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73화
피크닉 (36)
‘기분 안 좋아 보이네.’
이색 너무 기분 안 좋아 보이자너.
‘표정 좀 풀어.’
다들 신났잖아. 왜 너 혼자만 울상이야.
“…….”
“…….”
정말로 오랜만에 모두가 모인 자리였다. 사실은 조금 더 일찍 모여야 했지만 엘리오스 사태와 김현성의 개인 사정 때문에 전체 모임이 조금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늦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전체 모임이 있을 거라 공지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장소는 사막 오아시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숙소 앞의 작은 공터.
편안한 쇼파와 식탁 테이블, 바비큐 그릴과 마법 냉동고, 히피 감성이 느껴지는 간이 천막을 펼치고, 모두가 하나둘씩 모여들자 그럴듯한 분위기가 완성됐다.
평소와 달랐던 것은 따로 직원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 대신 자리한 것은 커다란 야외 주방이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야외에 설치한 거야. 분명히 몇십 분 전에 연락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런 걸 준비할 시간이 있었어?’
대형 레스토랑에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주방이 연회장 한쪽에 비치되어 있는 것은 특이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광경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길드원들이 스스로 요리를 하는 모습은 그것보다 더욱더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기획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가 즐거워 보인다. 한소라는 하얀이의 옆에 딱 달라붙어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있었고, 하얀이는 그런 한소라의 기대에 부응하듯 최선을 다해 재료를 손질하는 중이다.
이상하게 못 할 것 같다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단검을 굉장히 잘 다루는 모습은 그녀가 단검술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정하얀 님… 잘하시네요.”
“그, 그래?”
“네. 어떻게 그렇게… 그게 되는 거예요?”
특히 고기 손질을 기가 막히게 하는 것 같기는 해.
이미 손질된 부위를 그대로 사용한 적밖에 없으니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비상식적이다.
분명히 마구잡이로 단검을 푹푹 찔러 넣고 손으로 무리하게 잡아 뜯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냥 두서없이 무작정 신나게 찔러 넣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왜 저렇게 뚝딱뚝딱 처리가 되는 걸까.
“재, 재미있네.”
앞치마에 내장들을 덕지덕지 묻히고 땀을 닦으며 환하게 웃을 때마다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는 것만 같은 부위들이 마법처럼 나타난다.
혹시나 미리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텔레포트로 불러오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굉장히 열중하는 것으로 모자라 빛나고 있는 눈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한소라 역시 신기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일반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 와중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알프스와 벨리에 역시 눈에 띈다.
‘사실 쟤네가 제일 불쌍하기는 해. 모르긴 몰라도 이거 기획한 사람 원망하고 있을 거야.’
뒤를 처리해 줄 직원들이 없으니 알아서 눈치를 보며 움직이고 있는 중.
흰둥이까지 노동에 동원되어 주방 연회장 가릴 것 없이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은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였다.
정하얀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테이블을 재빠르게 청소해 다시 세팅해 주거나 혹여나 연회장이 뭔가 잘못된 점은 없을까 걱정하는 모습은… 파티를 즐기고 있다기보다는 어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 선희영이 조용히 그녀들을 살펴볼 때면 급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와 테이블을 다시 정리한다든가 하는 무빙을 선보이고 있었다.
의외로 안기모 역시 주방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불 쇼를 선보인다든가, 향신료를 과장해서 뿌린다든가 하는 모습이 딱 녀석다웠다.
커다란 바비큐 그릴에는 박덕구가 쉴 틈 없이 떠들며 고기를 굽고 있었고 스미스 대령은 익숙하게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주기적으로 짧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모두가 신나게 떠들며 분위기를 즐기는 와중에 초상집에 온 것 같은 표정을 선보이는 녀석이 시야에 비쳐온다.
‘표정 좀 풀어 현성아.’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것처럼 한쪽에서 고독하게 독주를 들이키고 있는 녀석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분위기 너무 잡고 있어.’
그 우울한 분위기에 길드원들마저 녀석에게서 벗어나고 있었다.
‘표정 왜 저래. 진짜. 왜 이렇게 티를 내? 누가 보면 아주 시바. 놀고 온 게 아니라 한바탕 싸우고 온 줄 알겠어.’
물론 녀석이 기분이 안 좋을 수는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중간 과정이 꽤 즐겁기는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무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 아니겠는가.
준비했던 선물은 흐지부지되어 버렸고, 김현성이 상상하는 최악의 상황이 급전개처럼 펼쳐졌다.
심지어 김현성 본인이 뿌린 씨앗으로 인해 생겨난 일이란다. 녀석이 저렇게 분위기를 잡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싸웠나 봐.’
‘싸운 건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나가서 싸웠네.’
하는 표정으로 김현성과 이쪽을 바라보는 길드원들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파티라고 모였는데, 김현성 이 새끼가 실시간으로 분위기를 말아먹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혼자서 벌컥벌컥 잔을 들이켠 이후에 다시금 혼자 잔을 따르고. 오아시스를 혼자 바라보다 다시 한번 벌컥 잔을 들이켜고.
자조적인 웃음을 내보이며 잔을 바라보다 다시 한번 목구멍으로 슬픔을 넘긴다.
그것만으로 모자랐는지 한쪽 손으로 머리를 짓누르거나 현재 기분이 좋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주고 있으니 녀석의 주변에 있던 길드원들도 스멀스멀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자리에 남은 것은 박리안 하나.
‘이 새끼 술도 잘 못 마시면서.’
“리안 씨는 술을 안 좋아하시나 봅니다.”
“네.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알콜을 마시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지더군요.”
“저는 이게 음료수보다 더 맛있습니다. 리안 씨.”
“…….”
“처음에는 저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힘든 일을 많이 겪고 나니 그냥 달달한 주스처럼 느껴지더군요.”
“네.”
‘이 새끼 진짜 쫓아내고 싶다. 진짜루.’
“한잔하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실 혼자 마시는 술이 더 맛있으니까요.”
“…….”
“하하….”
‘그냥 빨리 취하고 자러 가게 내버려 두자.’
결국에는 박리안마저 견디지 못했는지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보였다.
마치 공간 마법이라도 펼쳐진 것처럼 김현성이 있는 공간과 다른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이질적인 모습.
심지어 몇몇은 최선을 다해 김현성을 의식하고 있지 않으려고 하고 있으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더욱더 두드러졌다.
결국에는 박덕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분위기 환기시키는 것에는 녀석이 제격이었으니까.
“이제야 휴가를 온 것 같다니까! 뭔가 다들 모여야 안정되는 느낌이요.”
“아저씨. 술 마시느라 정신없었으면서.”
“붉은용병의 형님 동생들이랑 마시는 거랑 또 우리 가족들이랑 마시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지. 거, 스미스 형씨! 여기 온 기념으로 고기쌈 하나 받으쇼.”
“…….”
“우리 스미스 형씨가 왔는데도 제대로 환영회를 할 시간도 없었으니까. 내가 특별히 한 쌈 주는 거요. 거, 길드에 적응은 잘하고 있나?”
“네.”
“말 편하게 하쇼. 당신을 신입 길드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
“…….”
“알겠네.”
어떻게든 손으로 받아먹으려고 하는 스미스 대령이었지만 기어코 입으로 쌈을 넣어주려는 박덕구의 모습. 그 치밀한 신경전 끝에 승리한 것은 결국 박덕구였다.
“거,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슬슬 모이라니까. 다 같이 건배는 해야 될 거 아니요?”
“잠깐만요. 이것만 하면 끝나거든요.”
“스미스 형씨도 스미스 형씨지만! 또 새로운 손님도 왔으니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거, 듣기로는 가죽세공 장인이라는데. 장비 같은 것들도 만들고 그러는 거요?”
“네. 어떤 몬스터의 가죽은 철이나 희귀 금속들보다 단단한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닙니다만. 몇 가지 작품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그! 그 이야기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혹시 잠깐 시간 괜찮을까요?”
“당신은….”
“파란 길드의 대장장이인 유아영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파란 길드의 장인이셨군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언제나 이런 종류의 대화는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가죽에 대해서….”
유아영한테 미리 언질을 했으니 얻을 게 있겠지.
같은 장인을 만났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샤넬리아 에르메스 역시 기쁜 미소를 지으며 김현성보다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리고 있음을 증명했다.
“오, 오빠 이거 제가 만들었어요.”
“그래?”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그 와중에 정하얀은 본인과 한소라의 합작을 들고 와 옆자리에 자리 잡았고, 신입 길드원들과 흰둥이도 무사히 소파에 안착했다.
김창렬은 샤넬리아 에르메스 쪽을 힐끔 바라보고 난 이후에는 김현성의 반대쪽 구석으로 가 술잔을 기울였고.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던 황정연과 김예리. 그릴에서 고기를 주워 먹던 조혜진마저 모두 자리에 잡고서야 비로소 모든 길드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윽고 떠들썩한 파티가 시작됐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준비한 음식을 먹고.
“맛있네.”
‘생각보다 맛있네.’
“정, 정, 정말요?”
“응. 진짜로 맛있어. 하얀아.”
‘아니, 진짜로 맛있네. 뭐야. 왜 맛있지?’
와인 한 잔 먹으면서.
“천천히 드세요. 오빠. 밤… 밤은 기니까. 이… 이따가 방에 들어가서 따로 한잔 더 하실 거죠?”
“정하얀 님. 정하얀 님! 여기 좀 와보세요.”
쓸데없는 추억 이야기를 나누고.
“이기영 님. 혹시 예전에 기억하십니까? 저희가 원정에 나갔을 때.”
“네. 물론입니다. 희영 씨.”
가끔은 다른 사람들 목소리에 귀도 기울이고.
“그럼. 식은 언제 올리는 거예요. 선배님?”
“글쎄… 아직 정해진 건 하나도 없으니까. 너무 급하게 하기보다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알리고 싶다고 했었거든.”
‘뭐야. 덕구 결혼한대?’
“그이가 부길드마스터한테는 특별하게 알리고 싶다고 해서.”
‘뭐야. 뭐야. 진짜로?’
“프러포즈는 했어요?”
“응. 여기에 와서.”
“하아… 부럽네요. 제 짝은 언제 나타날까요?”
‘이 새끼 시바. 왜 나한테 안 알려줬어.’
이 새끼. 시바. 뭐야. 시바.
이 돼지 새끼.
잔뜩 취한 채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관능의 춤.”
‘그만해. 그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웃고 떠들기 시작한다.
“자자. 이제 슬슬 길드마스터의… 아니… 부길드마스터의 건배사… 가 있겠습니다. 모두들 자리에 착석하여….”
김현성이 건배사를 할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안기모의 순발력이 눈에 띄는 와중에 모두의 시선이 들어와 꽂히기 시작했다.
“가볍게 몇 마디 드리겠습니다. 상투적이지만 이 자리에 와주신, 그리고 여기까지 여정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그 많은 일들을 함께 겪으며, 함께 성장하고….”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기영 씨!”
‘아니, 시바. 이 새끼.’
눈에 띄는 것은 잔뜩 취한 회귀자의 얼굴.
‘아니, 시바. 너….’
“기영 씨이!!”
‘아니… 누가 저 새끼 좀 끌어내.’
맨정신으로 말할 자신이 없으니 술기운의 힘을 빌리려는 것일까.
“기영 씨는… 끄윽… 기영 씨는….”
“…….”
“기영 씨느은….”
“…….”
“기영 씨는 어째서 제 심정을 몰라주시는 겁니까아… 어째서어어!”
단언하건대 살면서 이 정도로 도망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누가 제발 저 새끼 좀 끌어내요. 진짜.’
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