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50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19)
다소 낯 뜨거워지는 상황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아이들이 하나로 뭉쳐지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뜨거운 눈물 좀 흘려줘야 되는데….’
아마 친구 하나 없었던 현성이도 이런 과정을 겪었다면 조금 더 건강한 정신상태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위기가 오고 가지는 않았었겠지만 지구에서는 또 지구에서밖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니까.
김현성에게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오고 가는 관계가 있기야 했겠지만 정말로 마음을 나눈 친구는 또 다른 이야기다.
별것 아닌 걸로 울고불고 싸우고, 어렸을 때의 감성으로 함께 성장하는 건 확실히 바르게 자라나는 데 도움이 된다.
지구에 있는 친구를 떠올려 보면 아마 현성이도 녀석마냥 건강하게 자랐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다.
‘안 본 지 오래되니까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자너.’
괜한 생각에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자, 어느덧 시간이 흘러 출정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리 인사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진영 님. 이번 작전에 전위를 맡게 된 그레고리 맥심이라고 합니다.”
“반갑군. 이런 상황에서 인사하게 되어 유감이다.”
“…….”
“샤오 란, 더 합류할 인원은 없는 건가?”
“아직 사제 학우들이 합류 중이에요.”
“슬라바. 나머지는 어떻지?”
“공화국에서는 총 11명입니다. 그 외에도 연방과 연합에서도 각각 6, 7명이 자원했습니다.”
펠리스 하네스트 녀석이 끼어들 듯이 입을 열었다.
“교국에서는 총 12명이다.”
“나쁘지 않군.”
“…….”
“…….”
“그리고… 잠깐 따로 이야기 좀 해도 되겠나? 진영?”
“그렇게 하지. 펠리스 하네스트.”
“네 판단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
“김명원에게 부여한 임무에 대해서다. 녀석은 아직 부족해. 근성과 용기가 있지만 혹시 그게 만용이 되어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까 더 문 브레이커 녀석들과 만났을 때도… 운이 나빴다면 녀석은 죽었을 거다.”
“김명원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 네 생각보다 쓸 만한 녀석이니. 적어도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네놈도 보는 눈이 영 없군. 이 아카데미에서 녀석의 잠재력을 알아본 녀석은 없는 건가.”
“…….”
“…….”
조용히 중얼거리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펠리스 하네스트 녀석이 눈에 보였다.
뭔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영의 라이벌은 오직 펠리스 하네스트 자신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다른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어린아이나 할 수 있는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그만큼 자연스럽기도 했다. 아마 저 분한 감정은 녀석의 동력원이 되어 주겠지.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 더 이상 시간이 끌리면 좋지 않을 것 같아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이상 다른 인원을 기다리는 것은 무리다.”
“곧바로 가는 건가?”
“그래. 소환수와 레인저들도 녀석의 위치를 파악했겠지?”
“물론….”
“출정이다. 모두를 불러 모… 아니… 이미 기다리고 있었군.”
“…….”
“거창한 출정식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 모두 이번 일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듯하니… 우리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그게 대륙을 위해 지키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라.”
“…….”
“옆에 있는 동료들과 전우들을 위해서, 바깥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마지막으로 꼬맹이들의 전의를 불태우고 반항심에 불을 지필 한마디를 내뱉는다.
“네놈들을 어린애 취급했던 녀석에게 한 방 먹여줄 차례다.”
“와아!!!”
“너희들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라.”
“가자! 가자!”
“할 수 있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다들 모여!”
‘반응 진짜 좋네.’
은밀히 진행되어야 할 작전이지만 벌써 환호성과 고함 소리가 튀어나온다.
두려움을 떨쳐 버리려는 듯하기도 했지만 녀석에게 한 방 먹여주자는 말이 놈들의 심금을 울린 것 같았다.
“그럼 가자.”
동시에,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작전 지휘는 내가 맡는다. 펠리스 하네스트. 이견은 없겠지.”
“그래.”
작전은 간단했다.
사실 작전이라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1회 차 여단 녀석들이 국제학원 내에 남아 있는 끄나풀들을 정리하는 사이에 학생들은 트라오레 교수를 치는 것뿐이었으니까….
실로 학원물의 마지막 종장을 야기하는 에피소드였다.
알고 보니 교수가 빌런이었다는 이야기는 조금은 식상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왕도는 무너지는 법이 없다.
졸지에 학생의 신분으로 대륙 구하기에 동참하게 된 꼬맹이들의 얼굴에는 엄청난 책임감과 두려움이 함께 깃들어 있기야 했지만 지금에야 저렇게 두렵고 무서울지는 몰라도 이후에는 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무려 꼬맹이 시절 때 대륙을 구하다니….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소서에 한 줄만 써놔도 어떤 길드든 집단이든 간에 프리패스가 가능하다.
사실 이력서를 쓸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이 끝나면 녀석들 모두에게 헤드헌터들이 달라붙을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말이다.
‘얘네들 나중에 어른 되면 밥이라도 사야 돼.’
요즘 어디서 이런 실적 쌓게 해주는 사람들 없다. 무려 대륙을 구하게 해준다니 이 정도면 요즘 여러 단체에서 원하는 경력 있는 신입의 조건에 부합하다 못해 넘친다.
옥상에 있는 트라오레 교수에게는 뛰어서 2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곧바로 보스전에 들어가는 것보다 허무한 일은 없다.
일단은 잡몹 정리부터.
“제길! 스켈레톤이야!”
“트라오레 교수. 이 비겁한 새끼! 네크로맨시를 사용하다니!”
“그 교수… 솔직히 생긴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요.”
“수가 꽤 많아! 어떻게 하지? 진영?”
“돌파한다.”
“이 정도는 실습에서도 많이 상대해 봤다고!”
장래희망이 박덕구인 것 같은 아기 돼지들이 우르르 몰려가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각자 무기를 휘두르며 스켈레톤 무리들과 싸우는 모습이 꽤 박진감 넘친다. 둔기로 머리를 깨부수고 검으로 놈들의 팔을 자른다.
사제들이 보호막과 버프를 걸어주고 계속해서 근접 딜링에 집중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영재들은 영재들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드디어 말이다.
‘꼬맹이들이 제법이자너.’
위력은 낮았지만 연계는 평범한 모험가들과 비슷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심지어 그렇게 어색해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 겪어보는 진짜 실전에 조금 겁을 집어먹고 어리버리 타는 몇몇 놈들도 천천히 익숙해지고 있는지 스켈레톤을 상대로 자신의 꿈과 희망을 펼치고 있었다.
“이야아아압! 방패 밀쳐내기!”
“몸통 박치기!”
‘기술 이름 외치지 마.’
“휠 윈드!!”
‘그런 것도 하지 마.’
“스켈레톤 메이지까지… 트라오레 이 개자식….”
“방어마법 외워!”
“느껴지는 마력이 크다. 막을 수 있나?!”
적당히 한마디 내뱉어준다. 어차피 포메이션이니 뭐니 열심히 떠들어 봐야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녀석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 수준일 테니까.
“파장을 맞춘다.”
“뭐… 그건… 배운 지 얼마 안 됐….”
“배운 것은 써먹으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법사들은 3인 1조로 파장을 맞추고 같은 주문을 외우며 대응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어. 우연히 스켈레톤은 뚫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트라오레 교수에게는 당해낼 수 없을 거다.”
“진영 말이 맞아. 우리가 마력량이 적다는 건 사실이니… 지금이라도 익숙해지는 게 맞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밀어붙여!”
스켈레톤 메이지들의 지팡이에서 마력의 구체가 생성되어 뻗어 나간다.
타이밍 좋게 완성된 방어마법이 메이지들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낸다.
그사이에 돌진한 아기 덕구들이 스켈레톤의 여리여리한 몸을 몸으로 깔아 뭉개버렸다.
‘쟤네들은 뭘 먹고 저렇게 큰 걸까. 누가 봐도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심지어 몇몇은 얼굴만 동안일 뿐이지 수염도 드문드문 나 있다.
“밀어붙여! 뚫어내!”
“정화마법 좀 외워줘! 비열한 트라오레가 어떤 비겁한 술수를 준비해 놨을지 몰라!”
“사제들 뭐 하고 있어!”
“이 비열한 놈!”
타이밍 좋게 독구름이 뿜어져 나오는 것도 완벽하다. 물론 저걸 트라오레 교수가 준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금지된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트라오레 교수의 비열함에 대부분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진영, 어떻게 하지?”
“뚫어낼 뿐이다. 다른 방법 따위는 없어.”
그 와중에 김명원이 보여주는 활약이 인상적이기는 했다.
“…….”
‘아무래도….’
“…….”
‘쟤는 병과를 잘못 정한 것 같은데.’
쌍둥이들 때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몸놀림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 검사로 전직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얀이가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력회로도 점점 가열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캐스팅으로 스켈레톤 병력들에게 대미지를 넣어주고 있었다.
‘마력이 조금 굳어 있었나.’
움직이면 움직이고, 주문을 외우면 외울수록, 점점 가속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 큰 주문은 외우지 못하고 있었지만 속도와 정확도가 점점 빨라진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번 처방을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을 정도, 그런 김명원에 모습에 펠리스 하네스트도 자극을 받았는지 목이 터져라 주문을 외치고 있었다.
물론 조금 더 정통 마법사에 가까운 하네스트 녀석은 안전한 후방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지만 그 위력과 타이밍이 사뭇 인상적이었다.
노을빛의 그리폰같이 마력을 크게 사용하는 주문을 버리고, 이미 선대 마법사들이 쌓아 올린 스펠들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꽤 폼이 오른 모습이었다.
“둘 다 쓸 만해질 것 같은데….”
샤슬갈 트리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쌍둥이들이 주는 공포와 압박감이 엄청난 수준이었던 건지, 스켈레톤들이 내지르는 비명에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제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많이, 어렵게 준비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맥없이 쓰러지는 뼈다귀들이 하나둘 쓰러지자.
아이들이 우르르 옥상으로 몰려간 것은 당연지사.
엄청났지만 엄청나지 않았던 격전이 끝난 이후….
마침내 시야에 비친 것은 거대한 마법진의 가운데에 있는 트라오레 교수였다.
“…….”
“…….”
확실히 하연수가 준비를 잘해놓기는 했는지 마지막 무대다운 분위기와 연출, 결계 때문에 제대로 된 하늘은 보이지도 않았다.
피로 그려진 것 같은 마법진에서는 벌써부터 우울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트라오레 교수는 이미 맛이 가 있었다.
“히히힉… 히히히이히히힉!”
같은 소리를 내며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약물을 사용해 머릿속까지 전부 열어본 게 틀림없어 보였다.
“드디어… 히히힉! 때가 왔다… 히이히히히힉! 우리는… 달을 부수는… 자… 크륵….”
“제길… 이미 주문이 시작된 건가….”
“죽여주마! 히히힉! 꼬, 꼬맹이 들아… 나, 나 트라오레는 마법의 신이… 신이 될… 존재… 히히히힛! 히히히힉!”
“모두 피해!”
그렇게 시작된 보스전.
모든 것을 희생하고 멋지게 퇴장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
“…….”
쨍그랑!
“어? 뭐야! 진 군사. 우리 이기영 후배가 놀릴 게 걱정되기라도 해? 컵을 다 떨어뜨리네.”
“…….”
“…….”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응?”
“왠지… 왠지… 다시 한번 거지 같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길… 왜 이렇게… 불길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