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85화
노을빛의 마왕성 (5)
꿈의 대결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켜볼 만한 대결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우효열의 포텐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이미 윌 근본에게 개발린 전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의 우효열과 지금의 우효열은 또 느낌이 다르다.
정확히 뭐가 달라졌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기는 했지만, 패배를 자양분 삼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녀석은 매 시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었다.
김현성과의 최종 결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으니, 이 타이밍에 흑집사 스미스 정도는 잡아야 체면이 선다.
아니, 잡지는 못하더라도 최고 동등한 싸움을 펼쳐야 했다.
‘여기서 어이없게 깨지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야. 진짜. 죽더라도 명예롭게 죽어야 되는 거라고.’
막말로 여기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로 패배한다면 둠진화 자체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포텐 자체가 낮은데 진화해 봤자 얻다 써먹겠는가. 끽해봐야 조연으로 써먹을 수 있겠지.
주연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우효열이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야 만 하는 타이밍이었다.
-그 역겨운 얼굴에 칼집을 새겨주지.
-든 것 없는 머리통에 바람구멍을 만들어주마. 쓸모없는 양아치 자식.
서로를 도발하는 대사를 주고 받은 직후,
먼저 움직인 것은 당연히 우효열 쪽이었다.
순식간에 쌍검을 고쳐 잡은 이후 곧바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처음부터 승부가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견제기로 날린 일격이었지만 녀석도 자신의 검이 이토록 쉽게 막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텁.
하는 소리와 함께 팔로 우효열의 손목을 막아낸 흑집사 스미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쾅! 쾅!
단거리에서 쏘아 보낸 마력탄환, 예상했다는 듯이 몸을 뒤로 젖힌 이후에는 곧바로 발을 놀린다.
퍼엉! 하는 가죽 터지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지만 유효타는커녕 제대로 된 대미지도 주지 못했다.
발차기는 스미스 대령에 팔에 다시 한번 막혔고 이후에 이어진 팔꿈치도 팔에 너무나도 쉽게 막히고 있다.
소리는 요란하기는 했지만 우효열이 대놓고 선보인 수는 던지는 족족 파훼되고 있었다.
-하!
‘스미스 대령이 원래 눈이 좋아. 최소한 눈은 너보다 좋을 거야.’
시작한 거리는 초근접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우효열에게 우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딱히 녀석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보통 중거리를 선호하는 스미스 대령이었지만 이런 초근접전에서의 역량도 결코 부족하지는 않다.
‘내가 괜히 데려왔겠냐고요.’
김현성이나 차희라, 정하얀같이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는… 상위 0.01%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스미스 대령은 파란 길드 내에서도 중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아래로 쳐야 되려나.’
김예리 같은 스펙 괴물과 비교하면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부족한 스펙을 경험과 연륜으로 커버하고 있다 말하는 게 옳다.
근접전이 약하다든가 패턴이 다양하지 않다든가 하는 약점들은 우효열 정도의 하수를 상대함에 있어서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많은 인원을 전부 표적 삼을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은 적의 공격을 잘 볼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효열의 시선, 녀석의 근육이 어디서 떨리고 어디서 수축, 이완되는지, 발을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어디서, 어떤 공격을 시도하려고 하는지,
스미스 대령의 눈이 모든 걸 보고 있을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마음의 눈처럼 직관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스미스 대령이 가지고 있는 눈은 우효열의 모든 행동을 잡아내고 있었다.
‘물론 쉽게 읽기는 힘들 거야.’
우효열은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허초를 잘 섞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우효열의 공격은 한 눈에 보고 읽기 힘들다.
정형화된 공격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다. 볼 수 있다고 해도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고, 의도를 파악했다고 해서 그게 꼭 맞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놈과 몸을 부딪치는 것이 불편한지 계속해서 콧수염을 꿈틀거리는 스미스 대령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생각보다 영 맹탕이군.
‘효열아. 너는 꼭 그런 대사 친 다음에 발리더라.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시바.’
쾅!
-죽어! 새끼야!
-…….
주먹, 발, 검, 팔꿈치, 어깨, 몸, 순식간에 몇 합의 공격이 지나가고, 순식간의 몇십 합의 공격을 받아낸다.
속임수와 수 싸움이 계속된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마력탄환이 발사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쾅! 퍼엉! 파앙!
스미스 대령이 녀석의 손목을 붙잡은 채로 마력 탄환을 뿜어내자 우효열은 팽이처럼 몸을 돌리며 손을 뿌리친다.
스미스 대령은 고개를 옆으로 숙여 검을 피해낸 이후 발로 녀석을 걷어차자 우효열은 몸을 뒤쪽으로 접으며 발을 피해낸다.
그사이 흑집사 스미스는 살짝 몸을 뒤로 옮겼다.
찰나라고 할 수 있었던 잠깐의 틈 동안 벌어진 약간의 거리. 스미스 대령이 마력탄환으로 상대방을 완벽하게 조준할 수 있는 거리였다.
-죽어라.
쾅! 쾅!! 쾅!!!
무차별 난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 직후였다.
손가락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다. 이후 연속적으로 쏘아져 나가는 마력탄환.
우효열을 벌집으로 만들려는 것인지, 악의적으로 마력을 담은 총구가 연속적으로 불을 뿜었다.
쾅! 콰쾅! 쾅! 쾅쾅! 쾅쾅쾅!
‘심하네.’
정면에서 맞았다면 형체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었던 공격이었다.
연기와 폭음에 우효열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녀석이 무사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한 곳에 멈춰 있던 총구가 움직인다. 아래로, 위로, 우효열이 도망치는 곳을 향해 계속해서 불을 뿜고 있다.
그리고.
-너 좋은 눈을 가지고 있군.
-…….
-…….
‘뭐야 저 송빌런이 할 법한 대사는.’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수로를 밝히던 야명주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우효열이 깨부수고 있었다.
지하수로를 밝게 유지하고 있었던 희미한 빛들이 점차 사라진다.
그리고.
암전.
시야가 어두워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마력탄환이 발사될 때 잠깐 동안 빛이 번쩍이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어둡다.
오히려 잠깐 동안 반짝이는 빛 때문인지 눈이 아파올 지경이었다.
쾅! 쾅!
우효열이 들고 있던 검이 흑집사 스미스의 팔을 노린다.
다시 암전,
쾅!
마력탄환이 우효열의 배에 틀어박히는 것이 보인다.
다시 암전,
쾅! 쾅! 쾅!
빛이 번쩍일 때마다 둘의 몸이 뒤엉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스미스 대령은 팔꿈치로 우효열의 턱을 가격하고 있었고 우효열은 무릎으로 스미스 대령의 배를 가격하고 있었다.
다시 암전,
쾅! 쾅!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흑집사 스미스의 몸이 밀려난다.
쾅!
스미스 대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쾅! 쾅! 쾅!
우효열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일종의 존 상태에 진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몸이 뜨거워 보였다.
스미스 대령 역시 마찬가지, 우효열이 가지고 있던 두 자루의 검은 더 이상 녀석의 손에 들려 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마력탄환을 막아내다 보니 사용할 수 없을 지경까지 망가진 모양.
물론 녀석은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정형화된 검술 따위는 없다. 우효열에게 검이란 상대방을 더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꼭 붙어 계속해서 주먹을 주고받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퍼억! 파앙! 하는 손으로 가죽을 두드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 역시 두드러진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빛이 다시금 번쩍였을 때는 우효열의 팔 한쪽이 기괴한 방향으로 비틀려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분명 미소 짓고 있었다.
-하… 하하하핫!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더 들어와 봐! 개새끼야!
-…….
-퉤! 제길!
-효열 오빠! 괜찮아요? 효열 오빠!
-아무도 오지 마.
-네?
-아무도 오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퍼억! 우드득!
쾅!
‘그래 아무도 가지 마. 어차피 깜깜해서 아무도 못 가자너.’
녀석은 지금 벽을 넘으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벽을 넘으려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일어나는 이 전투와 상황이 녀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희라 누나가 정하얀과 괴수 대격돌을 통해 벽을 넘어선 것처럼 우효열도 스미스 대령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가고 있었다.
녀석에게 필요했던 것.
악의와 독기.
이성과 수 싸움이 아니라 야성과 본능으로 몸을 부딪칠 수 있는 상대.
흑집사 스미스 대령은 항상 전자의 모습으로 전투를 벌이는 타입이었지만… 흔하게 찾아오지 않는 그라데이션 분노가 녀석에게는 득이 된 셈이었다.
-하하하핫!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반짝였을 때는 우효열의 옆구리를 마력탄환이 뚫고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스미스 대령을 분명 몰아붙이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쾅!
계속해서 빛이 번쩍이며 녀석의 몸이 벌집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스미스 대령은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다시 암전,
-개새끼야!!!!
-죽어라. 양아치 새끼.
-으아아아아!!
-…….
-퉤엣! 아아악!
우드득.
콰아아아아앙!
-죽인다. 죽인다!!
-죽는 건… 네놈….
-기필코 죽여 버린다. 재수 없는 콧수염 자식!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아아. 시바 누굴 응원해야 되지.’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미안해. 대령. 미안해….’
여기서는 우효열을 응원하는 것이 맞다. 스미스 대령이야 어차피 죽지 않을 테니까.
당장 우효열의 성장과 자존감을 올리는 게 급선무였던 만큼 이번에는 녀석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
-…….
그 이후 한참이나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은 상황.
계속되는 침묵이 부담스러웠는지 3연대의 마법사가 조용히 불빛을 키웠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피투성이가 된 스미스 대령과 온몸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는 우효열이었다.
‘이 새끼는 꼭 이렇게 극적이더라.’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진 것은 흑집사 스미스.
-너. 내가 죽여준다고 말했지.
우효열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발을 들어 올려 스미스 대령의 머리를 으깨버리려고 했을 때였다.
별안간 갑작스레,
환한 빛이 스미스 대령을 감싸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던전, 노을빛의 마왕성의 저주받은 엘프 여왕 엘레나와 조우합니다.]
[던전, 노을빛의 마왕성의 피에 미친 성전사 아르기르모와 조우합니다.]
[던전, 노을빛의 마왕성의 서큐버스 여왕 매혹의 예리엘과 조우합니다.]
[던전, 노을빛의 마왕성의 암흑 방패 수문장 바크더크와 조우합니다.]
[던전, 노을빛의 마왕성의 수집품 관리자 황정연과 조우합니다.]
[던전, 노을빛의 마왕성의 무기창고 관리자 유아영과 조우합니다.]
[던전, 노을빛의 마왕성의 그림자 암살자 리안과 조우합니다.]
암흑 방패 수문장 바크더크가 한 손을 커다랗게 휘두르자.
퍼어어어엉!
콰드드드드득!
우효열이 온몸에서 피를 뿜어내며 벽으로 튕겨 나가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