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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09화 (1,20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09화

노을빛의 마왕성, 마지막 이야기(2)

혼란스럽다.

우리 현성이는 지금 매우 혼란스럽다.

“절대로 제 신념과 로헨의 의지는 당신에게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

“공포와 두려움, 폭력과 악의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

“빛은 언제나 어둠과 싸워왔어요. 제 죽음은 끝이 아닌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시발점이 될 거예요. 인류는 겁을 집어먹지도 숨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을 거예요.”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 영혼이 바꿔치기 당한 것처럼 느껴졌겠지만 이 역시 이기영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입만 뻐끔뻐끔거리고 있는 모습은 가관.

혹시나 말하는 방법을 까먹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래. 이걸로 된 거야.”

노을빛의 군주의 공포와 폭력에 굴복하지 않으며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본 꽃기영의 눈에는 한 점 흔들림이 없다.

천천히 눈을 감은 것은 당연지사.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듯이 조용히 미소 짓는다. 자신의 할 일을 끝마쳤다는 듯이 말이다.

꽃기영은 인류의 희망 둘을 내보냈다.

비록 이 자리에서 자신은 사라지지만 끝끝내 희망의 불씨를 살려 보냈다. 꽃기영에게 이 이상 만족스러운 죽음이 어디 있을까.

‘경건했어. 솔직히 아름다웠어.’

희생이야말로 이기영을 관통하는 가장 큰 상징이다. 눈앞에 있는 꽃기영은 이기영과는 다른 영혼을 지녔지만 정체성만큼은 예전과 같다.

희생.

희생밖에 모르는 그 새끼.

‘꽤 많이 흔들어 놓은 것 같자너.’

물론 결과가 어찌 될지는 대충 예상이 가기야 한다.

당연하지만 김현성은 이쪽을 인정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단순히 함께 한 기억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영혼 자체가 뒤바뀌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일 터.

대륙에서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생을 살아갈 친우의 내용물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원본이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욱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의 머릿속에서 이기영은 항상 고통받고 괴롭힘당하는 이미지였으니 저도 모르게 계속해서 그런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

“죽이세요.”

때문에 녀석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혼란과 무지가 곧 화로 변할 거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화풀이인지, 자신에 대한 답답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곧… 곧 올 것 같은데.’

아니, 아직인가.

입술이 바짝 말라오는 것 같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장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정보들을 정리할 여유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걸 이기영이라고 볼 수 있는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쩌면 정말로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후우… 후우….”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게 버겁게 보인다. 여전히 눈은 흔들리고 있는 중.

“아… 아니야. 이건 아니야….”

“…….”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맞아.”

‘이제 화내겠다.’

나 진짜 김현성 전문가자너.

“웃,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

진짜 전문가도 이런 전문가도 없자너.

“어디에 있어! 제기랄! 어디에 있냐고!”

“무슨….”

“기영 씨는 어디에 있는 거야! 이… 이… 제기랄… 도대체 어디에….”

“…….”

“너는 도대체 뭔데 기영 씨처럼 행동하고 기영 씨처럼 생각하는 거지? 너는 도대체… 뭐냐고! 이 개자식! 이 가짜가…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목적이 뭐야. 이렇게까지 하는 목적이 뭐냐고!!! 넌 도대체 뭔데! 여기에 있는 거야. 기영 씨는 어디에 있고… 너 같은 새끼가! 그 몸에 있는 거야! 하아… 하아… 도대체… 씨발! 으아아아아아!!”

화산이라도 폭발한 듯이 터진 건지 주변에 모든 것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쪽에 손을 대기는 애매한 모양.

육체가 진짜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배때지에 구멍을 내버린다든가 하는 선택지에는 발을 디디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혹시나 내가 진짜라는 것을 고려하는 것보다는 아마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한 번 구멍을 내 본 전적이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겉모습뿐이더라도 이기영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놈 입장에서는 감히 손을 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점점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

슬슬 감정에 호소할 타이밍이라는 걸 자연스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한 번 분노가 폭발해 모든 것을 분출해 내고 나면 보통 애원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제발… 제발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 제발….”

“…….”

“나는… 안 된단 말이야… 제발….”

“…….”

“부탁이야. 알고 있잖아. 분명히 알고 있을 거잖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말하라고!! 내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게 아니잖아. 돌려줘… 돌려달라고! 제기랄!!”

그렇게 애원하다 보면 점점 더 차오르는 그라데이션 분노.

“말해!!!”

김현성 원맨쇼를 직관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주기가 짧은 것을 보면 정말로 정신머리가 없기는 한 모양.

절박하다 못해 처절한 모습을 선보이고는 있었지만 빛을 향한 꽃기영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캐스팅 다 됐을 거야.’

앗 하는 사이에 이쪽의 몸을 감싼 투명한 막.

내 몸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오른쪽으로 이동된다.

“놓칠 것 같아!”

캐스팅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만큼 준비한 주문의 개수는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쏘아져 나간 것은 수 백개의 마력 화살.

뾰족한 것이 공기를 가르고 지나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거대한 얼음이 떨어지고, 땅바닥에서 돌기둥이 치솟아 오른다.

화염과 물보라가 일어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수집품 관리인 황정연이 보여준 것만 같은 기예를 순수한 마법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마법사에 대한 경외심도 경외심이지만 그것들을 전부 검으로 갈라내며 피하고 있는 검사의 모습은 더욱더 눈을 치켜뜨게 만든다.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것을 인간의 형태를 한 몸으로 찍어 누르고 있었으니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얀 씨!”

“…….”

“저 녀석은 가짜입니다! 제길! 하얀 씨!”

“가, 가, 가짜가 아니에요! 분명히!”

“제기랄! 내 말을 믿으란 말이야! 가짜라고!”

“돌… 돌아가세요! 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째서 제 말을 믿지 않는 거냐고! 저건 가짜라고! 제길! 진짜 기영 씨를 찾을 생각이 없는 겁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기영 씨는… 제길!”

“…….”

“더 이상… 날 방해하지 마!”

노을빛의 검이 휘둘러지자 수십 구의 언데드가 몸을 일으켜 녀석의 검로를 차단한다.

물론 시간을 들이지 않은 언데드들은 두부처럼 썰려 나가지만 그 약간의 틈은 전위가 필요 없는 마법사가 다음 주문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쾅! 콰아아아아앙! 하는 소리들은 계속해서 귀를 때리고….

“하얀 씨!”

“이이이익! 답… 답답해!”

이를 악문 정하얀은 계속해서 한 손을 김현성에게 뻗고 한 손을 이쪽으로 뻗는 중.

정하얀의 옆에 있는 한소라는 그녀를 보조하느라 녹초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거대한 마법의 파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정말로 모르시겠습니까? 저건!”

“이이익! 돌, 돌아가라니까욧!”

필사적으로 김현성을 막고 있는 정하얀이 무언가 언질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 게 당연했다.

다분히 꽃기영을 이탈시키려는 목적성을 띤 전투이기는 했지만 소모전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전투였다.

‘도망가자.’

“오, 오, 오빠!”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벽으로 난 구멍에다가 억지로 몸을 비집고 넣은 것은 당연지사.

‘시발.’

순간적으로 벽에 몸이 끼어 바둥바둥거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몸은 벽을 통과한다.

순간적으로 쾅! 하는 소리와 벽을 뚫고 김현성이 내게 손을 뻗지만 바닥에서부터 마력의 거인이 몸을 일으켜 김현성에게 팔을 휘둘렀다.

‘수집품 11번 얼음가루시계.’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냉기가 퍼져 나갔지만 날개로 몸을 보호한 녀석.

‘수집품 9번. 아이기스의 방패 조각.’

뻗은 팔은 방패 조각에 막히지만 그마저도 어처구니없게 파훼당한다.

하지만 잠깐의 틈이라는 것이 마법사에게 얼마나 유리한 이점을 가져갈 수 있게 만들 수 있는지 나는 안다.

‘지옥마력골렘.’

소환되자마자 두 동강이 나버리는 그 골렘.

‘더럽게 약하네.’

아무리 전부 수복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원정대에게 공포를 선사했던 그 골렘을 가볍게 벌레 죽이는 것마냥 쉽게 베어내는 것은 조금 놀랍다. 가고일이 멀쩡했으면 조금 도움이 됐을까?

‘시바.’

아이기스의 방패 조각도 분명히 한 번 사용했을 뿐인데 내구도를 한계까지 사용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내놔! 이 새끼!”

다시 한번 쿠웅!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외부에서 무언가가 마왕성을 향해 돌진한 것 같은 굉음. 다시 한번 쿠웅!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당연히 저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유추할 시간은 없었지만 소리는 계속해서 귀를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용을 탄 창을 든 기사가 벽을 뚫고 김현성을 향해 몸을 부딪쳤다.

대미지는 크지 않은 것 같았지만 무게와 질량을 이용해 김현성을 밀어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덤혜진?’

용의 뿔이 김현성과 부딪치는 그 순간, 푸른색 갑옷을 입은 기사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느낌. 그녀의 푸른색 안광은 분명히 내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

순식간에 펑 하고 이쪽을 지나치는 모습. 용과 함께 노을빛의 군주를 향해 창을 뻗은 기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넌 또 뭐야….”

“…….”

“왜… 왜 이렇게… 방해하는 거야… 제길… 도대체 왜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 거냐고…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까지… 난 그냥 찾고 싶을 뿐인데… 되돌려 받고 싶을 뿐인데….”

용에서 내린 기사가 창을 들고 검사에게 향하는 사이 커다란 용은 이쪽을 옷깃을 물고는 반대쪽으로 몸을 날린다.

“거기! 서!”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그 목소리는 금방 폭음에 묻혀 버렸다.

‘도와주려는 건가? 개 꿀.’

같은 생각을 하며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목도한 장면은 검사가 기사의 목을 붙잡고 위로 올리고 있는 장면.

‘어?’

방금 전까지는 분명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었지만.

‘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기사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 머릿속에 틀어박힌다.

‘어? 어?’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슴 쪽에서 휘몰아친다.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는 퍼즐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조립되는 그림이 떠오른다.

떠오르지 말아야 할 기억들이 떠오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길드마스터.]

‘어? 어? 어? 어?’

[사실은 말입니다.]

‘어? 어? 어? 어? 어?’

[사실은….]

‘아니….’

[아니. 돌아온 이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지 마.’

[부… 부길드마스터! 사실….]

“그 손 놔!!!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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