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33화
파장 (2)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핫!”
“농이 과하십니다! 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 정도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머리에 든 것도 없는 놈들이 이렇게 나를 맥이네.’
“…….”
“…….”
“그래서. 하하핫. 하하! 그래서 이 시점에 우리 천재군사님께서는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또 책이라도 읽으실 생각이십니까? 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
이 새끼들 내가 뭐라고 말해도 비웃을 거야.
하지만 입을 닫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놈들의 비웃음과는 별개로 이기영은 항상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스탠드를 고수해야 했으니까.
일단은 내가 생각해도 우습게 들릴 수 있는 계획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저희 파티는 하리젤을 기점으로 활동할 예정이에요. 자금을 확보하려는 길드가 싼값의 넘긴 던전의 정보를 사서… 로헨의 시선이 쏠린 사이에… 레벨3의 던전을 클리어하려고 합….”
“하하하하하핫!”
“허허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핫!”
“그렇군요. 레벨3 던전부터 클리어해야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놓고 비웃는 거 봐.
딱딱했던 회의실에 웃음꽃을 들고 온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였지만 이걸 원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막 로헨 대륙으로 넘어온 이기영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
“어… 아… 그, 그러니까….”
수치심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앞서 펼쳤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들을 설명해 보려고 하지만 이 무뢰배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 당연했다.
조금 여린 사람이었으면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르는 상황, 이걸로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꿋꿋한 기영이는 저들의 조리돌림에도 용기를 잃지 않지. 왜냐하면.
쾅!
윌근본이 탁자를 내려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 웃었냐는 듯이 순식간에 장내에 침묵이 감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윌리엄을 보고 있자니 녀석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꽃과 풍요의 안주인이 모욕당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웃음바다가 된 회의실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까.
이 새끼가 나서줄 거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더 격정적인 반응에 괜스레 고마워진다.
“제가 분명히….”
“…….”
“이기영 님은 저희 꽃과 풍요의 가족이라 말씀을 드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방금의 행동은 저희 꽃과 풍요를 모욕하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분위기 좋아.’
아마 보통이었다면 그대로 회의의 주도권을 끌고 올 만한 헤프닝이었겠지만 저들은 협박을 경고로 받아들인 모양.
폼으로 5대 패밀리아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한다.
“미안합니다. 윌리엄 님.”
“저희가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나 봅니다.”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나한테는 사과하기 싫다 이거자너.’
꿈틀거리는 눈썹이 불편한 기색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저들도 바보는 아니다.
“미안하네.”
“우리가 농담이 조금 지나쳤군.”
“미안해요. 천재군사님. 기분 나쁘셨죠?”
윌리엄에게 건네는 것과는 확연이 다른 사과였다.
“이해해 주게. 천재군사. 자네가 로헨 대륙에 조금만 더 빨리 들어왔더라도 아마 우리가 어째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했을 게야.”
“…….”
질세라 건방진 녀석이 곧바로 말을 이어온다.
“그 잘난 계획을 다시 한번 듣기 전에… 내가 먼저 묻지? 위험하지 않은 세상천지에 원정이 정말로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
“이곳은 말이다. 위험이 클수록 얻을 수 있는 보상도 많아지는 법이야. 당장 네가 몸담고 있는 패밀리아 꽃과 풍요가 성장하게 된 계기는 알고서 하는 소린가? 메인 스트림 몬스터 침공 때 가장 커다란 공을 세운 패밀리아의 일원이 그런 소리를 하다니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어?”
“그건….”
“당시 그 누구도 가능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전공을 세운 게 바로 저 윌리엄이지. 천재군사. 당신 같은 전문가들이 모두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단 말이다. 후퇴해야 한다고,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말한 것을 한 자루의 검으로 뒤집은 게 바로 저 대도시의 영웅 윌리엄이야. 여기 있는 다른 이들이라고 다를 것 같나? 레벨3으로 레벨5의 던전을 클리어한 플레이어도 있고, 당시 공략법이 나오지 않은 드레이크를 사냥한 패밀리아도 있지.”
‘고작 드레이크 몇 마리 사냥했다고 뻐기는 거 봐요.’
“확률, 불가능, 위험 따위의 말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건지… 웃기는군….”
“…….”
“고작 책상 위에 앉아서 몇 자 읽은 거로 로헨을 전부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우리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나?”
‘응 멍청해요.’
“여기에 모인 그 누구도, 이번 사태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게 아니야. 정보가 부족하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아는 게 없다고 몸을 사린다면 어떻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겠나? 그래. 엄밀히 말하면 그 잘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당신의 눈에는 우리가 멍청해 보일 수도 있겠지. 무모하고, 앞뒤 안 가리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바보들이라 생각해도 좋아. 실제로 네가 그렇게 자랑하는 병법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놈들이 태반이지. 하지만 말이야. 로헨에 처음 소환되고 나서 지금 이 자리에 올라오면서 얻은 교훈은 똑똑히 기억해.”
“…….”
“부딪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다는 거야.”
“…….”
“부딪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는 게 없고. 부딪치지 않으면 위로 올라갈 수도 없지. 부딪치지 않으면 언제나 제자리걸음을 하게 될 뿐이야. 내 말이….”
“…….”
“무슨 뜻인지 알겠나?”
연설을 끝낸 멍청이는 꽤 만족스러워 보인다. 심지어 저 멍청이의 말에 감정이 고양되어 콧구멍을 벌렁이는 녀석들도 눈에 띈다.
거칠게 살아온 상남자들 코스프레라도 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내 눈에 이 새끼들이 운빨로 살아남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확률을 높여주는 과정을 거치기야 했을 것이다. 개인 기량을 올리고,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고, 탈출할 수 있는 매뉴얼과 장비 같은 것들도 신경을 쓰기야 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지휘체계, 사냥과 원정을 준비하는 프로세스는 미개하다 못해 웃음이 나올 지경이 아니었던가.
막말로 이놈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정말 대처 불가능한 적을 만나지 못해서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아주 조금만 수틀렸더라도 여기 있는 놈 중 반이 뒈졌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몬스터 대침공? 레벨5 던전? 드래곤도 아니고 드래이크?
지금까지 몇 번의 메인스트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을빛의 마왕은 놈들이 만든 확률에 의지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를 앞에 두고도 저런 말을 지껄일 수 있을까.
만반의 만반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한번 박아보고 판단하겠단다.
로헨은 게임처럼 수십 번이나 트라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죽으면 그걸로 끝, 패턴을 확인한다든가, 던전의 규모를 확인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녀석들이 잿빛 노을 지역에 세이프티 존을 만들어 놓아야 가능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우리는 네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아. 마지막으로 아까 저지른 무례는 사과하고 싶군. 그냥… 웃음이 나왔을 뿐이었어. 어째서 내가 그렇게 웃었는지 이제 이해가 가나?”
다시금 말을 끝낸 이후에는 슬그머니 윌리엄을 바라본다.
네 녀석은 어떻냐는 듯한 표정, 우리의 말에 공감하지 않냐고, 너도 우리와 같은 부류가 아니냐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근본 잃는 건 아니지?’
여기 있는 새끼들이 모두 나를 적으로 돌려도 윌근본. 너는 내 편이지?
물론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방금 있었던 비웃음 사건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모양인지, 녀석들에게 호의적인 표정이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틀렸나? 윌리엄?”
“…….”
“…….”
그리고 떨어진 커다란 폭탄.
“꽃과 풍요는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반응이야 뻔했다.
“뭣?”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윌리엄 마스터. 그게 정말이요?”
“하….”
“멍청하군.”
“이유라도 말해줄 수 있나?”
“이유는 이기영 님께서 대신 말씀 하셨습니다. 꽃과 풍요는 확실하지 않은 도박에 모든 것을 걸 수 없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다니… 하… 대도시의 영웅이 하는 말치고는 참으로 볼품없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많은 동료와 가족들을 잃었습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크다는 것을 어떻게 잊으실 수 있는 것인지… 적어도 지금부터라도…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모험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겁쟁이가 다 됐군.”
으득 하면서 이빨을 가는 것마저 곧 뒈질놈의 리액션처럼 보인다.
심지어 여기저기에서는 고성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지들 전력이 약해지는 건 싫다 이거지. 가장 영향력 있는 패밀리아가 빠지면 동맹의 전력이 아쉬워질 테니까.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우리는 공방 동맹이 아니요! 가장 중요한 순간에 혼자만 발을 빼겠다니 제정신인가!”
“동맹에서 탈퇴한다는 소리로 받아들여도 되겠소?”
“하! 웃기는군! 천재군사? 윌리엄 마스터. 정말로 이 정신 나간 작자에게 우리 동맹의 운명을 맡길 생각이십니까?”
“…….”
“…….”
“정신 나간 작자?”
“…….”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기영 님은 손님이 아니라. 꽃과 풍요의 가족이라 말입니다. 다시 한번 그를 모욕한다면….”
“정신 나간 작자가 아니면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오?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의 말에 어째서 우리가 영향을 받아야 하냐 이 말이요!”
윌근본은 근본 넘치는 녀석이지만 가족을 욕하는 무뢰배들에게까지 예의를 차리지는 않는다.
곧바로 벌떡 일으켜 장갑을 던지며 결투신청이라도 할 것만 같은 기세.
에밀리아가 그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하얀색 장갑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당신.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이런…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요!”
“그만! 그만합시다! 여기에서 우리끼리 싸울 이유가 있습니까? 후우… 언젠가는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쯧. 다시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윌리엄 마스터. 정말 이번 원정에 참여하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지금은 아닙니다.”
“쯧쯧… 아쉽지만 아무래도 꽃과 풍요와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바라던 바.”
“이후에 찾아오신다고 하더라도 동맹의 문이 열리는 경우는 없을 거라는 것 잘 알아두시길.”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몸을 벌떡 일으킨 근본이 눈에 띄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에밀리아를 앞에 두고서는 이쪽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여전히 근본력 넘쳤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
“아니요. 제가 더….”
문이 쾅 열리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허억… 허억… 방…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뭐?”
“패밀리아 지하세계의 왕이 잿빛 노을 지역으로 진입.”
“제기랄! 이 개새끼들이 벌써… 선수를 쳐?”
“잿빛 노을 지역에… 세이프티 존을 만드는 것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실종자 다수에… 생, 생존자는… 한, 한 명으로….”
‘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공포에 질려 광증을 겪고 있는 상태입니다. 진입한 지… 겨우 이… 이십 분 만에 벌어진 일이며….”
“…….”
“심지어 노을빛의 마왕을 만난 것이 아니라… 검은 용 위에 올라탄 창을 든 여자와 마주쳤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1넴부터 빡세겠자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