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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75화 (1,07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75화

피크닉 (38)

‘너 이 새끼 진짜 손절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어.

‘로헨에 회귀자 한 명 더 있대자너. 회귀자 사용설명서는 걔랑도 쓸 수 있겠지. 뭐’

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손을 쳐낸 것. 이기적이라고 한 것. 끝까지 따라와서 붙잡지 않은 것.

눈으로 보이는 굵직한 죄목만 무려 세 가지.

김현성이 아니었다면 손절 당한 것으로 모자라 미국 유학을 보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죄목이었다.

‘나쁜 새끼.’

이미 설산에서의 전적이 한 번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사태의 심각성으로 따지자면 지금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었던 거로 기억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거… 형님.”

심지어.

‘사과의 문자도 없었어.’

아침에 눈을 뜬 이후 자연스레 여신의 손거울을 확인했지만 사과의 메시지 같은 것은 없었다.

혹시나 아예 라베하를 떠나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김현성은 아직까지 숙소에 자리 잡고 있다.

어젯밤에 다른 곳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내가 숙소에 들어간 이후 곧바로 숙소로 들어온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적으로 이쪽을 먹이려고 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상황.

“형님. 내 말 듣고 있는 거요?”

“…….”

“형님? 아침 안 먹을 거요? 그거 안 먹으면 내가 먹어도 되는 거요?”

“…….”

“그, 그럼 내가 먹겠다니까. 감사히 먹겠소. 크으… 나는 왜 이렇게 아침에 밥이 많이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니까! 아! 그리고 어제 일 말인데.”

“…….”

“쯔업. 거, 현성이 형씨 너무 잡지 마쇼. 쯔업. 놀러 나갔다 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어제 보니까 그리폰도 타면서 재미있게 놀더구만… 뭐 사실 알고 보면 싸울 일도 아니었던 거 아니요? 또 별거 아닌 일이겠지. 그냥….”

“…….”

“그리고 현성이 형씨 보니까 술도 많이 마신 것 같더만. 물론 술 마셨다고 실수한 게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리 큰 잘못을 하지는 않았다는 거 아니요. 좀 심한 말을 하기는 했는데… 막말로 죽을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말이요.”

“…….”

“이게 다 그놈의 술 때문이라니까. 현성이 형씨한테 술 좀 줄이라고 내가 단단히 일러둘 테니까. 그만 용서해 주쇼. 기껏 온 휴가지에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남은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즐겨도 모자랄 시간에 서로 얼굴 붉혀서 득 되는 일이 뭐가 있겠냐니깐!”

그래.

물론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

‘취했었으니까.’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겠지. 음주를 한 이후 범죄는 가중처벌을 받는 것이 맞지만 김현성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생각해 보면 용서를 해줄 만도 해.

“아무튼 간에 현성이 형씨 술버릇이 고약한 건 어제 처음 알았다니까. 평소에는 취해도 얌전히 잠만 자던 양반이었는데… 어제는 뭐에 씌었는지. 혹시 정신 마법에 당한 건 아닌지 내가 다 의심이 들 정도였고… 나도 그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더라고. 쯔업. 쯔업.”

“덕구야.”

“응?”

“쯔업 쯔업 소리 좀 줄여.”

“아. 거… 큼큼 알겠소. 아무튼 간에 내가 한 말 듣고 있었던 거요?”

“대충 듣고 있었어.”

“말은 안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길드 신입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갑디다. 우리들이야 연례행사지 하고 넘어가도 병아리들 눈에는 길드의 두 기둥이 막 서로 눈 부라리면서 싸우고 그러는 게 얼마나 불안했겠소. 심지어 예리도 불안해 보이더라니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예리가 나한테 둘이 화해했냐고 물어봤다는 거 아니요.”

“…….”

“현성이 형씨야 안 봐도 후회하고 있을 게 뻔하고… 사과할 타이밍을 못 잡고 있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 문자로 비빌 언덕이나 좀 만들어줍시다.”

“…….”

‘그럴까?’

“…….”

‘그래. 그냥 실수한 거겠지.’

원래 자기감정 잘 못 숨기니까.

손을 쳐낸 것도, 뒤로 돌아 숙소로 돌아가는 이쪽을 잡지 않은 것도. 이기적이라고 말한 것도 김현성이 답답한 마음에 속에 있는 것을 털어낸 것이리라.

아마 조금 있으면 사과하러 찾아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할수록 박덕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상황, 특히나 김예리마저 화해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김현성이라면 슬슬 시동을 걸 테니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슬그머니 여신의 거울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이후에.

[어제 일은 대해서 할 말 없으세요? 이번에도 매번 똑같이 사과하는 걸로 무마할 생각하지 마세요.]

라고 문자를 보내고 전송.

“보낸 거요?”

“응.”

“보자마자 금방 답장 올 거요.”

“별로 관심도 없어. 밥이나 먹자.”

1은 지워졌지만 답장이 오지 않는 상황. 아마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여신의 손거울을 테이블 위에 올려 뒀지만 거울은 다시 울리지 않는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손거울이 울려 자연스레 손을 뻗었지만.

[조혜진 : 두 분이서 화해했습니까?]

쓸데없는 문자였다.

“거, 형씨가 숙취 때문에 아직 못 일어난 모양이네.”

시바 괜히 보냈잖아. 박덕구 이 돼지 새끼 때문에.

“분명히 보낼 거라니까.”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점점 작아지는 돼지의 모습.

오랜만에 같이 아침을 먹으려고 데려왔건만 이 새끼한테 낚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눈치 없이 우걱우걱 밥을 처먹고 있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큼… 큼….”

“뭐.”

무안했는지 슬그머니 커피를 타다 바치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참 동안이나 눈치를 보던 녀석이 커다란 탄성을 내지른 것은 조식 시간이 거의 다 끝나갈 때 즈음.

“저기 현성이 형씨요.”

“뭐 어쩌라고.”

“어쩌긴 뭘 어째! 형님이 여기 있으니까 사과하러 온 거 아니요? 아까 문자 보냈다면서! 거 내 말이 맞았다니까?”

“그래서 뭐. 나랑 아무 상관 없어. 시바. 밥이나 처먹어.”

그렇지 않아도 급한 발걸음이 느껴지기야 한다.

결국 적절한 문자를 보내지 못해 직접 찾아오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일까.

어제 이후로 회사설을 끊어버리기로 결심했지만 굳이 회사설을 쓰지 않아도 김현성의 심정이 느껴지기야 한다.

‘똥줄 타고 있을 거야.’

“형씨 여기요.”

“좋은 아침입니다. 덕구 씨.”

근데 어쩌죠? 사과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떠올리고 있는 사이.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아….”

김현성이 박덕구와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지나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조식 뷔페 코너에 가 묵묵하게 요깃거리를 담고 있는 모습,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다.

식사를 챙긴 이후에는 신문을 들여다보며 먹는 둥 마는 둥 오믈렛을 우물거리고 있었고, 여유롭게 커피를 들이켜며 아침을 즐기고 있기까지 하다.

마치 어제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한 모양새. 심지어.

“오셨습니까. 천관위 님.”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파란 길드마스터.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일단 식사하시면서 이야기하시죠. 아! 오셨군요. 박연주 님. 혜진 씨는 아마 잠시 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아침 식사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한 모양이다. 그제야 이 새끼가 지금 뭘 하자는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번 해보자 이거야.’

이 새끼 나랑 한번 해보겠다, 이거라고.

김현성의 학습능력에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언제나 이 싸움에 패배자는 자신이라는 것을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녀석이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가 느껴지기야 했다. 생각해 보면….

‘학습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학습능력이 생긴 거야.’

분기별로 찾아오는 김현성과 이기영의 논쟁과 갈등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해결했었으니까.

물론 논쟁과 갈등이라고 하기에도 사소한 사건들이 많다.

굳이 나열하기조차 민망한 사소한 부딪침이었지만 언제나 그 갈등은 항상 같은 구조로 해결되고는 했다. 무척 간단하게 말이다.

김현성이 이기영에게 진심을 담은 사과를 건넸고, 이기영이 그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

그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선물이 함께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선물이 아니라 결국 이기영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리라.

먼저 굽히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이 기 싸움에서 이기는 이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수많은 갈등 끝에 도달한 학습의 성과였다.

‘아마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이쪽이 먼저 사과하고, 자신은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걸 무기 삼아 타 대륙으로 가는 계획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공명의 계책.

물론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이걸 전부 염두에 두고 술을 마셔 이 사단을 만들 정도로 김현성이 영악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냥 본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벌인 일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장담하건대 녀석의 본능 속에는 이쪽에게 배운 해결책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군요.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파란 길드마스터.”

“천관위 님.”

“정말로 급한 일입니다. 다완에서 연락이…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다음에 꼭.”

“네. 스케줄을 비울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다완에서 급한 연락을 받은 천관위를 제외하고도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띈다.

마치 자신에게 친구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는 모습은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 이름난 모험가들이나 명사들이기는 했지만 박연주나 조혜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알아놔서 별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 대부분.

안개소환사가 그나마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녀석마저 떠나니 스쿼드가 더 별 볼 일 없어 보인다.

‘진짜 미쳤나 봐. 시바.’

“덕구야.”

“왜 그러쇼?”

“가서 샤넬리아 에르메스 님 좀 불러와라.”

“갑자기.”

“그냥 불러와.”

사람 잘못 봤어.

“희생과 부활의….”

“그냥 여기서는 이기영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 그럼 이기영 님 부르셨습니까.”

“네. 혹시 로헨 대륙 회귀자에 대한 정보를 먼저 들을 수 있나 싶어서요.”

“네! 물론입니다. 아직 자료가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주신다면 완벽하게.”

“아니요. 그냥 있는 그대로 주셔도 됩니다.”

보란 듯이 문서를 훑어본 것은 당연지사. 스펙이나 직업, 칭호나 성격같이 세부적인 사항보다는 로헨 회귀자의 생김새가 첫 장에 박혀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금발. 그리고 마치 태닝한 것마냥 까맣게 태운 피부.

귀에는 이상한 귀걸이들이 잔뜩 붙어 있었고 어깨에는 커다란 문신이 박혀 있다.

전체적으로 생김새는 멀쩡하게 생겼지만 잘생겼다는 인상보다는….

‘뭐야 이 새끼.’

“어떠십니까?”

“그냥….”

“…….”

그냥 금발로 염색하고 태닝한 양아치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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