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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44화 (1,24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44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13)

긴장한 아이들이 침을 꿀꺽 삼켜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들이 지구에서 태어났다면 일족의 힘이니 하는 소리들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했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능과 함께 했던 꼬맹이들에게는 일족의 힘이라는 게 어색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제로 지구에서 소환된 이들이 결혼해 아이를 가진 경우에는 몇몇 특수능력을 물려받기도 하니 말이다.

예로 하얀이가 아이를 낳는다면 아마 마력의 축복을 받은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우리 돼지 새끼와 황정연이 결혼에 아이를 가진다면 초기억력을 물려받을 확률도 있겠지.

물론 초기억력과 같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능력의 계승 확률은 낮았지만 나와 누나가 원한다면 어느 정도 확률 조정이 가능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민감한 사안이니….

‘예산은 어마어마하게 잡히기야 하겠지만….’

대륙발전 측면이나 이후 기대수익은 꽤 높은 프로젝트였다.

이런 속사정을 꼬맹이들이 알고 있을 리 없겠지만 어쨌든 간에 드물게나마 이능에 대한 유전적 계승이 일어나는 만큼 김미영 팀장의 소설에 납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리나, 그 저주받은 힘이라는 건 도대체… 뭐야?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 불길하고 위험한 마력 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일지도 모르겠지만 단언하건대 도련님께 그 힘은 저주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 힘이 도대체 뭐길래….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가는 대대로 저주받은 마력을 계승합니다. 일족마다 그 힘의 크기가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진가의 일족이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사님께서도 그러했고, 당연히 도련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

-도련님께서는 군사님께 비견될 만한… 짙은 마력을 계승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어째서….

-그 힘을 컨트롤 하지 못하셨을 뿐입니다.

-…….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야 사실 뻔했다.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 정석적으로 훌륭한 전개였다.

특별할 것이야 없었지만 흥행 보증 수표들을 때려 박는 전개.

자신의 힘을 끝끝내 컨트롤 하지 못한 진영과 그런 진청을 못마땅해하는 아버지 진청의 갈등.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매일 피눈물 흘리는 노력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과 점점 삐뚤어진 방향으로 걷게 되는 진영.

두말할 필요 없이 정석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김미영 팀장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터라 바짝 집중하게 된다.

이제 동화책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이가 된 아들에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즐거웠던 건지, 아니면 그냥 본인이 재미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미영 팀장 역시 점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이 스토리는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고 들어간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진영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커다란 한숨을 내쉰 김미영 팀장이 물로 한번 목을 축인 이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결국 진영 님께서는 금지된 영역에 손을 대시고 말았습니다.

-…….

-…….

-그 녀석… 설마….

-…….

-…….

-당시에 도련님께서는 아주 어렸고, 흔들리기 쉬운 상태였습니다. 악마숭배자들이 도련님에게 찾아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모든 게 함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미 너무 많은 길을 떠나온 뒤였죠. 그들은 악의적으로 도련님을 이용했고… 그 후… 기다렸다는 듯이 폭주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도련님의 저주받은 마력으로 폭탄을 터뜨리려는 계획이었죠. 만약 진영 님의 몸이 터져 마력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면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올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희생자들을 이용해 군단장을 소환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말…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리액션이 좋기는 하네. 저래야 이빨 털 맛 나지.’

-그 소환사태를 막으신 분이 바로 진영 님의 어머님 되시는 분이십니다.

-뭐… 뭐!?

-자신을 희생해 도련님의 폭주를 막아내신 분이 바로 주인마님이셨습니다.

-그… 그런 일이… 어떻게….

김미영 팀장님의 생동감 넘치는 해설에 내 기억 속에서도 점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눈물을 흘리며 거대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뿜어내고 있었던 이기연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해진다.

살아가라고.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살아가라고. 언제나 엄마는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언제나 널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사랑한다고 말했던 이기연의 모습이 뇌리에 스친다.

그 옆에서 울부짖고 있었던 진청의 모습도 왠지 모르게 기억이 날 것 같다. 진짜 꼴사나웠지. 지금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추한 꼴이었다.

사실 나이도 맞지 않고, 라베하에서 이미 엔딩을 맞이한 이기연이 어떻게 그쪽으로 흘러들어 오게 됐나에 대한 개연성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본래 아름답고 따뜻한 스토리에서는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한 법이었다.

알고 보니 닮은 자매였다는 설정을 넣어도 되고, 이기연의 클론이 여러 명 있다는 설정도 참신하다.

여러 시간 선에 수많은 이기연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조금 과하기는 하지만….

‘이…거 쩌는 것 같자너.’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스토리였다.

아무튼 간에 진 군사가 자신의 아내를 잊지 못해 블랙마켓에서 노예를 구매했다는 이야기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한 이야기였다.

‘좋은 이야기였어….’

한차례 이야기를 쏟아낸 이후에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 김미영 팀장이었지만 아마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벌써부터 잔뜩 흥분한 김명원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기 때문이었다.

-…….

-…….

-너무해.

-…….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어떻게… 그럴 수가….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건 진영 혼자만의 잘못이 아닌데… 누구보다도 괴로운 건 그 녀석일 텐데…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았으면서… 지금에 와서는 아내의 죽음을 진영에게 책임 전가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명원아….

-그런 저주받은 마력을 타고나고 싶어서 타고나고 사람은 없어. 녀석은 그냥 발버둥 쳤을 뿐이야. 사랑받고 싶어서… 그냥 발버둥 치고 싶었던 어린애였다고… 누구보다도 부모님의 관심을 필요로 했던 아이였는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아이는 없다는 거 그 자식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사실은 진영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라는 거… 알고 있을 거잖아. 진영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거 진청 그 자식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야!

-군사님께서는….

-그 녀석은 아버지가 될 자격도 없는 녀석이야. 공화국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부모로서는 최악이야.

조금만 기다리면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대사를 던질 것만 같아 황급히 화면을 돌려 버렸다.

물론 녀석의 반응이 궁금하기는 했다. 분명히 김명원 입장에서는 아마 느껴지는 바가 있을 것이다. 마냥 귀하게만 자라온 줄 알았던 녀석이 사실은 자신보다 더 어렵고 혹독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녀석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슬그머니 화면을 다시 바라봤을 때.

-나… 녀석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

“으악!!!”

녀석의 말을 듣고는 곧바로 소리를 지르며 여신의 손거울을 던져 버렸다.

‘이 새끼 왜 이렇게 뜨거워?’

금방이라도 이 교육시설을 여름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뜨거움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소리는 들려온다.

-진영이 뭐라도 하든, 걔가 어떤 놈이든 간에 상관없이… 나는 녀석의 친구가 될 거야. 그리고 깨닫게 해주겠어. 넌 대단한 녀석이라고… 그깟 아버지 따위 날려 버리라고.

-…….

-네 생각은 어때, 아릴?

-사실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었어. 엄마도 아빠도 모두 나를 억압하려고만 하는 줄 알았는데…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왜 나는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난 걸까 같은 생각을 하루에도 몇백 번씩 했었지만… 나는 불행한 축에도 끼지 못하는 모양이네. 헤헤.

‘얘가 귀하게 커서 현실을 모르네.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난 거면 좋은 거지 이 사람아.’

-아릴….

-나도… 나도 네 생각이랑 같아. 조금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어쨌든 같은 학우니까…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어. 나 역시 그 싸가지 없는 도련님의 친구가 되어 주겠어. 그런데 계획은 뭐야? 어떻게 친구가 될 건데?

-그건 리나가….

-쉽지 않으실 겁니다. 도련님의 마음의 눈은 이미 너무 굳게 닫혀 있으니….

-무슨 방법이 없을까?

-저도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은 도련님께 인정을 받으시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실 겁니다.

‘역시 스토리가 그쪽으로 가는 건가 보네.’

이미 방향성을 정하기야 했지만 더욱더 확실해진 것처럼 보였다.

당장 방 문을 두들기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을 테니 앞으로의 계획도 짜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나도 할 일이 있다.

수치심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날려 버린 이후 조심스럽게 손거울의 화면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미 교육시설 곳곳에는 하얀이가 아네모네의 눈을 펼쳐 놓은 상황이었으니 오늘 일어난 일들이 전부 녹화되어 있었을 것이다.

‘명원이 성장 스토리도 성장 스토리이기는 한데….’

“교육시설 내의 문제도 해결하기는 해야 하니까.”

감찰단의 문제인지, 교육시설이 문제인지….

사실 펠리스 하네스트 녀석을 확인한 이후에는 무시해도 될 정도의 잡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야 했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곧바로 손거울을 돌린 것은 당연지사. 처음에는 펠리스 하네스트부터였다.

-이야아아아아압! 노을빛의 그리폰!

“…….”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리폰 한 마리가 튀어 나가는 것이 화면 속에 비쳤다. 아무래도 혼자 마법 수련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길… 왜 안 되는 거야. 이래선… 이래서는 녀석을 이길 수가 없다고!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좌절한 녀석이 드라마틱하게 땅바닥을 두들기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정신 차리자. 하네스트.

‘얘는 그냥 뭐 별거 없는 것 같은데.’

엄밀히 말하면 착한 편은 아니다. 조금 성격이 더러운 편으로 분류할 수 있었지만 프라이드가 강할 뿐 빌런이라고 도장을 찍을 정도는 아니었다. 소문이 조금 과장됐을 확률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천천히 손을 확 펼치자 수십 개의 화면이 시야에 꽉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 더 손을 확 펼치자 이번에는 수백 개의 화면들이 눈에 보인다.

각 장소에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이 계속해서 재생되는 중.

순식간의 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지만 별 무리는 없었다.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볼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보고 있느니 차라리 한번 빡세게 하고 끝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진영 님을 지켜야 해. 분명히 교국 녀석들이 움직일 거야.

-겨우 그걸로 정학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돼요. 이건 분명히 교국의 음모예요!

샤슬갈 트리오의 토론이나….

-후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걸 미리 말해두겠다.

한숨을 크게 쉬며 중얼거리는 천관위의 모습도 전부 머릿속에 들어온다.

천관위는 아네모네의 눈이 떠다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인지 안개로 자신의 모습을 슬쩍 흐리게 하고 있다.

‘눈치 빠르네.’

학생들은 당연히 문제가 없었고 교수들도 크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다음 수업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조교들한테 수업을 맡기고 본인 연구에 집중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저 정도야 적폐로 몰기는 힘들다.

고작 3일간의 데이터.

‘일이 일어나는 게 이상한가.’

이번에는 교육시설에 들르는 외부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조금이라도 발을 들인 외부인들에게는 곧바로 아네모네의 눈이 계속해서 따라다니게 설정해 놨지만 역시나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늘 술이나 한잔하자고.

같이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뭔가가 시야에 비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야… 저건.”

사실 별건 아니다.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육망성?”

구석 쪽에서 계속 재생되고 있는 화면 한편, 1초나 잡혔을까 하는 그 짧은 시간에 지나간 남성의 목에 육망성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교직원도 학생도 아니었지만 아네모네의 눈의 추적에서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별별 희귀한 능력자들이 다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천관위 정도가 아니고서야 아네모네의 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는 만큼 궁금증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얘 누구야?’

“이 새끼는 또 뭐야….”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었지만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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