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49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18)
겉멋만 든 마법이 펠리스 하네스트 녀석의 손에서 뻗어 나왔다. 그야말로 비효율의 극치. 돈을 주고 사라고 해도 거를 정도의 주문이었지만 겉모습은 하나만큼은 화려했다.
주문이 비효율적이라는 뜻은 그만큼 많은 마력이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히 한 마리의 그리폰을 만들었던 게 한계였던 것과는 이전과 다르게 그래도 두 마리의 그리폰이 나왔으니 이러나저러나 녀석 입장에서는 막혀 있던 벽을 넘은 셈이었다.
‘시바 왜 네가 각성하고 난리야.’
정작 각성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리고 시바 내가 주인공이어야 되는데. 왜 네가….
“전부 쓸어버려! 화이트폴! 블랙번!”
힘차게 손을 뻗으며 외치는 펠리스 하네스트가 보인다. 녀석의 손짓에 따라 화이트 폴과 블랙번은 앞 다투어 쌍둥이들을 향해 나아가는 중.
어째서 화이트 폴이 필요했는지 마법을 보고 있자니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이트 폴은 느리지만 큰 에너지를 품고 있었고, 블랙번은 빠르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
마력을 쏟아 부은 만큼 그만큼의 위력은 보여주겠지만 어디까지나 본체는 화이트 폴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장난 같은 마법에 당할 것 같아!?”
쌍둥이들 눈에도 그게 보이나 보다. 재빠르게 주문을 외우자 쩌정 소리를 내며 얼음이 바닥에서 튀어나와 화이트폴에게 당도했지만 블랙번이 날갯짓으로 화이트 폴에게 쏟아지는 마법을 상쇄시킨다.
인간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같은 마법을 상쇄시키기에는 충분한 마력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저건 도대체 뭐야! 제길!”
‘나도 몰라. 시바.’
“이거 어떻게 해? 누나?”
‘그러게. 이거 어떻게 하지.’
“이… 이거 어떻게 해?”
‘나한테 물어본 거 맞아?’
맞네.
아무래도 쌍둥이들은 급변하는 역에 자유연기를 펼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나 보다.
사실 여기서 명원이를 좀 띄워줄 생각이었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은 건가.’
스토리의 자연스러움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려면 펠리스 하네스트의 극 중 각성도 딱히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허락을 맡았다는 듯 나가떨어지는 쌍둥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흥. 이쪽을 잊었나 보군.”
다시 한번 진각을 밟고. 이번에는 발을 뻗는다. 발차기가 다소 어색해 보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흑염룡의 불꽃의 이펙트가 어설픈 동작을 상쇄시켜주고 있었다.
결국에는….
“아아아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기어코 쌍둥이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칫.”
“누나. 피해야 돼.”
“웃기지 마.”
“계획이 변경됐어. 여기서 계속 시간을 끌리면 안 돼. 결국 파란 놈들이 들이닥칠 거야.”
“흥. 누가 그 녀석들을 무서워할 것 같아?”
“대의를 잊지 마. 누나. 녀석들을 붙잡는 것만이 우리 계획이 아니야. 냉정하게 생각해야 돼.”
“제길… 이런 꼬맹이들을 상대로….”
“누나….”
“제길….”
“어차피 죽을 목숨들이야. 누나.”
“…….”
“…….”
“후우….”
“…….”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런 꼬맹이들을 상대로 굳이 열 올릴 필요는 없지.”
“…….”
“어차피 죽을 놈들이니 알려줄게. 곧 파란 길드가 통째로 날아갈 거야. 킥….”
당연히 현실에서는 이렇게 친절한 빌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 계획에 대해서 구구절절 떠도는 빌런이라니…. 이런 놈들은 만화나 소설 속에서도 나오지 않는 녀석들이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슬슬 힘들자너….’
아무래도 아이의 몸이다 보니 평소보다 피로가 많이 쌓인다. 평소라면 끄떡도 하지 않을 운동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슬슬 쉬고 싶다는 생각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전개를 빠르게 가져가는 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니만큼 다소 급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더라도 저게 알맞은 선택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글쎄. 과연 무슨 소릴까? 27군단 소환 사태를 기억하고 있다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까나….”
“너희들… 설마!”
“그럼 뭐라고 생각했는데? 킥.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사라져줄게. 조금 더 놀아주고 싶지만 이 언니는 바쁜 몸이거든. 가자.”
“응, 누나.”
“빨리 가자니까.”
“너희들에게 악의는 없어. 모든 건 대의를 위해서니까.”
“거기서! 제길!”
이어서 바람처럼 사라지는 쌍둥이들. 조금 꼬이기는 했지만 나름 멋진 마무리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크윽. 하고 바닥에 주저앉자 여기저기서 “진영 님”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샤슬갈 트리오와 그 외 공화국 녀석들, 심지어 교국과 연합, 연방의 학생들도 눈물을 줄줄 떨어뜨리고 있었다.
당연히 위기를 함께 헤쳐나간 만큼 아이들 사이에 위화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은 쓸데없는 줄다리기나 기 싸움을 할 때가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쳐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 시기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아이들도, 조금이지만 도움을 준 아이들도 모두가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중에서는 방금 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친 펠리스 하네스트도 자리해 있었다.
“괜찮나?”
“응.”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김명원을 일으켜 세운 이후 안부를 묻고,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기까지 하고 있었다.
공화국 녀석들을 살짝 긴장하는 듯했지만 잠자코 고개를 숙이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맙다.”
녀석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예의는 있자너.’
지금까지 자신이 이상한 특권의식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뻔할 뻔 자. 대장 노릇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펠리스 하네스트는 꽤 주도적으로 아이들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일단 의무실로 가도록 하지. 진영의 상처를 치료해야 할 테니… 분명히 명예추기경님이 만드신 포션이 있을 거다.”
“네.”
아이들을 능숙하게 의무실로 이끈 이후에는 새끼 여우 슬라바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모습이었다. 빅토르 갈리아가 기가 찬다는 듯이 “새끼여우와 저 녀석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라고 중얼거리는 것만 봐도 현 상황이 얼마나 이례적인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일단 다른 과 학생들과 합류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런가.”
“의무실 근처에 사제 학우들이, 또 연무장 근처에는 전위들이 있을 테니….”
“그것도 일이군….”
“제대로 된 소환마법이 가능하다면 소환수를 이용해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따로 인원을 파견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건 제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문제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직까지도 공포에 떨고 있는 학생이 다수, 쌍둥이들이 마지막에 꺼낸 이야기인 27군단 소환 사태의 재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쉽게 꺼낼 수 없었던 것 같았다.
특히나 피해 국가였던 연방의 학생들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무거운 이야기라고 해도 해야 할 때가 온다.
김명원, 펠리스 하네스트, 아릴 베이커, 샤오 란, 빅토르 갈리아, 그 외에도 싸울 의지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 몇몇이 나를 빙 둘러싸기 시작했다.
“네 의견을 묻고 싶다. 진영.”
“…….”
“그놈들이 말한 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이야.”
“…….”
“분명 27군단 소환 사태의 재림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이곳에 있는 학생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는 거겠지.”
“…….”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너무 뻔한 이야기야.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다.”
샤오 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결계를 뚫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요.”
“결계?”
“네. 분명 이 국제학원을 감싸고 있는 결계의 핵이 되는 장소가 있을 거예요. 외부에서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강한 결계지만 안쪽에서 뚫어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아마 바깥에서는 파란 길드원들이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저희가 결계의 핵을 찾아낸다면, 신창이건, 대마법사건, 누구라도 와서 상황을 정리해 주지 않을까요?”
“교수님들을 찾는 것은 어떻습니까.”
“정황상 교수들도 모두 당한 것이….”
“아니요. 분명히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를테면 천관위 교수나…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사달이 났는데도 학원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게….”
“확실히….”
“저는 국제학원 안이나 주변에 안개가 피어나오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교수님들도 모종의 결계에 갇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군.”
“각자 연구실에 봉인되어 있거나… 모종의 이유로 전투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교수님들을 구해낸다면… 문 브레이커 녀석들도 우리들을 결코 좌시할 수 없을 겁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을 주고 받고 있지만 이쯤에서 교통정리를 한번 해야 할 것 같다.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의견과 이야기들이 와중에 살짝 책상을 두드리자 시선이 집중된다.
“더 문 브레이커 녀석들은 아마 이 곳을 빠져나갔을 거다.”
“네?”
“들은 적이 있어. 인신공양으로 악마를 소환하려고 하는 육망성. 더 문 브레이커의 존재를 말이다. 공화국, 연방과 연합의 접경지대, 북부까지. 아마 녀석들이 이렇게 빨리 행동을 개시할 줄은 몰랐겠지. 놈들의 목적은 들었듯이 27군단과 비견될 만한 군단장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네. 확실히….”
“사람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주문이 아니야. 공간 전체를 제물로 삼는 종류의 주문일 거다. 여기에 온 녀석들은 마법진을 발동시키려고 침입한 것에 불과해. 최선은 직접 우리를 제물로 사용하는 것이었겠지만 모종의 이유로 계획이 틀어진 거겠지. 안정성은 다소 낮지만… 녀석들에게도 나쁜 선택은 아닐 거다. 실패한다고 해도, 대륙의 미래들에게 상처를 남긴다는 목적은 달성할 테니 말이다.”
“전부 떠났을 리는 없어. 적어도 소환주문을 발동시킬 사람은 이곳에 남아야….”
“트라오레 교수.”
그 말에 김명원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녀석이 협력자였다.”
“…….”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간 녀석들은 듣지 못했겠지만 트라오레 교수는 분명히 놈들의 협력자다. 아마 금지 마법에 대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트라오레라면 분명 가능할 거다.”
“제길! 이 추악한 놈이!”
“쓰레기 같은 놈이지.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기에 앉아 녀석을 욕하는 게 아니야.”
“…….”
“더 문 브레이커 놈들이 이곳을 떠났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기회다. 물론 트라오레 교수를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여기에 앉아서 얌전히 죽어주는 것보다는 나아. 다른 과 학생들과 합류하는 즉시, 별동대를 꾸려 트라오레 교수를 친다.”
“그… 그런….”
“네놈들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나는 놈을 치러 갈 거다.”
“…….”
“함께할 녀석들만 와라. 겁이 나 하지 못하겠다고 해도 비난하지 않을 테니까.”
의무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당연히 겁이 나지 않는 녀석들은 없다. 여러 금지 마법에 정통한 트라오레 교수를 일개 학생들이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단순히 죽는 것이 아니라 지금 것 느끼지 못한 고통을 느끼며 죽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확실히 몇몇은 뒷걸음질 치는 중, 하지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하겠습니다.”
파란 DNA가 첫발을 내디뎠다.
영화 속에서 꼭 등장하는 장면처럼 인상 깊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진영 님.”
빅토르 갈리아가 눈물을 닦으며 한 발자국 내디딘다.
“저도요. 당연히 함께 해야죠.”
샤오 란 역시 당연하다는 듯 손을 내민다.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나도 같이 갈게.”
그 외 엑스트라 놈들도.
“나도 간다.”
이름 모를 녀석도.
“저도… 가겠습니다. 교국을… 저희 연방처럼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재능 있는 연방 놈들도.
“나도 가겠어!”
재수 없는 귀족 놈도.
“죽더라도… 해보겠어요.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는 없으니….”
강의실의 분위기 메이커를 맡고 있는 녀석도.
“너희들만 죽게 만들 수는 없지. 하핫.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나!”
뜨거운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는 타이밍이다.
“너희들….”
그 말대로 모두가 주먹을 꽉 쥔 채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특히 펠리스 하네스트 녀석의 눈에서는 부담스러울 만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심지어 이 새끼는 감정에 취한 듯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우린 친구는 아니지만….”
“…….”
“적어도 함께 죽을 수는 있겠구나.”
살짝 주먹을 들자.
모두가 주먹을 부딪쳐 왔다.
정석이라면 정석이었고, 로망이라면 로망이었다.
‘현성이도 학창시절에 나랑 만났으면 병원 갈 필요도 없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