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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34화 (1,03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34화

뒷정리 (17)

-정… 정말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정말로 명예추기경님이 맞으십니까?

-그럼. 누구겠어?

-…….

-가만히 하자고 하는 대로 다 해주니까. 여기가 네 세상 같고 막 그랬지. 알량한 재능 믿고 나대고 다니니까, 아주 신났지?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았지, 응? 근데 어쩌면 좋아. 우리 스퀴어트야. 이번에는 선을 넘어버린 것 같은데.

-…….

-왜 이번에는 조심하지 못했니.

-네…?

-어쩌다가 이번에는 조심하지 못했냐구. 평소처럼 조심했으면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

-…….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계속 성자로 남고 싶었는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니… 이제 이렇게 하는 건 지양하려고 했었는데…. 대륙민들과 모험가 여러분들의 작은 명예추기경으로 남고 싶었는데… 대륙민들의 소중한 명예추기경이 되고 싶었는데… 왜 몰라주는 거야….

-…….

‘이게 도대체….’

-지금 갈 거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지금 갈 거라고. 네 골통 부수러. 그러니까 조용히 기다려.

‘정말로… 명예추기경이라고?’

-뭐 할 말 있어? 어차피 들어주지 않을 거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번 해봐. 경우에 따라서는 정상참작 해줄 여지도 있으니까.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치 사고가 마비된 것 같았다. 실제로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목소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명예추기경의 그것이다. 평소대로와 같이, 성자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부드럽고 고결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시장바닥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거친 말투가 계속해서 귀에 박힌다.

뒷골목에서나 들을 법한 상스러운 욕설이 계속해서 손거울에서 들려오는 탓에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다.

짜증을 내거나 이죽거리거나, 가끔은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제정신이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생각할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누군가 명예추기경을 사칭하고 있다는 것. 혹은 누군가가 장난을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명예추기경에게 향하는 통신 채널이 잘못될 리가 없었지만 만약이라는 게 존재했으니까. 누군가 이 통신 채널에 침입한 것이 아닐까. 그런 경우의 수도 있지 않을까.

여신의 손거울에 기술적인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건 도대체 무슨….’

-나는 연방의 스퀴어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놔는 연방의 모스퀴어트다. 뉴군지는 모르겠지만…

‘미친 자식. 도대체… 누구….’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구운….

‘유치한 개자식이 감히.’

-넌 지금 명예추기경님을 사칭하고 있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내가 명예추기경인데 누가 누구를 사칭해? 너 은근히 멍청하구나. 아직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안 와? 통신 채널이 잘못된 것 같아? 그래?

-…….

-여신의 손거울에서 유지하고 있는 통신 채널이 잘못될 리가 없잖아요. 스퀴어트 이 양반아. 이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어요.

-…….

-못 믿는 것 같으니까. 친절하게 알려줄게. 지금 네가 어떻게 된 건지.

물론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똑똑 하고 누군가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스퀴어트 님.”

“…….”

“스퀴어트 님.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감찰단에 소속되어 있는 린델의 알렉스입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

“스퀴어트 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감찰단, 린델의 알렉스라고 합니다. 잠깐 시간 되십니까? 그레고리 님에 대한 실종 및 사망 사건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이제 좀 믿겨?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이미 꽤 많은 이들이 몰려온 모양, 밖에서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물어볼 게 뭐 있어? 당장 비켜! 알렉스! 이 미친 살인자 새끼한테! 어떻게 감히! 명예추기경님의 은혜를 배신할 수가 있냐고!”

“진정해! 캐넌! 아직 조사 중이니까!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거 몰라? 어이! 조지 너도 한마디 해봐!”

“뭐. 절차라는 건 중요한 법이지.”

“제기랄! 너희들이랑 같이 온 내가 병신이지. 저리 꺼져. 캐넌! 여기는 내 소관이니까! 꺼지라고! 스퀴어트 님 린델의 알렉스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이제 슬슬 인정할 때가 되지 않았어?

-너… 넌 뭐야. 도대체.

-뭐긴 뭐야. 명예추기경이지. 대륙의 성자. 파란의 부길드마스터. 희생과 부활의 신. 다른 수식어가 더 필요해? 아직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이 안 오지? 잠깐 기다려 봐. 더 실감 나게 해줄 테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캠프에 설치되어 있는 여신의 거울에서 화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특보라는 이름이 붙은 뉴스가 끊임없이 재생되는 중, 평소와 다름이 없는 광경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안에 든 내용은 평소와 다르다.

그레고리 파티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슬로건이 붙은 영상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용의자는 연방의 스퀴어트이며 현재 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는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를 포함해 수도를 봉쇄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스퀴어트를 1급 범죄자로 지정해 수배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손거울 속의 명예추기경이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화면에 비치는 앵커가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용의자는 연방의 스퀴어트이며 현재 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는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를 포함해 수도를 봉쇄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스퀴어트를 1급 범죄자로 지정해 수배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초신성이라 불리는 절멸의 레이넌, 난사의 로빈우드를 포함한 연방 범죄자들에 대한 수배령이 내려져 있습니다. 교국은 현재 연방 당국과 함께 수사협조를 벌이는 한편,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와 밀접히 연계해 이번 사건에 대한 정황을 파악할 예정입니다. 이에 일부 단체는 연방에 대한 명예추기경의 과도한 동정이 이와 같은 사고를 일으킨 것이라 비판을… 교국의 시민 여러분들은 모두 평소대로….

-그 외에도 초신성이라 불리는 절멸의 레이넌, 난사의 로빈우드를 포함한 연방 범죄자들에 대한 수배령이 내려져 있습니다. 교국은 현재 연방 당국과 함께 수사협조를 벌이는 한편,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와….

마치 한순간에 세상이 바뀐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같은 타이틀이 올라오고 있다.

[냉혹한 살인마. 연방의 스퀴어트에 대해. -린델일보 김성경 기자]

[연방의 외곽 오하이오의 폭군 스퀴어트를 낱낱이 고발한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정지부 기자 강유미.]

[그날 그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던전 칼럼니스트 김성경]

[연방의 기대주? 연방의 적폐세력이라 불리는 초신성,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연방의 썩은 고름, 도려내야 할 그들에 대해서. -교국신문 콤파니 특파원]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제기랄.

미친.

제기랄.

뭐 이딴… 게… 이딴 게 다 있어.

-이제 좀 믿겨?

-…….

-이제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일단은 굽혀야 한다. 아니, 굽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아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요?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네가 왜 이러는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명예추기경님.

-그레고리 네가 죽였잖아. 베니고어의 성물도 네가 훔쳤지.

-아닙… 니다.

-에이. 네가 죽였잖아. 거기 개판 친 거 다 네 작품이잖아.

-정말로… 잘 모르겠습니다. 명예추기경님… 뭔가 오해가 있었던….

-…….

-혹시나 심증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라면… 제가 차분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은….

-물증이 없다. 증거가 없다. 이 사람아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누가 증거 없는 걸 몰라? 나도 증거 없는 거 알아. 솔직히 못 찾을 것도 없겠지만 시간이 걸려서 짜증 날 뿐이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네가 내 눈 밖에 났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 그런 게….

-나한테는 말이 돼.

-그런 법이 어디….

-내가 바로 법이야. 여기서는 내가 법이라구.

-…….

-…….

-제길. 당신 뜻대로 되게 놔둘 것 같아?!

-…….

-지금 이 통화가 녹음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해? 그래.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그 명예추기경이 그따위 말을… 전부 연기였나? 그랬던 겁니까?

-연기면 어쩌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대화. 대륙민들이 알게 돼도 괜찮겠습니까?

-올려봐.

-…….

-한번 알릴 수 있으면 알려보라고.

여신의 손거울을 들여다보고 녹음 파일을 저장하려고 했을 때였다.

‘…….’

-왜. 저장이 안 돼?

-…….

-아니면 녹음이 안 되고 있었어? 디바이스에 문제가 생겼나 보네요. 식은땀 흘리는 것 좀 봐. 우리 스퀴어트. 지금 네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보여주고 싶네.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손거울 들고 쩔쩔매는 꼴이라니.

‘제길… 보고 있나. 어떻게 보고 있는 거지? 감시수정구라도 있는 건가.’

-어디로 탈출하려고 그러시나. 어디로 도망치려고. 지금 여기서 빠져나간다고 하더라고 다른 방도가 있을까.

“스퀴어트!”

“제길!”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공포 때문인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들려온 소리에 서둘러 창을 집은 것은 당연지사.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다. 무조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엇이든, 명예추기경의 정체가 어떻든, 고민해봐야 할 것은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을 피신시키는 것.

‘세력을 모아야 돼.’

명예추기경은 진짜 자신을 숨기고 있다. 어쩌면 파란 길드원을 비롯해 교국 전체가 그에게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던전에서 보았던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아귀가 들어맞는다.

고결하고 성스러운 척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체는 사람을 홀리는 악마나 다름이 없다.

대륙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도 몰라도 언젠가는 대륙이 그를 알게 되리라.

‘제길. 제길. 난 아직 진 게 아니야.’

베니고어의 창을 보라.

이미 자신은 초월자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던가.

“제길! 들어가서 진압해!”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서둘러 다른 출구로 빠져나간 이후에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한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궁금할 거야. 그렇지. 스퀴어트야.

-…….

-너랑 내가 뭐가 그렇게 다른지 궁금할 거라고.

-…….

-조금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가 문제가 아니야.

-…….

-나는 양보한 적이 없어요.

-…….

-최소한 일이 이 지경까지 왔을 때는… 절대로 양보한 적이 없어. 덤벼들고 기어오르는 놈들은 딱 한 놈 빼놓고 전부 다 지옥으로 보내버렸다 이 말이야.

포위망을 빠져나갔다고 생각했던

그때.

저 멀리서.

“안… 안녕… 하세요.”

커다란 모자를 푹 눌러쓴 마법사가 시야에 비쳤다.

“처, 처, 처, 처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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