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100화
우효열 (7)
“이미 늦었어요.”
“아니, 찾아야 된다니까요?”
“아니, 늦었다니까.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어떻게 찾아요? 어디로 숨었는지 게니우스들도 모르는 상황인데. 망원경도 못 들고 와서 지금….”
‘얘 안 듣고 있네.’
“세라는… 세라는 어떻게 하죠? 세라는 지금… 아아. 우리 세라….”
‘정신없는 것처럼 보이자너.’
실제로도 정신이 없어 보인다.
정하얀의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매번 지적하는 한소라였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고치지 못한 모양.
잘근 잘근 손톱을 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손톱이 으깨지고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는 정하얀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본인이 느끼기에도 좋지 않은 습관이란 걸 알고 있단 것을 생각했을 때 정신을 다른 곳에 놔두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우리 세라 교육은 누가 하고 있는 거지? 가르쳐 줄 게 산더미였는데… 밥은 누구랑 먹고 잠은 누구랑… 자고 있는 거죠?”
“일단… 지혜 누나한테….”
“그 사람… 그 사람 조금 이상하잖아요.”
‘지혜 누나 섭섭하겠다.’
“그 사람은 자기 자식만 예뻐한다고요. 도미 교육 방식도 이해할 수가 없고… 애가 무슨 컴퓨터인 줄 안다니까요? 도미니온스 걔한테 잘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 도미랑 세라는 달라요. 지금 세나가 얼마나 관심이 필요한 시기인지 알기는 아세요? 부길드마스터 자식이잖아요!”
“…….”
“현성이도….”
“길드마스터가 제일 문제야. 애초에 그 사람은 말을 말아야지.”
“…….”
“차희라 그 사람은 또 어떻고 그 근육멍청이들 사이에서 세라가 잘 지낼 수 있겠어요? 애가 얼마나 예민하고 세심한데… 부길드마스터도 아시잖아요. 이제 막 능력을 개화한 시기라서 옆에서 잘 보듬어 줘야 된다고요. 아아! 아!! 여기… 여기에 왜 왔지?”
“…….”
“내가… 내가 여기에는 왜 온 거지? 왜 온다고 했을까. 정하얀 님. 정하얀 님도… 아아… 우리 정하얀 님… 분명히 지금….”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고….”
“그게 아니라 찾아야 된다고!”
“…….”
“찾아야 된다니까! 아니, 이럴 게 아니라 돌아가요. 정하얀 님 찾아서 파란 길드로 돌아가는 게 맞아요. 세라야… 이모가….”
“진정 좀….”
“이게 진정할 일이에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아니….’
“휴… 휴가 받았다고 생각해요.”
“아….”
한소라의 동작이 일순간 멈춘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
“…….”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째서 지금 자신이 이렇게 초조해하고 있는 건지, 왜 이렇게 불안한 건지, 이토록 난리 칠 이유가 있었을까 생각하면서도 스스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 한소라가 뭘 떠올리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느낄 즈음에 그녀의 눈망울에 점점 눈물이 맺히는 게 보였다.
입술이 달달달 떨리고 동공이 계속해서 흔들리는 게 눈에 보였을 때.
“흐어어어어엉….”
하고 흐느끼는 시작했다.
“흐어어어어어엉….”
‘얘 왜 이렇게 서럽게 울어.’
왠지 모르게 그녀가 저리 서럽게 우는 이유가 예상이 갔다.
‘육아 스트레스 비슷한 건가 봐.’
아니, 비슷한 게 아니라 딱 맞지 않을까. 일순간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보니 왠지 모를 서러움에 북받쳐 울고 있는 것이리라.
‘얘를 두 명 키우고 있잖아.’
정하얀과 세라핌. 실제로는 정하얀이 더 손이 많이 가지 않을까. 밥 먹는 것부터 씻는 것까지.
투정을 부리는 빈도도 세라핌보다 높고 자기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짜증 내기 일쑤였으니까.
박미진 사건을 계기로 그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다지만 원래 사람이라는 게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한소라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도 은근슬쩍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정하얀은 예전보다 더욱더 영악해졌다.
물론 세라핌도 다르지 않다. 다른 방향으로는 정하얀보다 더욱더 신경 쓸 것이 많다.
당장 외신 4남매의 미운 오리 새끼 포지션을 맡고 있기도 한 그 녀석.
그 녀석 자체의 성격이 워낙 소심하고 예민한 것이 문제였다.
별것 아닌 말에도 쉽게 상처받아 스스로 땅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다음 일에도 그 특성이 그대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양육자의 포지션에 있는 정하얀은 자기 몸 챙기기도 바쁘고 또 다른 양육자인 나는….
‘솔직히 돌보기 싫어. 아무리 시도하려고 해도, 얘가 정이 안 붙자너.’
말만 부모님일 뿐, 사실상 부모님의 역할은 한소라가 전부 떠맡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리라.
생각해 보면 여기 떨어진 직후부터 쭉 정하얀을 전담 마크 하고 있었으니 그 스트레스가 오죽할까.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미 그녀의 안에서 고이고 고여 눈치챌 수도 없었던 문제였을 것이다.
결국 본인도 자신의 처지에 순응하기는 했지만 한소라가 원하는 이상은 정하얀 억제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기가 대륙을 몇 번이나 구하고 지켜왔는지 알고 있다면 그런 상실감을 조금 덜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그러고 보면 비서 일 했을 때 꽤 좋아하기도 했었지.’
결과적으로 세라가 등장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때의 한소라는 뭔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얘가 능력도 있기는 있어. 아니, 능력은 확실히 있어.
처음부터 욕심도 많았고, 업무 능력도… 조혜진이랑 선희영 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얘밖에 더 있나?
문제는 그 능력을 펼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소라라고 자기 커리어에 욕심이 없겠는가.
이미 파란 길드라는 최고의 아웃풋에서 활동하고는 있지만 본인 일을 하는 것과 정세라의 보모가 되어 길드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이번 튜토리얼에서 2위 한 것도….’
우리 쪽에서도 공략조로 참여했었지. 어쩌면 현재 한소라가 로헨 대륙에서 보내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이상향은 아니었을까.
모두에게 대우받고 기대받으면서 메인스트림의 주요인물로 우뚝 서 있는 인재.
길드를 창설하고 싶을 수도 있고, 길드의 오퍼를 받아 던전 공략이나 메인스트림 프로젝트를 자기중심적으로 이끌어가고 싶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한소라가 처음 대륙에 떨어졌을 때 그리던 모습이 정하얀과 세라핌의 양육자는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너… 너 때문이야. 흐으으윽…흐어어어어엉….”
“아니….”
“너 때문이야! 이 새끼야!!”
“아니… 아니, 하지 마! 하지 마!”
아무렇게나 팔로 찰싹찰싹 이쪽을 때리는 그녀의 손은 상상 이상으로 맵다.
“야 이 나쁜 새끼야아!!”
“아니. 일단 진정 좀 해요. 하얀이 돌보기 말고 다른 일 합시다. 다른 일.”
“…….”
“대충 뭘 느끼고 있는지 알겠어서 그래요. 이제 소라 누나도 큰일 맡을 때가 되기는 했지.”
“…….”
“돌아가서도 괜찮은 직책 하나 만들어줄게. 하고 싶은 일이 뭐 있어?”
“…….”
“…….”
“진짜로요.”
“던… 던전 마법 조사 팀장….”
“그건 너무 소박한 거 아니에요? 소라 씨 조금 더 능력 있는 사람이잖아.”
“그… 그래도 정하얀 님이랑 세라랑 같이… 있는 시간이 기니까.”
“아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요.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 하얀이도 이제 혼자 있을 때도 됐지. 뭐.”
“그럼… 그렇다면 흑… 흑마법 공방이 하나 가지고 싶은데요….”
‘아니, 시바 지금까지 흑마법 공방도 하나 안 만들어줬었네.’
섭섭해할 만해.
“지원 팍팍 해줄게. 소라 씨. 내가 누구야. 아예 흑색 마탑을 하나 만들까? 연금공방 운용 비용 한 30% 정도 떼어주면 그 정도 가능할 것 같은데.”
“저, 저는… 연금공방 수준의 수익을 뽑아낼 자신은 없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포션 사업에서 운용 비용을 떼어 오는 건 길드에서 말이 나올 거예요. 김미영 팀장이 얼마나 그런 데서 깐깐한데….”
“원래 초기 사업 연구에는 다 비용이 들어가게 마련이죠. 수익을 내라는 게 아니라 성과를 내라는 거예요. 연구 성과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길드한테 달렸고 소라 씨는 연구만 하면 된다 이거야. 물론 사업 아이디어도 있으면 좋고.”
“사… 사실은 사업 아이디어도 몇 개 있고… 읽기 좋게 정리한 연구일지도 몇 개 있거든요… 아직 보고서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고… 말 그대로 연구일지지만… 아. 방에 두고 와서 보여드릴 수가 없는데.”
“좋은 의미로 안 봐도 뻔할 것 같은데. 종목이 어떻게 되요?”
“주문서 쪽이에요. 대륙에서 통상적으로 언데드형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저주 33가지를 무효화 할 수 있는 주문서요. 기존에 교단에서 사용되고 있었던 성수와는 다르게 사제직군이 아니어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고… 무엇보다 효과가 걸리기 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괜찮은데요?”
“정, 정말요?”
“아직 교국에서 당장 상용화하기는 힘들 것 같기는 한데. 공화국 쪽에 먼저 넣어보고 반응 보면 되겠네. 내가 진 군사한테 한번 연락 넣어볼게요.”
“정말이에요?”
“그럼. 공방 말고는….”
“아, 그럼 저….”
“네.”
“정확히 원하는 직책이 있다기 보다는 저도 회의에 참가하고 싶어서요.”
“아.”
“네. 매달에 한 번, 부길드마스터랑 혜진 언니랑 희영 언니, 김미영 팀장님이 하는 그거요.”
“소라 씨 말은 길드 운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자리면 아무 자리라도 상관없는 거죠?”
“네.”
“그럼 비서실장 한번 맡아볼래요?”
“네?! 그… 그럼 혜진 언니는….”
“안 그래도 슬슬 혜진 씨 승진시키려고 했으니까. 남는 자리예요. 거기.”
“너무 갑작스럽지 않을까요? 저… 그 동안 사실 일반 길드원으로 활동밖에 안 했어서. 물론 부길드마스터 비서로 잠깐 활동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진짜 잠깐이었고.”
“길드원들 모두 소라 씨의 노고를 알고 있습니다. 직원들이야 의아해할 수는 있지만 아마 반발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
“로헨 대륙 건으로 공적치 쌓고 올라왔다는 그림이면 충분하다니까요.”
“아!”
“물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한 실적은 있어야 할 테니….”
“맡겨주세요.”
어느 샌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비쳐왔다.
“아무래도 앞으로 넘어올 길드원들 관리하고 들여오는 일부터 시작하면 되겠네요. 그나마 그게 가장 눈에 띄는 일이고 적당히 생색도 낼 수 있고… 게니우스 하나 연결해 드릴 테니까. 둘이 논의해서 애들 좀 들여보내요. 무슨 말 하는지 알죠? 로헨 대륙 시스템이 허락하는 선에서 적당히 조정하면서요. 우리 때처럼 페널티 받고 뿔뿔이 흩어져서 넘어오는 것보다는 그게 낫잖아.”
“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앞으로 들어올 길드원들 들여오는 일이라면 적당한 세력 하나는 만들어놔야겠네요?”
“네네. 그러는 게 좋겠죠?”
“패밀리아 창단해도 된다는 말씀이시죠?”
“기반만 마련하면 될 것 같은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열의에 찬 모습 좋자너.’
“코인도 조금 지원해 드릴 테니 이번 모의전 끝나는 즉시 움직이시면 될 것 같네요. 아! 마침 모의전 소리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건데.”
“네. 부길드마스터.”
“박살 낼 수 있죠?”
한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러려고 여기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