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19화
노을빛의 마왕성, 마지막 이야기(12)
“어둠에 굴복하지 말란 말이야!”
눈물을 담은 혼신의 외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달라지지 않았다.
‘시바.’
아직까지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
“저 멍청한 놈. 시바. 멍청한 놈.”
초조해지는 게 당연한 상황이리라. 저렇게 하루 종일 얻어터지라고 녀석에게 어떤 것을 내려준 게 아니었으니까.
‘저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과소평가했다. 언제나 이기영의 계획을 망치는 것은 김현성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현성을 과소평가한 것이 실수였다.
물론 주어진 상황 내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녀석을 강화시키는 데 조금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을까 지금까지 왔던 길들을 전부 돌아봤지만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무지성으로 내질러야 하나?’
기적과도 같은 이기영의 목소리에 반응해 줄 거라고 기대해야 하나. 이대로 이 새끼가 어둠에 굴복하는 걸 내가 보고 있어야 하나?
“우효열 정신 차려! 우효열!”
콰아아아아아아앙!
-키에에에에아으어아아악!
“너…!”
-크르르륵… 크르…쿠악!
‘이거 안 되겠다.’
일이 꼬일 수도 있겠지만 직접 출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였다.
계속해서 얻어터지고 있는 녀석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것은 계산 속에 들어가 있지 않은 녀석.
‘이 새끼는 도대체 왜….’
윌리엄이었다.
당연히 어떤 명령을 지도한 적은 없다.
뭔가를 결심한 녀석은 당장에라도 목숨을 초개처럼 던져 버릴 것마냥 노을빛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저… 저… 미친놈.”
당연히 미친 짓이었다. 뭘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전투 자체는 윌리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미 녀석의 몸은 한계였고 내 자의적인 판단하에 놈을 무대 위에서 내렸다. 다시 한번 무대 위로 배우를 올리는 것은 녀석의 판단이 아니라 내 판단이어야 했다.
놈이 죽는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녀석의 잘못이었다.
‘난 몰라. 난 모른다. 병신아.’
물론 중요한 건 녀석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돌아가는 것이라 정했으니까.
게다가….
‘어차피 곧 나가떨어질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녀석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연결을 끊어봤지만 이번에야말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크게 발을 구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따로 지령을 전해주지 않아도 윌리엄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마치 내가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 녀석이 죽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확률이 높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새끼를 멈추는 것보다 더 멍청한 짓은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멈출 수 없는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리고.
-정신… 차려…라… 이… 멍청아….
윌리엄이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지만….
‘아니. 잘 해준 거야.’
로헨은 중요한 곳이 아니다. 꽃기영이 돌아가야 할 곳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녀석이 쓰러지는 것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김현성에 대한 짜증과 분노와 그리움도, 윌리엄의 대한 짜증도 전부 다 쓸데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정리한다.
여러 가지 인격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머릿속을 정제하는 것보다는 현재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게 더 합리적이겠지.
‘어차피 중간까지만 쓰고 버릴 패였자너. 이후에 쓸데가 있기는 했는데….’
당장 급한 불은 끌 수밖에 없었으니 녀석의 선택에 환호를 지르는 것이 옳았다.
“우효열… 정신 차려!”
꽃기영이 해야 할 행동은 하나야.
확률이 높은 쪽에 거는 것. 지 혼자 자빠져 죽은 녀석을 챙기는 것보다 열심히 여린 성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정신 차리세요!”
-크륵… 크르….
“정신 차려요… 제발… 제발…요… 효열 씨….”
타이밍은 좋아.
흥분해 있는 괴물을 잠잠하게 만들기에는 좋은 시기자너?
마침 딱 적절한 희생양도 있었으니까.
레이먼 볼트 영감롤을 훌륭히 수행해줬다. 노전사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효과가 좋은 것은 라이벌의 희생이었다.
녀석은 은연중에 윌 병신을 경쟁자처럼 느끼고 있었을 테니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새끼는 결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1회 차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타인의 죽음에 반응하고 있었다.
‘조금 더 애절하게 불러야 될까.’
아니면 고통스럽다는 듯이 목소리에 신음을 섞어볼까.
“효열 씨… 흐윽….”
-크르르르르…르륵….
옛날 추억 이야기를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자너. 시기가 짧기는 한데… 딱 괜찮을 것 같자너.
“너….”
더 간절하게.
“이 병신 새끼야.”
애절하게 말하는 것이 정답이다.
“우효열 이 병신 새끼야! 언제까지 그렇게 병신처럼 쳐 자빠져 있을 거야!”
그게 정답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머릿속 어딘가에 있는 화가 계속해서 거친 말을 쏟아붓는다.
“이 쓸모없는 새끼야! 일어나! 이 개새끼! 안 일어나면 죽여 버린다! 정신 안 차리면 진짜 죽여 버린다! 이 모자란 새끼! 내가 이 꼴을 보려고 너 같은 새끼한테… 투자한 줄 알아? 밥값 못 하겠으면 그냥 거기서 쳐 뒈져! 이 새끼야!”
-크르….
“이 병신 새끼! 다 몰아줬는데도 너프된 병신 하나 못 이기는 쓰레기 같은 놈. 네가 무슨 회귀자야! 이 새끼야! 좀 어떻게 좀 해봐….”
-크르르륵….
“뭣 좀 해보라고! 이 버러지 새끼야!!”
직후.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
커다란 폭음과 함께 흙먼지와 연기가 피어오른 이후 천천히 연기가 가라앉는다.
시야가 걷힌 뒤에 보이고 있는 것은 벽에 처박혀 있는 노을빛의 군주와….
-후욱… 후욱….
이미 쓰러져 있는 윌리엄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우효열.
-후욱….
거칠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를 반복하고 있다.
이전과 다르게 짐승의 울음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코팅이 벗겨진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벗겨진 것은 녀석의 반쪽 눈뿐이다.
-후욱… 후욱….
하지만 분위기가 분명히 이전과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천천히 자신의 몸 상태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은 이내 쓰러져 있는 윌리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코팅이 벗겨져 있는 황금색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들어가 있지 않다. 본래 감정을 표현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으니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심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 개자식.
몸을 쭉 빼놓고 차는 오른발에는 분명히 분노가 담겨 있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김현성의 몸이 뒤로 다시 한번 밀려났다.
‘2차 각성?’
신체 능력의 변화는 큰지 크지 않은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변화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할 수 있었다.
무언가 성장했다는 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을빛의 군주의 안면에 주먹이 틀어박힌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김현성의 몸이 벽에 부딪혔다.
노을빛의 날개를 펼쳐 공격을 막으려고 하지만 녀석이 꼬리로 날개들을 쳐내는 것이 보인다.
더 빨라졌고 더 날카로워졌다.
김현성이 검날로 꼬리들을 튕겨낸 것이 보인다.
조금은 당황한 것 같은 김현성의 얼굴, 방금 전 일어났었던 1차전과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녀석 역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내가 느끼고 있는 걸 김현성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콰득! 쾅! 피슛!
계속해서 이어지는 초 근접전, 한 발자국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전투는 성채에 대미지를 주기 시작했다.
피하고 때린다. 막고 벤다. 말로 표현하면 간단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전투는 그리 간단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숨 쉬는 법을 까먹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은 숨을 꽉 참고 있었다.
단 한 번의 호흡도 제대로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 분명할 것이다.
당연하지만 김현성에게도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도박을 걸기에는 너무나 많은 페널티를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소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뿐이었지만.
녀석에게는 이기영이 없었다.
“전부. 보일 거예요.”
우효열의 눈에는 모든 것이 보인다. 노을빛에 대한 군주에 대한 정보가 초 단위로 머릿속에 때려 박힌다.
어디에서 공격이 들어올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마력회로의 흐름, 수십 가지에 이르는 선택지 중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
이기영의 기억을 알고 있다는 건 김현성에 대해서라면 논문이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술이라도 다르지 않다.
녀석은 디스플레이라면 이기영은 그 디스플레이를 눈감고도 조작할 수 있는 플레이어였다.
그런 기억이 이 머릿속에 있다.
‘지면 병신이지.’
김현성이 검을 휘두른다. 우효열의 허리를 숙인 이후 주먹을 휘두른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안면에 주먹이 틀어박힌다.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품에 들어온 우효열을 손잡이로 쳐내려고 하는 김현성이 보인다.
하지만 이미 우효열의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었던 행동이었다. 팔로 손잡이를 잡은 이후에 꼬리를 휘두른다.
노을빛의 군주는 한 걸음 뒤로, 우효열은 한 걸음 앞으로.
김현성이 점점 벽에 몰리고 녀석은 계속해서 팔과 다리를 휘두른다.
퍼억! 콰직!
-으아아아아아!!
답지 않게 기합 소리를 내지르지만 나 역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콰득! 퍼어억! 퍼억!
팔꿈치, 무릎, 발 계속해서, 끊임없이 온몸을 날리고 있는 양아치가 명백하게 노을빛의 검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우효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미지를 착실하게 들이붓고 있었다.
김현성의 눈에 자신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돈다.
아니, 이미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콰드득! 콰득!
‘이길 수 있어.’
-으아아아아아아아!! 이 개자식!
‘이길 수 있다고.’
콰아아아앙!!
‘제발….’
콰지지지지지지직!!!
“제발! 그만 쓰러져… 이 새끼야!!”
그리고… 마침내….
조용히 누워 있는 김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치웠나?’
라고 생각한 직후.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
“…….”
-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김현성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몰아쉬고 있는 우효열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김현성을 향해 말을 이었다.
-뭐가 우스운 거냐. 개자식.
굳이 김현성의 대답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녀석이 왜 웃음 짓고 있는지는 바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씨…발….”
-…….
“씨발… 제기랄….”
-…….
김현성의 한쪽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이… 이기영… 이 개새끼야… 이… 개새끼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이 온몸에 감돌았다.
“이… 저주받을 새끼야… 도대체… 도대체… 왜… 왜 지금 와서….”
애초에 이 새끼는 우리를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 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