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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29화 (1,22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29화

대륙에서(3)

‘얘네 순발력 장난 아니네.’

슬쩍 툭 하고 던진 걸 완벽하게 받아내는 솜씨를 보고 있자니 놀랍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우물쭈물하다가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다른 길드원들과는 다르게 녀석들만이 울부짖으며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지만 조혜진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눈썰미가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던 것이리라.

‘점점… 미안해지는데.’

갑작스레 조혜진을 놀리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 저지른 일이었지만 혜지니가 보여주는 반응이 너무나 리얼하다 보니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부…길드마스터….”

라고 중얼거리던 그녀가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친 것은 바로 그때.

“으아아아아아!!”

목소리가 갈라질 것만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계속해서 바닥을 향해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즙 좀 뽑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수도라도 튼 것마냥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이 바닥을 흠뻑 적시고 있다.

“아아… 흐으윽… 아아아… 기영아.”

‘혜… 혜지나….’

목소리 또한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제대로 말을 내뱉기도 힘든지 떨리는 목소리로 꺼억 꺼억 거리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제는 거의 기어오듯이 이쪽에게 다가오기 시작, 내게 당도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는 박기리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어떤 장난을 쳐도 뻔뻔했던 녀석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혜… 혜진 누님….”

“언…니….”

눈물을 꾹 참으로 달려온 조혜진이 이쪽을 꽉 껴안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 미안해… 흐윽… 미안해.”

‘시바 일 났다.’

“미안해. 기영아. 미안해. 미안해….”

‘큰일 났다. 진짜.’

“미안해. 미안해… 미안… 미안해… 내가… 흐윽… 내가아….”

‘이거 어떻게 하지.’

곧바로 고백하는 것이 좋을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로헨에서 실제로 고생하기도 했었으니까.’

죽었다 살아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알고 있었으니… 장난에 당했다는 것보다는 이기영이 무사히 생환했다는 사실 자체에 더 집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심하기는 했지만 혜지니는 이해심이 바다처럼 넓었으니까.

나이도 어려졌으니 장난기가 주체할 수 없었다는 변명도 통할 만하지. 아무튼 간에 그녀를 향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농… 농담이지롱….”

“…….”

“장… 장난 좀 쳐봤습니다… 혜진… 씨.”

“…….”

“그렇지? 덕구야. 예리야….”

책임은 나누어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조혜진의 표정이 싸늘하다.

마치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것 같은 무심한 눈. 천천히 나를 떼어내고 몸을 일으키는 동작도 괜스레 싸늘하다.

차라리 화를 내면 좋을 텐데… 분위기가 어색해서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돼지 새끼가 천천히 입을 열어왔다.

“그… 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소! 거! 형님도 참….”

‘이 돼지 새끼가 뒤통수를….’

“거, 어려진 영향인지 장난기를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오. 끝까지 안한다고 했는데… 쯧… 형님이 워낙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형님은 혜진이 누님한테 꼭 사과하쇼.”

“이번에는. 심했어. 기영이.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부길드마스터 잘못이 아닙니다. 혜진 씨. 돌아오는 과정에서 겉모습만 어려지신 게 아닌 것 같더군요. 너무 부길드마스터를 나무라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심지어 김예리와 안기모의 태세전환도 예사롭지가 않다. 득달같이 이쪽은 쳐내는 모습은 손절타이밍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

생각해 보니 쟤네 말이 맞은 것 같기도 하다. 어려지지 않았다면 구태여 하지 않았을 장난이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타이밍에 조혜진을 놀렸겠는가.

“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화… 화나셨습니까?”

“…….”

“그게….”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부길드마스터.”

“…….”

“일단 길드로 돌아가시죠.”

‘쟤 삐졌다.’

그래도 아예 풀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눈빛 자체가 왠지 모르게 안도하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래요. 혜진 씨 말대로 해요. 김미영 팀장님은 잘 계세요?”

“네. 부길드마스터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디아루기아 님, 디아루리아 님도. 막스 님도 또… 세라핌도 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냉정해지니….’

“정하얀 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사실 라베하에서 조금 더 지내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인 정하얀이 주문을 외운 이후에는 곧바로 길드 하우스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얘는 여기서 기다렸어도 됐을 텐데.’

구태여 라베하로 뛰어올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튼 간에 길드에서 또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아. 아빠!”

“아버지.”

가장 먼저 뛰어온 것은 와락 안기는 디아루리아와 막스.

“아빠가… 어려졌어… 아빠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다행인 것은 내 키가 막스보다는 컸다는 것이었다.

케루빔과 쓰로누스, 도미니온스와도 인사를 한 번씩 나누고 멀찍이서 어색해하는 세라핌도 손짓을 한 다음에 하얀이와 함께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묻는다.

그다지 인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하얀이가 같이 있었으니까.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은 같았는지 정하얀과 한소라에게 꽉 안기며 즙을 짜는 녀석.

정작 고생한 것은 이주한 3남매 였는데…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솜씨가 꽤 탁월했다.

일단 꼬맹이들 다섯은 변해버린 이 모습을 좀 어색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위엄 넘치고 카리스마 있었던 아버지의 쪼그매진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지 않는지, 외신 삼 남매 같은 경우에는 가까이 오기 영 꺼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도미니온스랑은 조금 비슷하고….’

케루빔이랑 쓰로누스 쟤네들은 나보다 크네.

그나마 녀석들이 무릎을 꿇으며 나의 환송을 축하해 준 터라 간단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었다.

기뻤는지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녀석들에게 더 할애해줄 시간이 없었다. 파티원들한테 만난 것처럼 작아진 몸을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잔소리를 시작하려고 하는 디아루기아의 시선을 살짝 회피하고는 방금 전에 했던 설명을 한 번 더 했다.

의아해 보이기는 했지만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대륙에서도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었던 터라, 금방 적응해 고개를 끄덕이는 인원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부길드마스터.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미영 팀장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형님. 오늘 파티하는 거요?!”

“파티는 이기영 님께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신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함께 식사하는 것 정도는 좋지만….”

“희영 씨 말이 맞아. 시끌벅적한 것도 좋지만 돌아온 김에 조금 쉬고 싶네. 김미영 팀장님은….”

“보고서는 이미 집무실에 올려놓았습니다만….”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조용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업무는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에 봐야겠네요.”

‘역시 김미영 팀장이자너’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김미영 팀장이 보고서를 미리 준비했겠는가. 갑작스레 닥쳐와서 급하게 정리한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정리하고 집무실에 올렸던 게 습관이 되어 있었던 거겠지.

“뭐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네. 우려하실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길드마스터께서 직접 나서실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보다 식사는 언제까지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그냥 곧바로… 아니, 한 시간 뒤에 모이는 게 좋겠네요. 좀 씻고… 개인 업무도 좀 보고….”

“네.”

‘일단 다 좋기는 좋은데….’

“오, 오빠… 제가 조금 도와드릴까요?”

“아니야. 괜찮아, 하얀아.”

“사… 사양하지 마세요. 갑. 갑자기 몸이 작아져서 불편할 수도 있어요.”

‘나 애기 아니야.’

“그럼 마법 좀 걸어 줄래?”

“아…! 아… 아… 네….”

김현성 쟤를 어떻게 해줘야 될까.

이미 누나에게 이야기를 들어 김현성의 저런 모습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분위기가 불편해졌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조혜진이나 김미영 팀장도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요상한 분위기를 의식하고 있을까.

바보가 아니라면 김현성이 소외된 듯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혜진과 선희영이 꽤 심각한 얼굴로 한쪽 구석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로헨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려는 모양.

김현성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으리라.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미리 말해야 협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사실 다른 길드원들의 입장이 이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쟤네들이 보기에는 명백하게 김현성이 이상하게 보였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김현성조차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 사실상 본인도 동의한 사안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멀쩡한 이기영을 가짜라고 빽빽 우기지 않나. 별안간 폭력성을 드러내지를 않나. 21군단장을 죽이고 악마로 로헨에 떨어지질 않나.

길드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였고, 결과도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나 마지막 갈등이 최고조로 일어났을 때는 무력충돌까지 일어났으니까.

결과적으로는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이룬 것도 몇몇 있었지만 그 과정 자체가 보기 좋지는 않았다는 거다.

‘내 잘못이 아예 없다고는 못 하겠자너….’

이기영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에 대한 여부와는 전혀 관계없이 이 폭주기관차는 명백히 선을 넘었다.

나야 김현성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다른 길드원들의 눈에도 그렇게 비칠까.

‘좀 파격적인 행보이기는 했지.’

김현성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보이고 있다면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뭔가 주워 담기는 주워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분위기를 조금 풀어주면 풀어 줄 수도 있었지만 김현성 자신이 방어적인 게 가장 크다.

그렇다고 대놓고 내가 쉴드를 시전해 주기에는 확실히 어색한 면이 있기도 했다.

오히려 반감만 가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억지로 다시 친해지길 바라를 찍을 수도 있기는 했지만 어색하게 이어 붙이느니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낫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오, 오빠… 빨리 먹어요.”

“…….”

“제… 제가 먹여드릴게요.”

“…….”

“꼭꼭 씹어 드셔야 해요. 알, 알겠죠? 편… 편식은 하면 안 되고요!”

‘식사 자리까지 멀리 떨어뜨려놓을 줄은 몰랐는데….’

모든 길드원들이 둘러앉은 커다란 식탁에 김현성이 유독 나와 멀리 떨어져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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