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98화
우효열 (5)
‘이번 기수가 그 정도로 주목받을 정돈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우효열도 우효열이지만 한소라 역시 준수한 성적으로 초보자 튜토리얼을 졸업했으니….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한소라에 대해서도 말이 나오고 있었음이 분명하리라.
아카데미에 남아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마법의 천재니 뭐니 하는 말들로 많은 관심을 끌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당연히 이쪽에 자리 잡은 기득권 놈들이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둘 리 만무, 여러 가지 오퍼를 넣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녀의 실력이 어느 정도 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한소라의 성격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7할 정도는 숨겼을 테고,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놈이라면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은 놈들의 욕심이 현재의 사태를 야기한 것이리라.
결과적으로 이 모의전의 규모를 조금 더 키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 참….’
당연히 기분은 좋다. 안 그래도 옛 얼굴들이 슬슬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던 타이밍.
갑작스레 들려온 소식이었지만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하얀이는 아카데미에 들어가지 않았나 보네.’
아마 정하얀이 아카데미에 입소해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이쪽의 귀에 그녀의 소식이 들려왔을 것이다.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은거해 있는 것이 아닐까.
하얀이의 최우선 목표는 한소라와 이기영을 찾는 것일 테고, 그게 가능한 방법은 그녀가 가진 능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아마 몇 달 안 걸려서 찾아오기는 할 거야.’
전 대륙을 범위로 탐지마법과 순간이동마법, 딱 두 가지를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을 얻게 된다면 곧바로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기영아.”
“…….”
“기영아.”
“네? 누나.”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네? 그래요?”
“응. 평소에도 잘 웃고 다니는 것 같기는 했는데. 오늘은 왠지 느낌이 다르네.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글쎄요. 평소랑 비슷한 것 같은데. 오히려 안 좋죠. 샤워하는 도중에 갑자기 누나가 들이닥쳐서요.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요?”
“내가 착각한 건가? 아무튼… 모의전 내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네. 그쪽 아카데미 A조랑 이쪽 B조가 붙고, 우리 쪽 A조랑 저쪽 B조랑 한다는 거죠? 조금 기분이 안 좋기는 해요. 뭔가 패밀리아들 좋으라고 모의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번 기수가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려는 마음은 알 것 같은데… 아마 게니우스들도 원하는 일이었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해야 되나요?”
“그렇지? 일단 내 입장에서는 기회이기는 하니까. 그리 나쁠 건 없지만… 기영이 너는 이미 입단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네….”
“네? 제가 어디로요?”
“패밀리아 꽃과 풍요!”
“네?”
“그쪽에 입단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
“이미 소문이 자자하던데? 꽃과 풍요에서 엄청난 거금을 주고 오퍼를 진행하고 있다고… 이번 모의전 결과와는 상관이 없이 부단장으로 모시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고… 소문으로는 윌리엄 님이….”
“아!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 그거 어디서 들었어요?”
“뭘 어디서 들어? 소문은 다 돌게 되어 있어. 네가 강의 도중에 자주 불려 나가거나, 쉬는 시간마다 꽃과 풍요의 단원들이랑 어울리는 거… 모를 줄 알았니? 어제도, 엊그저께도 윌리엄 님이랑 같이 저녁 식사하고 있다는 거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교관들을 통해서 듣는 애들도 있고, 꽃과 풍요에서도 의도적으로 흘리는 분위기던데?”
“그냥 좋은 인연을 만들었을 뿐이에요. 아직 어떤 패밀리아에 들어갈지 생각 안 해봤다구요. 윌리엄 님은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것만 믿고 패밀리아에 입단하기에는 조금…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딱 그것뿐이에요.”
‘이미 안주인이야. 뭘 더 생각을 해보겠어.’
적당히 외부 고문 정도 직책 받고 골드 빨아먹으면서 컨설턴트 해줘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윌리엄 쪽에서 이쪽에게 열렬히 오퍼를 넣고는 있지만, 빛의 성자가 어디 잡는다고 잡혀주는 사람이었던가.
지금 당장은 이 정도의 거리감이 좋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소라 얘는 왔으면 얼굴이라도 보러 와야지. 왜. 안 와? 혹시 여기 나 있는 거 모르나?’
그냥 곧바로 어디 적당한 패밀리아에 입단한 다음에 거기서 고혈 빨아먹고 있을 거라 생각했나?
‘우효열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했을 거야.’
고로 한소라의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데… 얘는 왜 아카데미 들어간 거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에 입소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으면 자기도 입소하면 안 됐지.
빨리 사회로 나와서 찾아올 생각을 해야지 여기가 뭐 좋은 곳이라고 틀어박혀 있어?
한 달 안에 내가 노을빛의 패밀리아라도 만들어서 자기한테 오퍼 줄 거라는 생각이라도 했나?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치부하고 싶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뭉스러운 점이 많다.
이렇게 생각하기는 싫지만 한소라가 만약….
‘새 삶을 시작하고 싶었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했던 거라면, 물론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둘째 치고 정하얀이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아마 그녀는 잠깐의 일탈을 하고 싶어진 건지도 모른다.
아주 잠깐만 이기영와 정하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
그게 한소라를 아카데미로 이끈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아마 승윤이가 지금쯤 식당에 조원들 모아놨을 거야. 빨리 가 보자.”
“네.”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도 있을 거고.”
“그러겠네요.”
‘어차피 보게 되어 있자너.’
슬쩍 고개를 끄덕인 이후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임청하가 미소를 흘리며 식당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자주 보던 식당의 전경이 시야에 비쳤다.
마치 아카데미라고 광고를 하듯 급식 판을 가지고 이동하는 녀석들이 가장 처음 눈에 띈다.
그 뒤에 보이는 것은 타 아카데미의 학생들.
‘쟤네 왜 저렇게 분위기 잡고 있어?’
자신이 이쪽 아카데미 소속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왠지 모르게 편이 갈려 앉는 양 무리의 학생들이 보인다.
심지어 서로를 노려보는 듯한 모습, 몇 초 후면 각 진영의 일짱이라도 나와 한 판 붙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가 마저 느껴진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나갈 곳이라는 걸 모르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에 뭔지 모를 자부심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익숙한 이들끼리 뭉치게 되고, 서로 모의전까지 예정되어 있으니 조금 더 날이 서 있겠지.
어떻게든 정보를 빼내려고 하는 종자도 있을 테니 경계를 하는 것이 옳기는 옳다. 여기에 자신들의 인생이 걸려 있다고 느끼는 이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네.”
“당연히 그렇겠죠. 모의전만 아니었어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을 거예요. 결국에는 싸워야 하니까. 뭔가 서로가 서로를 셋업할까 봐 걱정도 될 테고….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여기 평균 연령이 조금 더 어렸으면 아마 싸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걸요?”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야? 싸움 났어?”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애새끼들도 아니고.’
짐승들 영역 다툼 하는 것처럼 싸우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서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한 우리 안에서 부대끼다 보니 스트레스도 쌓이고 피로도 쌓이고 그러다 폭발한 게 하필 이 장소인 거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학원물스러운 전개, 그게 아니라면 코인 벌이를 위해 누군가 즉흥연기를 벌이기라도 한 것일까.
인간이 모이면 꼭 사건이 일어난다지만 어째서 매번 이런 장소에서 이런 식으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일까.
“별것도 아닌 게. 씨발놈아. 일어나.”
“이야아아아!!”
한쪽은 이쪽 아카데미 소속의 스웨덴 여자. 이름은 기억해 놓지 않았다.
모델같이 커다란 키에 쓸 만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어 전사로서의 재능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다혈질에 바이킹 전사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맞서고 있는 상대는 조금 작은 키에 어려 보이는 남미계 남자. 꼬꾸라져 있는 것을 보니 몇 합 버티지 못하고 쥐어 터진 것 같았다.
“그러게 입을 왜 털고 난리야? 털었으면 책임을 지든가. 뭐 누가 오든 한소라한테는 상대가 안 돼?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수준도 낮은 게.”
“이건 방심해서… 실전이랑은 달라!”
“아카데미 밖에서 이런 일에 휘말리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안 배웠어? 방심은 개뿔. 그렇게 억울하면 한번 일어나봐. 어디 제대로 한번 해보게.”
그 말에 이를 악문 꼬마는 다시 한번 몸을 일으키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단 피지컬부터 제법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저 바이킹 여자는 꽤 강했으니까.
최근에 레벨 업을 하기도 했고… 아니나 다를까 다시 한번 바닥에 떨어지는 녀석.
갑작스레 바이킹의 몸이 마비된 것처럼 굳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거기까지 해주세요.”
익숙한 목소리.
“저희 아카데미 학생이 실수를 한 것 같군요.”
“너… 너 뭐야….”
오랜만에 보는 오드아이가 눈에 띈다.
“소… 소라 누나.”
“저리 가 있어 크리스티앙.”
“미안해요. 누나….”
“아니. 네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실수한 것은 맞지만 저쪽도 어른스럽게 대응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이거 안 풀어?!”
“당신이 진정하기 전까지는 풀어드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너… 이 새끼!”,
한소라 카리스마 쩌네.
“뭐야… 한소라라고?”
“저게 한소라야? 튜토리얼 2위?”
“괴물이네….”
엑스트라 새끼들 진짜 양념 오지게 치네.
“누가 우효열 좀 불러와 봐!”
우효열은 왜 불러와? 저쪽 일짱 나왔으니까 이쪽도 일짱이 나와줘야 할 것 같아? 그리고 걔가 부른다고 올 얘야?
저 멀리서 보기에도 한소라의 압박감이 느껴지기야 한다. 이곳에 있는 애송이들을 마력으로 티 안 나게 압박하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당연히 학생들에게는 한소라가 무척 커다란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왠지 모르게 기가 죽어 있는 이쪽 학생들과는 다르게 저쪽 학생들은 괜스레 의기양양해 보인다.
심지어 한소라에게 강한 신뢰와 믿음을 보이는 중, 한소라 역시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익숙해 보였다.
왠지 모르게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 누나.”
“언니… 저희가 도울 일이라도 있을까요?”
“저리 가 있어.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각자의 호칭으로 우리 소라를 부르는 꼴은 가관, 심지어 한소라 역시 싫지 않다는 듯 저들을 잘 챙기고 있지 않은가.
왠지 모르게 섭섭함이 느껴진다. 원래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몇 발자국을 더 움직여 존재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모세가 바다 가르듯이 갈라지는 인파.
이기영이다. 이기영이다! 라고 외치는 엑스트라들의 목소리.
내가 자신들의 대변인도 아닌데 왜 내가 여기서 우리 소라 누나를 물리쳐 주기를 바라는 걸까.
아주 오래된 인연이다. 반가움에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사무치게 그리웠던 그 이름을… 나는 입 밖으로 내뱉었다.
“소라 누나….”
“어?”
“진짜… 진짜 소라 누나 맞는 거지?”
“부… 길… 아니… 아… 누나…라니…요… 아니… 그러니까… 이건….”
“정말로… 정말로 소라 누나가 맞는 거지?”
“…….”
“흐윽… 히끄윽… 소라 누나… 소라 누나 맞지?”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한소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로… 누나 맞는 거지?”
우다다 그녀에게 달려가 그녀의 품에 안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누나… 흐윽… 누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