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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42화 (1,14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42화

몰락한 왕의 묘지 (8)

“정말 괜찮을까요? 부파티장님? 정령도둑이….”

“개인적으로는 좋은 선택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지속적으로 직업을 갱신해 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물론 베이스가 되는 직업이 정령사인 만큼 친화력이 중요하겠지만, 해당 아이템까지 지원해 주신다면….”

“아! 방금 또 말씀하셨어요. 친화력을 높이는 아이템들도 레벨이 오를 때마다 지급해 주신다는 것 같아요.”

“흥.”

저 흥은 자신이 할 말이 있다 의 흥이었지만 잔뜩 흥분해 있는 임채령에게는 들리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쪽 역시 의도적으로 녀석의 흥을 무시하고 있는 중.

조금 표정이 구겨지기는 했지만 발걸음을 돌리거나 하지는 않는 것을 보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 것 같았다.

‘좋은 현상이야.’

끼어들 타이밍을 못 잡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이렇게 먼저 나서는 게 어디야?

“좋은 멘토가 있다면 좋을 텐데… 제가 알기로 패밀리아 꽃과 풍요에도 정령사분이 한 분 계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꽃의 정령사 에밀리아 님이라고….”

“아앗! 알아요! 정령검사 에밀리아님! 와아! 와아아앗!”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만약 정령도둑을 선택하신다면… 자리를 주선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에? 정말이요? 정말이에요?!”

“흥.”

이 어린양이 여섯 정령의 어머니에게 낚여 정령도둑을 선택하는 불상사를 막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순진무구한 꽃기영 역시 정령도둑의 가능성을 피력하며 그녀를 선동하고 있는 중이니, 우효열 입장에서는 애가 타는 게 당연한 상황.

기껏 발견한 원석 아닌 원석을 이렇게 잃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쪽에 대한 의문도 함께 나타나고 있었지만….

‘가끔은 인간미 있는 모습도 보여 줘야지.’

어떻게 23살 꽃기영이 완벽하기만 할 수 있을까. 던전에 대한 연구도 완벽하고… 심지어 검술에도 빠삭하지. 게다가 천재 전술가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는데….

너무 완벽한 건 인간미가 없다. 좋은 활약을 보여줘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으니 이 정도 즈음에 허당미를 보여주는 것이 맞다.

로헨의 게니우스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으로 하자.

“만약 중급정령을 소환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아쉬운 방진의 한 곳을 맡길 수도 있고요.”

“아아. 그러네요. 저희 포메이션 상 왼쪽을 비어두는 일이 대부분이니까요. 부 파티장님 말씀이 맞아요.”

“흥.”

세 번째 흥.

한 번 더 무시하고 싶었지만 마음씨 약한 남궁선이 녀석 대신 입을 열어온 탓에 그럴 수 없었다.

“저… 파티장님이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아요.”

“…….”

“…….”

“어처구니없는 선택이라 말하고 싶군.”

“네?”

“여섯 정령의 어머니라고 했나?”

“맞아요! 여섯 정령의 어머니가 정령도둑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특정 병과에 특화되어 있는 게니우스들이 있다는 거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섯 정령의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정령사들을 주력으로 육성하는 게니우스다. 이제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나?”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네가 기대할 만한 효율을 뽑아내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네게 정령사로서의 재능이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지만 보통 게니우스들이 욕심으로 만들어낸 듀얼 클래스들은 빛 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내가 괜히 노을빛의 성자를 쳐낸 게 아니자너.’

김현성이 사제 직군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산전수전 다겪은 회귀자인 만큼 어떤 스킬들과 어떤 능력들이 좋은지에 대해 이해하고 있기야 하겠지만 직접 클래스를 생성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크게는 스킬의 능력과 마나 효율, 능력치 조정, 작게는 차마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부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

아마 김현성이 만들었다는 노을빛의 성자는 큰 기술을 뻥뻥 터뜨리는 먼치킨 직업이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것도 시스템의 블락에 막혀 반쪽짜리로 탄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 한 번 갈기고 나면 곧바로 녹초가 되어버렸겠지.

여섯 정령의 어머니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기영 코인을 타고 싶어 급조한 듀얼 클래스에 깊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 하지만 패밀리아 꽃과 풍요에는 여러 직군들이 몰려 있잖아요! 그건….”

“대형 패밀리아를 유지하고 있는 게니우스들 같은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 그 녀석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구축하고 있다.”

“으….”

“더불어 네게는 정령사로서의 재능이 없어 보이는군. 천둥벌거숭이, 혹시 정령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나?”

‘그럴 리가 없자너.’

“직업, 불길을 걷는 자 역시 마찬가지야. 화염 속에서 불타는 새…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게니우스지만 네게 어울리는 선택지는 아니다. 너는 그 게니우스를 감당할 수 없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상위의 게니우스들은 상위의 플레이어들을 위한 클래스들을 준비한다는 소리다. 멍청이. 페널티 없이 화염 속성을 인챈트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능력이지만, 네가 다른 능력들까지 전부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레이먼 볼트가 멍청해서 상위의 게니우스들과 계약하지 않는 건 줄 아나?”

“아….”

그것도 그래. 맞는 말이야.

“주제를 모르고 분에 넘치는 힘을 탐한다면 내부에서부터 몸이 붕괴하고 말거다. 네 주제는 딱 거기까지야.”

한참이나 열을 올리던 임채령이 갑작스레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잠깐 동안 침묵이 내려앉은 장내.

“걱,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모야모야. 둘이 모야?

“…….”

“…….”

물론 로맨스는 없었다.

“웃기는군. 천둥벌거숭이. 걱정해서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으윽….”

“너와 계약하려고 하는 게니우스들과 직업을 다시 한번 말해봐라. 대충 살펴줄 테니.”

“아.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나도 한마디 해줘야지.

“고마워요. 저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흥. 네놈이 완벽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정 범위 내야.”

‘이 새끼 진짜 기분 좋아보이자너.’

인간미 보여준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인다.

당연히 녀석의 상태가 좋아진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방 먹였다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오랜만에 주도권을 찾은 것처럼 느끼지 않을까.

버스를 타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녀석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운전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래로 현재까지 계속해서 끌려다니기만 했으니 이런 상황이 내심 반가웠으리라.

“네놈은 운이 좋은 편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꽃과 풍요의 여신은 사제직군에 특화되어 있을 테니까.”

“아… 그렇군요.”

“이상한 곳에서 멍청하군. 네놈은.”

“하… 하하….”

‘딱히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이쪽에게 한 방 먹인 후에는 본격적으로 직업 탐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방금 한 대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꽤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사실 유피테르 파벌 내에서 직업과 계약을 준비해 주기로 했었지만 우효열의 선택에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기는 했다. 어차피 녀석이 키울 거고, 스타일도 나름 비슷해 보이기도 했으니까.

“아까 전에 뭘 들은 거지? 이것도 논외다. 사령의 암살자? 지금 농담하는 건 아니겠지?”

“아. 하지만 이건… 무려! 사!령!술! 이라고요.”

“닥치고 내 말 들어라.”

“으으윽… 말 좀 예쁘게 해주시지.”

“이것과… 이건 나쁘지 않군.”

‘역시 저거 고를 줄 알았자너.’

레이먼 볼트 영감, 정하얀과 함께 보상 아이템을 정리하며 녀석을 바라보자 어느덧 선택지를 두 개로 줄인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3레벨 단검 무법자.’

내가 의뢰한 직업이었다.

“으엑! 구려요! 이름이 단검 무법자가 뭐예요. 게임 초반에 마을에서 등장하는 잡몹 같은 직업이잖아요.”

“입 다물어라. 네게 딱 맞는 직업이니까. 도둑 스킬도 도둑 스킬이지만 근접 전투 숙련도에서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은….”

“전… 전 이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이걸로 할래요. 이걸로. 거룩한 밤의 도둑.”

‘3레벨 거룩한 밤의 도둑.’

무려 거룩한 밤의 여주인이 내린 직업이었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단검 무법자가 네게 더 어울려. 거룩한 밤의 여주인은 상위 게니우스다. 밸런스가 잘 잡혀 있는 것 같지만 네가 소화하기 쉽지 않을 거다. 특히나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이 파티에 특성상, 직업 숙련도에 너무 오래 붙들려 있을 시간이 없어.”

“그럼 왜 선택지를 준 거예요? 그냥 단검 무법 뭐시기 하라고 하지.”

“조용히, 지금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꽤 신중하게 봐주네.’

3레벨 단검 무법자는 이미 성공하는 게 확실시되어 있는 클래스다.

이쪽이 딱 임채령을 위해 준비한 옷이지만 거룩한 밤의 도둑도 딱히 나쁜 선택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일단 상위 게니우스가 만든 직업 치고 출력이 과하지 않다는 것, 지금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서 영약이라도 주워다 먹인다면 제법 쓸 만해질지도 모른다.

아마 거룩한 밤의 도둑의 직업 특성인 ‘밤의 망토’가 끌리는 거겠지. 1초 동안 마법 저항력과 이동속도가 100% 상승한다는 건 놓치기 힘든 메리트일 테니까.

물론 패시브 스킬이 아닌 만큼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갈린다는 단점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잘만 키운다면 마법사직군의 악몽이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예리 정도만 되도 직업이고 특수능력이고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걔는 지가 만든 매혹의 춤 가지고 잘만 썰고 다니자너.’

“제발. 제발… 거룩한 밤의 도둑 하게 해주세요. 열심히 할게요. 제발.”

‘단검 무법자에 있는 무기 막기 숙련도 증가가 아쉽기는 할 거야.’

솔직히 당장 밤의 망토가 있다고 해도 얘가 뭘 할 수 있겠어.

아마 우효열도 같은 생각일 것 같았다.

“지금 거룩한 밤의 여주인에게 레벨 4 때 다시 한번 계약을 추진해 줄 수 있는지 물어봐라.”

“네? 그거 게니우스님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네가 욕심이 난다면… 패널티를 감수하고서라도 메시지를 보내겠지.”

“…….”

“…….”

“앗! 해주신대요!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럼 결정 났군.”

“으으으… 좋기는… 좋기는 한데….”

“일단 단검 무법자를 선택해 숙련도를 올린 이후… 거룩한 밤의 도둑은 생각해 보는 것으로 하지. 네 훈련 성과에 따라서 다음 선택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진짜 열심히 할게요. 진짜.”

‘대충 결정됐나 보네.’

친절하고 따뜻한 우효열 상담소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였다.

‘우효… 너 생각보다 더 감겼구나.’

따뜻하고 안락한 파티에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구나.

솔직히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하리젤로 돌아온 직후에는 더욱더 생각을 확고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파티 하우스가, 아니… 불에 타 흔적이 얼마 남지 않은 여관을 눈앞에 둔 우효의 입이 꾹 다물어져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집이… 없어졌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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