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89화
로헨 대륙 (9)
“이 양아치 새끼! 개새끼!”
“주, 주인님….”
“이 구역질 나는 새끼!”
“주인님! 통…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무슨 통촉이야! 시바! 이 새끼. 나를 물 먹여? 피어싱까지 했는데. 시바! 나를 물 먹여?”
“주인님. 진… 진정하세욧. 촉… 촉수로… 진정을….”
“무슨 시바 촉수로 진정을 해? 그거 진정 안 되는 거야! 시바!”
테이블 위에 있는 찻잔 손을 댄 것은 당연지사. 테이블을 부수거나 의자를 부술 수 없으니 자연스레 손을 뻗어 신전의 기둥에 대고 집어 던진다.
쨍그랑하는 경쾌한 소리 대신 들려온 것은 둔탁한 소리. 툭 하고 떨어져 버리는 접시 때문에 없던 열도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노을빛의 검을 꺼내 석상을 향해 휘둘렀지만 깡 깡 울리는 소리 외에는 들려오는 것이 없다.
심지어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시바 뭐라도 깨부수고 싶은데. 그래야 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자너.’
주변에 부술 수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아 결국 다과 접시 위에 올려져 있는 쿠키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발로 놈을 박살 내버렸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쿠키를 보니 조금 마음이 풀리는 것 같기는 했지만….
[죄… 죄송합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제… 제가.]
이 새끼의 목소리를 들으니 다시금 열이 오른다.
“…….”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착오? 착오라고 하면 끝나요? 이게 착오라고 해서 끝날 이야기야?]
[죄송합니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두 시간 반 넘게 기다린 것 같은데 그 시간 동안 그 새끼 여기 데리고 올 생각 안 하고 뭐 했어?]
[저, 저희 쪽에서도 연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 코인 상점에서 가림막을 구매했는지… 분명히 오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보안 팀장! 보안 팀장 일루와 바요.”
“네… 넷…!”
“그 새끼한테 편지 전달한 거 확실해?”
“네. 피부가 검고 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이상한 인간에게 분명히 편지를 전해드렸습니다. 녀석의 어깨에 있던 문신도 확실하게 기억납니다.”
“편지 읽는 것도 확인했고?”
“네. 처음 말씀드렸던 대로, 적혀진 시간에 찾아뵙겠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조금 신기하다는 얼굴로 저희를 바라본 이후에는 손짓하더군요. 이만 나가라는 표현인 것 같아 정중히 인사드린 뒤에 돌아온 것이… 전부입니다.”
“근데 무시했다고?”
“…….”
“편지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확답을 받았는데도 여기 안 오고 있다고?”
‘미친놈인가?’
돌은 놈인 건가?
“송구합니다.”
‘뭐 하는 새끼야? 이거?’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뭐? 뭐요? 뭐요!? 또! 시바!]
[우효열. 그 새끼한테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래요? 뭐래요? 지금이라도 온대? 이미 늦었다고… 버스 떠났다고 전해요.]
[…….]
[뭔데. 뭐라는데요?]
[깜… 깜빡 잠들었다고 합니다.]
[…….]
[…….]
[그리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가고 싶지 않다고….]
[…….]
[귀, 귀찮아졌다고….]
“…….”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그걸 시바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이 건방진 놈을 지금 당장에라도 오체분시하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
[그럴 수가 없어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감히… 어찌 감히! 희생과 부활의 상징을 기다리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새끼 뒤늦게 태세 전환하는 거 진짜 얄밉네.’
우효열 님에서 우효 새끼가 되기까지 몇 분 걸리지도 않은 상황, 아마 이 새끼도 심장이 타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무리 내가 중간에 초대장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이 일을 처음 추진한 것은 저 무능력한 관리자였으니까.
심지어 자신 좀 칭찬해 달라 자랑하듯 외치던 것이 불과 몇 시간 전, 갑작스레 일이 파투 났으니 이 새끼가 느낄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상상도 가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신입사원이 타 거래처의 사장과 미팅을 잡았는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미팅이 파투 난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자기 잘못이 아니더라도 자기 잘 못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심지어 이 새끼가 죄가 없다고는 말할 수도 없다.
[꼭 녀석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네가 어떻게 대가를 치르게 할 건데? 그전에 네가 먼저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지 않아?’
녀석이 아니라 녀석의 파벌에서 밀고 있는 인사가 우효 새끼다.
까놓고 말하면 위의 수뇌부들은 한낱 튜토리얼 관리자보다 우효열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하늘이 무너져도 녀석이 우효열을 압박할 수 있는 그림은 볼 수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이쪽 파벌이 어째서 우효열을 회귀자로 선택했는지는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그 선택이 실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는 그냥….
‘그냥 지 맘대로 사는 새끼였어.’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라 사회에 적응할 생각이 없는 새끼.
우리 잘생기고 착한 현성이, 술만 마시지 않으면 착한 현성이처럼 어쩔 수 없는 사연 때문에 사회 적응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사회에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약속 같은 것들을 지킬 생각도 없었을 거고, 본인의 마음이 동하면 예스, 동하지 않으면 노.
물론 서로 협의를 한다고 해서 약속대로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당시에는 나와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튜토리얼 관리자의 말이 귀찮았을 수도 있고, 갑작스레 새로운 사람이 만나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면상이나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약속을 잡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생긴 게 아니야.’
갑자기 졸려서 오기 귀찮아졌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
단언하건대 지혜 누나와 나, 진 군사 같은 종류의 인간이 가장 혐오하고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
장담하건대 진 군사는 나보다 이 새끼를 더 싫어할지도 모른다. 나한테는 그저 떽떽거리며 욕을 쏟아붓는 걸로 마무리되겠지만 이 새끼 앞에선 아예 상대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도태되고 뒤처져야 마땅한 인간.
‘이런 새끼가 제일 재수 없어.’
우효 놈이 도태되고 뒤처지지 않은 이유는 녀석이 천재이기 때문이다.
‘희라 누나도 수련은 했어.’
사자는 수련을 하지 않는다지만 그녀도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강해질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한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점이야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녀가 항상 술만 퍼마시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면 그녀가 얼마나 절제하는지에 대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
숙취나 다른 일에 관계없이 매번 변함없는 스케줄을 수행하고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존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회에 녹아들 필요가 없는 종류의 인간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새삼 생각해 보니 희라 누나가 참 그릇이 크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후우… 시바….”
재능만 믿고 깝치는 새끼는 끝이 보이게 마련.
“후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인님. 그놈을 이리로 끌고 오는 것은….”
“아뇨.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괜히 시비 건답시고 지랄할지도 모르고.’
“…….”
‘네가 손해인 거지 내가 손해인 게 아니야.’
녀석의 장점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과 회귀자라는 것밖에 없다.
심지어 회귀자라는 이점을 제대로 살릴 수야 있을지 의심스러울 지경.
크고 작은 타임라인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번 회차에는 타임라인에 영향력을 끼치지도 못할 것이다.
놈이 기억하는 것은 온전히 자기중심적인 사건일 테고, 조금만 수틀려도 모든 게 달라지겠지.
‘내가 들어왔으니까.’
벌써부터 미래가 바뀌고 있다.
전 대륙에 뿌려져야 할 코인을 내가 독식하고 있고, 다른 이들의 게니우스가 되어야 할 윗놈들이 이쪽에 손을 올리고 있다.
강해질 놈들이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축소된 예산으로 인해 패밀리아도 꾸리기 어렵다.
이전 회차와 무엇보다 달라진 건 노을빛의 패밀리아가 등장한다는 것.
‘차라리 내가 몇 명 키우는 게 낫겠어. 플레이어 중에 아무나 한 명 골라서…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어야지.
내가 궁금하지 않으면 궁금하게 만들어야지.
[저기….]
[…….]
[저기. 관리자. 여기는 성적표 시스템 있다고 했었나?]
[네. 그렇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튜토리얼 던전 ‘초보자의 시련’과도 같은 메인스트림에 해당하는 사건들은, 크든 작든 간에 활약한 플레이어와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들을 구분합니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상위권 플레이어들을 줄 세우고 그들에게 성과 코인을 지급합니다.]
[좋네요.]
[…….]
[지금 초보자의 시련이 얼마나 진행된 상태인가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
[얼마나 진행된 상태인가요?]
[약… 50% 정도가… 하지만 히튼 퀘스트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말… 말씀드리건대… 히든 퀘스트의 위치는… 제가….]
“아뇨. 이걸로 충분하네요.”
“…….”
던전 디자인이야 대충 봐도 눈에 훤하고, 적어도 이 튜토리얼 관리자가 나보다 던전 디자인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인력도 있으니까.’
적당히 컨텐츠로 만들면서 사용하면 되겠지.
그리고.
[튜토리얼 던전 ‘초보자의 시련’ 이 완료되었습니다. 생환하신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로헨 대륙으로의 입장 절차를 진행합니다.]
[메인스트림 ‘초보자의 시련’ 공략 랭킹.]
[1. 이기영 2,524,551점]
[2. 한소라 1,131,117점]
[3. 우효열 1,016,133점]
[…….]
[…….]
[9. 정하얀….]
[‘초보자의 시련’ 공략에 힘써주신 상위 플레이어들에게 코인과 아이템을 지급합니다.]
한소라한테도 발려 버린 우효 놈의 처참한 성적표가 눈에 들어왔다.
“푸흡….”
“…….”
“풋… 푸흐흣….”
* * *
“이기영? 한소라? 이놈들은 또 뭐야?”
* * *
“푸흐허헤헤하헤!”
* * *
“이기영 이 새끼는… 도대체 뭐 하는 새끼야?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 * *
“푸흐허헤하하하헤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