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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33화 (1,23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33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2)

김미영 팀장도 사람이다.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진짜 기계인 줄 알았자너.’

그녀를 하루 종일 따라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김미영 팀장이 매일매일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지혜 누나나 나보다 더 바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

매일같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업무에 돌입하고 길드의 거의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미팅이 아니면 점심은 간단하게 해결하는 듯했고, 그마저도 거르는 일이 많았다.

단순히 집무실에만 처박혀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의 중요도에 따라서 직접 현장으로 나가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자신의 업무가 끝날 때 즈음이면 각 부서에서 날아온 보고서들을 정리하고 취합해 매일 아침 내 책상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게 전부 끝날 때 즈음이면 이미 해가 떨어질 시간이다. 혹시나 올라온 보고서에 문제가 생긴다면 퇴근 시간이 더 늦어진다.

물론 부하직원들 중에도 유능한 사람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녀의 성격상 아주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넘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파란 길드의 모든 대소사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모자라 애까지 둘 키우고 있으니 시간이 남아날까.

사실….

‘자식 둘 키우기 힘들기는 할 거야.’

그래도 자식들과 저녁은 같이 먹는다거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겨우 그것뿐이었다. 그마저도 함께 저녁을 먹은 이후에는 업무에 복귀해 야근하기 일쑤였으니 사실상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애들이 학교 어떻게 다니는지는 확인하고 있는 건가?’

왠지 그것도 의식적으로 신경 안 쓰고 있을 것 같자너.

사실 이런 상황들이 조금은 신선하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도 김미영 팀장은 강철 같은 느낌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모양, 칼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그녀도 인간이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더욱더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아이들이 관계되어 있는 일에는 평정심을 찾지 못할 것 같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애써 유소년 교육시설을 외면해 왔던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관련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 없나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 말입니까?”

“네.”

“그건….”

“덩치가 조금 커졌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에요. 세간에서는 파란 국제학교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기우에 불과했으면 좋겠지만 안 좋은 이야기들도 들려오고 있고요. 혹시 전해 들으신 게 있으신가 해서….”

‘팀장님두 잘 몰랐나 보네.’

덩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자신이 보고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여겼겠지.

우리 자식들 다니는 학교 부지 좀 넓혀주고 건물도 새로 올려주고… 본격적으로 이름도 바꿔주고 린델의 명물로 한번 만들어 보자고 건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반응을 보니… 모르고 계셨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팀장님이 죄송해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비리라고 하시면 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곧바로 시정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로 괜찮습니다. 손바닥으로 어떻게 하늘을 가릴 수 있겠어요. 저도 모르고 있었는데… 모든 사업체나 계열사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나 시시콜콜한 일들을 전부 알아야 될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김미영 팀장님 같으신 분이 그런 사소한 문제에 열 올리는 게 인력 손실이기도 하고… 그거 잡아넣으라고 감찰부서 만든 건데… 왜 김미영 팀장님이 미안해요?”

“면목이 없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아니… 김미영 팀장님을 나무라는 자리가 아니라니까요. 그냥 이야기 좀 하자고 부른 거지.”

“…….”

“다만 조금 섭섭한 건… 김미영 팀장님이 너무 의식적으로 교육시설에서 눈을 돌렸다는 거예요.”

“…….”

“걱정되셨어요?”

“…….”

“혹시 주어진 권력을 옳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하게 될까 봐. 자기 자신이 걱정되신 것 맞나요?”

슬그머니 떠보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김미영 팀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별것 아니었지만 마치 제 치부가 까발려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결국 조용히 입을 여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면목 없지만 그렇습니다.”

“괜찮습니다.”

“네?”

“조금은 욕심부려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거예요.”

“아….”

“김미영 팀장님은 파란 길드에서 아주 중요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말하면 이곳을 만드는 데 가장 커다란 기여를 해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마 이 파란 길드에 김미영 팀장님 손이 닿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걸요?”

“…….”

“왕국이라고 표현하기 좀 간지럽기는 하지만 김미영 팀장님은 이 왕국을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사람이에요. 제가 권력과 권한을 그냥 넘겨준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죠?”

“…….”

“책임만 지라고 드린 것이 아니라 휘두르시라고 드린 거예요. 김미영 팀장님은 마땅히 자격이 있는 분이시고, 또 그렇게 하셔야 되는 위치에 있어요. 조심스러우신 것도 이해되고… 폐가 될까 봐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걱정하실 필요 전혀 없으세요. 조금 실수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만든 성벽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

“저야 매일 아침 김미영 팀장님 얼굴 보는 게 좋기는 하지만 업무 때문에 시간이 없으시면 다른 사람 올려 보내주셔도 되고요.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있으면 잘라 버리셔도 돼요. 김미영 팀장님이 계신 위치를 답답한 자리라고 감옥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스트레스받아서 오래 일 못 하니까….”

“…….”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가감 없이 말씀하셔도 됩니다. 뭐가 됐든 간에… 저는 김미영 팀장님을 가족 같은 걸로 생각하고 있으니 조금 더 사리사욕을 챙겨도 된다는 거예요. 이해되셨나요?”

‘제대로 이해했으려나.’

눈시울 붉어진 것 같은 모습이 눈에 보인다. 울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한바탕 문책이 쏟아질 걸 예상했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으니 조금 감격한 것처럼 보였다.

김미영 팀장의 충성도가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이래야 되자너.’

우리가 남이냐구….

김현성이 파란의 길드마스터로 취임한 직후, 이 새끼가 나를 죽이기 위해 일감을 몰아냈을 시절에 같이 집무실에 처박혀 길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동고동락한 사이가 아니었던가.

파란의 적폐들 때문에 흑자 하나 못 내던 길드를 지금의 길드로 만들었던 게 바로 김미영 팀장이었다.

그 유능함을 인정받아 수많은 곳에서 오퍼가 왔을 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길드에 충성했다.

사실상 기여도로만 따지면 박덕구 이 돼지보다 김미영 팀장이 한 게 더 많을 것이다.

그런 김미영 팀장이 길드에서 아직도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내가 그녀를 많이 챙겨주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울 팀장님 기계 아니자너….’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왔다.

“감사합니다. 부길드마스터.”

박수 짝.

“그럼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네.”

“유소년 교육시설 이거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으세요?”

“사실은….”

“네?”

“사실… 예전에 만들어놓은 기획서가 있는데… 잠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아… 네….”

‘뭐냐구… 생각은 하고 있었던 거냐구….’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졌던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제안한 기획서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을 파란 국제학교로 만드는 기획서였다.

현재의 부지가 많은 교육생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 의거한 새로운 부지에 대한 이야기.

명칭을 변경하자는 이야기와 파란 국제학교의 미래 비전에 대해서.

교육시설의 이념 자체가 무료교육이다 보니 수익성에 대한 것들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대륙 복지의 일환이거나 파란의 브랜드 가치 같은 부가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기획서였다.

손해가 아니었지만 사실 손해여도 상관없다.

어차피 연금공방에서 나오는 순이익만으로도 학교 하나 정도는 굴리고도 남았고, 미래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으니까.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라베하에 돈을 때려박는 것보다 이게 더 가치가 있었다.

‘시바 이거 생각해 보니까. 라베하 도시계획 때문에 말 못 한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누가 돈을 펑펑 쓰고 있는데 이런 기획서 제출할 수 있었겠냐고.’

교국에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대륙을 관리하는 초월자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대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직접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신성의 비용이 줄어든다.

그런 의미해서 생각해 보면 결코 손해는 아니다. 대륙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현물도 중요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륙을 운영할 수 있는 재화였으니까.

“진행시켜도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비리 건에 대해서는….”

“아. 그거 말인데… 혹시 길드 내 감찰단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나요?”

“네. 관련되어 있는 내용의 보고서는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단순 헛소문일 확률도 높겠군요. 하네스트 의원의 아들이 교육시설에서 퇴학당할 뻔한 걸 뇌물로 무마했다는 헛소문이었는데… 물론 아직 위에서만 드문드문 소문이 돌고 있어서 밑에까지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네.”

“조사를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움직일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감찰부서 내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시설에 문제가 없으면 그럴 가능성도 있겠죠. 고이지 말라고 감찰부서를 만들어놨던 건데… 거기가 고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확실히 파란 길드가 덩치가 커지긴 커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별 이상한 문제들도 튀어나오고… 물론 중대한 사안은 아니지만….”

사실 사안 자체는 한없이 가볍다.

연금공방에서 나오는 돈을 누군가가 횡령하고 있었다거나 길드원들이 직접적으로 사용할 보급품의 품질들이 이상하다거나 하는 큰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외부에 길드의 기술을 빼돌려 산업 스파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슨 무슨 게이트라고 부를 만한 커다란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들 사랑이 유별난 의원 하나가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고 몇 푼 되지 않은 푼돈을 기부금액 형식으로 교육시설에 던져 놓았던 것일 수도 있다.

일의 경종을 따진다면 그냥 무시해도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아쉽게도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거자너.’

처음에는 해프닝이었을지 몰라도 두 번째부터는 아니다.

안 그래도 파란은 고이고 고이다 못해 우물을 형성한 곳이었기 때문에 수질을 오염시킬 수 있는 불순물은 최대한 빠르게 들어내야 했다.

‘막상 껍질 까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 가 볼까. 마침 몸도 어려졌겠다. 교육시설 좀 둘러보는 목적으로….

생각해 보면 김미영 팀장에게 휴가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팀장님 휴가 드릴 테니까 혹시 학창시절을 다시 경험해 보고 싶지는 않으세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공화국 시민권 두 개만 발급시켜 주실 수 있죠?”

“물론 가능은 합니다만….”

기왕 갈 거라면 진청 아들내미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머리도 염색 좀 해야겠네.’

루머로 나돌고 있는 진 군사의 숨겨진 자식.

그게 바로 진영이었다.

“김미영 팀장님은 부케 뭘로 만들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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