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52화
피크닉 (15)
“이이이이익!”
“…….”
“지원해 주세요!”
‘이번에는… 뭔가 보여줘야 돼.’
“에이! 비켜! 내가 처리할 테니까. 세나!”
“저, 저, 저도 할 수 있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명령이야! 세나! 후방지원으로 변경해. 아직 위험해! 아무래도 내구형 몬스터인 것 같아.”
“세, 세, 세란데….”
“다들 진영 갖춰!”
“네! 언니!”
“네, 누님.”
황급하게 날개를 펼친 채로 전방으로 뛰어가는 케루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새 몸을 가릴 정도로 커진 케루의 날개가 방패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은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12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 괴물의 공격을 날개로 막고 버텨내며 중간중간 푸른색 낫을 휘두르거나 이동하는 모습은 숙달된 모험가의 그것.
막스 형이 내린 작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고 있는 것은 감탄이 다 나올 정도였다.
단순 검술만으로 경지에 오른 쓰로 역시 감탄이 나오기는 마찬가지. 예전보다 더 날렵해진 몸놀림으로 모든 공격을 회피하며 착실하게 대미지를 쌓고 있다.
도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후방지원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어중간한 위치에 서 있는 자신보다는 훨씬 활약할 여지가 많았다. 그녀는 권능으로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니까.
아직은 거리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장에서 위치를 한 번 이동시켜 줄 수 있다는 메리트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엄마에게 배운 마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지만….
‘화력이 부족해.’
아직 자신은 갈 길이 먼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성장했다.
당연하게도 자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의 개수와 함께 몸 안에 잠들어 있는 마력의 크기 역시 커졌고, 조금 무리한다면 트리플 캐스팅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았다.
심지어 근접전 클래스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해 최근에 제법 안심하고 있었지만, 형제들의 성장세는 자신이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이모가 그랬어. 나는 조금 느릴 뿐이라고….’
먼저 달린다고 해서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이모가 매번 위로해 주듯 건네는 말을 가슴속에 새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초조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권능을 깨닫고 사용할 수 있게 된 다른 형제들.
마법과 검술 두 가지를 전부 끌고 가려고 했지만 근접전은 쓰로와 케루에게, 후방지원은 도미에게 밀리다 보니 던전에서의 기여도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경우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두 병과에서 모두 어중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마법을 놓고 싶었지만 엄마 때문에 놓을 수 없었고, 검술 역시 포기하지 못해 여기까지 와버렸다.
‘누나님이랑 막스 형아님이 가장 높게 평가될 게 뻔한데… 아마. 내가 최하위일 거야.’
“이번에도 무난하게 공략 완료했네. 덩치만 컸지 별것도 없잖아. 이 자식. 세나. 여기 와서 나온 아이템 좀 분류해 봐.”
“네. 네… 누나님.”
이번에도 역시….
‘기여도는 C급 정도일까. 아니. 어쩌면 F급 정도일지도….’
최초 전투 때 몬스터의 시선을 끌었고, 근접임무를 수행하려 하다 검이 몬스터의 피부를 뚫지 못해 곧바로 후방지원 작업.
그나마 막스 형이 자신을 배려해서 넘겨준 임무를 대차게 말아먹어 버렸다.
“세라 괜찮아?”
“으응. 괜찮아. 케루. 나, 나는 신경 쓰지 마. 그러다가 혹시 케루도 탈락되면 어떻게 해….”
“하지만….”
“소라 이모가 그랬어. 나는 조금 느릴 뿐이라구… 이번이 아니어도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 그리고 엄마도 너무 성적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었으니까.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 했, 했었으니까.”
“…….”
“그리고 아직 누나님 말처럼 개별 평가가 따로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잖아. 물론 가능성은 높지만… 아무튼 최대한 좋은 성적을 받,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봐야지.”
“세라.”
“그런 모습 보기 좋네. 세나. 확실히 예전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원래대로라면 질질 짜고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누나님?”
“흥. 모두 잠깐 모여봐.”
“네? 갑자기….”
“사소한 부상이야.”
“네?”
“너무 무리했는지는… 아까부터 왼쪽 발이 이상하지 뭐야. 아무래도 당분간은 전력에 이탈해 있는 게 낫겠어.”
“그렇다면 일단 돌,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누나님?”
“조용히 해. 세라. 원정을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파란 길드에는 없는 일이니까. 잠깐만 쉬면 해결될 문제야. 그전까지는… 세라가 내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
“그건….”
“왜.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막스와 도미니온스가 버프를 집중적으로 걸어주면 못 할 것도 없지. 방금 같은 경우에는 내구형 보스 몬스터가 나왔을 뿐이야. 다음번에는 아마 다른 타입이 나올 것 같으니 세라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누… 누나님.”
슬그머니 시선을 내려 디아루리아의 왼쪽 발을 바라봤지만 부상 따위는 없었다.
“도미 이리 와서 치료 좀 해주겠어?”
“네. 언니.”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아픈 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째서 저런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재 자신이 배려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리라. 아마 아버지에게 보고할 때도 똑같은 내용으로 보고하겠지.
잠깐 부상이 있었고 그 빈자리를 채워준 게 세라핌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디아루리아 자신의 평판을 내려갈지도 모르는 거짓말을 해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누나님….”
“저리가. 정말로 사소한 부상이니까. 그러니까 그전까지 보고할 수 있는 실적을 쌓도록 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네… 네!”
“축하해. 세라.”
“다행이다.”
“응. 고마워, 쓰로.”
“그럼 잠깐 진영을 수정하는 게 좋겠네요.”
“막스 형아.”
“신경 쓰지 마세요. 간단한 작업이니까. 출력이 조금 부족한 것뿐이니 아이템 셋팅도 바꿔야 할 것 같고….”
“고마워요. 형아님.”
공중에서 떠오른 수수께끼의 박스에서 주섬주섬 아이템들을 꺼내는 막스형과 부끄러운 듯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는 누나님.
쓰로누스와 케루빔에게도 질투의 시선 따위는 없다.
정말로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듯이 진심으로 축하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잠깐이나마 형제들을 시기했던 자신이 못나 보일 정도였다.
“고, 고, 고마….”
갑작스레 주변의 공기가 뒤바뀌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
“어?”
아니, 공기만 뒤바뀐 것이 아니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자신들은 전혀 다른 장소에 서 있다.
‘뭐야.’
“도미?”
“함… 함정은 아니예요. 언니. 이건 그냥…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을….”
“막스?”
“통제할 수 없어요. 던전이… 던전이 움직이고 있어요. 누나. 저도 이런 현상은….”
그리고.
[꼬마 손님들이 찾아왔구나.]
귀가 터지라 외치는 디아루리아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도망쳐어!!!!!!”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자신의 몸을 붙들고 반대쪽으로 달리는 케루빔의 모습이 들어온다.
순식간에 변신을 마친 디아루리아는 거대한 브레스를 뿜어냈고 막스형이 꺼낸 골렘들이 모여 커다란 벽을 만들었다.
“명령이야! 지금 당장 도망쳐! 그리고! 아무한테나 알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금 무슨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건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
“여기는 막스랑 나랑 맡는다!”
“네. 누나.”
“흥.”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모든 일을 만든 이가 공중에 뜬 채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 봐. 어리석은 꼬마손님들.]
“웃겨! 꼬마 아니거든!”
갈색의 정리되지 않은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자.
무척이나 화려한 옷을 입은 그녀의 얼굴에 마른 눈물 자국이 시야에 들어왔다.
뭔가 비현실적으로 생긴 사람의 모습이 이러하리라.
마치 아버지를 보는 것만 같은, 다른 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목도한 것처럼….
‘아니야. 아버지? 아버지처럼은 아니야.’
저 존재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온전한 형태를 갖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존재라고 보는 것이 맞다.
마치 봉인되어 있는 것처럼, 억지로 던전에 묶여 있는 것처럼….
“언니! 투명한 벽이…..”
“해체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약… 세… 세 시간이요!”
“한 시간 줄게. 도미니온스! 아니, 30분 안으로 처리해!”
제법 넓은 동공이라고 생각했지만 탈출구조차 막힌 상황,
[우습구나.]
“뭐가 그렇게 우스운데?”
[기껏해야 성체도 되지 못한 용이 이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어리석어. 어머니에게 배우지 못한 것이 많은 모양이구나. 아무리 어리고 퇴화하기는 했지만 용은 용. 힘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진대….]
“반쪽짜리 신이 말이 기네. 지금 당신은 하나도 안 무섭거든? 쫄리면 덤벼보시든가요! 막스! 지원해!”
“네!”
[제법이구나. 어린 용치고는 기개가 제법이야.]
거대한 용이 커다랗게 손톱을 휘두르자 투명한 벽이 그 손톱을 가로막는다.
순식간에 디아루리아를 둘러싼 갈색의 에너지가 순식간에 그녀에게 쏟아지지만 어디에선가 나타난 골렘의 벽에 에너지들을 버텨낸다.
꼬리를 휘두르자 광풍이 덮쳐와 흙먼지가 사방을 덮쳤고,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흙먼지를 뚫고 검을 든 인간형의 디아루리아가 빠른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됐다!’
저 공격은 닿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반쪽짜리 신이 그녀의 머리를 부여잡기 전까지는.
“누… 누나님!”
“그건 환영이거든! 잘했어, 막스!”
진짜는 반쪽짜리 신의 뒤에서 길게 뻗어지는 거대한 이빨. 다시 한번 흙먼지를 해치고 나온 거대한 용의 입이 쇄도했다.
불안정한 존재 따위는 한입에 삼켜 버릴 것처럼 크게 벌린 입이 닫히기도 전에….
[귀여운 잔재주구나.]
반쪽 신의 주변에 충격파가 뻗어 나갔다.
[초월적인 존재에게는 그런 눈속임은 통하지 않는단다. 꼬마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안 돼….’
피를 토하며 주저앉는 누나.
당황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서는 형.
깜짝 놀란 표정으로 검을 들고 뛰쳐나가는 쓰로누스.
“제길… 왜 안 열리는 거야! 왜! 엄마! 비상사태예요! 어머님!”
“…….”
“어머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제길! 통신도 막힌 거야?!”
계속해서 벽을 열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도미니온스.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케루빔.
‘아무것도 못하는 거야?’
이대로 자신은 아무것도 못하는 걸까. 매번… 매번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번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도움만 받는 걸까.
마치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았다. 모두의 모습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이 많아졌던 탓일까.
‘세, 세라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엄… 엄마는 세라를 믿… 믿어.’
머릿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세라핌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심… 심판.”
그 직후.
하늘을 가득 메우는 황금색의 검들이 시야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