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04화
뿌린 대로 거둔다 (11)
통칭 구역질 나오는 바하무트, 아무리 모자라도 녀석은 최소 신화 등급 이상의 몬스터라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옳다.
대략적인 패턴, 운동능력과 신체적 특징, 특수기와, 고유능력 등등 녀석에 관해서는 대략적인 데이터를 얻기는 했지만 이쪽이 모은 데이터가 확실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라파엘과의 추격전 중에 얻은 데이터는 사실상 너프된 버전이라고 말해야 할 테니까.
추격하는 과정에서 깃털이 손상되는 것을 조심했다고 판단한다면 사실상 이쪽이 모르는 능력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원거리 스킬도 보유하고 있겠지. 뭐.’
브레스를 뱉어내든 손가락에서 빔을 쏘든, 파편을 떼어내어 던지든 간에 아마 원거리에서 라파엘을 제압할 수단 몇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저 정도의 몬스터가 원거리 공격기가 전무하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거니와….
‘바하무트 타락 전 버전도 마력 정도는 쏘아 보낼 수 있었겠다.’
그건 예전의 녀석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을 테니까.
물론 의미 없는 문제였다.
혹여나, 만약에라도 라파엘이 깃털과 함께 사라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음이 분명하리라.
1004의 깃털은 저 역겨운 악마의 움직임을 봉인하는 것은 물론 녀석에게 자체 디버프를 안겨다 주는 훌륭한 수단.
공격기의 대부분을 봉인당한 녀석은 침묵 마법에 맞은 것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깃털과 함께 적들 사이에 떨어진 녀석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
그저 웅크리는 것. 하나지.
어쩐지….
‘어쩐지 너무 신성해 보이더라니.’
단순히 빛나 보이기만 하는 깃털이 저런 효과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희생의 천사가 저 땅 위에 깃털을 남긴 것은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천사의 깃털은 추악한 악마를 완벽하게 옭아매고 있는 것으로 모자라 녀석이 스스로 약점을 들춰내게끔 만들고 있는 중, 거대한 몸체로 원정대의 공격을 그대로 막아내고 있는 녀석은 모든 곳이 빈틈투성이라 할 만했다.
적에게는 절망을 아군에게는 희망을.
작은 깃털이 신성한 빛과 함께 쏘아 올린 작은 기적은 지쳐 있는 아군들에게 고양감과 믿음을 심어준다.
‘우리가 정말로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저 짐승과도 같은 악마에게 한낱 인간에 불과한 우리들이 감히 대항할 수 있을까.
말로는 표현한 적이 없지만 모두가 속으로 가지고 있었던 작은 불안감.
대륙이, 인류가 커다란 위기를 매번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강대한 적의 등장에 깎여 나간 자존심과 자존감.
초월적인, 영겁의 시간을 살아온 괴물에게 느낄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두려움.
희생의 천사의 깃털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우리들이 강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상징이자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밀어붙여어어어!!”
“쏴라! 쏴!!! 퍼부어! 퍼부어라!!”
평범한 모험가들부터.
“임무 떨어졌습니다.”
“내구가 너무 단단해서… 노릴 곳이 한정적이기는 한데.”
“작전 시작.”
저마다의 뜻을 품은 영웅들.
-예언의 사제를 위하여!
-예언의 사제를 위하여!!
-때가 왔도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왔도다.
-빛을 되찾으리라! 우리의 빛을 되찾으리라! 영겁의 시간 동안 기다려왔던 보상을!
영겁의 세월을 기다리며 어둠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렸던 성스러운 망령들까지.
모여 있는 인원들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저마다의 긍지와 명예, 대륙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가슴속에 안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화력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해.’
모든 것을 붙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는 상처가 난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야 되겠네.’
검은색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는 부분 말이야. 우리 쪽이 만들어낸 상처가 아니라 녀석이 길고 긴 시간 동안 자해하며 스스로 상처를 낸 부분 있자너.
손발을 자르고 꼼짝 못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공략의 핵심. 관절과 주요 근육이 있는 자리에 지속적으로 타격을 주는 것이 유효하다.
‘어차피 결정타는 바로 못 먹여.’
[우아어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굳이 조준할 필요도 없어.
자기가 스스로 갖다 대주자너.
커다란 빛이 떨어진다. 망령의 사제들의 힘이 하나로 모인 거대한 창은 녀석의 등으로 떨어진다.
몸을 비틀면 간단하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이겠지만 녀석은 몸을 비틀 수 없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놈은 자신이 온전하게 깃털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지난번의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거든.
이 인간들이 얼마나 집요한지, 어떻게 자신을 귀찮게 했었는지, 학습되어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할래?’
“발사! 발사!”
‘옆으로 빠져나갈래?’
확신이 없을 거야.
‘아니면 위로 솟구칠래?’
네 개의 눈, 두 개의 눈은 깃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머지 두 개의 눈으로는 사방을 살피고 있다.
‘포위망을 뚫고 가는 건 어때? 일부로 헐겁게 해놓은 곳도 있는데. 그래. 그쪽. 그쪽으로 몸을 피하면 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우어으….]
콰아아아아아앙!!!
쾅!!!
후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우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아!!]
‘그래. 거기도 안 될 것 같아? 함정일 것 같아? 그렇지?’
함정 같아 보일 거야. 실제로 함정이 맞아.
녀석에게 위험한 함정은 아니다. 하지만 녀석이 지키려고 하는 것을 위험하게 만드는 함정이겠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 상황.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자신의 보물을 지켜야 하는 과정에 주사위를 던질 정도로 대담하지 않다.
아주 작은 위험, 아주 작은 가능성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꼬리를 움직이는 것 정도.
하지만.
‘사정거리 파악은 이미 끝났죠?’
사정 범위에 있는 인원들은 한 발자국 물러서고, 남은 인원들은 한 발자국 앞으로 전진한다.
녀석이 턴을 잘못 사용한 덕분에, 녀석이 품고 있는 보물은 위험에 더 노출된다.
녀석이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이 눈에 보인 것은 바로 그때.
‘브레스라도 쏴 보려고?’
녀석은 쏠 수 없다.
이런 짐승이 블러핑을 하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그쪽이라면 이쪽이 한 수 위. 대놓고 전위들을 배치한다.
‘고개 들면 끝나는 거야.’
인간이 개미로 보일지는 몰라. 근데 뭐 어쩔래? 한 마리라도 네 품 안으로 들어가서 네 천사의 깃털을 빼앗거나 파괴하면 어쩔래.
라파엘도 신경 쓰일 거야. 네가 잡을 수 없는 걔는 날아다닐 수도 있잖아.
[우어아… 으으으….]
녀석은 쏘지 못한다.
콰아아아앙!!
“주문외워!”
콰아아아아아아앙!!
---거기.
---1급 지휘관 코드네임 지니어스입니다.
---지정해 드린 좌표에 캠프 설치 부탁드립니다.
---네?
---지정해 드린 좌표에 캠프 설치하고 마법사들을 포함한 원거리 클래스들을 휴식시키세요. 마법사들 7개 조로 분리해서 운용하겠습니다. 3개 조를 남기고 모두 휴식에 들어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
---한데… 정, 정말이십니까?
---시키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 코드네임 지니어스가 뭘 걱정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애써 힘들여 만들어 놓은 포위망에 있는 인원들을 따로 빼 캠프를 만든다는 게 이해가 안 되기는 할 것이다.
적은 상상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을 테니까.
근데 안 쫄아도 돼.
‘기껏해야 짐승이거든.’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럽게 몇 발자국 물러서는 후방인원들이 보인다.
‘커피나 한잔할까.’
당연히 헐거워지는 포위망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 초반에 엄청나게 쏟아지던 마법과 화살도 점점 더 눈에 띄게 줄어든다.
주기적으로 공격을 퍼붓고는 있지는 아까와 다른 것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의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움직이지 못한다.
잔뜩 몸을 웅크린 녀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녀석은 두 눈으로 계속해서 전장을 살펴보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다.
-겁먹었군.
-군사님 눈에도 그렇게 보여요?
겁먹은 것이다. 이쪽이 뭔가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어째서 병력을 뺀 건지도, 뭘 위해서 공격이 줄어든 건지도 녀석은 확인할 방도가 없다.
아니, 만약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확신이 없을 것이다. 이전에 한 번 잃어본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
-많이 무리하신 것 같은데. 조금 쉴래요?
-웃기는군. 네놈이야말로 쉬는 게 좋을 텐데.
-아. 고마워요. 그럼 나는 커피 한 잔만 하고 올게. 통제는 알아서 해주세요.
-길어질 것 같으니까. 저도 좀 쉴게요. 진 군사님. 오빠. 얘들 한 4시간마다 교대시키면 되려나?
-그 정도?
-장기전이네요.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 몬스터 자체 회복력이 빠른 것도 염두에 둬야 해요.
-계속 누적시키는 선에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조금만 더 쉬면 하얀이도 회복할 것 같으니까. 그전까지는 공성무기로 두드리는 식으로 가면 되겠지.
희생의 천사의 깃털에 붙들려 있는 저 짐승에게는 주변에 있는 것들이 전부 지뢰로 보일 것이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터질 것만 같은 지뢰, 모조리 블러핑이었지만 녀석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다.
“희라 누나. 커피 한 잔 마실래?”
“자기. 이제 좀 괜찮아졌어?”
“누나 때문에. 고마워.”
살짝 아양 한번 떨어준 이후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물론 놈에게 눈을 떼는 일은 없다. 명목상으로는 휴식을 취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진 군사를 믿을 수는 없었으니까.
거대한 쇠사슬이 묶인 발리스타가 발사되고 놈의 몸 곳곳에 박힌다.
[우으어아아아아!]
마법 공병들은 곧바로 쇠사슬을 던전에 박혀 있는 철들과 용접하기 시작, 놈을 묶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움직임을 제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꼬챙이가 되어버린 녀석은 자신의 행동을 묶는 쇠사슬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으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후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웅크리고 있는 지면에 금이 간 것은 바로 그때.
‘그럴 리가 없는데.’
녀석이 주사위를 던졌을 리는 없다. 지하로 탈출할 가능성은 없고… 현시점에서 지면이 부서질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이미 계산은 끝냈어.’
저 지면이 어느 정도의 하중과 충격을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이미 끝난 지 오래, 분석이 틀렸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허투루 만들어진 작전이 아니었으니까.
-공격 중지! 공격 중지!
진 군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화살은 활시위를 떠난다.
바하무트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면이 무너지고, 녀석이 떨어져 내린다.
내 시선은 깃털을 찾는다. 아마 녀석의 시선도 천사의 깃털을 쫓고 있을 것이다.
이윽고, 무너지기 시작한 지면의 파편들 속에서 엉망이 되어버린 채 떨어지는 깃털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괴성이 들려오는 상황.
당황했지만
상황 판단은 빠르다.
혹여라도 상황이 꼬일 가능성을 대비한 플랜은 많았으니까.
천천히 옮기기 시작한 발걸음은 어느새 나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저도 모르게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기 시작한다.
그간 참아왔던 눈물이 계속해서 쏟아져 내린다.
무엇을 위해서 흘린 눈물이었을까.
“바하… 무트… 바하무트 니임!”
상처 입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을, 영겁의 시간을 버텨온….
친우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 긴 시간을 괴물에 몸에 갇혀, 스스로 타락한….
영웅을 위해서였을까?
희생의 천사의 깃털만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
멍청한 바보를 위해서였을까.
“바하무트 님! 바하무트 님!!”
지하신전에서의 작은 추억,
희생의 천사와 과거의 영웅 속에 남아 있는 아련한 기억.
다시 한번 두 사람이 재회할 거라는 것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기다리고 기다려온 두 사람의 재회.
그 아름다운 재회를 코앞에 둔 시점,
계절은….
계절은,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