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001화
뿌린 대로 거둔다 (8)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곧바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입니다.”
“전후 사정을 설명을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설명드리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간에… 지금 곧바로, 아니, 4분 뒤에 이동하셔야 합니다.”
“제길… 그게 무슨 말이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소위 전투 직군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닐 테니까.
현장지휘관으로 원정대에 참여한 나 역시도 이해하기 힘든 명령이었으니 저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현장지휘관 타이틀을 달고 이 자리에 있는 거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매번 그렇지만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리라.
보통 이런 경우는 던전 안에서나 밖에서나 흔하게 일어나는 경우였다.
현장지휘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클랜이나 길드에서도 소위 행정직군들을 유행처럼 영입했지만, 아직까지 대부분 모험가들의 전반적인 방식을 뒤바꾸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전투직군들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두가 너무 급하게 영입 전쟁에 뛰어든 탓이다.
보통의 개발도상국들이 급격하게 경제 발전을 한 부작용처럼 현장지휘관의 존재와 기용 역시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었다.
전투직군들은 기본적으로 현장지휘관들을 신용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방법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했으며, 지휘관들을 제대로 된 사냥 경험이나 전쟁 경험도 없는 멍청이들이라고 평가했다.
야전지휘관들 역시 모험가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족속들이었으니까.
그동안 주요직업으로 대우받지 못한 열등감의 표출이기도 했지만 어처구니없는 선민사상이 자리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던전이나 사냥을 나가는 클랜, 길드에서 터지는 사건 중 하나가 지휘관과의 갈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모험지나 언론에서도 지휘관들이 잘못된 지시를 내려 파티원들이 전멸한 경우나, 파티원들이 지휘관에게 협력하지 않아 사고가 난 사례들은, 이 업계에 발을 들인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뜨거운 감자이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위에서 내려온 명령입니다. 솔직히 저도 잘… 지금 다시 한번 연락을 넣어보겠습니다.”
-이유는 알 필요 없음. 명령 수행 요망. 작전 시작 4분 전.
‘제길.’
서둘러 통신 채널에 메시지를 남긴다. 아마 다른 부대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알 필요 없음. 작전 시작 3분 55초 전.
자신은 1급 지휘관이다. 거의 모든 작전 내용에 접근 권한을 가진 1급 지휘관, 공화국의 군사와 교국의 명예추기경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1급 지휘관 말이다.
애초에 그런 조건으로 이 원정대에 참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작전 정보 접근 승인 요청. 1급 야전 지휘관 코드네임 지니어스.
냉정히 말해 구태여 이유를 알 필요는 없다. 위에서 명령을 내렸다면 따르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였으니까. 하지만….
‘작전 내용을 알아야 해.’
그래야 변수에 대응할 수 있다. 자신이 말단 지휘관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지만 어느 정도 권한이 있는 위치에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작전에 따라주는 이들을 납득시켜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 잡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리라.
그게 후발주자였던 내가 이 정도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제발 승인돼라.’
“…….”
‘제발….’
-제한적 승인 허가. 작전 시작 3분 10초 전.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
“…….”
“뭐야….”
“…….”
“이게 도대체 뭐야….”
[라파엘 이동 경로 42루트 전송]
[수정 요청]
[수정 요청 확인]
[7부대 작전 내용 수정 요청]
[현재 부대 위치 및 바하무트 예상 이동 경로]
[…….]
[바하무트 예상 이동 경로 변수 확률 12.24%]
[…….]
[추가 예상 이동 경로 13루트 추가함. 확인]
[…….]
[42부대 병력 손실 확률 높음. 수정.]
[…….]
순식간에 눈앞을 화면들이 꽉 채우기 시작한다. 수많은 텍스트와 이해할 수 없는 좌표와 경로, 마치 미로처럼 보이는 표식들이 눈앞을 채우기 시작한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에 저절로 입을 벌리게 된다. 적의 위치와 아군의 위치, 원정대 전원을 상대로 떨어진 경로와 변수들까지 모두 표시되어 있다.
변화는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자신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한 양의 전술들의 변화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이 화면 안에 있는 것들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다.
지하신전 전체를 펼친 것만 같아 보이는 맵으로 수많은 선들이 가로지른다.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선들이 서로 맞물린다. 이게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병력, 혹은 누군가의 이동 경로를 표시한 것 같았지만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다.
붉은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보스 몬스터의 이동 경로라는 것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지만 붉은 선 역시 수백 가지 방향으로 뻗어 있다.
‘예상 이동 경로.’
이 몬스터의 예상 이동 경로다.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다의 범주가 아니다. 수많은 작전에 참여했던 내 눈에도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암호처럼 보인다.
[22부대 작전 성공 확률 92.5%][수정 요청]
[수정 요청 확인][22부대 작전 성공 확률 99.1%]
[사상자 확률 0.9%]
[작전 수행 승인]
‘작전의 성공 확률을 퍼센트 게이지로 표시한다고?’
이 4분 안에 만든, 아니, 만들고 있는 작전으로 사상자 확률을 재단한다고?
[파란 길드 작전 성공 확률 95.7%][수정 요청]
[수정 요청 확인][파란 길드 작전 성공 확률 99.8%]
[사상자 확률 0.2%]
[작전 수행 거절]
[수정 요청 확인][파란 길드 작전 성공 확률 100%]
[사상자 확률 0%]
[작전 수행 승인]
비인간적이다. 자신은 이것들을 이해할 자신은 없지만 이게 무엇을 뜻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적 빠르게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위에서는 이 작전에 대한 것들을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변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아마… 아마도 인간을 부품처럼 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한 채로, 마치 톱니바퀴처럼 명령의 수행하는 것이 변수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생존 확률 같은 걸 퍼센트 게이지로 측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3개월 동안 준비한 작전의 성공 확률을 8할이니 9할이니 하는 말로 떠벌리는 것과는 다르다.
너무나도 철저하게 인간을 데이터로 기계 부품 같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범위는 그들의 성향과 그들의 능력까지 고려되어 있다.
‘내가 이런 걸 봐도 되는 건가.’
자신이 이런 걸 들여다봐도 되는 걸까. 위에서 승인이 내려왔지만 이것들을….
-작전 시작 1분 9초 전
“뭐 알아낸 거 있습니까?”
“잘… 잘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지금 보고 있는 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 하지만… 실패하지는 않을 겁니다.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떻게 보일지 알 수 없다. 웃고 있을까 아니면 혐오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작전 시작 10초 전.
명령은 자신들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움직이겠습니다.”
자신은 병력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부대에게 떨어진 작전은 여섯 개다.
특정 위치에 이동한 뒤에 지정된 좌표로 원거리 마법을 퍼붓는 것 하나.
특정 위치로 이동한 뒤에, 신성마법을 뿌리는 것 둘, 특정 위치로 이동 한 뒤에, 기다리고 있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것까지 셋.
특정 위치로 이동한 뒤에, 타 아군 병력과 합류 하는 일 넷.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다. 부상자는 아직 없다. 이미 작전 중 타 부대에 부상자가 있을 것이라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작전이다.
그들의 죽음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부상자가 나타나지 않을 상황을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마저 변수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이건 미친 거야.’
교본에서도 그 어떤 모험일지에서도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부대 정렬! 부대 정렬!”
“지금….”
“부대 정렬! 위치 잡습니다. 위치!”
“지금 뭘 하고 있는 거….”
“위에서 내려온 명령입니다. 죽기 싫으면 위치 잡아야 합니다.”
“이유라도 좀….”
“제길! 저도 모른단 말입니다!”
모두가 떨떠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표정이 바뀌기 전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으어어어어어어어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우으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작전 위치에 당도한 이후에는 계속해서 땅이 흔들린다. 희미하게 들리는 굉음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마치 귀를 찢을 것처럼 들려오는 굉음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콰직 콰드드득! 하는 폭력적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부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에 서리기 시작한다.
심장이 울린다. 아니, 몸 전체가 저릿거린다.
아직 적과 조우하기 전이지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온몸을 지배한다.
죽고 싶지 않으면 명령에 따라야 한다. 그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명령일 것이다.
“이게… 무슨 일….”
“마법 준비하겠습니다.”
정확히 좌표를 지정한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지만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 쪽 부대가 저지를 실수도 저들이 말하는 변수 범위 안에 있을 테니까.
‘실수해도 돼.’
좌표를 입력하는 손이 덜덜 떨려왔다.
‘긴장하지 마.’
긴장으로 인해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발… 발사.”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마법이 치솟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손이 바로 자신의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히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법사들은 반사적으로 마법을 쏘아 보내고 전위들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얼어붙는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거대한 손은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전부 폐허로 만들었지만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을 지나치지 않는다.
눈앞에서 거대한 손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닿지 않았다.
심지어 파편들조차 말이다.
[우으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윽고 시야에 비친 것은 괴물의 거대한 몸. 저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렸지만 명령대로 쏘아진 마법은 녀석의 등에 틀어박혔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마 없을 것이다.
저 괴물은 이쪽에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녀석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위, 구멍이 뚫려 있는 위층에서 떨어진 인형 하나가 녀석에게 다가가 창으로 녀석의 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귀찮다는 듯이 팔을 휘두른 녀석에게 어디선가 날아온 보호막이 겹겹이 쌓이고 창을 든 여성은 보호막이 깨지기 전 반투명한 막을 미끄럼틀처럼 내려탄 이후에 아래쪽으로 사라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다시 천장을 뚫고 사라진다.
여기저기에서 그 움직임에 호응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진다.
“발사!”
“방패 들어! 방패 들어!!! 방패 들어! 이 새끼들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도대체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거야.’
“1초 붙잡는다. 1초! 1초만 붙잡는다!”
[우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제!! 사제!!!”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
“부상자는 놔두고 간다!”
“하지만….”
“제기랄! 명령이다! 부상자들은 내버려 두고 이동해!!”
“…….”
“이동하라고 이 새끼들아!!”
[우으아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벽을 부수고 지나간 괴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폐허에 덩그러니 남겨진 부대원들과 자신들이 다음 임무를 위해 만들어진 길 정도만 자리해 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사이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어 꽂혔다.
-다음 작전, 시작 20초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