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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28화 (1,12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28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동료 (13)

몇몇 녀석들이 깜짝 놀랐는지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얼굴에 들어서 있는 감정은 당황스러움, 혹시나 본인들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새끼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완전한 독립 절차를 밟고 있는 이쪽 대륙의 자세한 사정은 알 턱이 없었겠지만, 당연히 들려오는 소문 정도는 들은 적이 있지 않았을까.

애초에 이쪽을 픽한 게 저쪽이었으니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이명부터가 희생과 부활의 신.

빛의 아들이라 불릴 때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대륙을 지켜낸 성자의 아이콘, 사랑으로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 모든 대륙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대륙을 떠난 진짜.

소외된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어려운 것들을 보고 지나치지 않는 무골호인.

태어나길 선인으로 태어났으며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천사.

흔하지 않게 오롯이 선의와 사랑으로 대륙을 구해낸 위인이었다.

그것 외에는 희생과 부활의 신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희생과 부활의 신은 무료로 해결해 줍니다 따위의 간판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

‘호구 하나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 하자너.’

당연히 이 정도로 거친 표현은 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새끼들은 동네 삼류 양아치들이 아니었으니까.

엄밀히 따지면 회사로 예를 들 수 있지 않을까.

값싼 인력을 들여와서 최소 지원만 해주고 프로젝트를 맡기는 꼴.

당연히 녀석들의 심정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자본을 모아서 회사를 설립하고 회귀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엄청난 비용을 쏟은 상황.

다른 곳에 투자할 여력도 여건도 없었고 프로젝트를 실패한다면 사실상 파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인력과 자원마저 없는 상황이지만 계속해서 공을 굴려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답은 뻔하지 않은가.

‘비용 절감해야 되자너.’

외부에서 유능한 책임자를 불러와서 최소한의 비용에 최고의 효율을 뽑을 수 있게.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통해 전달한 코인이 이 새끼들이 비용 처리한 전부라고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수지맞는 장사가 또 어디 있을까.

손익분기점 생각도 해야 할 테니, 이쪽에 커다란 지원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적합한 인재를 찾기 어려운 시점에 혜성처럼 등장한 희생 중독자는 유능하고 따뜻했으며 손익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성자였다.

갑작스레 그 성자가 본인들을 향해 물건을 집어 던지고 험한 말을 내뱉으니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희,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일단은 진정하시고…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더 들을 이야기가 뭐가 있는데? 이 무능한 새끼들아.”

[그러니까….]

“참 웃기다니까 시바. 이 새끼들 이거. 호구 하나 잡으니까 뭐든 다 들어줄 줄 알았나 봐.”

[정말로 희생과 부활의 신이 맞으십니까?]

“그럼 내가 누구로 보여? 퉤. 시바. 너희들이 데려왔잖아.”

[…….]

[…….]

“야 이 무능한 머저리들아.”

[…….]

“내가 우스워?”

[…….]

“희생과 부활의 신이 우습게 보였어? 이렇게 뒤늦게 우르르 몰려오면… 내가 눈물 한 방울 뚝 떨어뜨리면서 너네랑 하이파이브라도 할 줄 알았어?”

[…….]

“이기영 진짜 성격 많이 죽기는 했어. 시바. 내가 웬만하면 이해해 주려고 했어요. 이 사람들아.”

[…….]

“회귀하는 데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을지, 얼마나 예산에 여유가 없었을지, 나도 한 번 해본 입장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더라고. 할 일은 많은데 인력도 없고 메인 스트림도 진행하고 대륙 업데이트해야 되는데 남는 코인도 없고. 던전은 만들어서 뿌려야 되고, 플레이어들 성장시켜야 되는데 머리에 든 것 없는 놈들은 자기들 사리사욕 채우기 바쁘지.”

[희, 희생과 부활의 신이여. 소생이 보기에는 지금 심마가….]

‘무슨 심마 드립이야 늙어 가지고 너 이 새끼 무협지에서 신선놀음하다 왔어?’

“타 파벌들한테 협력도 얻어야 할 테니 뇌물도 찔러줘야 되고 이후 안정화된 로헨 대륙을 발전시키려면 여유 코인도 있어야 되고… 본인 패밀리아 챙길 시간이 없는 건 당연할 테고… 그래서 이해는 하고 있었다 이거예요. 내가 원래 남의 사정을 잘 안 봐주는데 그래도 이해하고 있었다니까.”

[희생과 부활의 신이여. 혹시 제가 잠깐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아니, 자꾸 이 늙은이는….’

“그런데 이렇게 단체로 우르르 몰려오는 걸 보니까 배알이 좀 꼴려. 진짜 급한 일이 터지니까 어떻게든 수습하러 모인 것 같아서. 차라리 오지 말지 그랬어. 너희가 생각해도 좀 그렇지. 구태여 성소로 모여서 강림 때린 것도, 강림으로 소모하는 코인이 훨씬 더 싸게 먹힌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거잖아. 그렇지?”

[허허… 이를 어찌할꼬…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지금 심마에 잠식당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무량수불….]

“넌 좀 닥쳐! 야 쟤 좀 닥치게 만들어. 진짜 집중 안 되게.”

잠깐 움찔하는 늙은이가 보이기는 했지만 옆에 있는 녀석 하나가 황급히 놈을 붙잡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눈치 빠르네.’

아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대충 이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정말로 희생과 부활의 신이 심마에 빠진 것은 아닐까 걱정하던 놈들도 이제는 다른 의미로 이쪽의 눈치를 보게 된 타이밍이었다.

“의자 가져와.”

[…….]

샤넬리아 에르메스가 슬쩍 몸을 일으켜 의자를 꺼내오고 이쪽은 곧바로 의자에 몸을 주저앉힌다.

[저희를 속이신 겁니까?]

“웃기네. 누가 누구를 속였다고? 생각 좀 하고 이야기합시다.”

[…….]

“…….”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듣기 힘드시겠지만 짧게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

[첫째로 희생과 부활의 신께서 로헨 대륙이 소환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고는, 결코 저희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습니다. 시스템의 개입 자체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저희의 실책이나, 이미 터진 사고를 수습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실수를 통감하고 자책하고 있으며 추후에 꼭 이 실수를 보상할 수 있는 사안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보상은 개뿔 입바른 소리 하지 마시구요. 자꾸 시스템의 개입 개입 하시는데, 애초 초기 소환 공식을 잘못 짠 게 첫 번째 문제 아닌가? 비자 신청서를 그지같이 써서 내니까 시스템이 개입을 하고 빠꾸를 내지. 비자 신청 잘해서 팔다리 멀쩡하게 달린 채로 입국시키는 게 너희들이 해야 할 일 아니었나? 이걸 시스템 탓을 하기에는 너무 양심이 찔리지 않아?”

[…….]

[…….]

[두 번째로 만족스러울 만한 지원을 드리지 못하는 것은….]

“파벌마다 의견 차이가 심해서, 다른 쪽 눈치 보느라 못하겠다는 거잖아. 그렇지? 보상할 수 있는 코인도 다른 곳에 들어가 있고. 그렇지? 이 사람들아. 영혼을 끌어모아서 후원을 할 거면 좀 제대로 하든지, 지금 내 방송 회장님이 꽃과 풍요의 여신인 게 말이 돼? 이거 가지고는 할 말 없어?”

[…….]

“아. 후원을 너무 많이 하면 꼬리가 밟힐까 봐 그랬겠구나? 그렇지? 응? 그래서 샤넬리아 에르메스만 총대를 멘 거구나?”

[이, 이번 계획에 너무나도 많은 투자비용이 들어갔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저희에게 실망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희의 무능으로 일어난 실수로 희생과 부활의 신께서 받으신 피해와 아픔을 지독히 통감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진정으로 로헨 대륙의….]

“엿이나 드세요.”

[진정으로….]

“엿이나 드시라구요.”

덩치가 큰 장군이 커다란 소리를 내지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엄하구나!]

“?”

[변방 차원의 잡신 따위가 무어라? 어느 안전이라고 유피테르 님께 막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이 예의도 없는 버러지 놈이….]

“…….”

[그 알량한 머리를 믿고 있는 것이라면!]

“저 덩치 입 안 다물게 만들면… 진짜 더러운 꼴이 뭔지 보여 줄게.”

[네이노옴!! 유피테르 님,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차원의 잡신에게 고개를 숙이다니요! 아무리 로헨 대륙을 위해서라고 한들.]

“나 두 번 말 안 해요.”

[네가 정녕 겁을 상실한 게로구나! 내가 당장.]

“그래서 뭐 어쩌라고.”

[…….]

“차원 전쟁이라도 하자고?”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오냐! 네놈이 원하는 게 그것이라면 우리 로헨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말한 거다. 네가 먼저 지껄인 거야. 난 몰라.”

‘시바 어차피 현성이도 달려오고 있는 중이자너.’

그래. 아예 싹 밀어버리고 멀티 짓자. 재앙신 김현성 분노의 철퇴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이놈들이 우리 현성이가 외신 옆구리 찢어발기는 걸 봤어야 이런 개소리를 안 지껄이는데.

[죄… 죄송합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제 불찰입니다. 부디 용서를….]

뇌에 든 게 근육밖에 없는 놈과는 다르게 유피테르는 본인들의 앞날에 어떤 일이 닥쳐올지 대충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차원 전쟁?’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플레이어들이나 쳐다보는 놈들이 뭘 할 수 있을까.

물론 쫄리기는 한다. 눈으로 보이는 체급 차이를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뭐. 재앙신 김현성이면 가능하지. 벨 이사도 있고… 27군단, 리무르아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쫄리는 것 이상으로 저놈들도 쫄리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눈에 띄는 전력도 없고, 우효열 회귀 사태로 인해 당장 끌어올 수 있는 자금도 없다.

현 상황에서 전쟁자금을 모은다는 건 말 그대로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부풀린 체급 역시 알맹이를 까고 나면 공기 풍선이지 않을까.

대군주가 떨어져도 뭉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마당에 차원 전쟁이 일어난다고 과연 이놈들이 하나가 될까. 얼씨구나 하면서 이쪽에 붙을 게니우스들이 줄을 서겠지.

고려해야 할 것은 중재하겠다고 윗놈들이 등장하는 것 정도, 물론 녀석들이 이 머저리들을 위해 나서 줄 가능성은 희박했다.

‘대군주 셋이 똬리를 틀어도 반응도 안 하는데. 차원 전쟁 일어난다고 퍽이나 나타나 주겠다.’

[유피테르 님! 어찌 이런 근본도 없는 잡신에게 고개를 숙이십니까. 제가 당장 병력을 이끌고 로헨의 이름을 떨치고 오겠습니다.]

[그 입 다물어라! 마르스!!]

[하지만….]

[내가 그 입 다물라고 말했다!]

[…….]

[죄송합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할지. 저로서는…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저희들은….]

“4할.”

[…….]

[…….]

“이것도 많이 양보한 겁니다. 내가 그쪽 사정 좀 봐준 거라고 말하면 알아들으시려나.”

[…….]

“이쪽 대륙 안정화시키면… 여기에서 뽑아낼 수 있는 신성의 4할을 가져가는 게 좋겠네요. 물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도 이곳 경영에는 참가할 거고 받은 4할은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대로 투자할 거니까. 대륙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일도 없을 거고… 오히려 감사하게 될걸. 여기서 시간 버리고 있는 머저리들한테 맡기는 것보다 더.”

[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유피테르 님!]

[받아들이겠습니다.]

[유… 유피테르 님.]

“그리고. 또 하나.”

[…….]

“내가 보기에 여기 대군주의 끄나풀 하나가 숨어 있는 것 같은데.”

덩치 큰 장군을 빤히 쳐다본 이후에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

[…….]

“그 새끼도 처리해 주면 고맙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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