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44화
조금 이른 타이밍 (2)
‘얘네들은 또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당연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마 여기 있는 대부분이 저들이 누구이고 어느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로 느껴지는 게 있는 법이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은 폐허가 된 도시의 위,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는 세 명의 천사들.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저들이 하리젤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유추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심지어 무슨 중간보스 등장하듯 내려오지 않았던가.
“천… 천사?”
그 광경에 임채령이 멍하니 서서 중얼거린다.
‘천사기는 하지.’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적어도 외관 자체는 천사처럼 느껴질 테니 말이다.
순백색의 새하얀 날개와 미형의 얼굴, 순수함이 묻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앳된 얼굴들은 인간들이 상상하던 천사의 모습 그대로를 하고 있었다.
‘많이 컸네.’
나 떠날 때만 해도 초등학생들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중딩들 같자너. 애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훅훅 커버리더라.
그 앳된 얼굴로 살기를 내뿜고 있는 쓰로누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방금 전 우효열이 공격받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임채령 역시 뒷걸음질 치며 단검을 꺼내는 중. 레이먼 볼트 영감도 조용히 전투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녀석들이 어디에서 나타난 놈들인지, 어째서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의문을 표하기 전에 나온 확실한 답.
저들은 적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남궁선의 얼굴에 맺힌 식은땀이 턱에 고였다가 떨어진다. 아무리 아이들이라고 한들, 자신이 지금 인간을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들을 마주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세… 세라는… 왜… 왜… 못, 못, 못 왔지….”
정하얀은 혼자서 고개를 숙이며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비전투직군인 노담혜는 아예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당장에라도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던 일촉즉발의 상황.
조용한 목소리가 케루빔의 입에서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버지.”
“…….”
“아버지.”
모르는 척하기.
최대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특정하는 것이 맞냐는 듯한 움직임을 선보인다.
조금은 두려워하는 몸짓, 살짝 뒷걸음질 치고… 누가 보기에도 저들을 경계하는 것처럼 입술을 오물거린다.
케루빔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실망감이 들어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황상 이미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우냐?’
아직 정신상태가 애새끼에 머물러 있는 만큼 감정을 컨트롤하는 게 힘이 드는 모양.
케루빔뿐만이 아니었다. 쓰로누스도, 도미니온스 역시 충격을 받은 듯이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잖아. 동요하지 마. 쓰로.”
‘케루빔, 네 눈에 고인 눈물부터 어떻게 하고 이야기해.’
“응.”
“도미니온스….”
“작은어머니도 계셔. 우리끼리 가능할까?”
“작은어머니는 힘이 봉인당하셨을 거야.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세 명은 약해. 나머지 둘도… 그렇게 강한 것 같지 않아.”
“작은어머니도 기억을 잃으신 걸까?”
“나도 몰라.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무조건 아버지 말을 따를 확률이 높다고 하셨으니까.”
“설득해 보는 건 어떨까? 작은어머니에게 잘 말씀드린다면….”
“설득할 여유가 없어. 아버지가 계시잖아. 우리가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상대는 아버지야. 그걸 명심해.”
“아버지는 기억을 잃으셨어. 아무리 아버지지만….”
“그래도 경계해야 해. 아버지는….”
‘왜 이렇게 속닥속닥거려.’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걸까? 아버지한테….”
“그렇게 생각하지 마! 쓰로! 아버지한테 검을 드는 게 아니야. 아버지를 빼앗아간 로헨에 대항하는 거야. 어머니들도 합의하신 내용이야. 네 사부님도….”
“…….”
“그러니까 방심하지 마.”
‘방심해도 되는데….’
“나머지는…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너네 금제 걸려 있잖아.’
외신 4인방은 인간을 죽일 수 없다. 적어도 나와 지혜 누나가 합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버지가 슬퍼하실 거야. 그러니까….”
“응. 알아들었어.”
“도미 여유는 있어?”
“조금 애매해. 작은어머니도 계셔서… 내가 큰 힘을 쓸 수는 없을 거야.”
“응. 그럼 무리하지 말고 후방지원에 힘써줘.”
“응.”
‘우리도 쟤네처럼 작전타임 가져야 되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어차피 탈출이 주목적이고 작전은 전부 내 입에서 나올 테니까.
이쪽을 과대평가하는 게 당연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패배할 확률이 높은 싸움이었다.
우효열이야 어찌 됐든 간에 합을 맞출 수는 있겠지만….
‘나머지 셋이 문제야.’
도미니온스가 마음먹고 달려든다면 정하얀도 나머지 세 명을 봐주기 힘들 것이다.
그나마 고참이라 할 수 있는 레이먼 볼트 영감 역시 어떻게든 몸을 웅크리며 진영이 깨지지 않게 하는 것 정도가 한계 아닐까.
아무리 저 꼬맹이들이 전성기 시절에 한참 못 미치는 퍼포먼스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페널티를 많이 먹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어째서 잿빛 노을 지역이 아닌 장소에서도 돌아다닐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너희들은 외신 비자 받고 밀입국해서 왔구나.’
원래 밀입국이 저 꼬맹이들의 정체성이니 굳이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놀라운 건 저 꼬맹이들을 외부 탐색 요원으로 돌린 판단이었다. 잿빛 노을 지역 외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인선이라고 생각하면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아직 어리기는 했지만 세라핌을 제외하면 다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편이다. 무력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
도미니온스의 권능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동은 이 임무에 딱 들어맞는다.
‘추격은 하얀이가 막아 줄 수 있을 것 같고….’
하나하나 엄밀히 분석해 보면….
모두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구태여 그래야 되나 싶기도 하고….
어차피 우효 파티에게는 패배하는 게 필요했으니까.
로헨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고, 우효열을 봐줄 수 있는 시간도 짧았다. 한 번 한 번이 소중한 에피소드인 만큼 이런 갑작스러운 이벤트 전에도 스토리를 만들어야만 했다.
‘동료를 잃는 건 너무 빠른가?’
아직 정도 안 붙였는데….
생각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바로 이쪽을 향해 쇄도하는 쓰로누스와 케루빔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기 때문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쪽에서도 인형 하나가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우효 녀석이었다.
“할아버지!”
“그래.”
“하얀 씨. 저쪽 마법사.”
“아… 네! 오빠!”
“다들 정신 차려요!”
‘한 명은 빠져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케루빔과 우효열이 부딪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외신 아이들 중 가장 피지컬과 실력이 뛰어난 만큼, 케루빔이 가장 힘든 일을 하기로 결심한 모양.
기다란 낫을 들고 있는 녀석의 모습은 중2병에 걸려 설치는 꼬맹이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전투 스타일은 그렇지 않았다.
우효열의 무기가 짧다는 것을 고려했는지 기본적으로 낫을 크게 휘두르지 않는다.
끝쪽에 달린 창으로 견제를 하는 게 먼저, 물론 아예 베기를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간만에 크게 휘둘러진 낫, 허리를 뒤로 젖혀 낫을 피한 우효열은 미끄러지듯 케루빔의 몸 안에 파고든다.
기다렸다는 듯 날개를 펼치며 뒤로 이동하는 케루빔이 자신의 안쪽으로 달려든 우효열의 목을 바깥에서 안쪽으로 수확하려 하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중거리에서 견제하고 안쪽으로 들어오는 녀석의 시야 밖에서 목을 노리는 전술인 기본적이지만 효과적이다.
하지만,
까앙!
우효열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돌려 자신의 뒤를 노리고 들어오는 낫을 막았다.
“어?”
마치 짐승 같은 움직임,
오히려 그 탄력을 이용해서 상대방에게 쇄도하고 있다.
일반적인 검보다는 짧고 단검보다는 긴 두 개의 검을 쥐고 케루빔의 하단을 노리는 모습은 본능에 기인한 것 같다.
잠깐 당황했던 케루빔은 공격을 막지 못할 거라는 것을 직감했는지 날개로 자신을 감싸버렸다.
콰앙!
공격은 먹히지 않는다. 케루빔의 내구를 뚫을 정도로 우효열의 레벨이 올라온 건 아니었으니까.
“케루! 괜찮아?!”
“응. 걱정하지 마, 쓰로. 조금 까다로운 타입일 뿐이야. 짐승 같아.”
“…….”
“이길 수 있겠어?”
“응. 질 것 같지는 않아. 그보다 아버지를 부탁해.”
‘내가 봐도 그래.’
분명 실력은 우효열이 위다. 케루빔이 윌근본처럼 근본에만 매달리는 타입이었다면 아마 고전했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희라 누나가 쟤를 동류라고 인정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뭐.
‘쟤도 개싸움 좋아하니까.’
케루빔 쟤는 그냥 근본 있는 척하는 것뿐이다.
얌전하고 이성적인 척, 냉철한 사고를 하면서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척.
머리카락 색깔마냥 전형적인 물속성 캐릭터인 척하고 있었지만… 내면은 전형적인 불속성 캐릭터였다.
잘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다시 한번 낫을 돌리며 우효열에게 달려드는 퍼랭이의 모습이 보였지만 이번에는 녀석을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없었다.
쓰로누스가 이쪽으로 달려드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얀 씨! 강화마법! 전부 걸어줘요!”
“네. 오, 오, 오빠.”
“남궁선 뭐 해요! 버프! 채령 씨도 빨리 진영 잡아요!”
“네… 넷! 이제 어떻게 하죠? 이제? 이제 어떻게 해요! 부파티장님!”
“…….”
“…….”
“도망가요! 모험가 길드 쪽으로!”
“네?!”
‘드잡이질을 할 땐 하더라도 맵은 바꿔야지. 너무 불리하자너.’
“건물 안쪽으로 이동하면서 하리젤을 빠져나갈 거예요. 그 와중에 계속 효열 씨를 지원할 거고요.
큰 기술은 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다치는 것도 경계해야 했고, 애초에 쓰로누스는 큰 기술이랄 게 별로 없었으니까.
쓰로누스의 강하지만 그만큼 심플하다.
일반적인 검보다 훨씬 긴 장검을 다루는 것으로 끝. 좁은 장소라면 위력도 반감시킬 수 있고,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다는 이점도 지울 수 있다.
파티의 탱커를 향해 휘둘러 오는 검, 흐읍 하고 크게 숨을 삼킨 볼트 영감이 팔에 힘을 꽉 주지만 중심을 잃는다.
그마저도 정하얀의 강화마법이 아니었다면 방패 채로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튀어 나가지 마요. 채령 씨.”
“하지만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는 괜찮아요.”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서려 있다. 처음 마주친 강대한 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아마 나 역시 그런 얼굴을 하고 있겠지.
‘왠지 모르게.’
왠지 이번 싸움에서 동료를 잃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 이르기는 했지만.
누군가를 파티 성장의 제물로 삼아야 하는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굴… 누굴 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