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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82화 (97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982화

알타누스 (19)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도대체 뭐지?

변수 전멸 위험?

말을 똑바로 해야지 이 무능력한 새끼야.

전멸할 위험이 있다는 건지, 실제로 전멸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무게를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 확실히 전자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그 악마 소환사가 일이 터지고 난 이후에 메시지를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녀석이 무능하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못 하고 일이 터지게 놔둘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아.’

그만한 병력을 아무 대책도 없이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을 정도로 우리 진 군사가 무능하지는 않다고.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진청이 이상함을 감지한 타이밍은 아마 드락타리스 공략이 진행되면서부터.

진행이 더뎌지자 의문을 느끼고, 보험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드락타리스가 완료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공략을 진행시켰다고 보는 게 맞다.

암호를 완성할 수 있을 정도의 퀘스트를 쌓아 놨어야 했을 테니까.

‘변수가 뭐지?’

당장 생각나는 건 바하무트와 원정대가 마주쳤을 경우, 다른 경우는 드락타리스 쪽에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

‘죽은 길드원들은 있나? 변수와 직접 마주친 이후에 탈출한 건가?’

병력은 분산되어 있었을 것이다.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자리에 잔존 병력이 있어야 했을 테니까.

그렇게 본다면 아직 절망할 타이밍은 아니다. 당장 원정대는 외부로 병력을 차출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전멸한 이후에 뒤늦게 병력을 배치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아까 말했던 대로 녀석은 일이 터지고 나서 수습할 정도로 무능하지 않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보험을 한두 개쯤 만들어 놓으니까.

아이러니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존심 센 새끼가 이쪽에게 짐을 떠넘길 정도라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보험들은 모조리 날아간 거고, 어떻게 봐도 최후의 최후만 남았다고 보는 게 맞지.

내게 도움을 청한다는 건 녀석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최악일 테니까. 웬만하면 저런 선택지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시발… 시발….’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지? 사망자들은? 돼지 새끼는 잘 있나?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아니, 저쪽에서 다시 소통할 여력이 있나?

병력을 철수시키고 있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빠르게 후퇴 매뉴얼을 밟고 있다면? 퀘스트를 받고 완수할 여력이 있는 건가?

정하얀은 괜찮다. 한소라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괜찮을 것이다.

하얀이보다는 조혜진이나 돼지 새끼가 신경 쓰인다. 나를 버리고 가! 같은 개소리를 지껄일까 봐. 쓸데없는 새끼들 살리느라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까 봐.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편하게 생각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게 제대로 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깊게 생각할 타이밍이 오지 않는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일단 퀘스트부터… 다시… 아니야. 지금…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비친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곧바로 이쪽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나 지난 거지?’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들은 모두 회복된 것 같지만….”

“…….”

“…….”

말을 건넨 것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알타누스 성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틀림없이 이쪽을 치료한 것은 베니고어일 것이다.

겁화의 낙인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이가 얼마 없다는 건 둘째 치고 그냥 눈앞에 있는 게 베니고어라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이 베니고어라는 것을 들키기 싫은지 묘하게 목소리를 변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쪽을 속일 수 있을 리 만무, 연기력은 훌륭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위화감이 있다.

‘제길.’

“제가… 쓰러진 지 얼마나….”

“여섯 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기력이 많이 쇠하신 것 같아…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는 계속해서 진행 중이니… 너무 심려 마시고 자기 자신부터 챙기도록 하세요.”

‘여섯 시간이나 지났다고?’

그 이후로 여섯 시간이나 지났어?

“여섯 시간….”

‘씨발… 씨발….’

퀘스트 창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완료된 퀘스트가 두 개.

이건 암호가 아니다.

생존 신호라고 보는 게 맞다. 아무 이유 없이 퀘스트를 완료했을 리는 없으니까.

첫 번째 생존 신호가 네 시간 전, 두 번째 생존 신호가 두 시간 전.

두 시간을 주기로 한 번씩 원정대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수단.

남은 퀘스트 개수가 총 8개. 최소한 16시간은 원정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다시 퀘스트를 등록하고 녀석이 다시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면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겨우 16시간이야.

퀘스트를 다시 한번 등록하고 숨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원정대가 찾아내길 기대하는 건….

일단 움직이는 게 맞지만….

아니, 왜 나머지 하나는 도착을 안 했지?

왜 하나는….

‘어?’

언제나 그렇듯 이상한 발작이 찾아오는 것 같다.

‘어….’

숨을 쉬기가 힘들고 머리가 아프다.

“사제님?”

“하악… 하아… 하악….”

“사제님. 사제님?”

“시이발….”

“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씨발, 아직 여섯 시간 안 지났잖아.’

이제 막 여섯 시간 지난 거잖아. 시바.

원망스러운 눈으로 베니고어를 바라볼 수도 없다.

‘14시간.’

앞으로 14시간.

해야 할 일은 명확했으니까.

‘진 군사나 누나랑 만나서 회의라도 한 다음에 여기 왔어야 했어.’

상황이 꼬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 현재로 가고 싶기도 했지만 이제 막 사교회를 틀어막은 시점이 아니었던가.

아니, 솔직히 내가 가더라도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여기 온 이유는 카스가노 유노가 본 미래 때문이었으니까.

원정대에게 일어난 변수가 무엇인지도 확인하지 못했고, 바하무트에 대한 작업도, 드락타리스에게 메시지도 남기지 못했다.

‘알타누스도 제대로 작업 못 했는데….’

이타누스가 되고 싶다고 해서 곧바로 이타누스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이전에 베니고어에게 설명할 것도 많다. 철의 처녀라든지, 내가 이타누스가 된 이후에 그녀의 행동 방향과 방침도 결정해 줘야 했다.

일단 아까의 분위기를 살려 곧바로 발버둥 친 것은 당연지사.

“아흑….”

“사제님….”

그 와중에 이쪽에 신성력을 몰아넣는 베니고어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외상은 전부 사라졌지만 겁화의 낙인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개인적인 설정에 충실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해.’

베니고어가 내 말을 믿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이기영과 베니고어는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든지, 철의 처녀에 들어가 세상을 관망하는 신이 된다든지 어쩌고저쩌고 지껄이기에는 부족하다.

“베니고어 님….”

“…….”

흐릿한 의식을 붙잡으며 곧바로 천천히 입을 연 것은 당연.

“베니… 베니고어 님.”

“그게… 무슨… 저는 베니고어라는 분이….”

“반드시 지켜… 드리겠습니다.”

면사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날 미친놈 보듯이 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

“이번에야말로… 제가 반드시… 베니고어 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사제… 님?”

하지만 예언의 사제의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련한 표정, 그리운 옛 연인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 마치 수백 년 동안 보지 못했던 그리웠던 사랑을 바라보는 눈빛.

눈에서는 폭포수처럼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힘겹게 들어 그녀의 손에 포갠다.

“당신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사람이 또 거짓말을 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베니고어는 역시 이 사제의 옛 연인이었구나 하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정답은 그게 아니다.

“아니… 알타누스 님… 하아… 하아….”

“…….”

“죄송합니다… 알타누스 님… 오랜 시간 동안 혼자… 홀로… 내버려 둬…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아아… 나의 모든 것. 나의 빛.”

“사제님?”

면사가 떨어진다.

틀림없이 베니고어의 얼굴이 자리해 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베니고어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들켰다는 듯이 황급히 다시 얼굴을 가리는 베니고어였지만 이윽고 천천히 손을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남자는 베니고어와 알타누스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지상의 사제는 자신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 사실을 숨기기까지 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제. 루키페르의 신탁을 받은… 지상에서 내려온 사제.

‘지금 당장은 정신이 없는 것 같지만.’

생각이 정리되면 물어올 게 많을 것이다. 힘을 들여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치 아주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예전에도 분명 이랬던 적이 있는 것처럼.

나는 눈을 감는다. 쓸데없는 잠꼬대를 한 것처럼 말이다.

‘분명히 깨어나고 나면 이런 말 할 거야.’

사제님은 누구신가요? 정체가 뭐죠?

어째서 저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나요?

제가 알타누스 성녀라는 걸 알고 접근하신 건가요?

홀로 내버려 둬서 죄송하다고, 지키지 못했다는 건 도대체….

“도대체 뭔가요?”

성격이 급한 건 그녀의 기본 성정인 모양이다. 정확히 2시간 12분이 지난 이후 예상처럼 자신의 의문점을 정리해 질문을 던진 베니고어.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저는….”

“거짓을 말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저는… 저는….”

“제 의문에 답해주세요. 사제님.”

“저는 회귀자입니다.”

라고.

그래. 나는 회귀자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옛 연인 베니고어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 설정은 먹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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