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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22화 (1,12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22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동료 (7)

“노담혜라고 했던가?”

“네.”

“조금은 의외로구나. 당연히 네게 생각이 있겠지만 비전투직군을 파티로 들인다니… 사람이 좋아 보이기는 했다만… 흐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크흠. 걱정은 누가 했다고…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네 선택을 지지한단다. 다른 것보다는… 그냥 네가 원하는 걸 모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

“…….”

“할, 할아버지….”

이런 무한신뢰 좋자너.

아니, 신뢰라기보다는 그냥 과거에 후회되는 일들을 픽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이자벨 선 스트라이더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었던 것 같았다.

권력을 하나로 집중시킨다기보다는 이놈 이야기 듣고 저놈 이야기 들으며 패밀리아를 운영했음이 분명하겠지.

‘아마 이 할아버지도 거기에서 한몫했을 거야.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으니까.’

“하지만 기왕 비전투직군을 들일 거라면 대장장이나 가죽세공사가… 아! 연금술사도 나쁜 선택은 아니란다. 물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제일 좋지만….”

‘이거 봐. 그런 말 하면 어떻게 무시해요. 사족을 붙이면 안 된다고요. 할아버님.’

“그 영감이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마침 괜찮은 대장장이와 한번 계약을 맺을 생각은….”

“아니에요. 할아버지. 노담혜 님은 전투직군으로 들일 거라… 그리고 저희는 패밀리아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단순 파티로 활동할 거라서… 대장장이를 포함한 다른 비전투직군분들은 계약을 맺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아직은 활동자금이 그리 넉넉한 편도 아니라 당장 계약을 맺을 필요도 없고요.”

“혹시 그 노담혜라는 여인이 네게 자신이 전투직군이라 말하기라도 한 게냐? 허! 거 참… 기영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로헨 대륙은 그렇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

“전직을 권유해 볼 생각이에요.”

“…….”

조금은 의아해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쉬운 일은 아닐 텐데… 혹여나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어쩔 생각이냐?”

“글쎄요. 미리 실패를 걱정하기보다는 한번 도전해 봐야죠.”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직을 하라는 것은 게니우스를 바꾸라는 말과 같았으니까.

이미 게니우스를 달고 있는 플레이어에게 전직을 권유하는 건 막대한 코인을 소모하는 일이다.

때문에 그녀에게 따로 오퍼를 넣을 게니우스를 찾기 어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녀가 계약으로 묶여 있을 가능성도 높다.

혹시나 다른 게니우스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현 게니우스를 배신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

비전투직군들은 대체로 충성도가 높은 편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레이먼 볼트 역시 이와 같은 배경을 이해하고 있는지 조금은 떨떠름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태여 그런 모험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노담혜를 이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이유를 찾고 있음이 분명.

다른 사람들의 잠재능력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있다는 걸 이야기한다면 문제 해결은 쉬워지겠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비밀을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할아버지.”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혹시 혼자서….”

“저 어린애 아니에요. 할아버지.”

“녀석.”

왠지 조금 더 시간을 끌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 같은 느낌에 황급히 여관을 빠져나온 것은 당연지사.

말만 여관이지 사실상 우효열 파티 하우스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이 새끼가 괜히 부담스러워할까 도장을 찍지 않았을 뿐, 전세를 낸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혹시 어떤 신을 모시고 계신가요?”

“죄송해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 게니우스님의 말씀 좀 들어보시겠어요?”

‘여기는 시바 왜 이렇게 도쟁이들이 많은 거야?’

“혹시 달밤의 바위 신님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그런 잡신들 상대 안 합니다.’

“파티 구합니다.”

“거기 오빠. 혹시 도시 밖으로 나가는 데 호위 안 필요하세요?”

“성문 앞 삼거리까지만 나갈 거라서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죄송합니다.”

“혼자 가시기에는 위험할 텐데.”

‘뭘 위험해. 시바.’

어차피 성문 앞 삼거리까지는 모험가들이 떼로 움직이는 곳인데.

‘남들 등쳐먹으려고 하는 애들이 많기는 해. 할아버지 걱정이 틀린 건 아니야.’

이른바 플레이어들이 만든 간이 캠프, 딱히 주인은 없었지만 길이 교차되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들이 모여 노숙을 하거나 거점으로 삼기 좋은 장소였다.

거리가 꽤 되기는 하지만 공용 마차를 타고 움직이면 금방 도달하기도 했고, 애초에 호위가 필요할 정도로 길이 험한 곳도 아니다.

몬스터들의 습격이나 산적의 습격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이미 안정화가 되어도 한참 된 곳이었다.

애초에 아무 힘 없는 음유시인이 어째서 거기에 체류하고 있겠는가.

‘광장 같은 시장바닥에서 무슨 공연을 하겠어. 시바.’

상인 조합에게 밀려 자릿세 내기도 힘들거니와 도쟁이들에게 떠밀려 공연은 망치기 일쑤, 주점에서도 음유시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모두 술에 취해 들을 생각도 없거나 파티를 구하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성문 앞 삼거리 캠프는 이 지역 근처에서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에 하나였다.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모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각각의 장소에서 음유시인들은 노래를 부르고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모자에 동전들을 집어 던진다.

서로 가지고 오거나 만든 음식들을 나누고, 즉석에서 파티를 구해 가까운 곳에 원정을 다녀오기도 한다.

물론….

내 취향은 아니었다.

‘으, 시바 더러워 진짜.’

템플러 젠과 함께했던 빗물 새는 텐트가 생각나는 장소.

규모는 꽤 컸지만 자본이 투입되지 않는 공간의 최후는 물 보듯 뻔했다.

주인이 없는 장소라는 건 모두가 주인의식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며칠에 한 번씩 하리젤에서 쓰레기들을 수거한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그게 오늘은 아닌 모양.

한쪽 구석에는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며칠째 여기에 상주하며 씻지도 않은 놈들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대부분 여관에 돌아갈 골드가 없는 놈들이었다.

‘위생상태 실화야?’

심지어 여기는 시바. 여기는 텐트도 공유한다. 주인도 없고 규칙도 없다. 그냥 텐트에 공간이 있는지 물어보고 들어가면 끝.

귀중품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당연히 상식이었다.

“저. 혹시 여기 자리….”

“물론 있다네. 혹시 오늘 여기서 묵고 갈 생각인가? 꺼윽.”

‘땀 냄새. 술 냄새. 시바.’

“혹시 한잔하겠나? 꺼으윽.”

웃통을 까고 있는 털북숭이 유인원 넷이 모여 대낮부터 럼주를 마시며 카드를 치고 있는 모습. 파티에 마법사가 없었던 모양인지, 몸 곳곳에 몬스터의 혈흔이 묻어 있었다.

닦는다고 닦은 것 같았지만 클린 마법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닦아지겠는가.

본인 텐트를 구비할 골드도 없어 캠프에 의지하는 삼류 모험가들이었다.

“나는 로버트슨이라네. 도시에서 왔나?”

“아… 네.”

‘인사하지 마요. 친해질 생각 없으니까.’

그다지 질이 좋아 보이는 놈들도 아니었다.

어찌어찌 플레이어들에 의해 치안은 유지되고 있는 장소이기는 했지만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눈치를 보고 있는 것뿐이지.

혹시나 잘못을 저지르다 걸리면 여기 미개한 놈들이 바로 인민재판 열어 버리거든.

도둑질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고 보면 되는 거지.

‘그냥 텐트를 따로 가져올 걸 그랬나?’

잠깐 후회가 되기는 했지만 낭만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 취급당하기는 싫다.

낭만이라 쓰고 비위생적이라 읽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여기 있는 놈들은 두 가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느껴진다.

그게 아니고서야 시바 이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여기. 한 그릇 드시죠.”

‘님 엄지손가락 스튜에 담가져 있어요. 엄지 좀 빼세요.’

해가 질 때 즈음이 되면 정체불명의 고기를 넣은 꿀꿀이죽을 들고 하나둘 모닥불로 집합.

모닥불 위에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스튜가 여전히 펄펄 끓고 있다.

사라질 때 즈음에 어떤 놈이 와서 물과 건더기를 집어넣고 끓이고, 그게 사라지기 전에는 다시 한번 물과 건더기를 집어넣고 끓인다.

말인즉슨 저 냄비는 설거지한 적이 없다는 소리였다.

“앗. 감사합니다.”

그래도 맛있게 처먹을 수밖에 없다. 그게 낭만이었으니까.

‘이 새끼들은 낭만이라는 말을 어디서 잘못 배워왔어.’

벌써부터 술에 취한 놈들의 꼬부라진 목소리와 하루 모험을 결산한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듣기 싫은 소음에 불현듯 짜증이 치솟아 오르기는 했지만 기다리는 보람은 있다. 슬슬 활동하기 시작하는 음유시인들 때문이었다.

적어도 이것 하나는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저런 음유시인 같은 애들은 로헨 대륙 쪽이 더 레벨이 높기는 해.’

연금술이야 이기영이 버티고 있으니 감히 비벼볼 수도 없지만 기본적으로 로헨 대륙은 생산직군을 아우르는 비전투직군의 수준이 높다.

온갖 잡신들이 축복이나 직업을 내릴 수 있으니 당연한 소리이기 하겠지.

아무리 쓰레기 같은 곳이었지만 이 시간 만큼은 제법 쓸 만해진다.

“병사들을 가엾이 여기는 전쟁의 신들이여! 우리와 함께해 주오!”

“…….”

“용기와 역경을 이겨낼 힘을 주오!”

어떤 음유시인이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술에 취한 놈들이 떼창을 하고 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음유시인 하나를 둘러싸고 그 주변을 빙빙 도는 중, 잔을 들어 올리는 바람에 들고 있는 럼주의 반 이상이 땅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즐겁기는 한 모양이다.

기타 하나를 가지고 간단히 버스킹을 하는 녀석들도 있다. 지구에서 유행하던 곡들을 부르는 놈들도 꽤나 많다.

지구를 그리워하는 놈들은 그 자리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신청곡을 목 놓아 외치며 골드를 모자로 집어 던지는 놈들도 보였다.

소규모 음악 페스티벌이라도 벌어진 양 각 구역에 자리를 잡은 음유시인들이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저마다 노래나 연주를 선보이는 도중.

노담혜 역시 가장 구석진 곳에서 피아노와 비슷한 악기를 켜고 있었다.

지혜 누나가 생각나는 단발머리, 커다란 눈망울과 맹해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실력은 수준급.

소환되기 전에 관련 공부를 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교국에서도 저 정도의 음악가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인기가 없었다는 것.

그녀의 앞에 있는 이들은 두세 명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제대로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클래식에 누가 관심이 있겠어. 시바.’

열정적인 모습으로 거장 흉내를 내며 건반을 두드리는 장면은 충분히 멋졌지만 지금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술에 취한 채 관객들을 선동하며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는 녀석들보다 현저히 적은 관객 수.

심지어 지구의 음악도 아니었다. 로헨 대륙의 귀족들이나 즐길 것 같은 음악이 부랑자 캠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그녀의 모자에 골드가 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이기영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가스펠 느낌이 들어오는 곳에서 천천히 음을 따라가며 허밍.

남들은 의식하지 않는 듯, 저도 모르게 혼자 흥이나 콧소리를 내는 것처럼 으음, 으음 같은 소리를 내며 음계를 따라간다.

물론 내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초월자가 괜히 초월자겠는가.

영혼의 새겨진 색기영 매혹 스킬이 남아 있겠지. 조금만 흘려줘도 여기 있는 거지쉑들 홀리는 건….

‘일도 아니자너.’

모르긴 몰라도

아마 꾀꼬리가 우는 소리처럼 들려오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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