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54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23)
‘아니, 이 바쁜 분이 어떻게 여기까지 행차를 하셨데.’
-이 개자식 지금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거냐!
‘왜 그래요. 제가 뭘 했다고….’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당연히 몰래 엿보고 있을 줄 알았자나요.’
진청이 이렇게까지 흥분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쿵쾅거린다.
전신이 짜릿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잠시, 역시나 파파 발언이 효과가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워프게이트가 있을 테니 당연히 파란 길드까지는 한 걸음일 터,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보자 이미 린델에 도착한 녀석이 시야에 비쳐왔다.
공화국의 정예들과 함께 파란 길드의 부지를 찾은 녀석의 표정에 여유 따위는 없다. 오직 초조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현재 파란 길드의 작전 지휘관으로 선임된 조혜진과 대화를 나눌 겨를도 없는 모양인지, 무조건 결계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니… 왜 그렇게 이성을 잃으셨어요.’
-군사님! 일단….
-…….
-군사님… 일단 파란 길드와 함께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대화를 나누어 보시는 게… 현재 결계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흥분하시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웃… 웃기지 마라.
부하들에게 존댓말하는 컨셉을 잡을 여유도 없는 모양이다.
-군사님. 제발… 제발 잠깐만 멈춰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파란 길드에서 현재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니….
-위험합니다. 군사님. 군사님!!
-군사님!
너무나 달라진 진 군사의 모습 때문인지, 녀석의 부관들은 진땀을 뻘뻘 흘리는 중. 그야말로 폭주기관차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진실이 어찌 됐든 간에 눈에 보이기로는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으로 이성을 잃은 것만 같다.
얼굴은 잔뜩 달아올라 있었고 여유가 없고 초조해 보인다. 이제는 완전히 부관의 말을 무시하기로 결심했는지 묵묵하게 발걸음을 옮겨 나가는 중, 엄밀히 말하면 용인되는 행위는 아니었다.
린델과 파란 길드는 작전 협력을 요청한 것뿐이었으니까.
작전의 지휘권은 어디까지나 파란 길드에 있었으니 진청 녀석이 설치는 것은 외교적 결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별것 아닌 사건이라면 별것 아닌 사건처럼 비칠 수도 있겠지만 꼬투리를 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다.
심지어 준 전시상태라고 생각하면 더욱더 말이다.
현장지휘관을 무시한 채로 무작정 결계로 향하는 녀석의 모습은 가관.
아무리 흥분해도 똥오줌은 잘 가려왔던 녀석이 이 정도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공화국 진영의 녀석들도 여간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누가 보더라도 녀석은 지금 공화국의 군사로서가 아니라 진영의 아버지 진청으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
설정상 공화국의 진청은 이미 커다란 아픔을 겪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담담한 척하고 있었지만 그날 소중한 배우자를 잃었던 그 경험은 진청의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잃고 나서야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고 했던가.
-제기랄! 제기랄!
-군사님! 위험합니다! 결계에서 떨어지십시오.
-군사님! 그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흥분한다고 해서 진영님이 돌아오시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분명 녀석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있었던 지울 수 없는 과거를 말이다. 그날과 같은 풍경, 그날과 같은 분위기, 그리고 위험에 처하고야만 소중한 사람.
사실 진청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모든 건 자신의 탓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진영을 밀어낸 것은 사랑하는 배우자의 얼굴이 계속해서 떠오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공화국의 천재군사라고, 그림자의 영웅이라고 추앙받는 녀석도 사실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시바… 슬픈 이야기자너.’
장담하건대 녀석의 지지율이 10% 이상은 오를 것 같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아니, 이미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이 새끼 나한테 잘해야 돼. 진짜.’
벌써부터 눈물을 훔치고 있는 공화국 관계자들의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심지어 충성심 높은 녀석들은 오열하고 있는 중.
-군사님… 흐윽…
-군사니임!!
-군사님!!!
존경하는 상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당연히 진청은 녀석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물불 안 가리고 결계에 다가선 녀석은 손을 뻗기 시작. 무려 정하얀이 쳐 놓은 결계에 손을 뻗은 녀석은 억지로 결계를 통과하고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시바. 진짜 화났나 부다.’
물론 몸에 대마법보호 어쩌고 같은 주문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대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계는 갑작스러운 침입자에게 반발해 계속해서 마력을 보내지만 이를 악문 공화국의 군사는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성큼성큼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내디딘다.
아마 평범한 모험가였다면 곧바로 몸이 바스러져 버렸을 것이다.
웅장한 배경음악이 깔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이었다.
-말도… 안 돼….
-군사님….
‘진군사 지지율 순항 중!’
-으아아아아아아아!! 제기랄! 이 개자식!
-말…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대로라면….
‘저걸 어떻게 말릴 건데.’
-군사님!! 제길!!! 군사님이 결계 안쪽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알려!! 지원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지원하도록….
-마법사들!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선배님! 선배님! 파, 파란에 알리는 게 좋겠습니까?
-미쳤어? 일단 주변 통제해. 제길… 나도 모르겠으니까. 단독 작전 펼치는 중이라고 양해만 구해둬. 어쩔 수 없다. 이미 우리 손을 떠났어….
-하, 하지만… 만약 이것 때문에 결계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렇지 않을 거다. 군사님이라면….
결계는 단순히 얇은 막이 아니다.
콘크리트 벽보다도 훨씬 더 두꺼운 마력의 벽이고 미로였다.
일단 무작정 결계에 손을 뻗은 진 군사도 결계를 완전히 해체하기는 어렵다고 느꼈던 것 같았지만 본인이 빠져나갈 길은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퍼즐을 푸는 것을 보니 확실히 머리가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시바….’
심지어 속도도 빠르다.
-이 개자식… 이기영… 이 개자식!
그냥 보고 있으면 천천히 걸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청의 부관과 부하들 역시 더 이상 쫓아갈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에도 녀석은 쾌속 전진은 멈추지 않는다.
물론 밖에서는 녀석의 부관들이 멍하니 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선배님….
-…….
-군사님의 저런 모습… 본 적이 있으십니까.
-나도 처음이다. 저 정도로 흥분하신 모습은….
-…….
-힘드신 분이시다. 강한 척하시기는 하지만… 사실은 여린 면도 가지고 계시고… 외롭고… 사실은 누구보다도 따뜻하신 분이시지.
-알고… 계셨던 겁니까? 진영 님의 존재를….
-확실히는 아니지만… 눈치채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종종 이야기도 안 하고 자리를 비우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진영 님과 사모님에 대한… 그 소문도….
-그래. 사실일 거다.
이대로 가다간 사건을 본 적도 있다고 증언한 녀석이라도 나올 것 같은 기세였다.
만델라 효과마냥 이미 여기저기에서 진청과 진영에 대한 간증 발언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중.
이기연을 본 적이 있는 놈들도 있었는지 이 가슴 아픈 사연에 한층 더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었다.
이미 지지율 상승은 결정된 상황, 장담하건대 여기에서는 되찾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기영 이 개자식! 개자식!
‘쟤 진짜 신체 능력 좋기는 했구나.’
그 와중에도 진청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계를 뚫고 나오고 있었다. 본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보니 또 놀랍다.
생각해 보니 뛰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동속도도 꽤나 빠르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스켈레톤들의 뚝배기를 시원하게 터뜨리며 돌진하고 있다.
권법 같은 건 쓸 여유도 없었는지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둘러도 스켈레톤들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날아간다.
과장하지 않고 마치 맹수 한 마리가 돌진하는 것 같은 속도와 박력이었다.
도대체 왜 저 신체 스펙을 가지고 군사 놀이를 하고 있었을까. 그냥 지가 장수로 튀어나와도 될 것 같은데.
‘진짜… 그렇게 구하고 싶었던 거냐고.’
하지만 구할 수 없다.
‘새삼스레 소중함을 깨달았냐구.’
본래 후회하고는 난 다음에는 늦는다.
꼬맹이들도, 진 군사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딱히 연기고 뭐고 할 필요도 없기는 했지만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로 향하는 것이 당연했다.
여전히 처절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는 도중, 결국에는 모든 힘을 사용한 진영이 결국 악마를 봉인하는 것에 성공한다는 이야기. 당연히 대가는 그 목숨이었다.
저주받은 마력을 한계까지 사용한 여파로 육체는 이미 부서졌다. 심지어 혼마저 깎여 나갔지만 이 어린 전사는 의연하기 짝이 없다.
친구들을 위해서, 그리고 어디에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아버지를 위해서 싸운 것이다.
[내가 이런 핏덩이에게! 당하다니….]
하는 거대한 소리는 아이들에게 들려오고 있을 것이다.
[내 오랜 숙원이… 안 돼…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이대로 끝날 수는… 다시 지옥 밑바닥에 처박힐 수는… 없어….]
아마 파파도 이걸 듣고 있지 않을까.
진영이 드디어 위기를 막아냈다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우리는 잘 이겨냈다고, 녀석이 결국 해냈나고…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이다.
하늘에 구름이 걷힌다.
다시는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햇빛이 쏟아지고, 불길한 검은 기둥은 천천히 그 자취를 감춘다.
태풍처럼 몰아치는 바람은 점점 멎어들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 대신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낸… 거야?”
“녀석이… 정말로 해낸 거냐고! 젠장!”
“진영! 진영 님! 진영 님이… 해내셨어요.”
“역시… 내 라이벌답군. 하하… 하하하….”
“진영 님! 괜찮으십니까! 진영 님!”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검은 불꽃 뒤에 자리한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꼬맹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여린 소년 하나다.
저주받은 마력이니, 공화국의 천재의 아들이니 하는 수식어를 모두 빼놓은 소년 하나였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불태운 것으로 모자라 그 생명력마저 불태워 하얗게 변하고 만 소년이었다.
이미 온기 같은 것은 없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동공은 텅텅 비어 있었고, 입술과 피부는 말라비틀어졌다.
희미하게 올라간 입꼬리만이 녀석이 만족스럽게 떠났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적막.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저… 저… 저 녀석… 괜찮은 거 맞지?”
하는 펠리스 하네스트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무척 떨리고 있었다.
“이봐… 저… 저 녀석… 괜찮은 거 맞는 거지? 흐윽… 흐으으윽… 진영. 진영 너… 괜찮은 거… 맞는 거지!”
“…….”
“대답해! 대답하라고! 젠장!”
너무나 당연하게도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하라고! 진영! 흐으으윽… 흐어어어으어어어엉… 대답해! 대답해에!!!!”
“…….”
“흐윽… 끄어어어어엉… 아아아아… 흐으으윽….”
솔직히 펠리스 하네스트랑은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이 꼬맹이는 현재 틀림없이 감정과잉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답하라고! 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