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34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3)
“들었어?”
“뭘?”
“전학생이 들어온다는데?”
“나는 특채 입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야. 분명히 교환학생이라고….”
무척이나 떠들썩한 강의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있는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평소에도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했지만 오늘따라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에 이야기에 집중하려던 찰나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원아, 좋은 아침.”
“아! 좋은 아침, 아릴.”
“과제는 다 했어?”
목소리의 정체는 같은 강의를 듣는 클래스메이트 아릴 베이커였다.
왕국연합 어딘가에 귀족의 딸이라고 했던가. 아주 정확한 신분은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알 만한 이야기였다.
그녀처럼 예전 귀족이나, 교국의 의원이나, 어디어디의 높은 집안의 자식이나, 명성 높은 모험가의 자식들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태가 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몸짓에 깃든 기품이나 예절 같은 것이 그러했다.
심지어 가문에서 전문적인 기초교육을 배우고 온 경우도 많다.
사교계에 일찍 얼굴을 내밀거나 가문끼리 잘 알고 지낸 사이라면 모르고 있을 수가 없었던지라 금세 본인들끼리 어울리고는 했기 때문에 어떤 녀석이 귀족의 자식인지, 어떤 녀석이 명망 높은 정치인의 아들인지는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릴은 그나마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케이스였다. 물론 소위 말하는 있는 집 자식들과도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평범한 학생들과도 두루두루 잘 어울리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응. 천관위 교수님 거? 아니면 히들링턴 교수님 거?”
“당연히 천관위 교수님이지.”
“전부 다 하기는 했어. 너무 어려워서 겨우 해내는 듯한 느낌으로 하기는 했지만….”
“상심하지 마. 천관위 교수님 과제가 조금 어렵기는 하잖아. 그 교수님은 학생들을 괴롭히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진짜 스트레스받아. 뭐 그 안개 소환사의 강의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가끔은 너무 짜증 나서 마법이고 뭐고 전부 다 때려치우고 싶다니까.”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
“그렇지? 내가 장담하건대 천관위 교수님은 분명 가르치는 데는 재능이 없을 거야. 괜히 들어갔다가 학점만 빼앗기고… 매번 무표정에 아주 악질이라니까. 휴우… 정하얀 님은 특별강의 한 번 안 하시려나. 그분한테 강의를 받으면 정말 알기 쉽게 귀에 쏙쏙 들어올 텐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 있는 아릴을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몇 년 전에 운이 좋게 정하얀 님에게 개인적인 가르침을 받았을 때를 떠올려 보면….
오히려 천관위 교수님보다 강의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정하얀 님이었다.
물론 자신이 멍청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정하얀 님은 평범한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마법이라는 학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녀에게는 그것이 학문이 아니라 놀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천재가 평범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왜… 왜? 못하지? 왜? 이, 이게 어려웠나? 왜… 왜 못하는 거지?’
정하얀 님과의 짧은 만남은 오히려 거대한 벽을 만들어버렸다. 자신은 절대 저곳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함을 말이다.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싶은 것이 많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그걸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사실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어머니에게도 폐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우연치 않게 식당에서 마주쳤고, 어머니가 부길드마스터님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정하얀 님이 빤히 자신을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얘… 너… 너… 마, 마법 배우는구나. 내. 내가 좋은 거 가르쳐 줄까?’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잠깐의 호기심. 어머니는 한사코 만류하기는 했지만 아주 잠깐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아주 짧은 시간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신이 정하얀 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신나게 떠벌릴 수도 없다.
만약 정말로 인연을 만들었다고 해도 결코 그것을 자랑하듯이 말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머니가 매번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던 탓이었다.
‘감사하신 분들이라고.’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물론 어머니의 말씀이 맞다는 것 정도는 자신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이런 옷을 입고,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있는 커다란 은혜였다.
어머니가 파란 길드의 직원이라는 것은 여기 모인… 소위 있으신 분들의 자제들에게는 별것 아닌 문제였고, 길드원 분들과 밥을 같이 몇 번 먹은 적 있다거나 짧은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다거나 하는 일도 그다지 유난 떨 일도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 중에는 자신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부길드마스터님과 식사를 했다느니, 기도회에 1열로 앉아본 적이 있다느니, 직접 축복을 받았다느니….
부길드마스터님이 직접 주최하는 다과회에 다녀온 집안의 자녀들도 그걸 평생의 자랑이라는 듯이 매일매일 떠벌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부모님이 부길드마스터님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쟁할 필요도 없거니와 경쟁해서도 안 됐다.
‘최대한 문제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졸업하자. 조용히 졸업한 이후에는 파란 길드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자.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이기영 님께 평생의 은혜를 갚자.
그게 현재 자신의 목표였다.
혼자서 손을 꼼지락거리기가 무섭게 아릴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명원아. 그 이야기는 들었어?”
“응? 아, 전학생 이야기?”
“응.”
“아니. 나도 방금 와서 알았어. 특채 입학생인지, 교환학생인지, 전학생인지 다들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더라….”
“조금 타이밍이 그렇지 않아?”
“뭐가?”
“갑자기 전학생이라니 이상하잖아. 그야 물론 특채 입학생이 없었던 건 아닌데… 이번에는 두 명이 한꺼번에 들어온다는 거야. 그것도 공화국 쪽에서 들어온다는 것 같더라고….”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
“그냥… 소문이 돌아. 여기저기에서… 듣기로는 공화국의 높은 사람들 자제라더라고… 아직 소문만 흐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중이고…. 여기 한번 둘러봐. 공화국 쪽 애들이 긴장하고 있는 거 보여?”
‘확실히….’
평소랑은 다르다.
원래 공화국에서 온 학생들이 딱딱한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굳어 있는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각을 잡고 앉아 있었다. 평소에 그렇게 수다스러웠던 슬라바는 입도 뻥끗 안 하고 조용히 자신의 책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누가 봐도 공화국 쪽 고위 집안 자제들로 보이는 녀석들이었는데 토론을 하는 모습이 심각해 보였다.
목소리는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지만….
환영식이라든가… 새로운 파벌을 만들어서 그분을 리더로 추대해야 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돌고 있었다.
“정말 그런 것 같네….”
“그렇지? 덩달아 교국 애들도 조금 긴장한 것 같지 않아?”
“화해한 지가 언젠데….”
“그래도 라이벌이라면 라이벌이잖아. 공화국 쪽 애들은 공화국 애들 나름대로 교국의 심장에서 자신들을 알리고 싶어 할 테고… 교국 학생들은 또 그게 마음에 들지 않겠지. 사실 햇수로 따지고 보면 전쟁이 끝난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그냥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되는 걸까.”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팍 하고 돌아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뒤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펠리스 하네스트.
“당연히 안 되지. 이 멍청한 낙제생아.”
“너! 강의실에서 교수님 허락 없이 마법 쓰면 안 되는 거 몰라?!”
“이걸 마법이라고 할 수 있나? 아릴? 그냥 마력을 집어 던진 것뿐인데…. 그리고… 이 정도라면 당연히 스스로 막아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파란 국제학원에… 그것도 마법부의 일원이라면 말이야. 마력도 본인 뜻대로 움직일 줄 모르는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막지 못할 이유가 있나?”
“…….”
“교국의 수치가… 어떻게 너 같은 멍청한 놈이 이곳에 입학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치솟는다.”
“하네스트! 너 지금 말 다했어? 그게 학우한테 할 말이야?”
“경고 하나 하겠다. 김명원. 더 이상 교국을 수치스럽게… 아니, 공화국 놈들에게 책잡힐 일을 스스로 만들지 마라.”
“이게….”
“아니야. 괜찮아 아릴. 틀린 말도 아니니까.”
“하지만… 명원아.”
“괜찮아.”
자신만 참으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이었다.
자신을 위로해 주는 아릴을 잠깐 지켜보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처음 보는 학생 두 명이 시야에 비쳤다. 딱히 놀라운 상황도 아니었다. 이미 소문은 퍼져 있었으니까.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은 공화국 파벌에 있는 학생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뭣들 하는 겁니까? 자리에 앉으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히들링턴 교수님께서 아이들을 나무랐지만 녀석들은 마치 교수님의 말을 듣지 못한 것마냥 자세를 유지하기 여념이 없었다.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을지는 뻔했다.
흰색의 머리카락과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소년 하나. 마치 왕이라도 되는 것마냥 좌중을 둘러보고 있는 녀석에게는 오만함이 아니라 자신감이 엿보인다.
얼굴을 조금 앳돼 보이고… 정확히 말하면 조금 귀엽게 생긴 얼굴이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자색 눈동자는 지배받는 자가 아니라 지배하는 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걸음걸이는 당당했으며 몸짓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히죽 올라가 있는 입꼬리는 이곳에 있는 모두를 비웃는 듯했다.
이해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져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가 없었을 정도. 어째서 이렇게까지 작아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도대체 저건… 뭐야.’
같은 나이대의 소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괴물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다. 공화국 쪽 학생들을 물론이거니와 다른 학생들조차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심지어 펠리스 하네스트 조차 그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통쾌하기보다는….’
무섭다.
저 작은 소년을 바라보는 게 말이다.
“당장 자리에 앉지 못해?!”
교수님이 다시 한번 큰소리를 쳤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는 장내.
공화국 학생들이 자리에 다시 몸을 앉힌 것은 눈앞에 있는 소년이 살짝 손을 들어 올린 이후 내렸을 때였다.
마치 군인들을 보는 것 같다. 소년의 손짓 한 번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학생들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그 뒤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 소녀 하나.
그녀 또한 공화국에서 온 것 같기는 했지만 눈앞에 있는 소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저 소년을 보필하기 위한 수행원처럼 느껴진다. 자로 잰 것만 같이 묶은 머리에 작은 안경을 쓰고 있는 그녀는….
“예… 예쁘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강의실 안에 무척이나 큰 소리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