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69화
피크닉 (32)
“네?”
“그러니까….”
“…….”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이쪽으로 다시 불러왔습니다.”
‘이 새끼 결국 성공했구나.’
당연히 기뻐해야 하는 타이밍이었지만 김현성의 표정에는 약간의 근심이 서려 있었다. 심혈을 기울인 깜짝 선물이니만큼 이기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됐던 탓이다.
물론 막상 선물을 준비하기 전에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본래 김현성은 한 번 꽂히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니까.
무조건 샤넬리아 에르메스에만 집착해 아마 최고의 선물이 될 거라 확신 아닌 확신을 하고 있었겠지.
녀석의 확신이 흔들린 것은 이벤트의 발표를 앞둔 시점. 언제나 그렇듯 시험 성적표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정말로 기뻐할까?’
혹시나 자신이 또 너무 앞서나간 것은 아닐까. 강령술로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불러온 게 정말로 옳은 선택일까. 죽은 사람을 다시 불러오는 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가 있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영 씨가 별로 기뻐할 것 같지 않은데. 오히려 꾸지람만 듣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기영 씨는 흑마법에 부정적이지 않으니까. 흑마법 재건 사업에도 투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나쁘게 보지만은 않으실 거야.
‘근데… 이건 평범한 흑마법이 아니라 강령술이잖아.’
실수한 게 아닐까?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나?
따위의 고민을 하느라 머리가 과부하가 되기 일보 직전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굳이 회귀자 사용설명서로 녀석을 읽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김현성의 표정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다.
“샤넬리아 에르메스는 이 시대 사람이 아니지 않나요?”
“…….”
“그러니까 현성 씨 말씀은…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는 건… 강령술을 사용했다는 말씀이신가요?”
마침 노을이 지고 있는 타이밍, 꺼뭇꺼뭇해지는 하늘처럼 자신의 운명도 암흑구덩이 속으로 처박힐 거라는 걸 직감한 것일까.
괜스레 눈을 질끈 감는 모습에는 후회가 서려 있었다.
어째서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후회였다.
‘아니야. 조심스럽게 접근하면 되는 게 아니라 아예 하지를 말았어야지.’
계획에 변수가 있을 것 같으면 주사위를 안 던지면 되는 거야. 왜 안 될 것 같은 일에 주사위를 던져서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고 그래.
“아니요. 강… 강령술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강령술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강령술은 아닙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다시 현세로 불러오는 게 강령술이 아니면 뭡니까?”
“그러니까. 강령술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비슷한 무언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강령술이라는 부정적인 워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날 거라는 것을 직감한 것일까.
어떻게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짠해 보였다.
당연히 마냥 봐줘서는 안 된다.
‘이 새끼 불쌍하다고 봐주면 나중에 또 이런다.’
샤넬리아 에르메스는 단순히 시작일 뿐이다. 만약 여기에서 좋아한다면 몇 세기 전에 사라진 가방 장인들의 영혼이 대륙을 들락날락거릴지도 모르는 일.
첫 선물이 하필 가방이었고, 거기에 좋은 반응을 보여 기뻐한 게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런 문제는 초장에 쥐어 잡아야 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강령술이면 강령술이지. 강령술 그 비슷한 무언가는 뭐예요?”
“네?”
“어쩐지 흑마법사들이 보일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후우….”
“…….”
“대륙법상으로 강령술을 시행하려면 그에 걸맞은 절차가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거예요?”
“그… 절차는 이미 수속을 밟아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그래. 시바 받기는 받았겠지. 권력으로 찍어 눌러서 어떻게든 받아 왔겠지. 길게 걸리면 몇 개월 걸리는 작업을 이렇게 순식간에 처리하는 게 말이나 돼?’
애초 교국에서는 강령술 자체가 불법이었다. 공화국에서야 재판 과정이나 국가가 필요로 하는 타이밍에만 엄중한 심사와 감시를 거쳐 진행되기는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억울하게 죽은 살인사건 피해자의 영혼이나, 역사적으로 밝혀내야 하는 중요한 인물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다시 말해 샤넬리아 에르메스가 이곳에 다시 등장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분명히 수속을 밟기 위해 김현성이 뭔가 수를 쓴 거겠지.
“어떤 식으로 받았는지 구태여 보지 않아도 뻔하네요. 항상 그런 식이었죠.”
“아니요. 정말로 정식으로….”
“개인의 이득을 꾀하기 위해서는 강령술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기본 상식입니다.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인 흑마법사들이에요. 다시 어딘가에서 강령술이 사용되었다는 게 알려진다면….”
“…….”
“개인의 이득을 꾀하기 위해. 금지된 마법을 사용하다니… 아니,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죄… 죄송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러지….”
받을 땐 받더라고 일단 충격은 줘야 돼. 진짜루 망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야 다시는 이런 짓을 안 한다고.
아니나 다를까 금세 혼란스러워하는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저, 저는 개인의 이득을 꾀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기영 씨의 기쁨이 곧 대륙의….”
‘뭔 소리야. 이건 또 얘 진짜 머리 이상해졌나 봐.’
아냐. 맞기는 맞아.
내 기쁨이 곧 대륙의 기쁨이지.
“후우….”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좀 짧았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짧았다는 거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 않나요?”
“네….”
“그러니….”
“네.”
“이번 일은 비밀로 하죠.”
“네?”
“딱 이번만이에요.”
“아!”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딱 이번만….”
“네!”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하죠.”
“네!”
대답 한번 우렁차요. 현성 어린이.
이럴 때는 시바 이렇게 우렁찰 수가 없어요.
물론 계속해서 한숨을 쉰다거나 하는 행동을 멈추지는 않는다. 당연히 중요한 것은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휴일인데… 괜히 기분 나쁠 필요는 없으니까.’
여행을 하면 사람이 관대해지나 봐.
평소였다면 아마 혼자서 그리폰을 끌고 곧장 파란 길드로 귀환했을 것이다.
여신의 손거울도 끊어버리고 방문도 닫아버리고 몇 날 며칠 나오지 않고 한 달 이상을 무시를 받아봐야 지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 수 있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
‘특별한 날인데….’
이번 여행을 위해 김현성이 얼마나 힘을 썼던가.
1회 차부터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 개고생만 주구장창 하다가 이제 막 행복해지고 있는 건데….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김현성의 눈물샘에서 이제 막 눈물이 마르고 있었던 타이밍.
이 타이밍에 과연 다시금 녀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이제야 안정되어 가고 있는 녀석의 정신질환에 다시 한번 비극의 씨앗을 쑤셔 박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친구라는 걸 가져본 적 없는 녀석에게, 가장 행복한 날 친구와의 갈등을 선물해 주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물론 이 새끼 행동교정이야 어느 정도 제지해 줘야겠지만 의도야 어찌 됐든 간에….
‘우리 애 기 죽이기에는 이른 타이밍이야.’
기껏 날 잡아서 여행 온 건데… 그러기도 싫고.
한 번은 눈을 감아줘야 한다는 스탠드를 취하면서도, 괜스레 싸워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줘야 했다.
아마 힘껏 미소 짓고 있는 김현성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기영이 흔치 않게 자신에게 한 발자국 양보해 줬다는 것. 그 기회를 걷어차면 안 된다는 것.
이벤트의 실패를 생각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겠지. 이후 샤넬리아 에르메스가 어떤 가방을 만드느냐에 따라 이번 이벤트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번에도 조금 생각 없이 행동한 것 같아서… 기영 씨를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현성 씨는 가끔 혼자만의 생각에 너무 빠져들 때가 있으니까요. 이번에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를 배려해야 되는 게 아니라 대륙에 통용되는 기본 상식을 생각해 주셨어야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됐어요. 이미 넘긴 일인데. 계속해서 죄송하다고 해봤자 서로 기분만 나빠지죠.”
“…….”
‘내가 너무 친절한가?’
너무 심하게 친절하니까 오히려 조금 불안해졌나?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전사의 얼굴. 이번 일이 흔들리면 모든 게 끝장나 버릴 거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정말로 저는 괜찮아요.”
“네….”
“어서 움직이죠.”
“네… 네.”
이윽고 녀석은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금사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폰을 타고 천천히 걷자 불빛이 켜져 있는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단순한 쉼터라고 하기에는 꽤 고급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이번 기획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번이나 와본 것처럼 김현성은 익숙하게 그리폰에서 내려 내가 그리폰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고… 이윽고 작은 횃불을 들고 화로에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슬슬 어두워지는군요. 들어가시죠. 기영 씨.”
“안쪽에 샤넬리아 에르메스 님이 계신 건가요?”
“네.”
“강령술에 성공한 것은 어제저녁이었습니다.”
‘아까는 강령술 아니라매 시바.’
“대화는 해보셨어요?”
“네. 그녀 역시 마지막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더군요. 조금 의견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아마 저희를 도와주실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더 우호적이라…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난 사실 걔 작품에 그렇게 큰 관심은 없어. 물론 계속해서 모으다 보니까 뭔가 수집 병이 생긴 것 같구… 자리가 비면 공허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샤넬리아 에르메스의 작품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란 말야.’
마치 선물 포장지를 뜯기 전의 초등학생 얼굴을 하고 있다. 막상 선물 포장지를 뜯는 것은 이쪽인데 왜 지가 더 설레하는 걸까.
아까 차단당할 뻔한 것은 이미 잊은 모양. 더 압박했어야 했나? 내가 너무 물렁했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처음 보는 인형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샤넬리아 에르메스 그녀의 본질이었다.
‘시바… 뭐야….’
“인사드리겠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신이시여.”
‘너 인간 아니잖아.’
“그리고 노을빛의 검신이시여. 덕분에 고향에 돌아올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위화감이 없는 육체라니….”
시바 강령술이 아니라 강림술을 한 거잖아. 신을 시바 어떻게 여기로 소환했어. 시바.
아니, 이거 어떻게 한 거야. 흑마법사들이 한 거 맞아?
그리고 저걸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 거야. 다른 차원의 신이 어떻게 여기에서….
‘이건 또 뭐야.’
어째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까.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김현성.
녀석이 벌어놓은 신성이….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실시간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저 소환을 유지하기 위해, 저축해 놓은 신성을 초 단위로 가져다 바치고 있는 것이다.
“안… 안 돼….”
김현성의 돈은 곧 내 돈.
내 적금… 내 비상금이….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