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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31화 (1,03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31화

뒷정리 (14)

‘제길.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면 안 되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스스로 물음표를 던져봤지만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물론 현 상황이 마냥 안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전후 사정이 어찌 됐든 간에 현재 자신을 비롯한 초신성 인원들은 명예추기경의 품 안에서 착실히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하루하루 쏟아지는 지원금을 제대로 처리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마어마한 자금의 사용처를 행정처리 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단체의 덩치는 커지고 있었고, 평생을 일해도 만져볼 수 없을 정도의 투자금이 금고에 착실히 쌓여가고 있다.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매일 밤 파티를 벌여도 모자랄 상황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이후 대륙을 이끌어갈 차기 리더로서 자신의 이름이 매일매일 거론되었으니 말이다.

‘스퀴어트.’

오하이오, 연방의 외곽, 변방에 위치한 길드의 길드마스터.

튜토리얼 던전에서 공략조로 활약한 이후, 원정을 수차례 성공시켜 초신성이라 불리며 연방과 연합의 이목을 끌고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의 커리어는 딱 거기까지였다.

오하이오에 자리를 잡은 것 역시 연방 중앙 정부와 가깝다고 생각해서였지만… 연방이 대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대륙에 연방과 연합 이외에 공화국과 교국, 이종족 연합, 중립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주변 세력들에 비해 연방이 상대적 약자의 자리에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뭔가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어쩌면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매번 똑같은 일상, 언제나 패배자였던 지난 삶과는 다르게 이곳에서의 자신은 누가 느끼기에도 승자였으며 주인공이었으니까.

언제나 중심에서 멀어졌던 지난 삶과는 반대로 대륙의 스퀴어트는 언제나 주목받는 인물이었으니까.

적응하지 못해 나가떨어졌던 다른 대부분들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은 초신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두의 기대를 받았던 신예였었으니까.

앞으로 펼쳐질 삶에 기대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멋진 모험, 개성 넘치는 동료들, 특별한 직업, 아무나 꿈꿀 수 없는 퀘스트.

소설 속, 만화 속, 이야기 속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삶.

하지만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었고 조연일 뿐이었다.

아니, 조연조차 되지 못했다.

자신과 같은 실력자는 해변가에 모래알처럼 깔려 있었고 오하이오의 스퀴어트는 그 어떤 것도 이룩하지 못했다.

최소한 교국의 명예추기경이라 불리는 이기영과 노을빛의 검신이라 불리는 김현성에 비교한다면 자기는 그 어디에도 쓸모없는 존재처럼 비추어질 것이다.

그들의 모험일지와 그들이 공략한 퀘스트들은 언제나 눈을 커다랗게 뜨게 만들 정도였고, 그들의 주변에는 언제나 강하고, 아름답고 개성 넘치는 동료들이 있었다.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륙을 그들을 중심으로 흘러갔고, 심할 경우 그들의 한마디에 한 국가나 단체의 운명이 결정지어지기도 했다.

이미 이 대륙에는 주인공이 있었던 것이다.

불공평하다. 유치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자신보다 이 대륙에 먼저 들어온 것뿐이다.

겨우 그것으로 주연과 엑스트라가 결정된다니 이것은 불공평한 처사다.

자신은 아무 일도 겪지 못했다. 공화국 전쟁도, 27군단 소환사태도, 외신전쟁도… 아무것도 겪어보지 못했다.

이름을 날릴 기회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연방에 소환된 많은 모험가들에게 올라갈 수 있는 기회 따위는 없었다.

‘이건 옳지 않아.’

색욕과 영면의 군주로서의 이기영의 모습을 목도 했을 때 기회라 여긴 것은 아마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다시 주역으로 오를 수 있는 기회였고, 모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

실제로 자신의 도박은 성공했고 명예추기경 조차 자신에게 공감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분명 모든 게 잘되고 있었는데… 분명 그랬을 터인데….

‘제길….’

“스퀴어트 님.”

“예. 오늘 예정된 스케줄은….”

“죄송합니다. 명예추기경님께서 바쁘신 일이 생기셨다고… 다음 기회에 뵙는 게 좋겠다 전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우….”

“…….”

“…….”

“명예추기경님께서 어디로 향하셨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그레고리 님과 함께 계시는 거로 파악되고….”

쾅!

“제길!”

“…….”

“제기랄! 또 그레고리? 또?! 도대체 그 시궁창에는 무슨 볼일이 있길래. 제기랄! 뭐가 더 중요한지 알고 있을 만하지 않나? 본인도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지, 지금 향하신다고 말씀을 전해도 되겠습니… 까?”

“…….”

“…….”

“아니,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늦게 향한다고 한들, 저번처럼 병신 취급을 당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리라.

‘도대체 왜 뒷정리 따위에 연연하고 있는 거야. 연방 재건 사업? 그걸로 연방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결국 교국의 똥닦개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교국이 떨어뜨려 주는 콩고물을 받아먹으면서 살라는 말과 뭐가 달라.’

연방이 가지고 있는 가난을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륙에는 대륙의 방식이 있다. 수동적으로, 지금처럼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긴다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이 직접 흐름을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집단을 성장시키고, 무력을 키워야 한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을 키우고 대륙인들이 인정할 정도의 성과를 이룩해야 한다.

명예추기경, 노을빛의 검사, 대마법사나 용병 여왕과 같은 서사를 쌓고, 쌓고, 쌓아 올려야 한다.

“한가하게 뒤처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던전을 매입하고 끊임없이 원정을 진행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내실을 다지고… 최소한 파란 길드의 그 돼지 자식의 콧대를 눌러줄 수 있는 무력을 길렀어야 하는 시기였는데….

“명예추기경님께서 방금 던전을 나와 공화국으로 향하셨다고 합니다. 아마 진청 군사님과 오찬 회동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며….”

“그레고리는?”

“그레고리 님께서는 함께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딴 소식에 안도감을 느끼는 처지라니… 그레고리가 동행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안심해야 된다는 처지라니….’

“후… 지금 안식처로 향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네? 그, 그렇다면… 예정되어 있는 원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두더지 성녀의 안식처부터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명예추기경의 이목이 그곳으로 쏠려 있으니. 저희 역시 연방복구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하니까요.”

“네.”

“솔직히 무엇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남은 아이템? 그딴 게 남아 있을 리가 없지.’

“곧 출발할 예정이니 그레고리에게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스퀴어트 님.”

‘제길.’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은 비위를 맞춰줘야 할 때다.

‘성자 코스프레 한번 제대로 하는군. 제길.’

사실은 명예추기경도 알고 있을 텐데….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야.’

그깟 사업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이동은 빨랐다. 어차피 예정되어 있는 원정을 취소한 이후였으니 사실상 원정대원들 전원이 참여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작업에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인선이 사업에 투입되었다는 것을 알면 명예추기경 역시 만족할 수밖에 없으리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명예추기경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먼저야.”

“그래. 일단은 고개를 숙이자고. 그레고리를 견제해 줘야지.”

“그 무식한 놈이 뭔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동료들 역시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모양인 것 같았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워프게이트를 이용해 이동하자마자 들려온 것은 환영 인사가 아닌 거대한 폭음이었을 때였다.

‘뭐지?’

“지원 요청! 지원 요청해!”

“비전투 인원들은 결계 밖으로! 밖으로 향해라. 전투 인원들은….”

‘몬스터인가?’

그것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간혹 뒷정리를 하는 와중에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은 몬스터가 출현하기도 하니까.

동료들과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몸을 움직인 것은 당연지사.

“어디입니까?”

“결계 안쪽입니다. 현재 그레고리 님께서 전투를 펼치고 있는 도중….”

“네.”

“때맞춰 온 것 같군요. 저희가 진입하겠습니다.”

“네… 네!”

“남은 인원들이 있다면 부상자 구출에 투입시켜 주십시오.”

보호마법으로 겹겹이 쌓인 것으로 모자라 결계까지 펼쳐져 있는 장내.

일이 터지자마자 곧바로 발동된 마법과 주술 때문인지 근처의 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부상당한 작업원들도 보이지 않는 상황, 그레고리가 던전의 관리를 확실하게 해놓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유사시에 이렇게까지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가 이 시스템을 설계했기 때문일 테니까.

‘제발….’

숟가락이라도 얹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드는 것도 당연했다.

일이 터졌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게 알려지고… 다시 한번 모든 공적이 그레고리에게 향한다면 그 이상으로 최악의 상황은 없다.

어쩌면 정말로 모든 지원금이 끊길지도 모르는 상황.

“진입하겠습니다.”

“확인.”

사고가 난 곳은 지하 4층의 작업 현장.

이후 현장에 도착한 이후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서 있는 그레고리와 파티원들 그리고, 쓰러져 있는 몬스터 수십 구의 사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저게 뭐야….’

“하하하… 스퀴어트 님! 도와주러 와 계셨군요. 아무래도… 연방이 큰 공을 세운 것 같습니다. 이 그레고리가 드디어 명예추기경님의 은혜에 보답할 기회가 생겼다 이 말입니다.”

‘저 창은… 도대체 뭐야….’

눈에 띄는 것은 벽면에 고정되어 있는 성스러운 창. 언젠가 본 적 있었던, 베니고어의 조각상에서 그녀가 들고 있었던 것과 굉장히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는 창이었다.

“명예추기경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

“제대로 된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베니고어 님께서 생전에 사용하시던….”

어째서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무기를 든 손이 그레고리의 가슴팍으로 향하고 있었다.

푸욱 하는 기분 나쁜 감촉이 들려온 동시에,

그레고리가 허물어지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어… 어째서… 콜록… 어… 콜록….”

“모든 게 연방을 위해서입니다… 그레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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