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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24화 (1,22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24화

로헨에서(2)

그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후대는 꽃과 풍요의 성자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홀연히 이곳에 나타나 로헨을 구원했다. 짧다면 짧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그의 삶이었지만 그 안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위기에 놓여 있던 로헨에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버림받은 성녀를 물리친 것도, 노을빛의 마왕성에 원정대를 밀어붙인 것도.

로헨에 소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이 이곳의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다. 문화와 생활방식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너무나 사소해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다.

꽃과 풍요의 성자로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성인의 귀감이 될 만한 모습들이었고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하며 그렇게 떠나갔다. 가장 위대한 마지막 유산을 남긴 채로 말이다.

‘정말로 전부 알고 계셨던 걸까.’

이 낙원도… 로헨에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으셨기 때문에….

자세히는 듣지 못했다. 윌리엄 님을 비롯한 윗사람들이야 베둠이라는 곰 수인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정보들은 아직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단지 지나가는 말을 들은 것뿐이었다.

로헨에 들어온 직후부터 계속해서 계획을 세우셨단다. 자신들은 그냥 이기영 님의 뜻에 따라 이 낙원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란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분명히 신이라니까. 아니면 천사. 뭐 그런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되잖아. 모든 걸 보고 계시고 모든 걸 예상하신 거겠지 뭐. 다들 꽃과 풍요의 성자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난 아닌 것 같아.”

“…….”

“본업 하러 떠나신 거지. 로헨을 구원하는 게 이기영 님의 임무 같은 거라니까. 우리들을 다시 보살펴 주기 위해서 위로 올라가신 거잖아.”

아헨델의 바람둥이 캐시가 시답지 않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솔직히 사람처럼 안 생기기는 했었어. 뭔가 오묘한 매력이 분명히 있으신 것 같았는데… 웬걸 로헨을 구원하러 와주신 천사님이라고 누가 예상했겠어.”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기는 했지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캐시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다고 여겨진다. 고대의 신화에서나 전해질 것 같은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있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영 님이 가지고 있었던 고뇌와 슬픔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가 만들고 간 것들에 주목한다.

그가 로헨에 머무른 시간이 짧아서이기도 했지만 그 업적이 워낙에 커다랗기 때문에 생기는 위화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로헨의 변화와 그것을 모두 예상하고 있었던 선지자가 만든 낙원이라는 것은 이기영이라는 인물과 사람들의 거리감을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기영이라는 인물은 가혹한 운명에 놓인… 억지로 희생당한 성자가 아니라… 동정받아야 할 인간이 아니라… 칭송받아 마땅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로헨을 위해 잠시 인간의 육신을 받아 내려온, 기적을 써 내려간 인물로서 조명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알레리아?”

캐시가 자신의 말에 수긍하라는 듯이 질문을 던져왔다.

‘후우….’

아마 호위라는 명목으로 그의 곁을 맴돌지 않았더라면 자신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지자, 성인, 천사, 신으로서의 그를 지켜봐 왔을 때, 자신은 그가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던 모습들을 눈으로 목도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이 두려워 눈물짓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고 싶어 발버둥 치는 그의 모습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훌쩍이던 그 모습을.

매일매일 불안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다 남겨진 자들에게 전할 편지를 적는 그의 모습을 매일같이 봐왔다.

‘꽃과 풍요의 성자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야.’

겉은 어떨지 몰라도, 속은 그냥 여린 그 나이대의 청년이었다.

“그래요. 캐시 말이 맞아요.”

“어, 알레리아? 어디가?”

“먼저 들어가 계실래요? 저는… 잠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조니아. 쟤 오늘 좀 이상하다. 그렇지?”

‘전해야 돼.’

품 안에 있는 편지뭉치. 한 권의 책이라도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편지들.

이걸 전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역할이었다. 어째서 이기영 님께서 자신에게 이걸 맡기신 건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거나 자신은 막중한 책임에 직면해 있다.

단순히 편지를 전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간단한 임무였지만 그의 마지막 목소리를 전하는 일인 만큼 조금 더 진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낙원에 도착한 지 벌써 일주일 째, 여기저기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실 지금도 적절한 타이밍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낙원이 수용할 수 있는 인구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들어온 까닭에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었다.

‘중요하다면 중요한 시기인데….’

아니, 편지는 50일 뒤에 전해달라고 부탁하셨다. 현재 이곳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간에 자신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알레리아 님.”

“아… 네.”

“알레리아 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알레리아 님 혹시 음식을 조금 더 얻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죄송해요. 어머니. 제가 지금 급히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 근처에 담당관이 있을 테니 그분께 여쭈어 보시면 될 거예요.”

“아! 네! 감사합니다.”

“다른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불편할 게 뭐가 있겠어요. 다들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상황이야 차차 나아지겠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하하….”

“싸움이 일어날까 봐 걱정도 많이 됐는데… 참 신기하더라고요. 물자는 부족하고 사람들은 많은데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있다는 게….”

“이곳은… 낙원이니까요.”

자신이 대답한 그대로 불안감보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를 더 넓히기 위해 자제들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이나, 안정화 된 지역으로 탐험을 나가는 사람들이나, 표정에는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다.

낙원이라는 도시의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꽃과 풍요의 성자가 보여주었던 기적이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기 때문이리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 정신이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평화롭다.’

낙원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조금씩 조금씩 바깥도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청하야?”

“응. 안 그래도 원정대원들을 더 늘릴 생각하고 있다더라고요. 승윤 오빠. 위험부담은 조금 있겠지만.”

“해야죠. 그게 기영이를 위한 길인데.”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 저들은 아카데미 동기생들이겠지. 이제야 병아리 티를 벗어난 모험가 무리들을 지나치며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임채령. 남궁선 님부터 찾아가야겠지.’

마침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너희들! 그렇게 막 돌아다니지 말랬지! 공사하느라 위험하단 말이야!”

“공사는 저 밖에서 하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물건을 옮겨 나르고 있잖아! 부딪히면 어떻게 할 건데!”

중앙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장소였다.

지금의 낙원과 다르지 않게 약간은 한적한 곳에 위치한 곳.

“이 천둥벌거숭이들이 진짜!”

“천둥벌거숭이는 누나잖아요! 아저씨가 맨날 누나보고 천둥벌거숭이라고….”

“으익! 지금부터 천둥벌거숭이는 너희들이야! 당장 말 안 들어? 자꾸 말썽 피우면 남궁 언니가 와서 어흥 한다!”

보육원에 있었던 아이들일 것이다. 양팔을 벌리며 뛰어 들어오고 있는 임채령이 움직임이 문뜩 멈춘다. 아마 자신을 확인했기 때문이겠지.

“누구….”

“알레리아라고 합니다. 이기영 님의 호위로 일했던… 남궁선 님과 우효열 님은 안쪽에 계신가요?”

“효열 오빠는 없어요. 선 언니는 밥하고 있고… 근데 여기까지 무슨 일로….”

“전해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

“이기영 님께서 남기신 편지예요.”

눈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아….”

“이기영 님께서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 꼭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어째서 제게 부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받아주세요.”

“감… 감사합니다….”

얼떨떨한 눈으로 편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어 보인다.

“다른 분들한테는 제가 전해드려도 될까요?”

“아니요. 이기영 님께서 제게 맡기신 일입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아. 그렇겠네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임채령은 참지 못했는지 허겁지겁 편지를 집어 뜯기 시작했다.

“어? 형이야?! 형 편지야? 천둥벌거숭이 누나?”

“형은 언제 온대?”

“기영이 형은 언제 와?”

‘아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구나.’

“나중에.”

“…….”

“나중에 꼭 돌아올 거야.”

임채령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한다. 무슨 내용이 써져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실 웃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큰소리를 내며 웃다가, 다양한 반응들이 보인다.

그러다 이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편지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눈물이 고이고, 얼굴이 엉망이 될 정도로 눈을 비비고,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남궁선님에게 편지를 전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보고 있는 게 실례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아 그녀를 살짝 껴안았다.

“끄윽… 흐… 끄으으윽….”

“…….”

“흐어어어어어엉… 끄으윽… 흐어어엉….”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직후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어왔다.

“고… 고마워요.”

“그… 그럼 저는 이만….”

“네. 언니는 아마 주방에 있을 거예요.”

“네.”

‘무슨 말이 써져 있었을까.’

자신이 알 필요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의 짐을 던 것처럼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

남궁선 님 또한 임채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 이기영 님께서 남긴 편지군요. 하얀 씨도 있었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요.”

“정하얀 님께서는….”

“글쎄요. 소라 씨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셨는데… 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낙원에 계실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것도 아니고… 정하얀 님이라면 아마 잘 지내시고 계시겠죠….”

“그렇군요.”

“아무튼 편지는 정말로 감사드려요.”

임채령처럼 엉엉 울지는 않았지만 눈에 많은 눈물을 머금으며 억지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노담혜 님도….

“저… 저한테요?”

“네. 파티원 분들께는 전부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

“…….”

마찬가지로 편지를 받아 든 이후에는 한 차례 눈물을 쏟아내셨다.

“흐윽… 흐으으윽… 저… 저 사실 그분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었어요. 흑…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사랑하지 말걸… 히끅… 같이… 노래하지 말걸….”

윌리엄은 슬픈 얼굴로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효열 님은….

“이기영 님께서 맡기신 편지를 전달해 드리러 왔습니다.”

“나중에 읽어보지.”

높은 곳에서 낙원을 내려다보며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거기에 놓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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