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023화 (1,02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23화

뒷정리 (6)

‘색기영이 임팩트가 세긴 셌었나 봐.’

라는 생각이 들기야 든다. 나름대로 세탁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대중들에게 선보였던 첫 임팩트가 강렬했던 것 같은 느낌.

몇몇 옳은 뜻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색기영을 경계하는 것도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현재 대륙은 누가 보기에도 친 이기영으로 굴러가고 있다. 교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공화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중립국 라이오스나 이종족 연합, 그 외 수많은 권력자들이 이기영과 연을 가지고 있는 상황.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 있는 이들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끼겠지만 몇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면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만약에 색기영이 다시 한번 깨어난다면 대륙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간단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겉잡을 수 없이 커졌을 즈음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대륙의 초월자들은 모두 이기영의 수족이었고 그를 대신해 희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노을빛의 검사와 대마법사, 붉은전신은 모두 이기영의 바지폭에 사로잡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그 외 수많은 권력자들 역시 그를 견제하기는커녕 두고 보고 있는 상황.

‘다들 입 다물고 있으라고 으름장 내놓은 게 역효과가 됐나 봐. 그 난리가 터졌는데도 쉬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진짜로 그리 느낄 만도 해.’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당장 조사를 받아야 함이 옳은 사건이었다.

이단심문관들을 통한 조사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과정은 겪어야만 상황이었다.

누가 생각해도 비상식적이지 않은가.

‘좀 이상하기는 했을 거야.’

만약 색기영이 다시금 대륙에 강림한다면 대륙은 반드시 멸망한다.

연방의 망둥이를 비롯한 젊은 피들은 이것을 실감하고 있었나 보다.

극단적인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누군가는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녀석들은 알게 모르게 힘을 모으기 시작했을 것이다.

단순히 색기영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륙 하나가 인물 하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만약에 이기영 안에 잠들어 있는 색욕과 영면의 군주가 깨어났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면 상황은 더욱더 심각해진다.

지금의 빛의 성자의 안에 색욕과 영면의 군주가 숨어 있다면… 단순히 탈을 쓰고 있는 것이라면….

색욕과 영면의 군주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했을지에 대해서는 감이 오지 않았지만 어쩌면 흑막 같은 느낌으로 해석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선다.

세 치 혀와 고유능력으로 노을빛의 검사를 노예로 부리고 바하무트를 영면에 들게 한 최종 빌런.

모종의 이유로 그가 때를 기다리며 힘을 모으고 있는 거라면….

그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

그 힘을 집중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연방과 연합이라는 이야기겠지.

너무 앞서나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야 했지만 연방의 망둥이의 발언, 그리고 녀석과 동조하는 일부 녀석들의 분위기를 보면, 단순 중앙집권체제에 의한 독재만을 경계하기보다는 조금 더 큰 뜻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전설 등급의 아이템 절름발이 이단사냥꾼의 미스릴 활은 연방의 씨앤씨 길드로 양도하겠습니다.”

‘물론 전부 억측일 수도 있으니까. 확인 작업 한 번은 거쳐 봐야지.’

“혹시 다른 이견 있으신 분이 계시면 말씀해 주세요.”

“없습니다. 이종족 연합만 괜찮다면 말입니다.”

“엘리오스 님께서는….”

“네. 이기영 님. 몬스터 사체에 대한 지분을 조금 더 가져갈 수 있다면… 사실 드워프들 외에는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실정이니….”

“다른 이견이 없으시다면 절름발이 이단사냥꾼의 미스릴 활은 씨앤씨 길드에 지급하겠습니다.”

‘그 와중에 엘리오스 이 새끼는 눈치도 없어요. 시바 새끼.’

묘하게 연방에 힘을 실어주는 녀석이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이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있다.

혹시나 이 새끼도 연방의 망둥이와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엘리오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새끼 그냥 나한테 잘 보이고 싶나 봐.’

빛의 성자로서 소외된 연방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으니, 이종족연합의 대표로서 내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가증스러운 새끼. 네가 아무리 그래도 혜지니는 못 줘요. 시바.’

물론 이종족연합에서도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드워프 장인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아이템 하나를 얻는 것보다 높은 등급을 지닌 개체의 지분을 가져가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이득.

고생은 드워프들이 하겠지만… 애초에 드워프들은 뭔가를 만드는 것을 즐기기도 하니 논외.

소외된 세력에 도움을 주면서 이미지도 챙기고 교국 권력자들이랑 공화국 권력자들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는 나도 돕고.

녀석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라고 할 만했다.

“혹시라도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오스 님. 이단사냥꾼의 활은 사실… 이종족 연합에게 돌아가야 하는 아이템이었는데….”

“아닙니다. 명예추기경님. 마음은 감사하지만 신경 써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훈훈한 미소를 장전하는 모습은 가관, 아마 이 새끼는 혜진이 앞에서도 대륙의 미래를 위해서 이종족 연합이 다소 손해를 감수했다고 말할 거야.

‘사실 손해도 아니면서 시바.’

“그럼 종교대법관 칼릭스의 단검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검은 백조에게 양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예추기경님.”

“더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박연주 님.”

“마음만으로도 감사해요. 명예추기경님.”

검은백조에 4개. 붉은용병에 5개. 파란 길드에 6개.

그 외 린델에 상주하고 있는 중견 길드에서 각각 2개씩.

안개 소환사 천관위가 3개, 저격수 위란이 2개.

소형 길드나 파티는 전설 등급의 아이템 하나를 분배하거나 영웅 등급의 아이템 5개로 대체.

길드와 클랜을 통합해 움직이고 있는 공화국 중앙의 대표 진청은 22개를 가지고 갔고.

‘아마 알아서 분배하겠지.’

그 외, 공화국 지역 대표들에게도 약 3개에서 6개가 되는 전설 아이템들을 지급했다.

준수한 활약과 드워프 물자를 지급한 이종족 연합 역시 10개가 넘는 아이템을 받아갔다.

“다음 스펠북은 포스트말론 길드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연방에 나름 챙겨주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적절한 분배를 할 수 있다 봐도 됐을 테니까.

문제가 되는 건 이거겠지.

“그리고 다음… 신화 등급의 아이템 대주교 드락타리스의 기다림의 지팡이, 마찬가지로 신화 등급의 아이템 템플러 바하무트의 슬픔의 방패입니다. 이 두 가지 아이템은 파란 길드에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신화 등급의 아이템 템플러 시몬의 거미줄 단검은 공화국 중앙 대표에게. 신화 등급의 아이템 템플러 시몬의 거미줄 와이어는 검은백조.”

“…….”

“신화 등급의 아이템 템플러 젠의 우정과 존경을 담아 간직한 로자리오는 라파엘 파티.”

“…….”

“템플러 불카모스의 절규의 망치는 붉은용병 길드에게 지급하겠습니다.”

이건 못 주지.

[대주교 드락타리스의 기다림의 지팡이-신화 등급]

[지하신전의 대주교 드락타리스가 영겁의 시간 동안 사용하던 지팡이입니다. 그는 매일매일을 지팡이와 함께했습니다. 때로는 루키페르 신을, 때로는 알타누스 성녀를, 때로는 예언의 사제를 위해 기도한 그의 신성력이 평범한 지팡이에 녹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영겁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지팡이는 그가 존경과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이들의 힘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성스럽고 거룩한 신성력을 가진 성물이 되었습니다. 신성력이 +20 올라갑니다. 신화 등급의 특수 스킬 [드락타리스의 사제들(제한시간 1시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언의 사제여. 예언의 사제여. 나는 당신을 평생 동안 기다렸나이다. 언젠가 찾아올 그 날을 위해.]

이건 희영이 거.

[템플러 바하무트의 슬픔과 절망의 방패-신화 등급]

[지하신전의 템플러, 과거의 영웅, 붉은 사자, 살아 있는 반신, 바하무트가 보조 무장으로 사용했던 방패입니다. 과거의 영웅이라 불리는 그는 대검을 사용하던 검사로서, 방패를 자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일어난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그는 점점 미쳐 갔습니다. 그는 그가 사용하던 무장들과 그가 신앙으로 삼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외면했습니다. 반신조차 벨 수 있는 대검을 버리고, 그 어떤 공격도 빗겨나가게 할 수 있는 투구 역시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방패만은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방패가 가진 상징적인 의미 때문일까요. 주인의식이 필요합니다. 그 외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키지 못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건 우리 덕구 거야.

대주교 드락타리스의 기다림의 지팡이의 능력만 봐도 기능이 미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다소 뒤처져 있었던 돼지 새끼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저 방패를 가져오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리라.

문제는 다소 눈치가 보였다는 것 하나.

‘망둥이가 지껄이기 전이랑 별로 달라진 게 없었으니까.’

연방에 전설 등급의 아이템 몇 가지를 뿌리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격이 다른 종류의 아이템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궁합만 맞는다면 전설 등급에 이른 모험가가 초월자가 보는 경치를 엿보게 해줄 수 있을 정도의 아이템.

녀석들이 정말로 색욕과 영면의 군주를 견제하고 싶다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아이템일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뭐 어쩌라구. 이건 우리 돼지 거예요.’

“혹시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그건….”

뭔가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원하는 것은 공평하게 신화 등급의 아이템들을 각 지역별로 나누는 것일 테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한 게 없거든.’

“다른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정확히 원정의 기여도에 의거해 분배했습니다. 앞선 회의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혹시나 다른 의견은….”

“조심스럽게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셔도 됩니다. 굿맨 길드마스터님.”

“대주교 드락타리스의 레이드를 진행하고 템플러 바하무트 레이드에서 눈에 띄는 공적을 보였던 붉은용병에 신화 등급의 아이템 한 정을, 전반적인 순찰 임무와 템플러 시몬을 공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보였던 검은백조에 한 정을, 이번 던전을 발견한 1인이자 템플러 바하무트 유인작전을 훌륭하게 성공시켰던 라파엘 파티에게 한 정을, 지휘작전과 원정대를 이끌었던 공화국의 진청 군사님께 한 정을, 템플러 바하무트를 쓰러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노을빛의 검사에게 한 정을… 지급한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노을빛의 검사님의 공적이 다른 분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만….”

“네.”

“하지만 명예추기경님. 바하무트 공략은 다른 원정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실제로 그의 체력과 내구력을 많이 소진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는 바하무트 유인 작전에서도… 다른 원정대원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네.”

“본,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노을빛의 검사의 공적은 충분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신화 등급의 아이템 두 정을 가지고 가는 것은… 조, 조금… 형평성에… 아니,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노을빛의 검사님께서는 이미 전령 겔크의 장화에 대해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전령 겔크의 장화는 준신화 등급의 아이템이고….”

“굿맨 길드마스터께서는 지금 노을빛의 검사의 활약이 신화 등급의 아이템 두 정에 걸맞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의논을 거칠 여지가 남아 있다고….”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굿맨 길드 마스터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저 역시 그런 것들을 고려해 노을빛의 검사에게 할당된 아이템으로는 전령 겔크의 장화와 신화 등급의 아이템 한 정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럼… 나머지 한 정은….”

“템플러 바하무트의 슬픔과 절망의 방패는. 제 공적과 기여도로 올려놓은 아이템입니다.”

다른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사령관으로서 빛의 성자의 기여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몇몇 이들이 배신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왜. 내가 양보할 거라고 생각했나 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봐.

초대장을 사용해 과거와 현재를 비틀었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도 없다.

지휘관으로서의 공적을 정산해도, 아이템 한 정을 차지하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저는… 명예추기경으로서 대륙의 평안과 안정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지만….”

“…….”

“파란의 부길드마스터이기도 합니다.”

작은 욕심.

한평생 대가 없이 모든 것을 희생하기만 한 성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것을 제대로 주장한 순간일 것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