽여주십시오!”
“흐윽… 군사님… 진영 님께서는… 정말… 정말… 돌아가신 겁니까!”
“…….”
“이제는… 흐윽… 이제는 정말 진영 님을 살릴 방법이 없는 겁니까?”
“무, 무언가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이대로 끝이라니… 말도, 말도 안 되죠. 군사님. 진씨 가문의 저주받은 마력을 사용한다면 어쩌면….”
“진영… 진여어어어엉 님….”
“군사님… 제발 진영 님을 살려주세요. 제발….”
나였어도 도망가기 힘든 분위기였다.
하지만 진청 이 녀석은 그 어려운 걸 해내는 녀석이었다. 잠깐 고민에 빠진 듯했지만 녀석은 결심한 듯이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나와는…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다.”
“……?”
“이 녀석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
‘진 군사. 설마….’
한 번 더 결심한 듯이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일이 들어가면 서로 터치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을 넘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발언이 기어코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내 아들이 아니다.”
“…….”
“…….”
“이 녀석은… 내 아들이 아니야. 이 녀석은….”
퍼억!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야. 시바. 뭐야.’
어처구니없지만….
“당신… 그게 지금 할 소리야!”
김명원이 진 군사에게 손을 뻗은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니, 이건 또 뭐야.’
물론 꼬맹이에게 일격을 허용할 정도로 진 군사가 녹록지는 않다. 결국 녀석의 주먹은 진 군사에게 꽉 잡혀 버렸지만 그래도 진 군사가 받은 대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엄청난 수준의 정신적 대미지를 입고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니. 아니….’
녀석이 어떻든 간에 부자간의 사정을 알고 있는 김명원은 눈물을 가득 채운 얼굴로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당신 같은 사람… 절대로 용서 못 해. 절대로 용서 못 해! 당신의 아들이란 말이야! 이… 우리들을 구한… 이 사람이… 흐윽… 당신의 아들이라고!”
“…….”
“매번 당신한테 사랑을 갈구하던 아들이 죽었는데. 그게 할 말이야!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 전부 끝나는 거냐고! 진영은 매일 당신을 생각했어! 당신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어서! 매일… 매일! 노력하는 사람이었다고….”
“…….”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 전부 끝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거냐고… 너무 불쌍하잖아… 녀석이… 너무… 너무 불쌍하잖아! 진영은 조금 더 사랑받으면서 클 자격이 있는 녀석이었어! 조금 더 웃으면서 조금 더… 흐윽….”
‘진짜 도망치고 싶겠다. 시바. 아니, 이건 좀… 나도 좀….’
“이 녀석이 대륙을 구했다고! 희생이 뭔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 녀석이… 대륙을 구했다고! 진영이 그런 큰 뜻을 알고 있었을 것 같아? 이 어린 나이에 숭고한 사명이니 그딴 게 알 바야?! 그냥… 그냥 당신한테 인정받고 싶어서라는 걸 어째서 모르는 거야!”
‘아니….’
“똑바로 직시하라고! 이게… 흐윽… 진영이 당신의 아들이라는 걸… 제발… 인정… 해줘. 마지막 순간이라도… 제발… 녀석을… 아들로 인정해… 달란 말이야. 어려운 일… 아니잖아. 흑… 쉬운 일이잖아.”
‘명원아….’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아내를 잃었을 때 당신이 무슨 기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흐윽… 녀석을 인정해 달란 말이야….”
김명원의 뜨거움에 나조차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상황.
진 군사 역시 얼마나 큰 화상을 입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잘못했다. 이렇게 잔인한 상황이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걸 계속 보고 있으면….’
결국 미쳐 버리고 말 것이다.
김명원에 의해 온도가 올라간 다른 꼬맹이들도 녀석을 도망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청과 진영에 대한 소문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녀석들도 김명원의 말을 듣고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인지한 것이다.
꼬맹이들의 성난 눈초리가 무섭게 느껴진다.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동심의 적의는 나였어도 마주하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아이와 친하지 않은 녀석이라고 다를 리 없다. 결국에는 진 군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
“이 녀석이… 내 아들일 리가 없다.”
“…….”
소름이 돋을 정도의….
“우리… 진영일 리가… 없어.”
명대사였다.
‘비 내리자.’
이건 비 내려야 되는 타이밍이야.
아들을 잃은 진 군사의 눈물을 가려줄, 무거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