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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70화 (1,16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70화

버림받은 성녀의 군대 (1)

내가 빛의 화관을 쓰고 발걸음을 옮긴 순간,

[메인스트림, 노을빛의 군주의 두 번째 이야기. 버림받은 성녀의 군대가 시작됩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번째 이야기?’

이 메인스트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정황상 첫 번째 이야기는 아마 모두가 봤었던 21군주 찬탈 장면이었을 것이다.

로헨의 플레이어들과 관계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면 지금이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조혜진을 상대로 맞닥뜨렸던 1차 원정대는 제대로 뭘 보여주지도 못하고 리타이어.

세인트 벨 탈환 작전도 로헨의 중요 서사로 기록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피와 내장의 할키아스 같은 쓰레기 같은 놈을 메인스트림의 두 번째 이야기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당연하지만 시스템도 말단 악마를 메인스트림에 끼워 놓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림받은 성녀의 군대는 이 커다란 이야기를 연결하는 주제에 적합하다 판단을 내리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메인스트림 노을빛의 군주의 이야기로 향하는 첫 번째 다리와 같았다.

‘원래는 버림받은 자들의 성녀의 군대라고 하는 게 맞는데.’

기믹 부여받으면서 a.k.a도 달라진 것 같자너.

아무튼 간에 중요한 것은 이번 다리를 잘 건너야 한다는 것.

우회 루트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없으니 정공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이 공인한 이야기인 만큼 당연히 보상도 존재할 것이고 전체적인 스펙업이 필요한 로헨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단비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여겨졌다.

‘빡센 만큼 보상도 크니까.’

몬스터들이 전부 다 언데드 형이라 가져갈 수 있을 게 경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적절한 보상안이 마련된 셈이었다.

‘게다가 동기부여도 될 것 같자너.’

나처럼 보상이라느니 스펙업이라느니 하는 것들을 신경 쓰는 놈들은 여기에 없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버림받은 자들을 막아내고 있는 타이밍.

알 수 없는 뽕에 고취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번 싸움이 메인스트림이며 자신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만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막아!”

“막아! 틀어막아!!”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 이 시체 새끼들아!”

아마 시스템이 인류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있을 것이다.

시스템은 완전히 중립적인 입장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역사와 서사가 자기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생각하니까.’

메인스트림으로 노을빛의 군주 역시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뻔했다.

분위기에 고취되고 있는 병사들, 끊임없는 전투에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된 것처럼 침을 튀기며 고함을 내지르는 전사와 또렷한 눈동자로 목표물을 향해 시위를 당기고 있는 궁수들, 모두가 전장의 열기에 취해 있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도 존재한다.

“그럼 가겠습니다.”

기대감이 깃든 표정으로 꽃과 풍요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이런 영웅전기 같은 느낌은 언제나 좋더라.’

저들이라면 무언가 해줄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들, 파란 길드였을 때도 수십 번도 넘게 받아본 시선이었다.

현성이는 성격상 저런 시선에 부담을 느꼈었지만 꽃과 풍요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로헨을 이끌어 가는 제1 패밀리아 라는 자부심, 꽃과 풍요의 여신 아래에서 싸우고 있다는 신앙심. 윌리엄에 대한 믿음, 평소의 파란 길드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경험상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기적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

내가 일으켜 줄 수 있자너.

‘기적.’

눈을 돌리자 광활한 전장이 시야에 비쳐왔다.

언데드로 빽빽하게 차 있는 풍경이었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선희영에게 닿을 수 있는 최단거리의 루트.

자살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이 선봉에서 발걸음을 내딛자. 동시에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의 인원들이 발걸음을 내디딘다.

닥쳐오는 버림받은 자의 목을 벤 것을 시작으로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패밀리아의 일원들의 얼굴이 긴장과 흥분으로 가득하다.

“멈추지 마세요.”

“멈추지 마!”

“달려!”

“멈추지 마십시오!”

“고립되면 위험해요. 다음 좌표로 곧바로 이동하세요.”

“다음 장소로!! 다음 장소로 이동해!”

코앞에서 핏물이 튄다. 버림받은 자의 괴성이 바로 귓가에 들려오지만 내게 공격이 닿는 일은 없다.

“꽃의 바람!”

정령검사로 유명한 에밀리아가 이동속도를 높여주는 버프를 상시 유지시킨다.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도 두세 걸음을 내디딘 것처럼 느껴졌다.

육체노동은 취향이 아닌지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는 주저앉아버리고 싶었지만 전위들만큼은 아닐 것이다.

정면으로 거대한 웨이브를 막아내며 길을 뚫어내는 역할은 고된 노동이나 다름이 없다.

방패로 몬스터들을 밀어내고 윌리엄이 녀석들의 목을 벤다. 발길에 자꾸만 언데드의 시체들이 밟힌다.

물컹 하는 감각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하기는 했지만 에밀리아가 이쪽의 중심을 잡아준다.

“괜찮으십니까? 이기영 님.”

“네. 괜찮아요. 그보다 어서….”

“네.”

이처럼 서로가 서로의 뒤와 옆을 봐준다. 마법사들이 꽃잎을 휘날리며 계속해서 적들을 밀어내고 사제직군들을 혹시라도 버프가 끊길까 끊임없이 주문을 외운다.

“직진하세요.”

“네? 하지만… 전방에.”

“이기영 님. 전방에!”

‘이 새끼들 아직 믿음이 부족해.’

“직진하세요! 멈추지 말고!! 직진하라고요!”

“네?”

‘시바 놈들.’

“윌리엄! 앞으로 가요!!”

“네!”

대형 언데드들이 방패를 들이밀고 아군을 맞이했을 때, 어디에선가 거대한 태양이 떨어진다.

“보호 주문 외워!”

아군이 휘말릴 수 있는 거대한 폭발음.

그대로 보호마법에 감싸진 집단은 연기와 불꽃을 향해 돌진한다.

“숨 참아요!”

온몸이 불에 탄 것처럼 뜨겁다. 마치 사우나라도 들어온 것처럼 후덥지근한 공기가 계속해서 피부를 때린다.

연기와 불꽃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지만 길을 찾는 데는 무리가 없다.

“전진! 전진!”

“움직이세요!”

“움직여라! 움직여!”

연기를 빠져나온 이들이 바다 위로 올라온 고래마냥 거칠게 숨을 들이마신다.

“푸하!”

“하아아아으읍!”

“몇 번 더… 하아… 하아… 더 할거예요.”

‘시바. 나 이제 진짜 못 뛰겠어.’

날개도 없이 이렇게 오래 뛰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이기영 님 괜찮으십니까?”

“하아… 하아… 하아… 하아… 괜, 괜찮아요.”

‘시바 안 괜찮아. 이 새끼야.’

서로 시선을 교환한 꽃과 풍요의 인원들, 내가 더 이상 달리기 힘든 상태라고 판단했는지, 에밀리아가 냉큼 이쪽을 안아 드는 것이 느껴졌다.

“저, 하아… 하아… 저도 뛸 수 있어요.”

‘고마워. 진짜 한계였어.’

전반적으로 체력이 약한 후위직군들은 이미 안색이 창백해져 있다. 나보다 덜할 뿐이지, 직업 특성상 이렇게까지 뛰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방금 것으로 산소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은 게 독이 된 셈.

‘근데 승차감이 너무 구리자너.’

우리 애들은 리얼루 흔들림이 없는 편안함이었는데, 너무 흔들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움직여라!”

“발을 멈추지 마! 멈추지 마라!”

“허억… 허억… 허억… 허억….”

“다음 좌표로! 다음 좌표로!”

“전진해! 전지인!!”

“마법지원!”

“숨 참아! 숨 참아!!”

“하으으으읍!”

“푸하아아아아아!”

‘후위들 때문에 슬슬 뒤처지는데.’

계속해서 체력 회복을 하며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적된 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법사들은 이미 눈알이 돌아가 비틀거리고 있다. 주문을 외울 수 있을지 없을지도 걱정이 되는 모습.

‘차라리 저런 건 버리고 가는 게 더 좋겠는데.’

낙오자들을 어떻게든 쳐내야 팀이 고립되지 않는다.

‘그냥 떨어져 나가. 이 새끼야.’

“허억… 허억… 두고 가.”

‘그래, 그거야.’

“여긴 나한테 맡기고… 먼저 가!”

그래. 그런 희생정신이 있어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거야.

“꽃과 풍요는 가족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융통성 없는 새끼들은 가족을 버리지 않는단다. 차라리 이곳에서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형제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눈빛들.

당연하지만 나 역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네. 그 말이 맞아요. 꽃과 풍요는 절대로 가족을 버리지 않아요.”

절절한 대사에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먹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저 새끼는 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 모양.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는 있지만 자신을 두고 가라는 말을 세 번은 하지 않았다.

‘이럴 거면 시바 왜 버리고 가라고 했어? 기대하게 만들지나 말지.’

차라리 조금 페이스를 늦추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더 이상 페이스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

살짝 뒤를 돌아보자 이미 성벽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한 버림받은 자들이 시야에 비쳤다.

분전하고는 있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마법사들이 만든 성벽은 어디까지나 급조된 성벽이었고, 버림받은 자들과 다르게 인간들은 지친다.

시위에 담겨 있는 힘도, 검을 휘두르는 손도 점점 느려지는 것은 당연지사.

벌써부터 마력 고갈을 호소하는 마법사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못 늦춰.’

저 병력들은 어떻게든 살려서 데려가야 하는 병력들이었다.

만약 꽃과 풍요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의미는 없다.

‘아마 이거 끝나면 준비 좀 하다가 노을빛의 마왕성으로 쳐들어갈 텐데.’

그때를 위한 고기 방패들을 이런 곳에서 희생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이곳에서 경험치를 먹인 이후 마왕성에 밀어 넣어 배를 가르는 것이 수지맞는 장사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시점.

자칫 잘못하면 저들을 다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길을 뚫어요!”

“네!”

“얼마 안 남았어. 얼마 안 남았어요!”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하아… 하아….”

“으으윽!”

“더 버텨! 힘내. 발을 멈추지 마!”

“얼마 안 남았어요!”

다시 한번 선의의 거짓말.

“이야아아아아아아!!”

“진짜 얼마 안 남았어요! 움직이세요!”

하지만 세 번째까지는 통하지 않았는지 눈에 띄는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아니나 다를까. 점점 진영이 붕괴되는 것이 보인다.

체력을 거의 소진해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 심지어 전위들조차 힘들어하는 것이 보인다.

성벽 쪽 상황은 더욱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조립형 성벽의 몇몇 구역들이 이미 폐쇄되고 있다.

적들의 목적은 세인트 벨이 아니고 우리의 목적도 세인트 벨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수성전이었지만 플레이어들이 발을 디디고 서 있을 성벽도 얼마 남지 않았다.

“버텨!! 로헨을 위해! 로헨을 위해!!!!”

목이 터지라 사기를 진작시키는 놈들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겁먹은 개가 짖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지켜라! 로헨을 위해!!”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 최후의 최후까지 응전하라!”

“24번 성벽 철거한다. 빨리 이동해!”

‘시바.’

“로헨을 위하여!! 로헨을 위하여!!!”

‘안 되겠다. 뒤처지는 놈들 버리고 가야겠다. 꽃과 풍요는 가족을 버리지 않는다고 나발이고 버리고 가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그때였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전사에게 버림받은 자 하나가 달려드는 것이 보인다.

왼쪽의 적에게 정신이 팔렸는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 심지어 백업을 해줄 팀원들도 커버해 줄 수 없는 상황에… 커다란 블러드 골렘 하나가 몸을 일으키며 버림받은 자의 머리를 으깨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원군이다. 원군이야!!”

한 마리가 아니다. 계속해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블러드 골렘들이 꽃과 풍요의 앞길을 막는 이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누가 지원을 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구태여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헨델… 아헨델에서 원군이 온 모양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성벽 쪽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하얀의 괴성이었다.

“소, 소, 소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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